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에서 흘러내리는 거대한 빙하 바로 코앞에 내 텐트가 쳐져 있어 밤에 무척 추울줄 알았는데, 생각외로 춥지 않았다. 하긴, 빙하에서부터 올라오는 냉기를 완벽하게 차단한다고 까지끝 빵빵하게 불어넣은 에어매트에 영하 30도 침낭, 그 위에 찬기를 좀더 따듯하게 하고 또 혹시라도 결로가 생길까 고어 패딩과 또 하나의 고어쟈켓에 패딩을 넣어 옷핀을 이용해서 쟈켓고리와 가방 고리를 연결해서 고정시키고.... 어디 그뿐인가~ 털 양말에 두꺼운 털모자와 패딩바지에 우모복까지 입고 잤으니... 아니지, 허리와 배에 핫팩도 붙이고 뜨거운 물병 2개를 침낭속에 넣고 잤으니 어디 왠만한 추위가 몸속으로 다가설 틈이 있었을까....ㅋㅋ
포근함때문인 지, 어제밤 일찍부터 자기 시작했는데, 아주 푸욱 자고 새벽 4시반에 눈을 떴다. 이제는 내 몸의 열기까지 더해져 포근함의 극점을 찍고 있다. 세계 제 2위의 거대한 8,611m의 봉우리...K2 ... 그것도 빙하가 흘러내리는 극한의 추위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천국의 포근함이라니... 그 느낌이 얼마나 좋은 지.....그 강렬한 유혹에 그만 꼼짝할 수가 없다.
5시가 되서야 겨우 일어나 짐을 꾸리느라 시간에 쫓겨 애를 먹었다. 빡빡한 작은 카고백에 버럭이 침낭까지 넣어줘야 해서 더 힘이 들었다.
아침 식사로 염소고기국이 나왔는데 얼마나 맛이 있던 지.... 어쩌면 이렇게 염소요리를 누린내 하나 안나게 잘 하는 지.... 오늘은 계란에다 온갖 야채까지 넣어 맛있게 오믈렛을 해왔다. 이렇게 아침이 맛있는걸 보니, 어제 나빴던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된 거 같다.
아침을 먹고나서 헤마옛 손가락 드레싱을 해주었다. 밤새 또 다친건 지, 아님 계속 손을 써서 인 지 염소를 잡다가 아주 크게 다친 아저씨 보다 더 안 낫는다. 이풀이 항생제 처방을 추가로 해주었다.
7시 10분에 출발했다.
날씨는 좋은데,어제와 달리 K2 봉우리에 구름이 잔뜩 끼었다. 그래도 아쉬움에 발걸음을 멈추고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한다. K2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공룡등 처럼 뾰족 뾰족한 빙하와 눈 쎄락..그리고 크레바스가 어울어진 기막힌 풍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발걸음을 더욱 늦추기도 하고...
다시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무래도 같은 길의 하산 길이니, 사진도 덜 찍을 뿐더러 5,000m가 넘는 높은 고도에서의 내리막 길이니 수월해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눈부신 하얀 설빙하....거대한 고드윈 오스틴 빙하앞에 다시 맞닥뜨렸을때 우리는 그 감동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길고도 험한 일정의 끝점에서 만나 지쳤을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쌩쌩한 컨디션인 지라 당장 빙하속으로 달려들어가 높다란 바위 위에도 거뜬히 올라가 폼도 잡아보고.... 심지어 빙하의 얼음덩이 위에 눕기까지 하며 화보촬영을 했다.
K2 주변을 구름이 온전히 뒤덮은것과는 달리, 그 반대편 하산 길의 시야는 또 기가 막히다. 파아란 하늘과 넘실대는 흰 구름... 그 아래로 하얗게 만년설을 뒤짚어 쓰고 있는 초고리사의 자태가 양쪽으로 검은 암산의 위용 사이로 기가 막히다.
정말 그렇군!! 헤르만 불이 말한대로 신부의 면사포같아~ 그 앞으로 쫘악 깔린 새하얀 고드윈 오스틴 빙하까지 더해져서 기가 막히잖아~
한 바탕 빙하위에서의 짜릿한 유희를 끝내고 우리의 발걸음은 초고속으로 빨라졌다.
