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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온라인 교회 ☆
2022년 5월 8일 주일 예배
( 인도,설교: 정성욱 선교사 )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들에게 새날을
허락해 주시고 온라인으로 다같이 모여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리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곳에서 드리는 저희들의 기도와 찬양과
예배가 주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이다.
저희들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한량없으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찬송
199. 나의 사랑하는 책
(1)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2)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과 유대 임금 다윗 왕의 역사와 주의 선지 엘리야 바람타고 하늘에 올라가던 일을 기억합니다
(3)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난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한 일 어머니가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짜기 내가 기억합니다
(4)그 때 일은 지나고 나의 눈에 환하오 어머니의 말씀 기억하면서 나도 시시때때로 성경 말씀 읽으며 주의 뜻을 따라 살려합니다
후렴: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205. 주 예수 크신 사랑
(1)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말해주시오
나 항상 듣던 말씀 또 들려주시오
저 뵈지 않는 천국 주 예수 계신 곳
나 밝히 알아 듣게 또 들려주시오
(2)아침의 이슬 방울 쉬 사라짐 같이
내 기억 부족하여 늘 잊기 쉬우니
잘 알아듣기 쉽게 늘 말해주시오
날 구속하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3)주 예수 나를 위해 이 세상 오셔서
날 구속하신 은혜 말하여 주시오
나 같은 사람 위해 주 보혈 흘렸네
이 복스러운 말씀 또 들려주시오
(4)이 세상 헛된 영화 날 미혹할 때에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들려 주시오
천국의 빛난 영광 내 눈에 비칠 때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후렴:나 항상 듣던 말씀 나 항상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
❤ 교독문 8번 시편 14편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 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 도다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 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 아멘 -
❤ 본문 말씀
마태복음 19장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오늘은 5월 8일 어버이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에베소서 6장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사실 믿음과 상관없이
날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공경하고
봉양하고 받드는 것은 인간의 도리입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원래 대한민국에서는 1956년 5월 8일
어머니의 날로 기념해오다가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확대 제정되었습니다.
본래 '어버이날'의 유래는 미국에서 시작된
'어머니날'이었으며,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는
'어머니날' 혹은 '마더링 선데이' 등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우리들에게도
영적인 자녀를 낳으라고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4장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교회에서는 보통 전도한 사람들을
영적 자녀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는 말씀으로 양육하는
성도들을 영적 자녀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아 양육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웃을 우리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13장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런데 오늘은 우연히도 부처의 날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되는데
사탄은 부처를 따르는 불교를 만들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부처를 공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 즉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개신교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종교는 거짓의 아비인
사탄을 섬기고 따르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런데 주님 오시기 가까운 마지막 때라
한국 교회 교단에 대부분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WCC.WEA를
포용하고 가입이 하여 종교통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멸망 받을 길입니다.
믿는 성도들이라면 절대 따라가서는 안되는
배교인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서는 속히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저번주 주일에는 하늘의 일님 기도처에서
부모님과 부받사 성도들 6명이 모여서 은혜롭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토요일 부터 모여서 밭일을 하였고
저는 인근 면으로 나가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부차적인 설명을 하면
의성 전도 촬영분에서 삼국유사
일연스님 얘기를 하였는데 정확히는 의성밑에
군위군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을 하였습니다.
영상을 못보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 말씀을 드리는
것이지만 삭막한 도시를 떠나 가족들과 나들이 겸
시골 전도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힐링도 되고 때가 덜묻은 시골전도
너무 좋은것 같습니다.
주일 오후에는 볼일이 있어 기도처를
떠나게 되었는데 깜빡하고
저의 겉옷을 그곳에 나두고 오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연락주신 하늘의 일님에게는 다음번에
만나게 될때 겉옷을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두고온 겉옷을 보면서
바울 서신이 떠올랐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저는 처음에 이 구절을 보고 바울이 옷도 거의 사지않는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이해를 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특별히 아꼈던 동역자이면서
영적인 자녀였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디모데후서 1장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아래는 제가 선교 갔었던 방콕과
로마의 한인교회 목사님께서 그 당시
상황을 잘 설명해 놓았기에
제가 대신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수감된 때는, 다시 말하면
가택 연금에 들어간 때가 AD62년 이었습니다.
