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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Brave New World
러시아가 내전에 준하는 급변사태와 헌정위기를 겪는 동안, 바깥 세상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냉전의 한 축이었던 동구권의 와해는 거대한 진공상태를 야기했고, 각국은 바뀐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죠. 우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것을 그 효시로 들 수 있겠습니다.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침공한 사담은 서방의 강력한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배급제를 실시하며 버텼지만, 그간 영국과의 양자간 채널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라크와 서방 간의 중재를 담당했던 소련이 급변사태에 빠지며 NATO군의 군사작전이 펼쳐졌죠. 1991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병합한 지 약 1년만에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다국적군은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를 압도적으로 격파하고 바그다드에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조지 부시 시니어는 일각에서 제기된, 이라크에 친미 민주주의 국가를 세운다는 장밋빛 구상을 가볍게 헛소리로 치부했습니다. 대안이라고는 (이란의 사주를 받은)시아파 반군, 수니파 근본주의자, (시리아의 사주를 받은)공산주의자, (동맹국 터키의 발작버튼을 자극할)쿠르드 반군뿐이었기 때문이죠. 미국은 바트당 정권을 그대로 유지하되 사담과 그 측근만을 제거하고 고위 외교관 출신의 아드난 알 파차치를 대통령으로 세워 시리아-이란의 연계를 차단하는 벽으로 삼았습니다.
한편, 민주거국내각과 우파 소수내각, 사민당 주도 좌파 소수내각이 차례차례 붕괴하는 대혼란을 겪은 동독에서는 우익 급진주의자들과 손잡은 민주사회당이 전격 복귀했습니다. 왕년의 개혁 사회주의자였던 그레고리 기지 총리는 고르바초프의 실패에서 큰 교훈을 얻어 새로운 전략을 세웠죠. 그는 서독과의 밀접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한편 제도적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어떻게든‘ 정권을 유지할 방도를 계획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행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계획경제를 유지해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했죠. 결과적으로 동독은 친서방이되 서방의 동맹은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이되 진정 자유롭지는 않으며, 자본주의 국가이되 경제적 자유주의가 사장된 독특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구 동구권의 상황은 더욱 복잡했습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EU와 NATO에 들어가는 것을 대외정책의 지상목표로 삼은 비세그라드 기구 4개국(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은 계속해서 서방의 문을 두드려댔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관계를 그르쳐 ‘진짜로’ 극우 민족주의 정권을 탄생시킬 것을 우려한 미국과 서유럽은 이들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1992년 1월 러시아 헌정위기 이후 정식 출범한 람스도르프 내각과 NATO-CEIN 포괄협의체를 수립하고 동유럽 국가들을 ‘지속가능한 평화 구상(SPI)’에 편입하는 절충안을 택했죠. 알렉세이 메스너가 이끄는 대외협력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유엔 안보리는 내전이 한창인 유고슬라비아에 총 80,000명의 평화유지군을 파병한다는 매우 과감한 결정을 내렸고, 보스니아 분할을 매개로 한 아테네 협정이 맺어져 유고 연방은 ’쪼그라든 채‘ 유지되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천안문 사태에 따른 각종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WTO 및 IMF 가맹, 국민당과의 ‘92공식’ 체결, 무엇보다 북한의 핵개발 정보를 미국에 공개하는 초대형 제물을 바쳤죠. 러시아가 (자신들보다 더 능숙하게)골칫거리들을 쳐부수고 전격 친서방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한 엄청난 위기의식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고립무원에 빠진 북한은.. 가장 극단적인 수를 진지하게 염두에 두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 지는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14. 태극기 휘날리며
“한반도에는 오로지 자유롭고 민주적인 하나의 정부만이 존재합니다.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 조지 H. W. 부시
1992년 12월 11일,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둔 날이었습니다. 모든 직장인과 학생들은 지긋지긋한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집이나 호프집으로 향해 한 주간의 고단함을 풀고 있었죠. 밤 11시 30분 경, 전국 전역에 비상공습사이렌이 울렸습니다. 제2차 한국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섬뜩한 소리였습니다.
초전은 수적 우위를 앞세운 북한군의 승세로 돌아가 한미연합군은 강화, 고양, 의정부, 양구, 철원 등의 전방 거점을 포기하고 후퇴해야 했지만, 서울의 빌딩숲은 마치 2차대전 동부전선의 스탈린그라드처럼 북한군의 진격을 붙잡는 요새가 되어주었습니다. 개전 1주일만에 북한군의 공세는 종료되었죠.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기 전, 한국과 미국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물밑 협의에 나섰습니다. 승전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에서 상대의 레드 라인을 알고자 하는 것이었죠.
