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놀라지 않게끔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방안 이곳저곳을 빗질하다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봅니다. 돌이켜보니 지난 주말의 1박2일은 50대 중년을 보내는 사람에게 아마도 분에 넘치는 화려한 외출이었으리라.

종이이야기 듣고자 무심코 나선 가을 여행에, 뜻하지 않은 선물 보따리로 이내 마음이 훈훈해 지니 저절로 그 길을 다시 따라 나서 봅니다.
여행의 진미는 그곳 사물과 사람들과의 만남에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 여행을 준비하신 분들의 그 정성에서 진하게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국제지 김광권 부대표님과 온산 공장 공장장님 그리고 영업팀장님과 여러 직원분들.
특히 한국제지 김광권 부대표님께서 들려주신 이런 저런 이야기에서 새삼 상념에 젖어 봅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곳은 바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에서 유래된 천년고찰 직지사(直指寺)!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황악산에 으뜸가는 가람으로 어울리게 사찰의 위용은 새삼 놀라웠습니다.
이곳 직지사는 선종의 도량이라 십우도 벽화가 유명한데, 김광권 부대표님께서 그 중요성과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 주셨습니다. 십우도는 소를 찾아 나서서 소를 보고 잡아끌어서 마침내 소와 내가 하나가 되어 결국 공적(空寂)이 되어, 다시 당초의 일상생활로 되돌아가 깨달음을 이웃들과 함께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친히 준비해 주신 십우도 그림 해설서는 초심자들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김광권 부대표님께서 저녁 회식자리에서 한국제지의 기업이념을 잠깐 소개해 주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종이산업에 기여하여 이 땅에 문화를 창조하는 보국운동에 동참하고자 함이라고!”
되돌아보니 십우도의 내용이 특별한 수행승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제지와 같은 건실한 기업으로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이바지하는 모습이 십우도가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가본 어마어마한 규모의 온산 제지공장에 어울리지 않은 깨끗한 작업환경과 재단부터 포장까지 전 자동화로 Miilk와 아르떼라는 경쟁력있는 제품의 완성 그리고 종이 질을 끊임없이 개발하여 자체 보일러를 폐지하고 폐열로 대체하며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친환경 부분, 초지기에서 물과 1%의 펄프로 종이 원지가 생산되는 과정은 매우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부채없는 기업경영으로 전 사원들의 해맑은 미소와 자신감은 우리 사회의 화두인 일자리 창출을 단박 완성시킨 멋진 기업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바로 십우도의 십단계를 저자거리에서 보는 듯 했습니다.
온산공장 견학 후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는데 김광권 부대표님의 답변이 새삼 기억에 납니다. 먼저 이런 행사를 마련해 주셔서 작으나마 저희 출판사에서 나온 책 <성자와 범부가 함께 읽는 금강경>을 선물로 드렸는데, 작은 선물에도 감사를 놓치지 않으시고 게다가 큰의미까지 부여하시며 자신을 낮추시는 모습을 통해, 이러한 CEO의 하심(下心) 정신이 기업 문화에 녹아 들었기에 오늘날의 한국제지가 있지 않았나 짐작이 되었습니다.
우리 일행 중 어느 출판인께서, 우리들이 가지는 근원적인 불안 즉 종이책이 과연 살아남을까 하는 것을 종이업계에 빗대어 질문을 드렸지요. 그때 해 주신 흔쾌한 답변은 그날의 백미였던 것 같습니다. “종이의 수요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변화할 뿐. TV가 발전을 거듭해도 영화산업이 날로 번창하고, 알미늄과 스테인레스가 나왔지만 철강 산업이 더욱 발전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을 놓쳐 그 당시 포항제철을 짓지 않았으면 지금 어땠을까” 하는 답변.
또 종이를 제작하는 기업의 대표 상품상표가 종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miilk라는 작명에 대한 걱정에, “apple이 컴퓨터 산업과 어울리지 않지만 세계적인 기업의 상호가 되었듯, 기능위주의 작명보다 생활에 어울리는 자연어로의 작명이 더욱 친화적 효과가 있다”는 말씀.

