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1차 간산 및 2019년 시산제 안내(2019년 3월 24일 예천지역)
우리 연구회에서 실시하는 제 61차 정기 간산 및 2019년 시산제 행사는 예절(禮節)의 고장인 예천지역에서 치러질 예정입니다.
이곳 예천지역에 생기를 불어넣는 땅맥(地脈)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이 치올린 태백산 장군봉(太白山, 1567m)에서 소백산 비로봉(小白山, 1440m)을 잇는 연맥(連脈)이 남서쪽으로 진행하다가 옥녀봉과 자구산(786m), 부용봉 등을 아우르는 자구지맥과 문수봉(1077m)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지맥을 내려 보내, 내성천 물길을 사이에 두고, 크고 작은 산자락을 솟구쳐 이곳 일대에 땅기운을 공급합니다.
이곳 예천지역은 북(北)으로는 1000m 이상의 백두대간의 군봉(群峯)들이 남서쪽으로 이어지고, 남(南)으로는 저지대 및 내성천 유역, 분지가 발달된 북고남저(北高南低)의 지세를 보입니다.
특히 2019년 시산제가 치러질 선몽대 일대는 내성천에서 풍부한 먹이를 먹은 기러기가 모래밭으로 내려앉는다는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의 풍수 물형을 엿볼 수 있는 경승지로, 예천에서 안동 방향으로 흐르는 내성천의 물길과 넓게 펼쳐진 명사십리 백사장이 소나무 숲과 어우러지면서 빼어난 경관이 돋보이는 곳입니다. 회원 및 풍수도반들의 많은 참가를 바랍니다.
이번간산은 우리학회 2019년 시산제를 겸한 행사가 되어, 좌석확보가 어려울 수도 있으니 꼭 리필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1. 간산 일시
- 2019년 3월 24일 (일요일)
▶ 태릉역: 07:30, 지하철 6, 7호선 태릉역 1번 출구로 나오시면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 양재역: 08:00,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하차하여 1번 출구로 나와 50m 정도 걸어오시면 서초구청 맞은편에 관광버스 대기(수도권에서 참여하시는 분들의 편의를 제공하고자 최대한 시간을 늦췄습니다)
2. 최종 집결장소
▶ 서울 : 양재동 서초구청 맞은편(수협은행 앞 08:00시)
- 지하철 3호선 양재역 1번 출구에서 걸어오시면 수협은행 앞 도로에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08:00 까지)
※ 태릉역에서 출발하실 회원께서는 07:30까지 지하철 6, 7호선 태릉역 1번 출구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3. 회비: 40,000원 (교통비, 중식, 기타비용 등)
4. 답사 경유지 및 간산지 안내
서울 양재역 출발(08:00)→ 죽전 임시정류소(08:10) → 신갈JC 영동고속도로 → 여주JC 중부내륙고속도로 → 문경새재IC → 국도(문경장례식장, 10:00) → 좌의정 정탁 음택 → 예천 선몽대(시산제) → 진성이씨 이굉 음택 → 연안이씨 별좌공 종택 → 인동장씨 장말손 음택 → 귀경
※ 다른 장소에서 합류를 희망하실 분은 김명식 고문(010-2212-3494), 정철화 부회장(010-3475-2357)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5. 답사지 안내
1) 突形의 터를 소점한 좌의정 정탁(鄭琢) 음택
선생은 1526년(중종 21 丙戌) 10월 8일 외향(外鄕)인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에서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 정이충(鄭以忠)의 둘째아들로 출생하여 1605년(선조 38 乙巳) 9월 19일 예천군 예천읍 고평리 집에서 80세를 일기로 운명하였다.
