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4월 5일~2013년 5월 3일
동편 몬당에 사시는 황귀순 집사님은 2002년 3월 24일 세례를 받으셨다. 그러니까 2000년 정도에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겠다.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후 목사를 성가시게 해본 기억이 없다.
누구나 처음 교회를 나오면 적응기가 필요하다. 마치 나무를 옮기 심으면 2-3년을 몸살을 하는 것과 같다. 옮겨 심은 나무는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정상적으로 뿌리가 내리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을 볼 수 있다. 세례 받을 때까지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운 일들을 많이 겪는다.
연거푸 주일예배에 나오지 않으면 신앙의 위험신호가 아닐까 싶어 염려한다. 다행히 그다음 주일에라도 교회에 나오면 마음이 놓이지만 계속해서 예배에 빠지면 혹시 어떤 시험에 빠진 게 아닐까 싶어 긴장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어엿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런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한다. 그래도 열 명중 1-2명 정도는 직행열차처럼 쉬지 않고 꾸준하게 신앙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황귀순 집사님도 그중에 한 분이다. 믿음의 깊이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처받는 일이 없이 사는 분이어서 그런 것 같다.
사람마다 성질이 있다. 얌전하던 사람도 건드리면 꿈틀거리며 반응한다. 특히 나중 믿는 자는 먼저 믿는 자들 때문에 시험에 빠지기가 쉽다. 이해심이 부족하면 괜한 일로 인하여 오해가 생기고 믿음까지 상처를 받는다. 교인들끼리 오해가 생기면 한 편이 넘어지거나 양편 모두가 시험에 들기도 한다.
황귀순 집사님은 마음이 넓으셔서 문제를 키우거나 다투는 법이 없다. 집사님 집 주변은 거의 다 교회 다니는 분들인데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일이 없었다. 설령 있었다 해도 가볍게 지나쳐 버리기 때문에 문제 될 일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성도들이 목사의 목회를 도와주는 일은 교인들끼리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다. 교인들끼리 관계가 불편해지면 그 틈에 있는 목사는 참 곤란해진다. 옳고 그름을 떠나 누구의 편을 들 수가 없어 마음이 불편해진다.
사람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곳에서는 반드시 이해관계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면 대립 관계로 발전하기 쉽다. 조금만 너그러워지면 낯붉힐 일없이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면 이웃과의 관계가 불편하거나 깨어질 수 있다.
황귀순 집사님은 교회에 나오기 전부터 어디에서 만나든지 친절하게 대하셨다. 언제나 웃는 얼굴이어서 마음 편하게 다가설 수 있었다. 교회를 나오신 후로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교회에 나오신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교회를 선전하고 목사를 홍보해 주신다. 오래 교회에 다닌 분들이 교회를 선전하는 것보다 이제 막 교회에 나온 분이 교회를 좋게 말씀해 주니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황귀순 집사님의 입에는 나쁜 말은 없다. 항상 듣기에 편하고 좋은 말씀만 해주신다. 그래서 교회 적응이 쉽고 굴곡 없는 신앙생활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를 편케 해주셨던 집사님께 고마운 뜻을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