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볶음탕에 대한 논란
닭도리탕의 명칭에 관한 논란이 점점 불거지고 있다.
논쟁은 1992년에 국립국어원이 식생활 관련 용어들을 다듬으면서
닭도리탕을 ‘닭볶음탕’으로 순화해서 쓰도록 권고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도리’가 새의 총칭이자 닭을 의미하는 일본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자 사방에서 도리는 일본어가 아니라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도리가 ‘둥글게 돌려서 베어내거나 파다’라는 뜻의 우리말 ‘도리다’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도리를 우리말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사전에도 나오는 ‘외보도리’를 용례로 제시하기도 한다.
외보도리는 오이를 잘게 썰어서 소금에 절여 기름에 볶아 만든 음식을 뜻한다.
도리다가 조리다의 사투리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견해도 있다.
19세기 말의 <시의전서>에 닭조림이 나오는데 그 요리법을 “닭을 잡아 토막 내어 갖은 양념에 주물러 좋은 진장(간장)에 졸이되, 쇠고기와 달걀을 삶아 까서 같이 졸이면 좋다”고 했다.
지금의 닭도리탕과는 다른 음식이지만 어원으로서의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도리다가 윗도리나 아랫도리처럼 신체의 일부를 지칭하는 우리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상식적으로도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이 있다.
닭도리탕은 일본의 음식 역사에서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음식이다.
그런 음식의 이름에 들어있는 단어를 굳이 일본어로 파악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려운 해석이다.
굳이 일본말로 본다면 닭새탕이나 닭닭탕이라는 어법에 맞지도 않는 우스꽝스러운 명칭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1925년에 출간된 언론인 최영년의 <해동죽지>는 평양의 명물로 도리탕(桃李湯)을 소개하고 있다.
‘닭을 뼈째 한 치 길이로 잘라 향신료를 섞어 반나절 동안 삶아 익힌 닭곰국’이라는 설명으로 미뤄 볼 때 이를 닭도리탕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최영년이 친일파였기 때문에 닭의 발음이 어려운 일본인들을 의식해 일본 단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유추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도 새우젓국으로 간을 맞춘 닭볶음을 설명하면서 송도에서는 이것을 도리탕이라고 한다 했다.
이런 정황들이 있는데도 도리를 일본어의 잔재로 간주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트위터상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이외수 작가이다.
그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닭도리탕은 일본식 이름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관련 글을 링크한 것이다. 그 주장에 대해 국립국어원이 일본 말에 도리라는 단어가 존재하고, 도리의 어원에 대해 정확한 근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순화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산되었다. 그렇다면 일본 말과 발음이 같고 어원이 분명하지 않은 우리 용어는 다 바꿔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데 이해하기 힘든 주장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법에 맞게 다듬었다는 닭볶음탕이라는 이름이 적절치 않다는 점이다.
조리 과정에 볶는 수순이 없고, 국이라고 할만큼 국물이 많은 것도 아닌데
그 둘을 붙여 닭볶음탕이라고 한 것은 생뚱맞은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국립국어원이 ‘짜장면’의 경우처럼 융통성을 발휘하여 재심에 들어가는 것이 어떨까.
서울 성북동의 성너머집은 가마솥에 끓이는 시골풍의 닭도리탕으로 명성을 얻고 있고,
신사동의 목포집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닭볶음탕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집이다.
글·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