1. 로마 감옥에서
연금 상태에서 선교의 열매가 많았습니다. 갇힌 것이
오히려 복음의 전진을 가져왔습니다.
2년 동안의 활동을 한 마디로 나타낸 성경 구절이
사도행전28:30-31입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서신서를 기록해 보냈습니다.
또한 제자들을 양육하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눈여겨 살펴보아야 할 것은
“도대체 사도 바울은 어떻게 이런 엄청난 열정으로
초인적인 행군을 계속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1) 사명에 사로잡힘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명만 보입니다.
사명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현대인들이 힘이 없고 쉽게 지치고 포기하는 이유는
목숨을 걸고 붙잡아야 할 사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할 일이 많은 것 같고 바쁜 것 같은데 마음은 텅 비어
있습니다. 잡은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선교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 선교의 사명 위에 성령께서 임재 하시어서 그 사명이
불에 기름을 부은 것 같이 되어서 활활 타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 사명은 열두 제자들에게만 준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에게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 사명은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구원하심과 심판을 위하여 다시 오실 때까지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사도행전 29장은 바울의 다음 세대가 그리고 그 다음
세대가 써 내려 가야 할 내용들 입니다. 또한 우리 각자가
받은 사명대로 써 내려가야 합니다.
바울이 로마법에 위배 되는 것이 없고 특별한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서 풀려나게 됩니다.
그러면 그가 풀려난 후에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우리가 이것을 살피는 것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바울의 뼛속 깊이 새겨진 사명을 확인하고
그의 순교 전략과 그의 결단과 헌신을 우리 세대에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의 전도행전 기록은 28장으로 끝났습니다. 그리면
이후에 우리들의 전도행전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전도행전인 사도행전 29장은 우리가
써 내려가야 합니다.
지금부터 그 일을 준비해서 시작하려고 하니 심장이
뜁니다.
주님께서 저의 심장을 펌프질 해주셔서 매일 밤 가슴이
설래서 밤에 잠도 안 옵니다.
사도 바울은 죽어야할 순간이 찾아왔을 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리이기 때문에 세상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사명이 있고, 꿈이 있고, 비전이 있어도
죽음 앞에서는 멈칫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죽고 사는
것을 초월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 하면, 자기가
받은 사명대로 살아갈 수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확실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나중 열매로 다시 부활할 것이 확실합니다.
이와 같은 부활의 확신이 그를 담대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죽음도 이기는 담대함이 있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우리 시대에 완수하는 날, 비로소
우리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이렇게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2. 바울의 석방
바울은 감금되어 있으면서도 지금 로마의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을 종합해 볼 때, 자신이 곧 석방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복음 서신 중 빌2:19에서 “나와 함께 있는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속히 그곳으로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빌2:24-30)“ 했습니다. 그리고 석방된 후의 일정을
디모데에게 말하며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알리도록
했습니다. 연금된 지 2년이 지나자 자동으로 연금 상태에서 자유의 몸으로 석방 되었습니다.
바울이 석방된 후에 다시 체포되어 순교하기까지의 일정을 여러 자료와 여러 기록들을 종합해서 요약해 드립니다.
1) 서바나(스페인) 선교
제일 먼저 서바나에 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로마 교회에 보낼 때, 서바나에 갈
계획을 말하면서 가는 길에 로마에 들리겠다고 했습니다.
롬15:23에 보면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했습니다.
그때 로마교회 성도들과 만나서 교제하기를 원했으며
또 로마교회가 서바나 교회 선교에 동참해 주기를
당부했습니다(롬15:24).
그런데 죄수의 몸으로 가다 보니 생각보다 긴 기간 동안
로마에 체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석방된 후 첫 선교지는 서바나 였습니다.