선생은 27세인 1552년(명종 7) 사마시에 합격하고, 33세인 1558년(명종 13) 문과에 급제하여 6조 중, 5조 판서와 좌. 우의정을 역임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시에는 동궁(東宮)을 모시고 피난하는 중책을 담당했다. 1604년(선조37) 호종공신삼등(扈從功臣三等)으로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졌고 봉조하(奉朝賀)에 이르렀으며, 그가 죽은 후, 1613년(광해군 5)에는 위성공신(衛聖功臣) 1등에 봉해지고, 영의정으로 증직(贈職)되었다.
특히, 임란 중에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과 충장공(忠壯公) 김덕령 장군에 대해 죄가 없음을 아뢰어 구원함으로써, 임란을 이끄는데 공이 많았던 인물이다.
풍수가에서는 두사충(杜思忠)이 소점해준 집터와 신후지지(身後之地)에 얽힌 전설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인데, 그의 집터와 신후지지에 얽힌 전설 내용은 이렇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지리참모로 참전한 두사충은 벽제관전투에서 패전(敗戰)의 책임이 진(陣)을 잘못 쳤다는 이유로, 그 책임이 모두 자신에게 돌아갔다. 참수될 위기에 처한 그는 우의정으로 접반사(接伴使)이던, 약포선생의 구명(求命)이 있었기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선생 때문에 목숨을 건진 두사충은 그 은혜에 보답코자 문경군 가은읍 갈전리 아호동에 "이곳에 집을 지으면 대감과 같은 정승이 세 사람 더 나올 것이다" 라는 예언과 함께 집터를 잡아주었다. 선생은 두사충이 잡아준 현지를 답사하기 위해 평복으로 갈아입고 종 한 명을 데리고 문경새재를 넘게 되었는데 날이 어두워 주막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그곳에서 주막집 노파에게 문경 인심을 물어보니 "앞으로 문경 백성들은 아호동의 약포 대감 집을 짓는 부역에 차출되어야 하므로 큰 곤욕을 치를 것이다" 라고 대답을 한다. 노파의 대답을 들은 선생은 자신의 집짓는 일에 백성들의 걱정이 크다는 것을 알고는 집짓기를 포기하고 발길을 한양으로 돌렸다고 한다.
그의 신후지지에 대한 전설이다. 두사충이 어느 날 문경군 동로면 생달리에 큰 반송(盤松)이 있는 근처에서 연주패옥혈(連珠佩玉穴)을 발견하였는데, 명나라로 떠나기 전, 그 정확한 지점에 대해 선생을 따라다니는 하인에게만 "반송이 있는 곳에서 백보지내(百步之內)" 라고 알려주었다.
그 후 선생이 낙향하여 두사충이 정해준 묘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 반송아래까지 와서 하인에게 아직도 멀었냐고 묻는다. 그러자 하인은 손으로 갈전동 쪽을 가리키면서 여기서부터 `백보이내` 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갑자기 말이 뒷발질을 하여 그 자리에서 하인이 죽고 말았다. 화가 난 대감은 말을 죽여 노송(老松)밑에 묻고는 "나의 터가 아니구나! " 하면서 탄식을 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유명한 연주패옥이란 명혈(明穴)자리는 지금도 오리무중으로, 한때는 전국 지사들이 이 자리를 찾는다고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도 하였다. 선생의 묘는 재실 건너편, 동네 언덕에 조성되었으며, 비룡입수(飛龍入首)하여 위로 치오른 돌형(突形)으로, 묘 바로 뒤에서 짧게 속기(束氣)하여 주룡(主龍)이 들어오는 방향에서 살짝 봉분을 튼 모습이 되어, 당판의 모습이 조금은 어정쩡한 모습이다.
발사경(撥砂經)에 의하면 고산(高山)이라면 마땅히 와혈(窩穴)이 진혈(眞穴)이다. 그것은 체(體)가 이미 높은데, 혈(穴) 또한 높게 돌기(突起)한다면 생기(生氣)가 융결 되지 못하고, 발설(發洩)이 태과(太過)하기에 기돌(忌突)이 되는 연유이다.