아미나트의 ‘자문’ 하에 이고르 이바노프 외교부 부차관을 대표로 한 러시아 협상단은 우선 중국과 단일 요구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카운터파트인 중국 측 협상대표 탕자쉬안(唐家璇) 차관보는 미-중-러-한의 4개국 공동관리안을 제기했는데, 이바노프 대표 역시 여기에 동의하는 기색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미나트는 ”두 차례나 비극적 희생을 거친 한국인들은 공동관리안을 ‘영토 강탈’로 여길 것”이라는 코멘트를 남기고는 “주변국과 원수관계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한국의 한반도 전역 통제를 전제로 둘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 권고는 긴 토론 끝에 받아들여져, 이른바 “3불” 원칙이라는 중러 공동조건이 만들어졌습니다.
다음의 조건 하에서, 러시아 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 정부의 휴전선 이북지역 실효지배를 인정한다.
1. 한국의 본질적 존립위협이 사라져 주둔 근거가 없어졌으므로, 주한미군을 3년 내 단계적으로 철수시킬 것.
2. 한국은 국경선 신성의 원칙에 따라 구 조선과 중국, 러시아 간 국경선을 인정할 것.
3. 그 어떠한 방식이라도, 핵무기의 개발, 사용, 반입을 하지 않을 것.
주한미군 철수라는 조건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갔지만, 재선에 성공한 부시 행정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한국이었는데, 노태우 대통령은 조항을 명문화하여 정식 조약으로 만들자면서 아주 적극적으로 이 통합조건에 찬성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때마침 터져준 전쟁으로 다시금 모든 배후권력을 틀어쥔 군부(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인 노태우)가 주한미군을 권력유지의 차후 걸림돌로 보았기 때문이었죠. 오히려 조건에 반대하는 것은 한국의 야당 세력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김대중은 “주한미군의 철수는 동북아에서의 세력균형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며 어떻게든 협상 타결을 막으려 했죠.
물론 미국 역시 한국에 군사독재정권이 재수립되는 것은 원치 않았으므로, 조속한 대선 실시 및 다당제 민주주의 체제의 유지를 내부조건으로 걸었습니다. 이는 미국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제도적 민주주의만 보장된다면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죠. 모름지기,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었습니다. 1993년 6월, 한국,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의 5개국은 상기 조건을 기반으로 제2차 한국전쟁의 종결을 확정짓는 판문점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물론 한국은 권위주의 유사민주국가가 되었지만, 모두가 행복해졌으니 딱히 문제는 없을테죠. 러시아와 중국은 적당한 완충지대를 얻었고 미국은 골칫거리를 하나 줄였으며 일본은 통일 한국과의 ‘비대칭적 우호관계’를 얻었으니 말입니다. 신세계의 질서는 새로 쓰여지고 있었습니다.
15. 문제는 경제야!
“사회주의가 무너지려면 노동계급이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노동계급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이오시프 스탈린
잠깐 시간을 앞으로 돌려, 1992년 크리스마스 헌정위기가 벌어진 직후로 돌아가보도록 하죠. 람스도르프 내각은 당장 가장 큰 위협이던 극우 민족주의 세력을 끝장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는 잠시간의 유예에 불과했습니다. 지금껏 모든 도전들을 뿌리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군의 중립 유지, 정교회 세력의 재건 미비, 신체제에 대한 묘한 기대심리 등의 요인 때문이었으니까요.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면 그 다음 내동댕이쳐지는 건 그들 자신이 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완전히 전 러시아 권력의 중심축이 된 람스도르프 서클은 서로의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모여 ’성과‘를 보일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회의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제 이들은 “어떻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좌우극단주의를 몰아낼지”를 논하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말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죠.
“우리 러시아의 역사는 언제나 집단과 계급 간의 투쟁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귀족과 농노, 자본가와 노동자, 억압자와 피억압자, 그런 투쟁 말입니다. 새로운 계급협동정당은 이러한 ‘악의 연쇄’를 과감히 끊을 것입니다. 국가 통합의 전위당이자 인민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힘차게 달려갈 것입니다!”