아!! 세상에~~ 이 판타스틱한 풍광이라니~~
우리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만 숨이 멎을것만 같았다.
어제 오후 느지막히 도착해서 한 바탕 출사 전쟁을 치뤄냈던 브로드 피크앞 빙하 호수다.
아!! 어젠 바람이 심해서 잔 물결이 심했었는데, 오늘은 마치 세상의 흐름이 정지된 듯한 모습이야~ 정말이지 아름다움을 넘어 너무도 비현실적인 그림같아~
정지된 시간 속에서 헤어나 다시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했다.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내리 걷다가 문득 또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렇게도 선명한 자태를 보길 갈망했던 K2.... 원도 없이 보았다고...지구를 구한 자를 또 들먹이며 선명한 자태의 K2를 만끽했어도 여전히 K2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나보다. 아니, 이제는 K2와 점점 멀어져 간다는 아쉬움일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못올 곳이니까...
아!! 그런데 어느 사이 K2를 완전히 덮쳤던 구름이 벗어져 K2 꼭대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지금 이 순간도 구름이 서서히 벗겨지고 있는것이 어쩌면 오늘도 온전한 K2의 모습을 다 보여줄것도 같다.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K2 앞에 우뚝 선 두 사람... 어느사이 우릴 지나쳤는 지, 아님 브로드피크bc에서 올라간건 지... 멋지다!!
화보촬영을 하고... 한 바탕 출사 전쟁을 치뤘어도 10시도 안된 시간에 점심장소인 이란BC에 도착했다. 하늘은 점점 청명해졌다. 파아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하얀 구름들은 얼마나 또 멋드러지게 노닐고 있는 지.... 이곳이 진정 천상낙원이란 생각이 든다.
점심으로는 파키스탄 라면에 내가 가져간 우리나라 진라면 스프를 넣어 끓여낸 라면이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K2가 있는 이곳까지...아니 이제까지 깨뜨리지 않고 가져온 계란 이라니... 그 귀한 계란에 고추가루까지 넣었지만, 파키라면 면발이 워낙 맛이 없어서.... 그래도 국물에 아침에 남은 밥을 넣어 말아 먹으니 먹을만 하다. 하긴 오늘 아침은 워낙 든든히 잘 먹어서...그리고 우리 배낭엔 미숫가루와 파워 에너지젤과 에너지 바, 육포와 캔디등 먹거리가 충분하니 먹거리때문에 체력이 달릴 일은 없을것 같다.
우리가 점심을 다 먹고 다과를 먹고 있을 때다. 우리의 포터들...또 시작하는 거다. 흥겨운 장단에 신명나는 노래가락....헤마옛의 흐드러지는 춤사위... 어느새 온 몸이 다 드러난 K2 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래가락과 춤사위는 온 세상을 향해 뻗어나갈 듯 우렁차고 멋드러졌다. 마치 선명한 K2를 맞이해 한바탕 펼치는 세레모니라고나 할까... 그 매혹적인 모습을 담느라 한 바탕 카메라 세례를 퍼붓고는 다시 차를 마시려는데, 이게 뭔말이란 말인가~ 나보고 춤을 추라니.... 포터들 모두가 원한다고?? 헐!!
까짓껏!! 그래 추는거야~ 내 평생 언제 이곳에 다시 와서 K2를 온 몸으로 찬양을 하겠어.
노랫가락은 더욱 신명나게 흘렀고, 멋드러지게 춤사위를 펼치는 헤마옛을 따라 나의 양팔도 흐느적거리며 장단을 맞추었다.
해발고도 5,100m의 고도에서 혜마옛과 커플 댄스를 춘다고 빙빙돌며 현지증까지 유발하며 춤을 추었으니... 이쯤되면 K2를 향한 나의 제의 의식이었다고 말할까?? K2의 정령이 이곳에 발을 딛게 허락해주시고... 당신의 온전한 모습까지 보게 해준것에 대한 감사 찬미....
혹시 포터들이 원한게 아니라 히말라야 카라코람의 정령이 그리 시킨것은 아니었을까...?? ................
Era - Dont You Forget 3 : 42 |
출처: 아름다운 날들 원문보기 글쓴이: 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