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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6:1
요즘에야 세상이 복잡해서 소송당사자가 알고 보면 교인인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또 정말 법적 판단을 받아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사안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처럼 작은 곳에서 성도들끼리 세상 법정에서 소송 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공주야! 교회의 세 번째 문제인 세상 법정에서 서로 소송하고 다투는 것을 다룬다. 당시 사회 지도층이나 엘리트들이 다른 사람을 법정에 세우는 일은 쉽게 볼 수 있었다.
Due to the complexity of the world these days, there may be cases in which the litigants realize that they are members of the church. There are also issues that can only be understood after real legal judgment. However, it was serious to sue among saints in the world court in a small place like a Corinthian church. What's the problem? Princess! The church's third issue, dealing with litigation and altercation in the world court, was easy to see at the time. At that time, it was easy for social leaders and elites to bring someone else to co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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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쟁자를 누르거나 관계를 깬 자들에게 복수하거나 공격당한 친척이나 친구를 위해 자주 소송을 했다. 유명 인사로 떠오르는 사람들을 시기해 법정에 고소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법정에 호소하는 것은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없어져 버렸고 심지어 세상보다 못한 상태가 된 것이다. 우리가 알 뜻이 성도는 종말에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아 세상을 심판 하고 심지어 천사마저 심판할 존재다. 그런데 성도들이 교회 안의 일을 세상 법정에 맡겨서 판단을 받도록 고소하는 현실에 통탄한다.
He beat political rivals, took revenge on those who broke up relationships, and frequently sued for relatives or friends who were attacked. In some cases, he was envious of rising celebrities and sued them in court. Eventually, the distinction between the church and the world has disappeared and is even worse than the world by appealing to the court. We all know that at the end of the day, the saint will sit together on the Lord's throne to judge the world and even the angel. However, we lament the reality that saints file a lawsuit against the world to be judged by entrusting the work of the church to the world's co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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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해야 하고, 생겨도 당사들끼리 해결해야 하고, 적어도 교회 안에서 중재해야 마땅했다. 성도끼리의 문제라도 합리적으로 지혜롭게 분별하여 치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 원칙을 뛰어넘는 것이 사랑의 법칙이고 십자가의 법칙이다. 진정한 능력과 실력은 은사를 자랑하고 지식을 뽐내고 지도자들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이런 문제 하나 처리하지 못하면서 지혜 있다고 여겼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지체를 세워주고 부족함을 감수해 주는 데 있다.
It was necessary to prevent such a thing from happening, to resolve it among ourselves, and to mediate at least within the church. It is a principle to reasonably and wisely discriminate and treat even matters between saints, but to go beyond that principle is the law of love and the law of the cross. True ability and skill are not about showing off your gifts, showing off knowledge, and putting up leaders. I thought I was wise while not being able to deal with this problem. The power of the kingdom of God lies in setting up a delay and bearing the shortfall even if I lose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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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목숨까지 내어 놓았는데 그 정도 손해도 안 보겠다면 어찌 복음을 알고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불의한 일에 눈감으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세상 법정을 통해 응징하지 않아도 불의한 형제가 끝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아무리 자랑할 만한 은혜와 은사를 맛보았더라도, 영적인 자긍심만 가득한 채 실제로는 음란, 간음, 남색 도적질, 토색을 일삼고 마음에 욕심이 가득한 사람, 즉 십자가의 은혜와 도를 미련한 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If Paul sacrificed his life and did not suffer such a loss, how could he say he knew and loved the gospel? This is not to ignore injustice. However, you cannot enter the kingdom of God unless your unjust brother finally repents, even if you do not retaliate through the courts of the world right now. No matter how proud of your grace and gift you have tasted, a person who is full of spiritual pride and is actually full of obscene, adultery, indigo, and indigo and greedy in his heart, that is, a person who makes the grace and morals of the cross stupid, is by no means appropriate to the king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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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합당한 열매 없이도 하나님의 백성 됨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말씀을 거스르면서까지 거짓 안전을 심어주는 이단의 미혹을 경계하자. 죄에 무감각한 교인을 경고하여 자기 정체에 대해 불안하고 근심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교회 간의 일을 세상 법정에 맡기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나는 논쟁을 어떻게 푸는가? 나는 누룩을 제거하였는가?