- 예브게니 람스도르프, 1993년 2월 2일.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은 “계급협동노선”이었습니다. 예브게니 람스도르프는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의 여당 ‘통합 러시아당’을 야블로코, 정의당, 사회당 등과 통합하여 전 계급 협동정당을 수립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소비에트 공산당을 비난하던 자가 “국가통합의 전위당”을 운운하는 것은 매우 기괴한 일이었지만, 그런 것이 딱히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인민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을 막는 일이 훨씬 중요했죠.
정교회의 사제 몇명이 파문당하고 심지어 실종당했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입니다. 인민을 도우려는 정부를 도와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것이 그들의 책무니까요. 인민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이가 어찌 하나님을 모실 수 있겠습니까? 러시아 전역의 모든 석유와 천연가스를 관리하는, 사우디아람코의 2배가 넘는 규모를 자랑한다는 에너지협동조합(에네르코프)이 탄생한 것은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에네르코프의 ‘일부’ 직원들이 러시아 전역에 인적 감시 네트워크 같은 것을 구성해 뒷세계를 차츰차츰 장악하고 있다거나, 정부에 반하는 ‘극단주의자’들에게 ‘동계 난방 지급중지조치’를 취한다는 소문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러시아 공화국은 국제규범을 준수하는 민주주의 국가니까요.
1992년 3월 30일, 러시아 최초의 ‘민주적’ 총선거에서 새 여당 인민협동당(NKP)은 총 553석 중 450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모스크바 총대주교 알렉시 2세는 예브게니 람스도르프 총리를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자 전 루스인의 수호자”로 칭하며 그를 축복해주었죠. 겨울동안 몇몇 언론인 등이 자택에서 동사한 사태에 대해서 정부는 답변을 거절했습니다. 이 이슈는 빠르게 묻혔는데, 에네르코프 ‘시민안전과‘ 대원들의 협조를 받은 내무군 병력이 기업형 범죄조직 여럿을 일망타진했으며 범죄와의 전쟁을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라는 뉴스가 온갖 매체를 장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네르코프 지사장들이 죄다 마피아 두목들 천지 아니냐고요? 그건 당신이 지리노프스키의 망상을 추종하는 우익 극단주의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건 순리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 그동안 자국버프(?)로 한국에게 편의를 봐줬던 감이 있었는데, 이건 어차피 소설이니까 어둡게 가봤습니다. 뭐 그래도 아예 군사독재 막장은 아니고, 실제로도 90년대는 공안정국이었으니(…)
- 전개상 원작 주인공 캐릭터들 중 사망하거나 몰락하는 캐릭터가 나올 수 있는데, 만약 그럴 경우 미리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물론 확정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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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 아. 반대... 돈님의 저 반응의 느낌입니다. 근데 그렇게 이해 할수 있게 글을 썼군요. 위의 말과 이어서 쓰다보니(...)
@dear0904 아니, 농담입니다.(..) 저렇게 말씀하시는거 처음 본 것도 아니어서 분위기를 풀려고 한건데 농담으로 보이지 않났나보네요. 저도 제 기준으로 생각하는게 몸에 배었나봅니다(..)
@통장 아하... 저는 농담을 농담으로 못 받는 경우가 잦다보니(...) 사실 근데 그렇죠. 경험 안해봤으면 모르는게 정상이긴 한데,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말을 듣다보니 좀 당황스러워서 그랬나봅니다 ㅋㅋㅋ...
@dear0904 전 괜찮은데요?
[서술은 안됐지만 곁다리 사실들]
- 미국은 소말리아에 파병하지 않았습니다. 유엔 PKO 역시 8만명이나 파견한 유고 건을 훨씬 중요시했기에 소말리아 상황이 악화되자 미국에 떠넘겼고, 마침 2차 한국전이 터지며 유엔 작전이 그대로 종료됩니다. 물론 소말리아가 지옥으로 변하는 건 원역사와 별 차이 없습니다.
- 빌 클린턴은 1992년 대선에 출마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냉전 승리를 이끌고 사담을 끝장냈으며 유고 사태까지 말끔(???)하게 정리한 대통령을 어떻게 이기냐“입니다. 제리 브라운 상원의원이 대신 출마했고… 결과는 부시의 압승으로 끝납니다.
또 망한 페로에게 일단 위로를...ㅋ
소말리아는 뭐...소말리아 했네요
압승... 워터게이트 사태를 일으킨 그 사람의 득표율 수준이었을까요? ㅋㅋㅋ 아니 근데 왜 그 선거인단 수 받고도 그걸...
