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무더위는 사람의 기운을 상하게 하고 진액을 말라들게 하기 때문에, 몸이 많이 허해지는 시기다. 여기에 더위로 인해 잠까지 설치게 되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욱더 몸이 힘들어진다. 그러다보니, 쉽게 짜증도 나고 여러 가지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지게 된다. 그래서 보통 이럴 때 한약 한 제라도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은데, 바로 이때 항간에 떠도는 한 가지 유언비어 때문에 한의원 찾아가는 것을 망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위 ‘여름에 한약 먹으면 땀으로 다 빠져나간다’라는 헛소문인데, 한의원에 와서도 혹시 그런 것 아니냐고 걱정스레 묻는 분들이 있을 정도다. 정말 그럴까?
답은 당연히 아니다. <동의보감>을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처방인 ‘사물탕’이나 ‘보중익기탕’ 등의 처방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각각의 계절에 맞춰 처방을 가감해서 투여하는 설명이 나온다. 다시 말해 여름에는 여름에 맞춰 처방을 투약한다는 뜻이다. 또한 여름(음력 6월)이 되면, 습열이 사람을 찌는 듯해서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피곤해지면서 정신이 몽롱하고 동작이 느려지면서 소변과 대변이 잦아지기도 하고 몸에 열이 생기면서 갈증이 심해지고 설사가 생기기도 한다. 또한 밥맛이 없어지면서 기가 가빠지고 저절로 땀이 나는 증세가 생길 때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여름철의 대표적 한약 처방인 ‘청서익기탕(淸暑益氣湯)’의 주요 증상이다. 다시 말해 여름에는 여름에 알맞은 처방이 따로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왕들 중에서 대표적으로 여름병 때문에 고생했던 성종은 성종 19년 6월 7일의 <왕조실록>에서 “내가 어려서 한 정승(한명회)의 집에 있을 때 더위를 먹어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었다가 (중략) 깨어났었는데, 지금까지 더운 철을 만나면 항상 더위를 먹어 병이 난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인종은 사망하기 보름 전인 인종 1년 6월 17일부터 신하들이 인종이 더위에 몸을 상할까 행사를 중지하시라고 걱정하는 부분이 나오면서, 열흘 후인 26일에는 이미 증세가 위급해져서 잠자면서 헛소리를 하고 혀가 짧아지고 정신을 잃기도 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급기야 28일에는 인종과 어의들의 대화에서 왕의 병이 더위로 인한 것임을 직시하였는데, 결국 3일 후에 인종은 사망한다.
그래서 그런지 <왕조실록>에는 더위를 물리치거나 치료하는 처방들이 많이 등장한다. 선조 29년 5월 16일에는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의원에서 만든 향수산(香需散)과 육화탕(六和湯), 그리고 생맥산(生脈散)을 하사하는데, 이는 여름철의 한약임이 정확하게 적혀 있다. 실제 향수산은 일체의 서병에 응용되는데 토사곽란(吐瀉?j亂)과 기가 끊어져 기절하려는 증상에 사용되는 처방이며, 육화탕의 경우에는, 더위가 심비(心脾)를 상해서 토사곽란 증세를 나타내거나 근육이 뒤틀리거나 부종과 이질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그리고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생맥산의 경우에는 말 그대로 맥의 기운을 샘 솟게 하는 처방이다. 또한 역대 많은 왕들이 더운 여름철이 되면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위하여 얼음과 한약을 보내줬는데, 예를 들어 성종 29년 5월 29일에 어명으로 감옥에 보냈던 처방은 육화탕이었다.
이렇게 <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여름 처방들은 모두 <동의보감>에 수록되어 있는데, 실제 지금 현대에도 우리나라의 모든 한의원에서 환자들에게 응용되어 처방되고 있는 것들이다. 물론 환자의 체질과 증상에 따라 가감이나 변형하여 처방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혹시라도 여름철에 먹으면 효과가 없을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