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燕山君)
연산군 융. 성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관봉상시사(判奉常寺事) 윤기견의 딸로
폐비윤씨이다. 성종에게는 정실 소생으로 뒤에 11대 왕이 된 중종이 있었으나
1483년(성종 14)연산군이 세자로 책봉될 때 중종은 아직 태어나기 전이라 세자가
되었다. 1494년 12월 연산군은 성종의 승하와 함께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거듭된 폭정으로 인해 전 이조참판 성희안(成希顔), 지중추부사 박원종(朴元宗),
이조판서 유순정(柳順汀) 등이 도모한 중종반정에 의해 폐왕이 되었다. 반정에 참가한
신하들은 연산군을 폐하고 성종의 둘째 아들 진성대군을 왕(조선 11대왕 중종)으로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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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燕山君)
(출생1476 ~ 1506사망/재위1494∼1506,11년10개월)
* 연산군묘:서울 도봉구 방학동. 사적 제362호.
* 왕비 폐비 신씨, 아버지 성종(成宗), 어머니 폐비 윤씨,
* 연산군으로 강봉(降封)되어 폐위된지 두달만에 역질로 사망(기록)
조선 제10대의 왕(재위 1494∼1506). 많은 신진 사류를 죽이는 무오사화를 일으키고
생모 윤씨의 폐비에 찬성했던 윤필상 등 수십명을 살해하였다. 또한 경연을 없애고
사간원을 폐지하는 등 비정(秕政)이 극에 달하여 결국 중종반정에 의해 폐왕이
되었다.
1476년(성종 7) 11월 7일 성종의 맏아들(적장자)로 출생하였다. 당시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는 성종(成宗)의 첫번째 후궁이었으며 이후 연산군을 잉태하면서 비로
책봉되었다. 이름은 이융(李)이고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서연(書筵)을 통해
세자로서 수업을 받았으며 그의 학문적인 소양은 선대 왕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다.
1494년 성종이 사망하자 조선의 제10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즉위 이후 신승선(愼承善), 노사신(盧思愼) 등 대신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였으나,
선왕의 명복을 비는 불교식 행사인 수륙재(水陸齋) 시행과 외척의 등용을 두고
삼사(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의 유생들과 갈등을 빚었고 즉위 1년 후 폐모 윤씨사건의
전말을 알게된 후 방치된 윤씨 능묘 천장(遷葬)두고 삼사와 대립하였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국왕(연산군)과 삼사는 더욱 갈등과 대립속으로 치달았다.
재위 4년인 1498년 7월 김일손(金馹孫)이 작성한 사초(史草)의 내용이 세조를 비판하고
붕당을 만들어 국사를 어지럽게 했다는 조의제문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문제삼아
훈구파(勳舊派) 이극돈(李克墩) ·유자광(柳子光) 등은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하고자
했으며, 이미 죽은 김종직(金宗直)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많은 신진 사류(士類)와
삼사에 속한 대간들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조선시대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
(戊午士禍)를 일으키게 하였다. 이 사건으로 국왕(연산군)과 갈등을 빚으며 왕권을
견제했던 삼사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이후 국왕(연산군)은 강력해진 왕권을 바탕으로 자신의 관심인 사냥과 사치를 즐겼고
국고의 사정은 나빠졌다. 1504년에는 손녀를 궁중으로 들이라는 연산군의 명을
거역하였다는 죄목으로 경기도관찰사를 지내던 홍귀달이 숙청되었다. 이 사건은
확대되어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문제로 번졌다. 성종의 후궁인 정씨(鄭氏) ·엄씨(嚴氏)의
모함으로 윤씨가 내쫓겨 사사(賜死)되었다고 해서 자기 손으로 두 후궁을 죽여
산야에 버리는 포악한 성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또한 조모 인수대비(仁粹大妃)를
구타하여 죽게 하고, 윤씨의 폐비에 찬성하였다 하여 윤필상(尹弼商) ·김굉필(金宏弼)
등 수십 명을 살해하고, 이미 죽은 한명회(韓明澮) 등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는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켰다. 또 국왕의 난행을 비방한 투서가 언문으로 쓰여지자,
한글 교습을 중단시키고 언문구결(諺文口訣)을 모조리 거두어 불태웠다.