아하. 클린턴이 아니라 브라운이 출마했군요.
+ 어떤 먹사님이 생각난다면 그냥 착각입니다(?)
@dear0904 그정도는 아닐수도?
+ 욕심 때문이겠죠
유고슬라비아 분할(아테네 협정, 1992)
@E.E.샤츠슈나이더 보스니아가 "폴란드" 당했네요...
@돈이 곧 진리 아마 조만간 또 갈등이 벌어질수도...?
이겨야 선거 나가나? 지지자들이 뭘 원하는지 알려주려고 나가지!
빨리 힐러리 대선 내보내주십시오 선생님!(?)
@통장 96대선때 나올듯합니다 ㅋㅋㅋ 물론 힐러리 말고 빌이…
@E.E.샤츠슈나이더 당선되자마자 르윈스키 걸릴판(..)
근데 만약 중임이 되면 아들 부시가 한번 밀려나고 만약 되어도 서브프라임 터지고 오바마가 당선되는 그림도 보일지도요..? 오 이거 좋은데?(..)
@통장 93-96이면 미국 최대 호황기라서 문경바(?)를 못 써먹을 수 있다는 게 최대 걸림돌이겠네요 ㅋㅋㅋ
어렵게 당선됐더니 닷컴버블(…)
@E.E.샤츠슈나이더 ㅈㅈㅂㅅ: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댓글로그 없이 바로 쓰다보니 곁다리 사건들을 쓸 지면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네요. 물론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내용도 많았지만 쓰다가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는 경우도 꽤 많았어서 약간은 아쉽습니다 ㅋㅋ
저도 그런경우 많죠.
차이라면 저같은 경우 써야지 해놓고 까먹은 경우가 다수.ㅋㅋ
저도 그렇습니다. 당시엔 생각이 안나는데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외전 주제가 생각나더라고요. ㅋㅋㅋㅋㅋ
@돈이 곧 진리 그래도 소설형 같은건 나중에 쓸수 있지만은...
+ 근데 오늘은 진행도 참여도 없는 지금이 다행이라 든...월드컵...
여담이지만 여기서 소확행, 내중문없, 만협추, 경쇼년, 아수스 캐릭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소확행, 내중문없, 만협추는 이미 한번 근황이 나오긴 했지만)
뭐, 제 캐릭터는 제가 보기엔... 소확행 마르텔, 내중문없 위안차이나, 만협추 부숙경은 여기서도 이미 나온거랑 같을것 같고, 경쇼년의 영강은 피난 내려와서 영원 상사 하나 차려서 먹고 살듯 하고, 아수스의 호세는... 피그만 꼬라지 보고 그냥 마이애미에서 갱으로 살지 않았으려나 싶네요 ㅋㅋ...
+ 아. 약속의 땅의 야콥은 어케 하든 비슷한 운명일듯? 하구요 ㅋㅋ...
솔제니친,김상덕-이미 사망
정예림-인간불신에 빠져 광란의 술파티를 여는 술집 내지 홍등가 영업?
+ 요셉은 뭐...아무 생각도 안나네요.
카튜셰프, 샤오나이, 아나스타샤는 이미 나온 것과 같을 것 같고.
리츠는 아빠 따라 도쿄에 있던 도중 광복을 맞이해 가족들이 혼신의 일본인 연기(...)를 해서 일본에 남아 조선적도 한국계 일본인도 아닌 '평범한' 일본 상류층으로 살 것 같고(약간 무섭네;). 사무엘은 피그만 실패로 인한 극심한 향수병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 윌리엄은 탐사보도 기자로 이름을 날릴듯?
브라운은 이스라엘 안가고 미국에 남아서 그냥 먹사가 되었을 것 같고요(...)
에프라임 로텐베르크 - NKVD 요원으로서 각종 공작, 숙청 등에 동원되다가 1938년 소리소문없이 증발함. 기록 없음. (…)
지구-1 세계선에서는 아마 이럴거고, 스탈린이 집권하지 않은 세계선에서는 좀 복잡하겠네요. 경쇼년에서는 이스라엘로 향해 텔아비브 미사일 위기 국면에서도 등장했겠지만 소련이 중동 패권경쟁에서 패배하면서 같이 몰락했을거고, 만협추에서는 예브레이 자치소비에트공화국으로 이주했거나 리비우에 남았지 싶습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성공하진 못했겠고요.
@E.E.샤츠슈나이더 기록이 없다...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