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72)
별
도시 하늘에 별이 지워지고 있는 걸
내가 눈여겨보지 않으면
먼지 속에서 내 영혼이 지워지고 있는 걸
별들도 눈여겨보지 않으리라
- 도종환(1955- ),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창비, 2024
**
10월 중순에 청송 주왕산으로 산행을 갔습니다. 꼭 단풍을 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단풍이 한참 들기 시작한다고 하는 때라 기대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올 폭염은 제 기억으로는 6월에 시작해서 9월 하순에 끝났습니다. 하기 좋은 말로 폭염이 한 100일쯤 이어졌지요. 8월 중순에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돌아오는 하순쯤에는 폭염도 끊겨 있겠지 하고 생각했으나 돌아오고 나서도 거의 한 달쯤이나 폭염은 더 이어졌습니다. 지역마다 느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제 느낌으로 100일 동안 이어지는 이런 기상氣象은 80년대 초반 이후에 처음입니다. 80년대 초반 어느 해인가 석 달이 넘도록 장마가 지면서 오는 듯 마는 듯 100여 일 계속 비가 내린 적이 있었지요. 그리고 40여 년이나 지나서 100일이나 이어지는 이변異變의 기상을 만난 셈인데, 그때의 이변은 말 그대로 한 해의 이변으로 끝났지만 지금의 이변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으니 같은 듯 다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기후가 한대寒帶와 열대熱帶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는 온대에서 열대로 많이 치우친 아열대亞熱帶로 바뀌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올해는 우리나라 기후가 거의 열대에 가까운 기후로 바뀌었다고도 하는군요. 사전을 찾아보니 열대는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하고 아열대는 건조하다고 하니 조건에 따라 아열대이기도 열대이기도 한 셈인데 여하튼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온대에서 아열대로, 아열대에서 열대로 단시간에 ‘압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기후 변화에 대한 예보를 듣고 있자면 늘 불편하고 불안합니다. 주왕산으로의 산행은 꽤 오랜만이었습니다. 십수 년쯤 되었을라나요. 해를 세고 있자면 요즘은 자주 헷갈립니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코로나 시기를 공백으로 두면서 생긴 현상이기도 합니다. 어저께 일어난 일로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난 뒤 곰곰 생각하면 늘 어저께는 어저께가 아닙니다. 코로나 시기를 포함하면 언제나 한참 전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단풍이 한참 들기 시작하는 때라고 했던 주왕산에서 우리는 단풍을 못 봤습니다. 띄엄띄엄 한두 그루 나무가 붉은 얼굴을 보여주고는 있었지만 만산홍엽滿山紅葉을 말하기에는 터무니가 없어서 거의 못 봤다고 해야겠지요. “만산홍엽滿山紅葉을 마중 나갔는데 온데간데없다. 찾는 사이 달을 넘겨 뉘 있수 고개 들이미는 건 만산갈엽滿山褐葉이다. 온대에서 아열대로 열대로 널뛰던 압축의 여름을 견디느라 잠시 정신을 놓았던가. 망조亡兆의 압축이 전방위다.”(졸시 「만산갈엽滿山褐葉」 전문) 그리고 달을 넘겨 11월 중순에 내연산으로 산행을 갔었는데 주왕산 산행 때와는 달리 그런대로 여기저기에서 늦으나마 붉은 단풍을 만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띄엄띄엄이었습니다. 또 그리고 이제 우리는 겨울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 아니 벌써 겨울이기도 하겠습니다. 어제는 강원 산간 지역에 눈이 쏟아졌다고도 하고 오늘은 서울 경기 지역에 첫눈으로서는 많은 눈이 내렸다고도 하니 그 지역들보다 따뜻한 겨울을 나는 동해안인 우리 지역에서는 아직 아니라고 할 수는 있어도 전국의 기상으로 보아서는 이미 겨울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들 보고 있으시겠지만 우리 지역의 은행나무들은 서둘러 얼굴색을 바꾸고 바쁘게 우수수 떨어지고 있습니다. 때가 좀 늦었으나 겨울 채비들을 하는 거겠지요. 새로운 봄을 맞을 싹에게 자리를 물려주려는 거겠지요. 어제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엄청 쏟아졌습니다만 그런데 다시 살피면 여전히 시퍼렇게 나부끼는 잎들을 단 나무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시퍼런 잎들을 단 나무들이 앙상한 자태를 드러내는 나무들보다 여전히 많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야 이것이 올여름의 긴 폭염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진단할 수는 없지만 시인으로서의 감성으로서는 무언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기우杞憂일 수도 있겠지만 변화가 느껴지고 보이기까지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대비는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기후 변화에 따른 대비에 대한 이야기야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나온 것이라 새삼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만 대책은 세웠으나 실천은 없이 긴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새삼은 늘 다시 불러내어야 하는 변하지도 않는 형편입니다. 정치적으로도 사적으로도요. 인간인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건 ‘지구’이기도 하겠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우리’입니다. ‘인간’입니다. ‘인류’입니다. 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내 영혼”이지요. “도시 하늘에 별이 지워지고 있는 걸/내가 눈여겨보지 않으면//먼지 속에서 내 영혼이 지워지고 있는 걸/별들도 눈여겨보지 않으리라”. 관계는 인간과 인간 간에만 있지 않습니다. 자연과 인간 간에도 존재합니다. 굳이 선후를 따질 것까지야 없겠습니다만 “내 영혼”의 소멸을 걱정한다면 우리는 더 자연과의 공생과 공존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도 늦었으나 때를 맞춰 퇴장하는 잎들이 있어 오롯하게 새 눈을 뜨는 잎들로 나무들은 여전 숨통을 트니 아직까지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순리가 언제 어떻게 역변逆變을 꾀할지는 알 수 없지요, 알 수 없습니다. (20241127)
첫댓글 “만산홍엽滿山紅葉을 마중 나갔는데 온데간데없다. 찾는 사이 달을 넘겨 뉘 있수 고개 들이미는 건 만산갈엽滿山褐葉이다. 온대에서 아열대로 열대로 널뛰던 압축의 여름을 견디느라 잠시 정신을 놓았던가. 망조亡兆의 압축이 전방위다.” (남태식, <만산갈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