이 때 동행한 제자는 디모데와 디도와 누가입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로마의 역사가 클레멘트(Clement of Rome, AD96-)가 로마 역사 기록에 남겨 두었습니다.
당시 서바나도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후원으로 서바나에서 2년 정도의 선교를 마치고 다시 소아시아 지역으로 왔습니다.
서바나는 바울이 다녀간 후 기독교의 부흥의 불이
일어났습니다. 동시에 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코르도바, 카디즈. 타리고나 등 AD200년 말경 순교함).
이것이 바울이 서바나에 가서 전도를 했다는 증거입니다.
2) 그레데(크레타)섬(딛1:5)
바울은 신실한 제자 중 한 사람인 디도와 함께 그레데(크레타섬)에 가서 같이 그레데 교회 중심으로 선교했습니다.
그레데는 지중해 안에 있는 섬인데 바울이 풍랑을 만나
정착하게 되는 멜리데 보다 훨씬 큰 섬입니다.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 섬에서 목회 하도록 남겨두고
에베소를 거쳐서 마케도냐로 갔습니다.
그리고 몇 개의 지역을 거쳐서 데살로니가에 갔을 때,
디도서를 써 보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디도서를 써 보내는데 거기에 디도를
남겨 둔 이유와 ‘그레데’ 라는 섬이 어떠한 섬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에베소(딤전:1:2)
그 다음에 에베소로 갔습니다. 에베소에서는 디모데를
남겨두고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딤전1:3).
딤전1:3에 보면 “내가 마게도니아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이유는 신앙의 어린 사람들이 유혹을 받기 때문에 너는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몰두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리고 마게도냐, 베뢰아, 아덴, 고린도, 사모드라게,
빌립보, 데살로니가, 니고볼리를 방문하고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됩니다. 선교여행 중 디도서와 디모데
전서를 발송했습니다.
3. 바울의 투옥
그러는 동안에 로마의 네로 황제가 큰 일 하나를
저질렀습니다.
이 때 바울은 드로아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
되었습니다.
로마의 다섯 번째 황제로 네로가 즉위해서 있을 때,
로마에 큰 화재가 발생합니다(64 .7.19). 처음에는 로마
대형 경기장 내에 있는 상점에서 일어난 불길이 불어오는 광풍을 타고 전 시가지로 번지게 됩니다. 소방관 7,000명이 진화 작업을 했으나 불길을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당시 로마를 14개 지역으로 나누었는데 10개 지역이
전소 되었으니 엄청난 규모의 화재 였습니다.
이 때 네로는 화재로 집을 불태운 사람들이 다시 그 위에
집을 지을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왕실에서 그 땅을
헐값으로 구입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입한 20만평(160에이커) 땅 위에 내부가
황금으로 장식된 황금 궁전(Domus Aurea)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네로가 황금 궁전을 짓기 위해서 불을
질렀다는 소문으로 퍼지게 했습니다.
이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네로의 입지가 위태로워
졌습니다.
그래서 국면 전환용으로 기독교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의 삶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들추어
내면서 잡아 가두기 시작했습니다.
그 죄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독교인들은 로마 정부의 신전제사에 협조하지
않는다.
(2) 기독교인들은 이 노예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3) 자신들끼리 뭉쳐서 종교 의식으로 몰래 사람의 피와
살을 먹는다.
(4) 그들은 마리아라는 처녀가 낳은 사생아 예수를 신으로 믿으며 그 예수가 재림 하면 세상을 불로 심판한다고
하면서 예수의 재림을 앞당기기 위해 불을 질렀다.
이러한 사실을 ‘생케비치’라는 작가가 ‘쿼바디스’란 작품에 상세히 남겨 놓았습니다.
이 때부터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이 있기까지 250년 동안 박해가
이어졌습니다.
1) 바울의 투옥
바울이 기독교 지도자 1순위로 소아시아에서 체포 당하여 로마로 압송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마메르티(mamertimum)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곳은 로마에서 1차 감금 때와는 완전히 다른
감옥이었습니다.