It is a lie that you can be guaranteed to be the people of God without the fruits worthy of the gospel. Let's be wary of the temptation of heresy, which instills false safety even while going against the word. Isn't it true love to warn a Christian who is insensitive to sin and worry about his identity? Why is it problematic to leave interchurch matters to world courts? How do I resolve the debate? Have I removed the y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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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문제 지적(1)
신자에 대한 원리와 적용(2-4)
a.신자와 세상에 대해:2
b.신자와 천사들에 대해:3
c.적용:4
바울의 구체적 권면들(5-11)
a.바울의 책망:5-8
b.하나님 나라 원리와 적용: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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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1a)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1b)
일이 있는데(1c)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1d)
송사하고(1e)
성도 앞에서(1f)
하지 아니하느냐(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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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2a)
세상을 판단할 것을(2b)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2c)
세상도 너희에게(2d)
판단을 받겠거든(2e)
지극히 작은 일(2f)
판단하기를(2g)
감당치 못하겠느냐(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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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3a)
천사를 판단할 것을(3b)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3c)
그러하거든(3d)
하물며 세상일이랴(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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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너희가(4a)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4b)
교회에서 경 히 여김을(4c)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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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를(5a)
부끄럽게 하려 하여(5b)
이 말을 하노니(5c)
너희 가운데(5d)
그 형제간 일을(5e)
판단할만한(5f)
지혜 있는 자가(5g)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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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형제로 더불어(6a)
송사할뿐더러(6b)
믿지 아니하는 자들(6c)
앞에서 하느냐(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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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7a)
너희 가운데 이미(7b)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7c)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7d)
낫지 아니하며(7e)
차라리 속는 것이(7f)
낫지 아니 하냐(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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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불의를 행하고(8a)
속이는 구나(8b)
저는 너희 형제로다(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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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자가(9a)
하나님의 나라를(9b)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9c)
알지 못하느냐(9d)
미혹을 받지 말라(9e)
음란 하는 자나(9f)
우상 숭배하는 자나(9g)
간음하는 자나(9h)
탐색하는 자나(9i)
남색 하는 자나(9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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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이나(10a)
탐람하는 자나(10b)
술 취하는 자나(10c)
후욕하는 자나(10d)
토색하는 자들은(10e)
하나님의 나라를(10f)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1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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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11a)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1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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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천사를 판단할 성도들_ saints to judge the world and angels
차라리 손해를 선택해야 할 성도들_ the saints who should rather choose a loss.
불의한 말에 가담해서는 안 되는 성도들_ saints who should not join in on unjust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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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에게 심판할 권한을 주시어 장차는 천사까지도 하나님의 재판장에서 심판할 터인데 부끄럽게도 교린도 교회는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까지 끌고 간 나이다. 소송하는 일은 간음이나 탐색과 같은 것이라 하였고, 제가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게 되었으므로 저도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고 기꺼이 손해를 보면서 법정에 소송하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과 다스림을 따르겠사오니 나를 도와주옵소서.
In the future, even angels will be judged in God's court for giving the church the power to judge, and the church of Gyorindo is an age that has brought the church's problems to the courts of the world. I said, "Criminalization is like adultery and search, and since I have become washing and holy and righteous in the name of Christ and the Spirit of our God, I will act like a Christian and willingly take losses in court, and follow the teachings and reigns of the Church, so help me."
2026.6.9.tue. Clay
신학 비평//
복음은 내 권리를 지키는 힘인가, 아니면 내 권리를 내려놓는 힘인가? 고린도교회의 세 번째 문제는 단순한 송사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이 분노한 이유는 법정 자체가 아니라, 교회가 이미 십자가의 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심판할 성도들이 정작 자기들 사이의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는 지혜의 부족이 아니라 사랑의 부족이었습니다. 바울의 논리는 매우 급진적입니다. "이길 수 있는가?"가 아니라 "왜 차라리 손해 보지 못하는가?"를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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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을 강하다고 평가하지만, 십자가는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을 강하다고 평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억울한 재판과 십자가를 감당하셨기에 교회 역시 승리보다 화해를, 응징보다 회복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불의를 방관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교회 안의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은혜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리는 것도 또 다른 불의입니다. 바울은 오히려 음란, 탐욕, 사기, 토색을 하나님 나라를 거스르는 심각한 죄로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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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사랑은 죄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도록 깨우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비슷한 유혹에 빠집니다. 권리와 체면을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도 정작 복음의 정신은 놓쳐버립니다. 바울이 묻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내가 반드시 이겨야 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위해 손해 볼 수도 있는가? 십자가는 억울함을 사랑으로 견디는 능력이며, 하나님 나라의 성숙은 권리를 주장하는 데 있지 않고 권리를 초월하는 데 있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승리는 법정의 승소가 아니라 형제를 얻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