한편, 각도에 채홍사(採紅使) ·채청사(採靑使) 등을 파견해서 미녀와 양마(良馬)를
구해오게 하고, 성균관의 학생들을 몰아내고 그곳을 놀이터로 삼는 등 황음(荒淫)에
빠졌다. 경연(經筵)을 없애 학문을 마다하였고, 사간원(司諫院)을 폐지해서 언로(言路)를
막는 등 그 비정(秕政)은 극에 달하였다. 급기야 1506(중종 1) 성희안(成希顔) ·
박원종(朴元宗) 등의 중종반정에 의해 폐왕이 되어 강화도 교동(喬桐:江華)으로
쫓겨나고, 연산군으로 강봉(降封)되어 폐위된지 두달만에 역질로 죽었다고 기록되었다.
그의 치세는 개국 100년의 조선조에 한 시대의 획을 긋게 하여, 이후 50년은
사화(士禍)라는 유혈극이 잇따라 일어나 그것은 선조 이후 다시 붕당(朋黨) 및
붕당정치로 확대 악화되고, 한편으로는 임진 ·병자 등 국난으로 국운은 쇠퇴의 길을
밟게 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연산군 [燕山君]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26519&cid=40942&categoryId=33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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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의 아내까지 간통한 연산
대신의 부인을 간통한 사연은 연산군 11년 8월 25일 기록에 연금되어 있다.
- 사신은 논한다. 모든 궁궐의 잔치 때 왕이 그 이름을 쓴 표찰을 보고 아무의 아내가
아무개라는 것을 잘 알아두었다가 마음에 맞는 자는 모두 간통하니, 바깥 사람으로서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자는 아내를 숨기고 병을 핑계하여 들여보내지 않았다.
박승질(좌의정)의 아내 정씨가 젊고 얼굴이 아름다워 왕이 가장 좋아했다. 정씨는 본디
족친이 아닌데도 자주 궁에 들어가 열흘이 지나서야 나오곤 했다. 왕이 말하기를
"박정승(박숭질)이 늙어 쇠약하므로 그 아내가 나를 사모한다."고 했다. 박정승이 이를
알고서 원통해 했으나 해가 미칠 것이 두렵고 기운이 쇠약하여 감히 막지 못했다.
이처럼 연산군과 장녹수의 결탁에 의한 음행으로 4-5일이 되도록 궁중에 유숙한
사람에 대해 연산군 11년(1505) 4월 12일의 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 해 놓았다.
- 사신은 논한다. 왕의 음탕이 날로 심해 족친과 선왕의 후궁을 모아 왕이 친히 잔을
들어서 마시게 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장녹수와 궁인을 시켜 누구의 아내인
지
비밀히 알아보게 하여 외워 두었다가 궁중에 묵게 하여 밤에 강제로 간음하며 낮에도
그랬다. 혹 4-5일이 되도록 나가지 못한 사람으로는 좌의정 박승질의 아내, 남천군
이쟁의 아내, 변성의 아내, 총곡수의 아내, 권인손의 아내, 승지 윤순의 아내, 생원
권필의 아내, 중추 홍백경의 아내 같은 이들이 있었다.
홍백경은 왕에게 고종사촌형이 되는데 홍백경이 죽고 부인이 과부로 살자 왕이 그의
아름다움을 듣고 드디어 간통했다.
연산군 10년(1504) 6월 5일에는 왕후와 대빈전, 그리고 왕실 가족의 남녀를 빠짐없이
써서 아뢰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사관은 '내정에서 잔치를 벌여 자색이
아름다운 부녀를 몰래 간음하기 위해서'라고 비판하고 있다.
연산군 10년 6월 25일에는 윤은로라는 대신의 아내를 간음한 후 임금이 이렇게
묻는다.
- "윤은로의 아내는 누구의 딸인가."하자 승지 이계명이 아뢰기를 "전 금천 현감 김복의
딸입니다."했다. 사람들의 말로는 왕이 간음하고서 기쁜 까닭에 물은 것이라 한다.
연산군의 대신의 아내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마음 내키면 닥치는 대로 음락한 행동
을
일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조선 오백년 역사대탐험> 저자:김용삼 (동방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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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燕山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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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관참시(剖棺斬屍)
죽은 뒤 큰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 극형(極刑)을 추시(追施)하던 일.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었다.
특히 연산군 때 성행하여 김종직(金宗直)·송흠(宋欽)·한명회(韓明澮)·
정여창(鄭汝昌)·남효온(南孝溫)·성현(成俔) 등이 이 형을 받았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부관참시 [剖棺斬屍]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