2) 디모데를 초청함
바울은 이곳에서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이것이 디모데 후서인데 바울의 마지막 편지이며 유언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벌써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인 전제와 같이 내가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워 갔구나!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8).”
“그러니 너는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고, 두기고는 에베소에 보냈다. 그래서
지금은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1차
선교 여행 때, 동행했던 바나바의 조카 마가를 데리고
오너라. 보고 싶다. 그리고 네가 올 때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맡겨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성경책은 가죽
종이에 쓴 것으로 가지고 오너라.”(딤후(4:9-13)“ 라고
했습니다.
그 때 디모데가 위병이 있고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이 그래도 먼 거리인 에베소에 머물고
있는 디모데를 오라고 하기에는 무리인 것을 압니다.
그러나 로마 감옥에서 겨울은 추워서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때 가지고 오라고 한 겉옷은 값비싼
옷이 아닙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입던 평범한 옷인데 잠자리에 들 때는 담요 같이 덮고 잘 수 있는 옷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부탁한 것은 2차 수감 때는 주변 분위기가
너무 살벌해서 누구 하나 바울이 감옥에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두꺼운 옷 한 벌 넣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 외로웠습니다. 로마교회의 성도들조차 몸을
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치금이나 사식은 커녕 방한복 한 벌 없이
겨울에 덜덜 떨고 있는 바울의 모습은 목회자와
선교사가 걸어야 할 마지막 길인지도 모릅니다.
이 길을 우리 주님도 공생애를 마치고 걸어 가셨습니다.
주님께서 잡히실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마저 대제사장의 집에서 그 집 종이
다가와 “당신도 예수와 함께 있었다” 했을 때,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면서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3) 디모데의 방문
디모데는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있는 바울의 겉옷을 가지러 갔습니다.
‘드로아’는 세계사에서 나오는 지명으로는 ‘트로이’라고
합니다.
그 집에서 스승 바울이 맡겨 둔 겉옷을 가지고 로마까지
가는 데는 200km나 되기에 여러 날을 걸어서 가야 하는
길입니다.
디모데는 스승의 땀에 절어 있는 겉옷을 품고 로마로
향해 가고 또 갔습니다.
걷고 또 걸었습니다.
옷에 밴 스승의 체취는 전도자의 가는 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다시 한 번 결심하게 하는 땀 냄새였습니다.
디모데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스승이 순교하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AD67.6.29).
바울을 죽일 때, 17세에 왕이 된 네로가 20대 후반
이었으니 무슨 철이 있었겠습니까?
바울을 만나서 전도를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바울에게
무슨 말을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죽이고 말았습니다.
디모데가 이 사실을 알고는 스승의 옷을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스승의 마지막 길을
지키지 못했다는 송구함과 겨울이 오는 길목이며 우기가
시작되는 그때, 스승을 감옥에 방치했다는 자괴감으로
울고 또 울었습니다.
4. 바울의 순교
그 당시는 성 안을 신성시하였기에 사형은 언제나
성 밖에서 시행하도록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죽이는 일은 유쾌하지 않기에 보통 음습한 곳, 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행하도록 합니다.
그곳은 지금은 세 분수(Tre fontana) 수도원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거기에는 바울이 어떻게 순교했는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무릎을 꿇으면 목이
걸쳐지는 돌기둥에 목을 얹고 참수 당했습니다.
잘려나간 목이 땅에 떨어지면서 3번 통, 통, 통
튀었는데 그 튀어 오른 자리마다 샘이 터졌다고 하며
마지막에는 머리가 흔들거리면서 멈추었는데
그때 바울의 입이 한 번 잠시 벌려지면서 그때 ‘예수!’
