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짐짓 죄를 범한 즉 - 진리를 알고도 고의로 거역하는 배교의 무서움
성경: 히브리서 10장 26절 ~ 31절
"무지가 아니라 고의적인 거역은 회개의 길을 닫고 심판의 길을 연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저도 목사이지만 매일 넘어지고 고꾸라집니다.
‘왜 또 그랬을까’ 밤마다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죄의 문제들이 우리에게 다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는 치명적인 죄를 지었습니다.
위대한 왕 다윗도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요.
그런데 성경은 그들을 배교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죄 속에서 괴로워하며 울며 주님께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어떻습니까?
누구보다 가까이서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고, 진리의 말씀을 날마다 들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스스로 등을 돌려 배신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는 죄의 크기가 아닙니다.
‘돌아왔느냐, 아니면 끝까지 거역했느냐’의 차이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무겁고도 두려운 경고를 던집니다.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연약해서 자꾸 넘어지는 성도들을 겁주거나 정죄하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를 다 알면서도 고의로 예수를 버리고 세상으로,
혹은 자기 의로 돌아가려는 완악한 마음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사랑의 브레이크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정직하게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요약: 신앙의 위기는 죄의 유무가 아니라, 죄를 대하는 완악한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1. 진리를 알고도 고의로 거역하는 마음의 실체
히브리서 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단어는 '진리를 아는 지식'입니다.
여기서 '아는'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피그노시스(ἐπίγνωσις)'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냥 머리로만 아는 대충의 정보가 아닙니다.
충분히 알고, 깊이 깨닫고, 인격적으로 체험하여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온전한 지식을 뜻합니다.
이 에피그노시스의 지식을 받은 사람들이 죄를 짓는데,
성경은 그것을 '짐짓' 지은 죄라고 부릅니다.
원어로는 '에쿠시오스(Ἑκουσίως)'라고 하는데,
이는 충동적으로 저지른 실수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일부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몰라서 지은 죄가 아닙니다.
알면서도,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무섭습니까?
주석가 리더보스의 지적처럼, 성령으로 시작된 믿음의 여정을 깨부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육체와 세상의 원리로 돌아가는 배교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매주 예배를 드립니다.
직분도 있고 사명도 있습니다.
말씀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이야"라는 성령의 사인이 마음속에 분명히 켜졌는데도,
"이번 한 번만" 하면서 내 유익과 편안함을 위해 고의로 그 음성을 묵살하진 않습니까?
많이 아는 것은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지식은 훗날 우리를 고발하는 심판의 정황 증거가 될 뿐입니다.
저를 포함한 종교 지도자들, 직분자들일수록 이 위험에 더 깊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머리로만 소유한 채 삶의 현장에서는 내 뜻대로 고의적인 불순종을 선택했던 내면의 완악함을 회개합시다.
요약: 진리에 대한 지식이 순종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 지식은 결국 심판의 증거가 됩니다.
2. 은혜를 거절한 자에게 남은 다른 길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10:26-27,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성경은 선포합니다.
은혜를 의도적으로 짓밟고 떠난 자에게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그 유일한 문을 스스로 닫고 걸어 나가 버리면 인류에게는 심판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절박한 선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아주 새로운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거친 폭풍우가 몰아치는 망망대해에 고립된 섬이 있습니다.
섬의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최첨단 공학으로 설계된 단 한 척의 구조선이 도착했습니다.
주민들은 그 배만이 자신들을 살릴 유일한 구원의 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주민들이 그 배의 선장과 구조대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혹은 자기들이 직접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겠다며 고의로 그 구조선의 밧줄을 도끼로 끊어버리고 바다로 밀어내 버렸습니다.
자, 이제 이 완악한 사람들에게 남은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밀려오는 집채만 한 파도와 심판 같은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는 행위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시고 살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 유일한 은혜를 발로 차버린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공의의 맹렬한 불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만을 붙들지 않고, 은근히 내 지식, 내 행위, 내 직분을 구원의 조건처럼 의지하려 했던 영적 교만을 회개합시다.
요약: 유일한 속죄의 은혜인 십자가를 거부하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공의의 심판뿐입니다.
3. 거룩한 심판자의 외침 속에 담긴 절박한 사랑
히브리서 10:29, 31,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본문의 표현은 너무나 생생하고 충격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언약의 피를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성령을 모욕한다"고 합니다.
주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회의 직분을 맡고 사명을 받았으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가치를 세상의 돈이나 명예보다 하찮게 취급하는 지도자들과 성도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직분은 결코 우리 죄의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거룩한 심판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조롱하고 짓밟는 자는 결국 공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이 엄중한 말씀 앞에 우리는 사지가 떨리는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심판하고 파멸시키는 것을 즐거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히브리서의 이 두려운 무서운 경고는,
우리를 버리시기 위한 저주가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살려내시기 위한 '가장 절박한 사랑의 가이드라인'입니다.
벼랑 끝을 향해 뛰어가는 자식을 보며 "지옥으로 가지 마라! 제발 멈춰라!" 하고 피를 토하듯 부르짖으시는 아버지의 비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성도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있고 은혜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며 사명을 가볍게 취급했던 영적 타성을 회개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사명 앞에 다시 섭시다.
요약: 하나님의 두려운 경고는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를 살려 돌이키게 하려는 사랑의 외침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아닙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양심에 화인을 맞아 아무렇지 않게 고의로 죄를 반복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위험한 목회자와 직분자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진리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삶에서는 전혀 순종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약한 결심과 도덕적 노력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이 붙드는 유일한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요, 오직 은혜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가, 아니면 말씀 앞에 네 삶을 꺾고 순종하고 있는가?"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러나 동시에 회개를 포기하지도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 겸손히 엎드려 돌아오는 자는 결코 버림받지 않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는 살아 계신 주님의 음성 앞에 겸손히 가슴을 찢고 엎드립시다.
알기만 하는 신앙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주님의 십자가 사랑 앞에 온전한 순종으로 응답하여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완수하는 신실한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