그리고 이곳 터처럼 나지막한 평지룡(平地龍)을 이루면 의당 볼록한 돌혈(突穴)에 하혈(下穴)해야 진혈인 것이다.
그것은 혈(穴)의 위치가 낮게 내려왔는데, 세(勢) 또한 낮아 와장(窩藏)을 이룬다면 보합(保合)이 견고하지 못하고, 태결(胎結)이 불완전하여 기와(忌窩)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돌혈이라면 높은 산에도 있지만, 주로 평지에 많으며, 고산보다는 평지의 돌혈을 더욱 귀히 여긴다. 높은 산의 돌혈이라면 장풍(藏風)의 영향때문에, 주변 산들이 모두 높게 혈을 감싸주어야 하지만 평지 돌혈이라면 바람이 퍼져 불기 때문에 고산의 요풍(凹風)처럼 사격의 보호가 완벽치 않아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곳 묘소를 일군 입수룡(入首龍)은 계룡(癸龍)에, 향(向)은 간좌곤향(艮坐坤向)을 놓아 정음정양법(淨陰淨陽法)에 합당(合當)하고, 물은 좌수도우(左水到右)하여 경신방(庚申方), 파구(破口)를 이루어, 88향법의 문고소수자생향(文庫消水自生向)의 길향(吉向)을 놓았다.
2) 산과 물이 어우러지는 仙夢臺 (시산제 장소)
2019년 우리 학회 시산제가 거행될 선몽대는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에 있으며, 예천읍지에 수록된 약 450여년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장소와 함께, 대한민국 명승 제19호로 지정되었다.
이곳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宗孫)이면서 그의 문하생인 우암(遇巖) 이열도(1538~1591)가 1563년에 축조한 정자(亭子)로, “선몽대(仙夢臺)” 란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로 알려지고 있으며, 정자 내에는 당대(當代)의 석학인 퇴계 이황,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의 친필시가 목판에 새겨져 전해져 내려오면서 선인(先人)들의 유교적 전통공간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곳 내성천 변에 조성된 숲은 선몽대와 주변 백송리 마을을 보호하고자 우리 선조들의 풍수사상이 깃든 전통적 마을 숲으로, 100〜200여년 수령의 소나무와 은행나무, 버드나무, 향나무 등이 함께 자라는데, 수해방비와 방풍(防風) 등, 풍수적 단점을 보완할 비보림(裨補林)의 역할을 한다.
이곳 선몽대 앞 내성천이 만든 백사장 일대를 풍수적 의미를 부여하여 기러기가 모래사장에 내려앉은 형국이다 하여,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 으로 부르는데, 동양화의 화제(畵題)로 많이 활용되던 경승(景勝)의 하나다. 기러기가 내성천의 풍부한 먹이를 먹고 백사장에서 한가로이 쉬듯이 안온한 절경이 어우러지는 이곳에서 2019년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시산제를 치룰 예정이다.
3) 長蛇趨蛙形, 蛇頭形의 이굉, 이열도 음택
선몽대(仙夢臺) 주인인 이열도는 1538년(중종 33)에 출생하여, 1591년(선조 24)에 졸하였다. 자(字)는 정가(靜可)이고, 호는 우암(遇岩)이며, 본관은 진성(眞城)이고, 출신지는 예천(醴泉)이다.
증조부는 이식(李埴)이고, 조부는 이하(李河)이며, 부친은 이굉(李宏)이고, 모친은 부장(部將) 김수량(金遂良)의 따님인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부인은 목사(牧使) 남희석(南希奭)의 딸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1576년(선조 9) 별시문과 병과(丙科) 1위로 문과 급제를 한 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은계도찰방(銀溪道察訪), 고령현감(高靈縣監), 평안도도사(平安道都事), 형조정랑(刑曹正郞), 금산군수(錦山郡守) 등을 역임하고, 강원도도사(江原道道事)에 제수되었으나 더 이상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흉년이 든 해에 경산지방의 현령으로 추천되자 기꺼이 나가 백성들을 구휼하는 일에 앞장섰으며,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였다. 그리고 제대로 된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치고, 충효를 가르쳐 마을 전체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 후 여러 번 관직에 제수되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고, 1563년(명종 18)에 지은 선몽대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54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고,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다.