하고 입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 수도원을 들어가 아치형 입구를 통과하여 약 30m를
직진하면 양편으로 교회가 있습니다. 왼편은 베르나르도
클레르보의 수도원이고, 오른편은 14개의 계단이 높게
설계된, ‘천국의 계단 교회’로 불리는 성당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르나르도 클레르보(Bernardo of Clairvaux, 1091-1153년, 찬송 85, 145, 262)가 오른편에 있는 교회의 지하실(바울의 갇혔던 곳)
에서 기도하다가 수많은 영혼들이 계단을 통해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보았다고 하여 이런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클레르보는 12세기의 영적 거성으로,
개혁자들도 그를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천국의 계단 교회의 지하에는 1만 203명의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석판을 붙여 놓았습니다.
이 순교자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285-312) 황제 때 각 예하부대에서 차출된 그리스도인 군인들로,
황제의 목욕탕을 건축한 후 죽임을 당했습니다.
1) 순교의 각오
바울은 로마를 방문하려고 했을 때, 이미 순교를
각오했습니다. 누가는 이 바울의 결심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누가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라는 선언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사도행전 28:31에서 “바울이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했습니다.
바울의 전도 주제와 내용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의 사역 자세는 ‘담대하게 거침없이’입니다.
2) 담대하게 거침없이
바울은 담대하고 거침없는 선교사였습니다.
누가는 그런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담대하고 거침없이 번져
나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국의 콜로라도 강의 수심이 깊기 때문에 거침없이
흘러갑니다. 그래서 LA 모든 시민들과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 식수를 공급합니다.
강원도에서 시작되는 한강이 서울을 거쳐 서해로
흘러들어 갑니다. 그 한강의 길이가 482km입니다.
한강은 거침없이 굽이쳐 흐르면서 가는 지역을 거침없이
적시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물을 공급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속에 비하면 한강은 콩알 만한
크기도 안 되는데 이렇게 거침없이 흘러가는데, 하물며
천지의 창조자시요,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앞에
거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태초에 성부 하나님께서 혼돈과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말씀으로 거침없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침없이 세상 속에 들어 오셨고 또 시간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거침없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거침없이 무덤 문을 여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믿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제 곧 세상의 심판주로 거침없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그 누가, 그 어떤 세력이 막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혼란스럽고
어두운 세상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감옥에서 담대하게 거침없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3) 우리의 사명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은 우리들의 남은 생애가
그렇게 복음을 위하여 담대하게 거침없이 살아가는 삶이
되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순교는 우리들이 보기에는 위대한 순교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순교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내리신
거침없는 은혜에 대한 지극히 일상적인 삶이고, 지극히
당연한 자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여기서 담대하고 거침없이 사도행전
29장을 써 내려가야 합니다.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각자의 사도행전 29장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주님 앞에서 써 내려가면서 각자가 받은
사명대로 이 지상의 삶을 마무리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는 사도행전 28장을 써내려간
초대교회의 바톤을 이어받은 세상 마지막 교회들로서
우리가 지금 전하고 있는 마지막 때의 맞는 복음으로
지금 사도행전 29장을 써내려가고 있는 중이며
바울이 겉옷을 가지고 오라는 편지를
하고 얼마뒤에 세상을 떠났듯이 우리들에게도
이세상을 떠날 휴거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멸망 받을 이세상에서 나와 구별되어
천국을 소망하며 휴거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날과 그때는 알 수 없지만 주위에서 올해의 휴거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언제라도
휴거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고 준비하고 있어야 됩니다.
출애굽으로 멸망 받을 애굽을 떠날 준비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지팡이를 들고 서둘러 먹는것 처럼
말입니다.
출애굽기 12장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또한 겉옷을 휴거로 보는 이유중에는
엘리야가 휴거될때 몸에서 겉옷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 2장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예전 설교에서 저는 엘리야는 휴거의 예표이고
엘리사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마지막 사명을
위해 이땅에 남게 되는 성도들의 예표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래는 지난해 저의 설교에서
발췌했습니다.
