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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迷宮]
3-1. 최악.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행 중에 양 갈래의 길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도착했다고 짐작 되어 질 때쯤 도로의 포장이 끊겨져 있었다. 다혜는 차에서 내려 도로를 확인해 보았다. 앞으로는 차량 한대 정도만이 간신히 통과 되어 질 것만 같은 비탈진 비포장의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되돌아 가기엔 너무나 먼 길을 오고야 말았다. 고 생각하며, 다혜는 휴대전화를 꺼내 닥터 화이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는 수풀 림 적당한 곳에 주차하시고, 거기서 30분정도만 더 걸어 올라오시면 됩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고 닥터 화이트는 말했다.
걸어서… 30분???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다. 고 다혜의 뇌리가 메아리 치며 외쳤다. 여기서 또다시 30분이나 더 걸어가야 한다니...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 이다. 다혜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보이는 건 인적 없는 수풀 림 뿐이었다. 불현듯, 쥐도 새도 모르게 뭔가를 처리하기에 너무나 안성맞춤인 곳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너무나 으슥한 곳에 발을 들이 고야 말았다. 고도 생각되었다. 온몸에 털이 곤두서며 소름이 돋아 왔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퇴로는 없다. 고 단단히 마음을 다잡으며 다혜는 비탈진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차량 한대는 족히(?) 지나갈 것 같아 보였던 길이 가면 갈수록, 오르면 오를수록, 굽이진 곳을 돌면 돌수록, 점점 오솔길 수준으로 좁아지며 험난해지고 있었다. 무성 하게 자라 난 수풀을 헤쳐나갈 때마다 후회가 한아름씩 밀려들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백힙 스커트 차림으로(그나마 스판이라 다행이었지만) 그것도 하이힐을 신고 이것은 무엇을 위한 고행의 길인가 하는 의구심과 회의심만이 가득하였다. 출발하기 전 커리어우먼의 품격이라며 운전화를 하이힐로 갈아 신은 것이 크게 후회되는 순간 이었다. 그렇게 고행의 초행길 30분은 한없이 길게만 여겨졌다.
얼마나 걸어 왔을까? 이제 그만 도착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 할 때쯤, 돌만이 가득한 매우 가파른 오르막의 길이 또 다시 다혜의 눈 앞을 가로 막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가파르고 긴 비탈길 이었다. 이건 절벽 과도 같은 경사다. 하고 느끼며 다혜는 그만 자리에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은 나를 이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이세상은 나에게 시련과 고난 만을 안겨주려 하고 있다. 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 할 수 없었다. 이를 악 물고 오기 반 독기 반을 품으며 거의 네발로 기다시피 엉금엉금 최선을 다하여 올라갔다.
그렇게 정상... 아니 정확히는 산 중턱 오르막 끝에 다다르자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다혜의 눈 아래로 크게 펼쳐져 보였다. 시원한 바람이 다혜의 긴 머리 결을 흩날리며, 그간의 노고를 치하 하듯 이마에 깃든 땀을 상쾌하게 씻어 내려 주었다. 그래, 이것이 바로 산에 오르는 이유다. 고 생각하며, (비록 정상은 아니었지만) 다혜는 입을 크게 벌리며 야~~호~~~ 하고 아주 크게 소리 질러 외쳤다. 그리고 (타이타닉) 영화의 한 장면처럼 두 팔을 한껏 벌리며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꼈다. 매우 상쾌한 기분이었다. 그렇지, 바로 이 맛이야! 하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외쳤다.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 한번쯤은 소리 높여 외쳐 불러 보고 싶었던 영화 속 그 대사. 지금 만큼은 아무 거리낌없이 속 시원하게 마음껏 외쳐 불러 보는 다혜였다.
그랬다. 정말이지 한참을 그랬다. 정말 미친듯이 한참을 소리 질러 외쳤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고요함과 적막함이 물밀 듯 밀려들어오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몰골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자신을 느낄 수가 있었다. 머리에는 허옇게 풀이 돋아 나 있었고, 엉덩이는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으며, 하얀 블라우스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까진 무릎에 한쪽 신발 뒷굽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아마도 네발로 오르막을 기어 오르다 떨어져 나간 것 이리라. 고 짐작이 되었다. 온몸에 땀이 식어내리며 마음 또한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리고...
최악이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다 최악일 순 없어!! 라고 연속으로 생각되었다. 이 낯설고도 먼 타지 산간에 처량히도 홀로 남겨져 버린 자신의 처지에, 왠지 서글픈 마음만이 가득하여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였다.
