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선 대죽1리노인회 회장 사모님 안한균 여사 외 4편
김 영 욱
처음 ‘안한균’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발 벗고 나서서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상머슴 남자의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창근이 또는 상근이 엄마였으니
입이 도끼날 같고* 오지랖이 넓은 여장부女丈夫*라
올해부터 바깥 영감이 대죽1리 노인회 회장님이니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마땅한데
부르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그래도 수십 년 ‘창근이 엄마’라고
정답게 불러온 탓이기도 하련마는
회장님 대신 경로당 일을 척척 챙기는 창근이 엄마를
가끔가다 ‘사모님’이라고
불러도 죄는 아닐 테니
사모님이라고 불러도 괜찮으리
오늘 초복初伏놀이
사모님 진두지휘陣頭指揮에 따라
여성 노인회원들이 알아서
척척, 척, 척척, 척
상 차려지고 비워지는 설거지 전투戰鬪는
말끔하고 깨끗하게
엄지 ‘척’ 소리 나게 끝났다네.
*입이 도끼날 같고
입이 도끼날 같다가 원형으로 ‘바른말을 매우 날카롭게 거침없이 한다’는 뜻이다. 즉 옳은 말은 해야 직성直性이 풀리는 성격을 말한다.
*여장부女丈夫
2015년 5월 20일 펴낸 졸저 시집 《대죽리 모동헌》에서 안한균 여사에 대해 “시원하고 씩씩한 여장부/ 상근이 엄마 자가용은 사발이다/ 밭으로 가는 길 제방뚝을 냅다 달린다/ 장군 깃발은 달지 않았지만/ 쓰리스타(★★★) 여女군단장이다// 만약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포스타(★★★★) 4성 장군 참모총장이다/ 여장부 상근이 엄마는.”이란 시가 게재돼 있다.
강정순 할머니
얼핏 강정순 할머니의
옆모습을 볼라치면
가수 이난영*의 모습과 비슷해서
‘목포의 눈물’ 아니면 ‘목포는 항구다’라는
구구절절句句節節 애절한 노래가 떠오르는데
강정순 할머니 한 번도 노래하는 걸 보지 못했으니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주 월요일 오후 경로당의 노래교실에 다니기도 하지
이팔청춘 봄 시절엔 예뻤을 강정순 할머니
김성년 어르신과 천생연분天生緣分에 보리개떡*인가
어떤 때는 트랙터 뒤에 앉아
사이좋게 일하러 가지요.
*이난영李蘭影(1916~1965)
본명 이옥례李玉禮. 전라남도 목포木浦 출생. 1935년 조선일보 가사모집에서 입선된 문일석文一石의 작품에 손목인孫牧人이 곡을 붙인 〈목포의 눈물〉을 불러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가요계 샛별로 떴다. 이봉룡李鳳龍 작곡의 〈목포는 항구다〉, 김해송金海松 작곡의 〈다방의 푸른 꿈〉 등으로 당대 최고의 유명 가수가 되었다. 해방 후에도 무대 가수로 활약하였는데, 6·25전쟁 때 남편 김해송이 납북된 이후 K.P.K악단을 손수 운영하였다. 자식들도 미국에서 김씨스터스, 김보이스라는 이름으로 연예활동을 하였고, 1963년 한때 자식들을 따라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하여 별세하였다.
*천생연분天生緣分에 보리개떡
보리 개떡을 먹더라도 부부가 의좋게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속담이다. 천생연분은 하늘이 베푼 인연처럼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하여 잘사는 부부를 말한다.
담뱃집 박경자 할머니
홀로 외롭게 사는 담뱃집 할머니는
오늘도 톳갱이* 먹이 풀 뜯으러
저만치 버들꽃내 제방 둑길 더듬어
씀바귀 고들빼기 뜯어 집으로 돌아가는 등 뒤에는
황혼黃昏 빛 그림자 뒤따라가는데
넘어질 듯한 기우뚱한 뒷모습이 애처롭다
4년 전만 해도 담배와 소주와 과자 라면을 파는
구멍가게를 했는데
돈이라면 인정사정없이 흡혈귀吸血鬼처럼
쪽쪽 빨아들이는 거대한 자본이
소자본이나 영세 상인을 죽이는
킬체인*이나 다름없는 대형마트와 체인점이
순박한 농촌지역에도 우후죽순雨後竹筍 생기면서
담뱃집 할머니는 구멍가게를 맥없이 접어야 했지만
한때는 대죽리 마을 사람들에겐
인정人情의 꽃을 피우던 만남의 장소로
꽁치 통조림 김치 두루치기 안주는
술맛 돋우는 일품이었다죠
이제는 톳갱이* 서너 마리 키우고 있다나
개도 두어 마리 키우고 있다나.
*톳갱이-토끼
*킬체인(Kill Chain)
여기서는 대자본이 소자본을 죽이는 전략의 뜻으로 쓰였다.