차를 타고가다 보면 백송리 동구(洞口)에 ‘선몽대 입구’ 란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표지판 못 미쳐 좌측 도로변에 나지막한 산이 길게 이어지는데, 그 산이 난산(卵山)이다. 이곳에는 세 기의 묘소가 상하장(上下葬)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제일 아래가 입향조인 이굉, 그리고 가운데가 그의 부인 묘, 아들인 이열도 묘가 제일 위쪽을 점하면서 소위 역장(逆葬)을 하고있는 셈이다.
이 곳 묘소를 ‘장사추와형’(長蛇趨蛙形), ‘사두혈’(蛇頭穴)로 전하면서 뱀형의 일종인데, 뱀의 머리 부분에 3기의 묘소가 조성된 것이다. 머리 아래에는 상당히 큰 바위 하나가 개구리 바위로 불리면서, 뱀의 형국인 먹잇감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그런데 이곳 뱀의 모습이 마치 베트남에서 응용되는 12지지, 뱀의 모습인 코브라처럼 고개를 위로 바짝 치켜세운 형상이 특이하다.
4) 八宅法에 합치된 연안이씨 별좌공 종택
이곳 종택은 호명면 사고막골의 낮은 야산을 배산(背山)으로 자좌오향(子坐午向)의 정남향(正南向)으로 터를 정했으며,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71호로 퇴계선생 문화 출신 눌헌(訥軒), 이응(李應)의 아들인 사고(沙皐), 이덕창(李德昌)이 창건한 살림집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창의한 공로로 내자시정(內資寺正)에 제수되었으며, 조상이 살던 옛 터에 집을 지으면서 사고구려(沙皐舊廬)라 편액하였다. 대청에는 경모당(景慕堂)을 1940년 증수시엔 긍구헌(肯構軒)이란 편액을 사랑채에 걸었다.
이곳 마당에서 바라보면 동네 너머로 멀게 앞내가 내려다보인다. 본채와 사당, 대문채 3동이 남향을 하고 있으며, ㅁ자형의 안채와 서쪽에 위치한 사랑채가 본채를 이루는데, 안채에는 원래 6칸 대청이 있었으나 후에 4칸으로 줄이고 방으로 바뀌었다.
현존하는 종택의 대문간채는 3칸, 좌측 끝 간에 대문을 내고, 부엌과 안방이 연접되면서, 대문의 위치는 곤방(坤方), 부엌의 화구(火口)는 태방(兌方), 안방의 위치는 건방(乾方)에 위치하여 팔택법의 서사택(西四宅) 구조와 합치되고, 터로 유입되는 양기맥(陽基脈)도 용맥이 치고 들어오는 맥선(脈線)이 아닌 일편(一片)의 양맥(陽脈)을 일구면서 풍수적으로 합당한 고택이다.
5) 國地師가 所占했다는 장말손 음택
조선 전기 문신인 송설헌(松雪軒), 장말손(1431~1486)의 본관은 인동이고, 자(字)는 경윤(景胤), 시호는 안양(安襄)이다.
1453년 23세 때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고,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463년(세조 8) 승문원박사를 거쳐 한성참군(漢城參軍), 사헌부감찰, 함길도병마도사(兵馬都事) 등을 지냈다. 1467년 예조좌랑으로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강순(康純)을 따라 난군 토벌에 공을 세워 적개(敵愾)공신으로 내섬시(內贍寺)첨정에 승진하였다. 1470년(성종 1) 장악원부정(副正)을 거쳐 장악원정, 부사직(副司直), 중추부첨지사, 해주목사 등을 지내고 1482년 벼슬을 사임한 뒤, 화장(花庄: 지금의 문경시 산북면 내화리)으로 물러나, 송설헌(松雪軒)을 짓고, 한운야학(閑雲野鶴)을 벗 삼으며, 유유자적하다가 이 해, 가을 연복군(延福君)에 봉해졌다.