산 아래에서 누군가 다혜의 한쪽 신발 뒷굽을 반갑게 흔들어 보이며 미소 띈 얼굴로 다가 오고 있었다. 바로 닥터 화이트 였다.
3-2. 태양이 없다. 화이트 아웃!!
나머지의 길을 안내하며 닥터 화이트가 앞장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다혜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노쇠한 소와 같이, 풀어헤친 머리에 까진 무릎으로 한 손에 하이힐 뒷굽을 거머쥐고 뒤뚱거리며 따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며 닥터 화이트가 빨래 줄로 쓰일 법한 가느다란 주황색의 로프를 슬링백에서 꺼냈다. 그리고 로프의 한쪽 끝을 다혜에게 건네 주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안개가 짙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겁니다. 이 로프를 잘 잡고 따라 오세요. 실수로 라도 로프를 놓치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저를 불러 주세요. 함부로 움직이다 가는 길을 잃어 버리실 겁니다.
닥터 화이트가 말한 그대로였다. 산 아래로 내려 갈수록 눈 앞의 안개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처음엔 눈 앞이 약간 흐릿한 정도 였으나, 이제는 앞서 걷고 있는 닥터화이트의 모습조차도 분명해 보이지 않을 만큼 산속에 안개가 짙게 베어 있었다. 진정한 화이트 아웃이었다. 조금만 떨어져 걸어도 닥터 화이트의 모습이 다혜의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혜가 말했다.
정말, 지독한 안개 네요. 발 밑도 잘 보이지 않아요.
닥터 화이트가 답했다.
오늘 유난히 더 심한 것 같습니다.
다혜가 물었다.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인가 봐요?
네, 거의 항상 이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님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냥, 닥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의사이신가요?
대충 비슷한 겁니다.
대충 비슷하다는 건 무슨 뜻이죠?
면허가 있는 정식 의사는 아니라는 뜻 입니다.
정식 의사는 아니지만 대충 비슷한 일을 하신다?
네 그렇습니다.
혹시, 이름 같은 건 없나요? 다들 하나쯤은 갖고 있는 거잖아요?
이름을 안쓴지 오래 돼서... 잊어버렸습니다.
알려주기 싫은 건 아니고요?
아닙니다.
맞는 것 같은데요.
절대 아닙니다.
그럼 다시 한번 잘 기억해 보시죠?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 네 네 네 알겠어요. 알겠어. 그냥 그렇다고 해두죠. 저는 혜교라고 해요. 송혜교.
유명 연예인 이름이네요.
네 연예인 이름 맞아요. 본명은 지금 막 까먹었어요.
…………………
그런 실없는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 짧은 사이에 안개가 더욱 짙어져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게 되었다. 주황색의 로프만이 마치 허공에 걸린 듯 다혜의 눈 앞에 둥실 하고 떠 있을 뿐이었다. (한치 앞도 구분 할 수 없는 지금) 그 줄은 다혜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놓쳐서는 안되는 생명의 동아줄과 같았다. 로프를 쥐고 있는 다혜의 손바닥에 땀이 차 올랐다. 다혜가 말했다.
조금만 천천히 걸으면 안되요? 앞이 보이지가 않아서 따라가기 힘들어요.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다혜가 조금 더 큰 소리로 다시 말했다.
저기요? 지금 앞에 있는 거 맞죠? 제 말이 안 들려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하였다. 다혜는 걸음을 멈추고 로프를 확하고 잡아 당기며 말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장난하세요?
그러자, 로프가 허공에서 바닥으로 힘없이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것을 바라보는 다혜의 가슴도 철렁!! 하고 내려 앉았다.
주변은 온통 안개의 벽에 가려져 있었다.
방향을 잃은 채 다혜가 다시 한번 ‘이봐요 닥터씨’ 하고 외쳐 부르려는 그 순간!!!
갑자기 안개 속에서 팔 하나가 쑤욱 하고 나오더니 다혜의 입을 콱!!! 하고 틀어 막았다.
닥터 화이트가 말했다.
“쉿!! 아무래도 근처에 멧돼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혜의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천천히 떼어놓으며 다혜를 가만히 자리에 앉혔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은 몸을 잔뜩 수그리고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멧돼지의 동향을 살폈다. 긴장된 시간이었다. 다혜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방금 전엔 날 버리고 사라진 줄 알았어요.
................
