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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이 해준 도서관 지난 이야기
스컹크, 소성-하림 아빠와 다슬기의 수고로 도서관 화장실의 방수공사가 되었습니다. 비가 와도 이제 비가 세지 않겠지요 !
책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책 먼지 닦기, 책에 붙어있는 띠 라벨 떼기 등 정리 작업을 소리샘을 비롯한 독서모임 참여자 분들께서 손에 지문이 다 지워질 정도로 열심을 내어 수고를 해주시고 계십니다.
도서관 관리 시스템을 도서관 컴퓨터에 설치하였습니다. 현재 4권의 책이 입력되었습니다. 맨발동무 도서관의 자원봉사자 팀을 꾸려 7월 중순에 입력작업을 집중적으로 할 예정입니다.
서가 설계가 완료되었습니다. 바람개비께서 설계도를 광주에 보내시면 비용견적이 나올 예정입니다.
교육청에서 지급된 보조비는 도서관의 자재, 공구 및 도서 구입으로 지출 될 예정입니다.
서가 조립 작업을 7월, 늦으면 8월 초 내로 완료할 예정입니다. 조립 후 천연기름 바르기 작업은 부모님 울력 때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독서 모임은 방학 때까지 화요일 오천 9시 20분 부터 진행이 됩니다.
함께 고민하는 도서관학교
(보리밥) – 우리의 이야기를 도서관학교 / 마을 아카이브 / 운영, 이렇게 세가지 축을 중심에 두고 나누어야 겠어요.
지난 목요일에 임시수도 기념관의 학예사분을 만나뵈었습니다. 그분은 공기관의 자리에서 부산을 중심으로 큰 단위의 아카이브 관련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을아카이브 생각을 나누었더니 한달에 한번 함께 구술사 관련 공부 모임을 하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우리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마을을 중심으로 마을 생애사, 구술을 수집하여 정리하는 구술사 아카이브인데, 아직 마을 주민분들을 만나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네요. 더 고심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도서관 학교의 공간의 쓰임에 대한 고심들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맨발동무 도서관의 아카이브팀이 홍동 밝맑도서관을 7월 말에 방문 예정입니다. 이영남(아키비스트) 선생님을 만날 예정입니다.
(스컹크) – 구체적으로 도서관학교의 대상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번째로 미취학 아이들, 정규 학교에 보내고 싶었으나 정규과정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 와서 배울 수 있는 곳. “책과 함께 뒹굴뒹굴”와 같은 프로그램이 좋겠다.
두번째로는 현재 최고 학년들이 9년 과정을 마친 후 스스로 공부 할 수 있도록 심화 과정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
(두더지) - 도서관학교 운영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특별히 마을 아카이브에 관련해서는 우리가 지금 해 볼 수 있는 일부터 시작을 하면 어떨까 ? 도서관 소식지와 같은 일. (학교) 전체 건물을 도서관 학교로 봐보세요. 도서관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학교의 움직임 그리고 그 것위에 더 덧붙여 지는 움직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 당장 우리 도서관에 필요한 것이 “소식지”이니 함께 중요하게 다루어 주었으면 합니다.
또한 사랑어린 배움터가 10주년이 되었으니 초창기에 발휘했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학교의 아카이브 차원에서 그 분들의 인터뷰를 준비했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부터 하는 것이 맞는 접근법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힘이 축적되어 다음 발걸음을 뗄 수 있는 또 다른 힘이 되지 않을까요 ?
또한 사랑어린배움터에서 고민했던 “마을공화국”의 바램, 그리고 영성의 문제까지 함께 생각해 봐야지요. 사랑어린배움터가 관옥나무도서관의 한 기둥이 되겠는가 ? 그리고 학교가 가진 도서관에 대한 역할도 함께 고민되어야지요.
(구랑실) - “도서관학교”라는 명칭이 낯설다하여 그 이름에 걸맞는 어떤 틀을 너무 짜놓으며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름과 관념을 탈피하여 지금 우리의 마음이 모아지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였으면 합니다. 꼭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만을 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의 필요에 맞추어 풀어나가는 방법이 되었으면 합니다.
(민들레) – 학교전체가 도서관이라 생각하면 이야기가 잘 쉽게 풀려가요. 민들레방에서는 민들레라는 책을 만나고, 신난다 방에서는 신나다 책을 만나는. 민들레가 쓰는 언어와 전달하는 이야기를 통해 민들레라는 사람을 만나듯이, 사람이 책이 되는 거지요. 그런데 또 다시 도서관학교라 하면 “학교”라는 그 단어에 막히네요. 우리가 학교라는 단어를 없애고 “배움터”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다시 도서관 “학교”라니 그 부분에서 의문이 듭니다.