"이제 남은 자를 예표하는 엘리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하 2장)
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아버지 같았던 스승 엘리야가 휴거되자
아이들이 집단적으로 엘리사를 조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자신의 선지자
직분과 능력을 엘리사에게 위임하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첫 휴거가 되지 못하고
남은 성도들 중에서 못다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특별히
남은 사람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스승의 대를 이어
사명받은 엘리사에게 아이들이
너는 올라가지 못하였구나
올라가라며 조롱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깐 첫 휴거로 올라가지
못하여 주위 사람들이 너는 올라가지
못하였구나 라고 조롱섞인 말을 하여도
낙심하거나 주눅들지 말고 마지막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겨진 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입니다.
즉 엘리사는 환난에 남아 사명을
완수하는 환난 성도를 예표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아래 송명희 시인의 표에서도
휴거되지 못하고 남은 성도들을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들만이 아니다.
세상에 남겨져 쓰러진 자들을 일으켜 회복하려고
두신 그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다.
세상은 그들을 흔들고 요동케 하나 세상의 요동함이
그들을 가려낸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달림 속에서
하나님이 부르시고 어떻게 쓰실 건가를 알게 된다.
세상의 방해와 제약이 클수록 더욱 그 부르심을
확신하고 강해지는 그들만의 역동이 일기 시작한다."
제가 생각하기는
우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에서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첫 추수로 휴거되는 성도들이고
두번째는 송명희 시인의 말처럼
세상에 남겨져 쓰러진 자들을 일으켜 회복하려고
두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즉 두 부류다 하나님 앞에 귀한 것입니다.
최근에 둥지에서 떨어져 까마귀에게 공격당하는
어린새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왔는데 알고보니
비둘기였습니다.
다행히 밥도 잘먹어서 지금은
제법 자라 날개짓도 하고 있는데
얼마있지 않아 방사하는 날이 올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비둘기는 귀소본능이 있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비둘기는 이 귀소본능 때문에
오래전 부터 전서구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백과사전에 보면
비둘기 사육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3,000년 전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에서 소식을
전달하는 데 이용된 것을 시작으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다른 도시에 올림픽 경기의 승전보를 알리는 데
이용했습니다. 로마인들은 군사 연락을 하는 데에
이용했고
바그다드의 술탄이 1150년에 비둘기를 이용한 통신을
개발했고, 칭기즈 칸 정복 전쟁에 이를 이용했습니다.
20세기까지 비둘기는 전쟁시에 비상연락용으로 쓰였는데 1,2차 세계대전과 우리나라 6.25전쟁에서도
미국 통신부대가 전서구를 이용한 기록이 있는데
미국 통신부대의 비둘기 비행기록은 3,700㎞이며
1,600㎞ 비행이 보통었습니다.
비둘기는 중요한 소식을 편지로 전하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동물입니다.
창세기 8장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감람나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자이트"로
올리브 나무라는 뜻입니다. 이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그 이유가 이새의 뿌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는데 이 나무가
바로 올리브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 잎사귀" 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타라프"로 갈기갈기 찢다. 끌려가다. 잡아 뜯다.
라는 뜻에서 유례가 되었습니다.
노아가 보낸 다른 비둘기가 올리브 새 잎사귀를
가져왔다는 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주님의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고통 가운데로 끌려가셔서
주님의 몸이 완전히 죄악 된 자들에게 잡아 뜯기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잎사귀를 가져왔다는 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비둘기는 오래전 부터 편지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였습니다.
그래서 마치 우리 그리스도인을 뜻하는것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그리고 비둘기는 성령을 뜻하며 순결을 뜻합니다.
마태복음 3장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태복음 10장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또한 비둘기는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제물이였습니다.
레위기 1장
14.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그래서 우연히 비둘기를 줍고 키우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다고 믿어졌고
다른 교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로고
마크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도 마크가 필요하다면 비둘기가 들어간
모습으로 하면 좋겠다는 감동이 들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전하는 전도지 편지가
비둘기 처럼 멀리 날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고 우리가
성령 충만하며 순결하며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드려지길 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시편 50장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또한 예수님께서 임하시는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는데 노아는 홍수가
나고 비둘기를 밖으로 내보내었는데 저도
비둘기를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부받사에 올린 영상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정부가 2년간 코로나 사기 팬데믹으로 공포를
조장하고 마스크를 국민들이 의무착용 하도록
시켰는데 지난 2일 실외 마스크 착용을 해지
하였음에도 국민들은 세뇌가 되었는지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 할때 처럼 야외에서도 벗지를 않고
계속 착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혹이 우리나라를 완전히 덮고 있는것 같습니다.