대답이 없었다. 다혜가 다소 벙찐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어머? 왜 대답이 없죠? 설마 정말로 혼자서 도망치려고 했던 건가요? 하는 그때!!!
가까이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뚜렷이 들려왔다. 닥터 화이트가 말했다.
제 손을 잡으세요. 그리고 최대한 조용히 따라오세요. 일단, 여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슬링백에서 담뱃갑 만한 크기의 상자를 조심이 꺼내어 다혜에게 건네주며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급 시에 사용하세요.
이게 뭔데요?
콩알탄 입니다.
콩.알.탄? 혹시 애들이 땅바닥에 던지고 노는 그 콩알탄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이걸로 멧돼지 퇴치가 가능하다고요? 별로 소리도 크지 않던데... 여러 개를 한꺼번에 던져야 하나요?
아닙니다. 한 개만 던져도 충분할 겁니다.
충.분.할. 거.라고요? 설마... 잘 믿어지지 않아요.
그건 보통 콩알탄이 아닙니다.
보기에는 그냥 보통의 콩알탄처럼 보이는 데요?
아닙니다. 그건 제가 제작한 멧돼지 퇴치용 특수 콩알탄 입니다.
으음... 상자에도 그냥 콩알탄 이라고만 써져 있는데... 애들 장난감 이랑은 어떻게 다른 건가요?
제가 그 안에 특수 재료를 집어 넣었습니다.
특수 재료 요?
네, 호랑이 똥 입니다.
호랑이 똥 이요?
네, 힘들게 구해서 제가 직접 집어 넣었습니다.
아......
....................
사용해 보신 적이 있나요? 효과가 있었어요? 하는 다혜의 물음에 닥터 화이트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 이제 그만 갈 시간입니다. 제 손을 잡고 조용히 따라 오세요. 하고 말 할 뿐 이었다.
그때 부터였던 것 같다. 이 남자 뭔가 수상해 보인다. 고 느꼈던 것이. 사실 어딘가 정상적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밀려 들며, 멧돼지가 정말로 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려고 하는 그 찰나, 갑자기 닥터화이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혜교씨, 콩알탄! 콩알탄!
그때!!! 였다. 콩알탄을 챙기려는 그 잠깐 사이 다혜의 옆으로 바람과도 같이 스치듯 커다란 멧돼지 한마리가 순간적으로 쓰윽 하고 보였다가 (안개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 1초정도 되는 정말 찰나의 순간 이었지만, 등골이 오싹해오며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르기에 충분히 긴 순간이기도 하였다. 순간적으로 온몸이 경직되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던 그때, 느닷없이 닥터 화이트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수십 개쯤 되는 콩알탄을 땅바닥에 마구 마구 집어 던지며 외쳤다.
(연예인 송혜교씨) 튀어~~~~~
순간 순식간에 수십 개의 콩알탄이 한꺼번에 터지는 소리가 고요한 산중에 요란하게 울려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닥터화이트가 다혜의 손을 꽉 움켜 잡고 빠르게 달려 나갔다. 물론 그에 응하듯 다혜 또한 죽을 힘을 다하여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열심히 따라 뛰었다.
그렇게 정신 줄이 빠질 정도로 (한 5분에서 10분 정도) 달리자 거짓말처럼 눈 앞의 안개가 사라지고 없었다. 호랑이 똥으로 특수 제작된 콩알탄이 정말로 효과가 있었는지 (는 몰라도) 다행히 멧돼지는 쫓아 오지 않았다. 구사일생이란 이런 것일까?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다혜는 풀 바닥 위로 나가자빠지 듯이 쓰러져 버렸다. 하늘 위로는 그와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이 뭉개 구름이 아주 평온히 흘러 가고 있었다. 긴장에서 벗어난 탓일까? 사뭇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져서, 다혜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습이 바뀌어 나가는 뭉개 구름을 한참이나 쫓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다 문득 이상함을 느낀 다혜는 나즈막히 탄식하 듯 말했다. 하늘에….
태양이 없다!!!
순간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선 다혜는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닥터 화이트씨!! 봐요. 하늘에 태양이 없어요!!! 태양이 보이지가 않아요.
크게 놀라 황당한 표정으로 닥터 화이트를 돌아 보았지만, 놀랍게도 그 곳에는 태양만 없는 것이 아니었다. 닥터 화이트도 보이지가 않았다. 주변 그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랬다. 하늘엔 분명 태양이 없었고, 그곳에서 닥터 화이트는 완전 아웃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