(두더지) – 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마땅한 이름이 없어 붙여본 거지... 그냥 백지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에요. 상상력이 필요한 따름이지. 그림을 그려보고 아니면 다시 지워보고 또 해보고 아니면 안하면 되는 거지. 우리에게 과정자체가 공부인 것 같아요. 새롭게 상상을 해보고 실현해 보는 것이지요. 사실 “~같은 것”이지 그 것 자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전의 경험, 언어에 갇히게 되어 자꾸 벽에 부딪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그렇습니다.
(신난다) – 새식구 모심을 하면서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덕분에 “아, 우리가 이런 것 하려고 했었지” 라며 상기를 시켜주어 좋았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도서관학교를 시작하며 나누었던 이야기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도서관 하면 “이야기”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깊은 이야기, 내 속이야기를 하는 곳이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모여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고 치유되는 과정이 있는 곳. 아이들과도 만나고 마을 주민들과도 만나는 곳. 도서관은 오시는 분들의 연령도 제한되지 않는 공간이지요. 사실 우리가 지금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린) – 어느정도 생각이 정리되었다 생각하고 참석하였는데,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는 다시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미 한 경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우리가 한 경험에서부터 출발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에게 도서관은 스스로 배움터, 책과 자료를 침묵 속에서 만나는 곳, 그러나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공간이었지요. 학교 라고 하면, 학교에는 선생님이 계시지요. 배움의 동기를 부여해 주시는 분인데, 스승... 아니 가이드... 음... 길잡이와 같은 역할을 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도서관 학교 하면 스스로 배움터에 길잡이가 계시는 걸 생각해 보게 됩니다.
두번째로 생각한 것은 어떤 사람들이 우리 도서관을 이용할까... 입니다. 학교의 아이들, 그리고 학부모 정도... 그런데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여기 찾아오실까 ? 하는 질문을 했어요. 그래서 찾아가는 도서관, 이동하는 도서관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어요.
(보리밥) – 도서관을 이야기 할 때 “평생학습의 공간”이라 합니다. “평생학습.” 도서관의 가장 큰 매력은 공공성인데요, 누구나 올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르치지 않아서 더 큰 배움이 있는 곳. 다양한 연령층의 배움이 있는 곳이에요. 배움터의 공양간, 목공실 등이 도서관 학교에서 살아나면 우리가 도서관학교를 해 나가는데 어려운 문제는 없겠다 생각이 듭니다.
(소리샘) – 저에게 도서관에서 얻은 경험에서 소중한 것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 각별한 마음 (장 자끄 상뼤 ≫이 제게 준 위로와 마음의 치유입니다. 그런 책읽기와 같은 도서관이 아니고 새책만 빼곡히 꽉꽉찬 공간이라면 저는 도서관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 책에서 본 각별한 마음, 그것이 나에게 있는 것을 발견하니다. 지금 화장실의 옹기 세면대로 오기만을 기다리며 각별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아카이브라는 것도 무엇인지 모르지만 단지 “마을”이라는 단어가 제 마음에 와 닿습니다.
(다슬기) – 배움터는 배움터대로, 도서관학교는 도서관 학교대로 제 갈길을 가면 어느 정도에서 접점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도서관학교는 스스로 공부하는 공간인데, 아이들의 각 수준에 맞는 책을 선정해 주어 읽게 해 주고 스스로 깨우쳐 오면 또 다른 책을 권해 주고...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이 어려워 하는 수학을 더 재미있게 공부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바람개비) – 마을과 함께 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겠습니다.
(두더지) – 도서관 학교 하면 도서관, 그리고 학교 라는 두 단어가 조합된 단어이지요. 사실 이 두개는 각각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다르게 이야기 해 본다면 학교와 도서관이 본래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우리가 하고 있는 것도 신흥종교가 생성되고 소멸된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아닌가... 동학이나 원불교 같은 것도 그 당시의 시대의 필요에 맞게 생길 수 밖에 없었고 대중에게 호응을 받았던 것이고... 진정성과 신실함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이어 갈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관옥나무도서관에도 새옷이 입혀지지 않고 시대정신에 답하는 그런 것이 없다면 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영성과, 마을 공화국, 마을 생애사 이런 것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겁니까 ? 끊임없이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더 급진적일 (radical) 필요도 있겠다... 그리고 초기 신자들의 신실함, 이것이 있으면 100년은 갑니다. 100년을 생각하고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