또 말씀 중에 소설 상도의 계영배(戒盈盃: 70% 이상 술을 채우면 나머지는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잔)를 소개하시면서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셨지요. 이 가르침을 직접 체험한 것도 이번 여행의 묘미였습니다.
직지사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 식당에 들렀을 때 산해진미가 따로 없었습니다. 너무나 푸짐한 상차림에 정신없이 배를 채우다보니 70%는 커녕 100%를 초과해 버렸고, 그 이후 김천에서 온산까지 가는 버스 속은 풍족했던 천국에서 지옥을 오가는 그야말로 시련의 시간이었지요. 온산공장 견학을 마치고 또다시 기다리는 저녁 만찬의 시간. 점심때의 체험이 교훈이 되었는지라 조심하고 조심했지만 낮의 여독이 남았기에 밤자리도 부담스러웠지요.
때마침 옆방에서 반가운 초청의 전화도 왔지만 그래서 그분들은 새벽 2시까지 출판에 얽힌 오묘한 대화가 오갔지만, 이러한 초청도 물리치며 잠자리를 겨우 청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김부장님은 따끔한 훈시를 하시더군요.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그 다음날 점심 식사 때, 그 김부장님이 과식으로 길고 긴 시간을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앙금깔린 앙칼진 충고까지 덤태기로 받으면서 말입니다. 무심코 들려주신 김광권 부대표님의 계영배 말씀이 정말 새삼스러웠던 하루였습니다.
2일차 첫 일정은 토함산으로의 새벽 나들이!
새벽 일출의 아쉬움을 뒤로 하며 한걸음 한걸음 내 딛는 이 땅에는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유산이 깃들어 있는데... 인도에서 발현된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이곳에 불국토를 세우고 그 종교적 사상과 예술혼의 극치를 총체적으로 담아낸, 세계가 놀란 유네스코 문화유산 석굴암. 자랑스럽다를 넘어 선택된 민족이라는 자부심의 기백이 절로 샘솟는 듯 합니다.
아침 시간에 들른 불국사는 영혼이 담긴 유적지에 어울리는 풍광을 자연스럽게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분위기에 어울리듯 단체 관광에 나선 일본인들은 경건한 자세로 조용히 질서를 지키며 가이드의 말에 차분히 설명을 들으며 이동을 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왁자지껄 무질서로 일본인 관광객을 헤치고 지나가는 우리나라 관광객들! 우리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단면상을 대하는 듯하니 어느새 부끄러워집니다.
불국사 대웅전 바로 뒤편의 건물 현판은 바로 <무설전 無說殿>, 독일의 대석학이 이곳에 와서 <무설전>의 현판을 읽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바로 그곳! 강의장에 해당하는 이곳의 이름이 “말함이 없는 곳이라니!”

이곳 무설전 기둥에 기대어 김광권 부대표님께서 소개해 주신 상도 임상옥의 말을 떠올려 봅니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세상살이의 완성을 이룬 임상옥의 이 말이 불국토에서는 어떻게 표현될까?
“그대들은 시시각각으로 소원을 성취하는 위대한 불성(佛性)을 가졌는데,
다만 그대들 스스로 그것을 모를 뿐!”
김광권 부대표님의 해박한 지식 덕분에, 이번 여행을 통해 생활의 고전을 도처에서 만나며 유익하고 의미있는 주말 나들이를 한 것 같습니다.
다시한번 부대표님과 한국제지 전직원 여러분들게 머리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6호차를 맡아주신 이동준 주임님과 박선영 파트장님,
아울러 출제모 회장님과 이시우 대표님 그리고 진행팀 모두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공경원 출판사 김희종 올림
첫댓글 가보고 싶었는데 ..회사형편이 그렇게 좋지 않은 상황이라 이번기회는 포기 했는데..후기를 보니 또 아쉽네요. 후기 잘 읽엇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된 여러분들이 참 소중하게 여겨 지네요. 다음 기회에는 좋은 만남이 있기를 기약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