킬체인은 1991년 중동의 ‘걸프전(Gulf戰)에서 처음 등장했다. 걸프는 영어로 ’만(灣)‘이다. 페르시아만에서 발발한 전쟁이라고 해서 걸프전이라고 하는데 이라크군의 스커드미사일 이동식발사대移動式發射臺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발사대를 탐지하여 격파하는 공격형 방어를 실시한 것이다. 당시에는 미흡한 점이 많은 킬체인이었지만, 이후 군사기술 발달과 함께 킬체인도 발전했다. 킬체인은 공격할 징후를 보이는 표적을 미리 탐지하여 선제공격하는 타격순환체계打擊循環體系로, 탐지, 확인, 추적, 조준, 교전, 평가의 세부적인 6단계로 진행되는 방위시스템이다. 적의 위험 징후를 감지해야 하는 만큼, 킬체인에서는 타격 수단에 못지않게 정찰기와 정찰위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한국의 킬체인 계획은 국방부에서 2023년까지 17조 원을 투입하여 ’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KAMD: Korea Air Missile Defense)를 구축해 북한의 핵공격核攻擊을 차단한다. 즉 북한에서 탄도미사일이 발사되면 조기경보早期警報 레이더 등에서 탐지한 정보를 바탕으로 요격미사일을 발사시켜 파괴한다. 이를 위해 군사정찰위성 5기 확보, 글로벌 호크 4대 도입, 사거리 800km 현무-2C 지대지 탄도미사일 개발, 미국 패트리어트(지대공 미사일) PAC-3 구매, M-SAM(중거리 지대공 미사일)과 L-SAM(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의 레이더 탐지거리와 미사일 사거리를 늘이는 국내개발 등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문재인과 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으로 조성되는 평화 분위기(平和雰圍氣)여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지수다.
박옥자 할머니
체구는 작아도
무슨 일이든 어떠한 일이든
남보다 빠르고 야무져 블루베리농장 수확 철에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품 팔고 돌아오곤 해도
할아버지 술시중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도 건강에 마음이 쓰여
오늘은 그만 드시라고 그러지만
할아버지 역시 체구는 작아도
누구보다도 술에 대해선 황소고집이다 보니
창고에서 빨강 따꼉*을 들고 나온다
그래도 미더운 영감인지라
깡술은 사람 속 망친다고요
먹다 남은 돼지등뼉따기* 레인지에다 덮여
안주해서 쬐금만 마셔요
*빨강 따꼉-빨간색 병마개의 진로 참이슬 소주
*돼지등뼉따기-돼지등뼈
김초자 할머니
야소교耶蘇敎* 대죽교회에
어제도 오늘도, 매일
어떤 때는 가랑비 부슬부슬 내리는 궂은 날에도
새벽기도 갔다가 종종걸음으로
옹기종기 집 사이 골목길 접어들어 집으로 간다
이 세상 다하는 날, 하나님이 부르면
하늘나라 가는 길도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신랑 야소耶蘇님 품 안에 안기겠지요
할렐루야 아멘.
*야소교耶蘇敎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에서 갈려나온 개신교인 기독교를 초창기 우리나라에서 이르는 말이다. ‘야소耶蘇’는 ‘예수(Jesus)’의 음역어이다. 얼마 전 미국 임마누엘교회 류종길 목사가 오늘날 기독교가 ‘개犬독교’라고 나쁜 평판을 듣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소금이 되지 못하고 빛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쓴 글 중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다.
“19세기 말 광양(현재 전라남도 광양시-필자 주)에는 도박이 크게 창궐해서 도박으로 패가망신하는 가정이 수도 없이 늘어갔다. 그 때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일본으로 도망치는 일본 낭인을 죽이고 웅동 마을에 숨어있던 한태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 체포하려고 광주에서 찾아온 한 관리가 도박에 중독된 주민들을 보고, ‘광주에 가면 야소교라는 것이 있는데 도박을 끊으려면 이를 믿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며 조상학 목사를 소개했다. 이에 박희원, 서병준, 장기용의 40대 세 사람이 3일 동안 걸어서 조 목사를 만나 전도를 받았다. 1904년, 그들은 이내 고향으로 돌아와 시골집 방 한 칸을 빌려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광양지역의 첫 교회였다.”
도박을 끊는다는 것은 손목을 자르기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야소교는 도박을 끊는 양약良藥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기독교보다는 야소교(예수교)로 다시 돌아갔으면 합니다.
필자는 이 글을 본 후, 필자 역시 류종길 목사처럼 현대의 기독교 신자보다는 옛날의 야소교 신자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야소교 신자, 인간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야소교 신자,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한 야소교 신자, 무엇보다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야소교 신자, 그리고 회개의 눈물을 항상 달고 다니는 신자, 그런 신자가 되려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시류에 휘말려 살다보니, 하나님 보기에 개차반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도 류종길 목사의 생각대로 오늘날 기독교는 옛날 야소교로 돌아가야 한다.
참고적으로 필자가 조사한 자료 등에 의하면 조상학趙尙學(1877-1950) 목사는 전남 승주군 송광면 출생으로 일제에 저항하다 투옥되고 6.25전쟁 때 교회를 공산침략으로부터 사수하다가 1950년 9월 28일 순교했다. 시무했던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인 덕양교회 내에 ‘조상학 목사 순교기념비’가 있고 광양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관에도 ‘순교자 조상학 목사 추모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