향년 56세인 1486년 6월에 별세하니, 왕(성종)이 부음을 듣고 슬퍼하며 조회를 폐하고, 예관(禮官)을 보내 제사를 치르도록 하였으며, 나라의 지사(地師)를 파견하여 예천읍 남쪽 범우리 뒷산 병좌(丙坐, 북향)에 장사를 지냈다. 그해 가을에는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오위도총부도총관 등으로 증직(贈職)이 되고, 3대를 추증(追贈)토록 하였다.
이곳 묘소는 주산(主山)인 호복산을 일으키고, 후룡(後龍)이 펑퍼짐한양룡(陽龍)의 모습으로, 변화가 없고 용트림도 없이 그냥 위에서 쏟아져 내려온 평범한 입지를 이룬다. 그러한 까닭에 도두(倒頭)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입수(入首)의 위치도 애매하다.
이곳 당판에 서서 좌우 전방을 조망하면 가장 큰 문제점으로 부각되는 것이 백호의 형세이다. 본신(本身)에서 전방으로 쭉 뻗어 내려가는 백호자락의 어깨가 푹 꺼져 오목하다. 그리고 우측 45도 전방의 백호 한 자락이 몸통을 홱 꺾어 묘소를 충사(衝射)하는 모습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지손(支孫)들의 삶이 그리 곱지만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후손들의 묘소가 조성된 전순 부분 아래가 요함(凹陷)하여 조당(朝堂)에서 불어오는 요풍(凹風)이 밭을 통해 당판을 들락거리면서 후룡에서 생성된 맥기를 소산시키는 구조이다.
이곳 장말손의 묘는 4층, 오좌자향(午坐子向), 8층 임좌병향(壬坐丙向)의 북향(北向)을 놓고, 물길은 우선수(右旋水), 건해파(乾亥破)의 자연을 이루면서 살인대황천(殺人大黃泉)을 놓아 역시 지손(支孫)이 먼저 재앙을 당한다는 향법이다.
6. 지참물
산행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복장과 나경패철, 필기도구, 우천 시 우산. 간식 등
7. 신청 방법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은 반드시 이름과 연락처를 카페 답사안내 공지사항 아래, 신청 등록 란에 리필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간산은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2019년 시산제를 겸한 간산이오니 회원들께서는 2019년 3월 21일까지 꼭 리필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8. 연락처
서울, 경기, 전국 : 정철화(010-3745-2357), 김명식(010-2212-3494)
충북(청주) : 김홍길 010-8001-0020,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충북지부장)
중부(충주) : 이현철 010-3774-8854,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중부지부장)
경북 : 박정수 010-3530-2847,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상주지부장)
경남, 부산 : 윤진성 010-8773-5277. (한국자연풍수연구회 부산지부장)
전북 : 장원기 010-5638-6905,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전북지부장)
전남 : 손인호 010-6471-1040, (한국자연풍수지리연구회 전남지부장)
첫댓글 윤*성 부산지부장 외 1인, 현지 합류합니다.
문영래 동천동 환승센터에서 이용합니다.
손정호 선생님 양재역 이용합니다.
전종혁 회장님 태릉역 이용합니다.
이성용님 태릉
김채빈님 양재
장원기교수 양재
김민서교수 양재역 조찬성고문 태릉에서 출발
김태희님 양재
엄홍상님 양재
박종남 감사님 양재역 이용합니다.
서민경 위원님 양재역 이용...
김석중 위원님 태릉
하태주 위원님 양재
정명채 위원님 양재
이현철 위원님 현지 합류
상주 박정수 지부장외 3명 문경장례식장에서 합류
송여사님 양재역
석초회장님, 야정고문님 포함, 참석인원 총25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