더욱이 야외 마스크 착용을 해지한
2일에 서울 통계를 보니 100명중에
4명 정도만 마스크를 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4%는 성인 기준으로
백신을 맞지 않은 퍼센트입니다.
그렇다면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
코로나 사기 펜데믹을 알고 예방효과가
없고 오히려 병들게 하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백신을 맞은 96%는 아직도 미혹이
되어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통계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저는 백신을 맞은 사람들을 정죄할 마음은
없습니다. 저의 부모 형제들도 백신을 맞았기에
안타까운 마음이고 어서 빨리 깨어나길 바랄뿐입니다.
백신은 현재 짐승의 표의 가장 부합합니다.
백신 속에 들어간 물질과 특허 번호와 이름등에서
짐승의 표 666이 나옵니다.
백신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작용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코로나 백신은 절대 거부해야 될 사악한 물질입니다.
더욱이 영어 게마트리아 수비학으로
"코로나바이러스백신"은
짐승의 표 666입니다.(A COVID VACCINE=666)
하나님께서 우리와 가족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백신과 PCR의 미혹에서 속히
깨어나길 기도합니다.
끝으로 아래 아가서 말씀을 읽겠습니다.
아가 2장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서 2장 10절에서 13절 이말씀에는 휴거가 내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휴거의 시기에 관련된 내용은 조심스럽기에 여기에서는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신랑은 신부를 '나의 비둘기'라고 표현 한다는 것입니다.
비둘기는 화평하고 순결하며 온순하며 연약함을
상징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주위 사람들과
화평하고 순결하며 온유해야 됨을 믿습니다.
성도는, 독수리나 사나운 짐승을 피하여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살고있는 외로운
비둘기로 묘사됩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악한 자들을
피하여 불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비둘기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참된 성도들이 환난에서
피신할 곳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품이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또한 신랑은 신부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그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말하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며
그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부드럽다"는 원어 '아레브'는 달다, 감미롭다,
기쁘다.는 뜻입니다. 주께서는 성도들의
목소리를 기쁘게 여기시고 그들의 얼굴을
아름답게 여기시며 성도들의 얼굴을 보기
원하시며 그들의 음성을 듣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목소리를 주께
들리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찬송과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주께 찬송할 때 주께서는
기뻐 들으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환난들 때문에 뒤로 물러나
숨지 말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하며 찬송과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라고 말했고
(히13:15) 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살전5:17)
환난으로 낙심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 오심이 가깝습니다.
우리 모두 깨어있어
멸망 받을 세상에서 구별되어
천국을 소망하고 휴거를 바라보고 사모하는
복된 주의 신부들이 모두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치유기도도 함께 합니다.
사랑의 주님, 저희들이 바위틈 은밀한 곳에 있는
비둘기 처럼 주님께 사랑받는 휴거 신부들이
되게 하옵시고 주님 다시 오시는날 들림받게 하옵소서.
우리를 괴롭히는 악한 영들과 질병들은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하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들과
미혹하는 영들은 이시간 우리와 가족들에게서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떠나가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신병 마음의 상처
육체의 모든 질병은 이시간 고침받을지어다
치료함을 입을지어다 치료되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지어다
에바다 열릴지어다
천군천사들은 도울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지어다
마지막 사명을 위해 물질의 기름부으심도 임할지어다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저희들에 가족들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 아멘 -
❤ 복음찬송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
듣기 원하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바윗틈 은밀한 곳에서
듣기 원하네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 듣기 원하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바윗틈 은밀한 곳에서 듣기 원하네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 주여~~를 부르고
3분 정도 부받사와 자신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간절하게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 마지막때 전도지를 배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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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주시면 전도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문서전도 및 전도사역 후원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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