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권혁준(아동문학평론가)
행복이 먼저다
장면 1
어느 기자가 열린북한방송에서 의사 출신 탈북자와 대담하고 그의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 경험을 블로그에 올렸다. 대담의 내용은 북한의 열악한 의료 상황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점차 북한과 남한 의사의 진료 태도로 화제가 바뀌었다.
탈북 의사는 남한의 의사가 파업하는 것을 보고 의사가 어떻게 파업할 수 있는가 하고 대단히 놀랐다. 그는 북한에서 의사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피부를 환자에게 이식해 주는 수술을 다섯 차례나 했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의사라면 환자가 자신과 혈액형이 맞을 때 거의 모두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피를 수혈하고 자신의 이불을 뜯어서 소독 솜으로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공동체 의식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받은 그는 남한에 올 때까지 모든 의사는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장면 2
북한의 청진의학대학에서 동의(東醫, 남한의 韓醫)학부를 졸업하고 8년간 북한에서 고려의사(남한의 한의사)로 활동하다가 탈북하여 2002년에 입국한 김지은(43세) 씨는 세명대 한의대 본과 1년에 편입하여 4년제 정규 과정을 다시 다니고 한의사 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남한에서 한의사로 활동 중이다. 남한과 북한에서 한의대를 졸업하고 남북한의 한의사 자격을 모두 지니고 있는 사람은 김지은 씨뿐이다. 그런데 김지은 씨가 한의원을 개업하고 진료를 시작했을 때 상당한 어려움에 처했다. 남한 사람들이 들으면 전혀 어려울 것 없는 상황, 아니 당연한 상황이 그를 어려움에 처하게 했다. 그 어려움은 다름이 아니라 진료 후 치료비를 받는 것. 의사가 사람을 고 쳐주고 돈을 받아도 되나? 사회주의 체제에서 의사 활동을 했던 김지은 씨에게 그 행위는 참으로 부끄럽고 어색한 일이었다. 김지은 씨가 진료 후 치료비를 받는 행위에 적응하기까지는 2년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장면 3
'채널 A'의 “먹거리 X파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내용이다. 6개월 전에 어떤 해산물 가공업자는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한 건해삼과 소라를 가성소다(양잿물)에 담가 최대 10배 이상 부풀려 부당 이윤을 남긴 죄로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이런 상황을 개선되었을까. 수산물 도매업자들은 단속이 강화되어 이런 일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작진이 전국의 호텔 주방과 중식당, 일식당으로 유통되고 있고 해삼과 소라를 수거해 pH 검사를 의뢰한 결과 대부분의 해삼과 소라에서 양잿물 성분이 검출되었다. 양잿물은 금속을 거의 다 부식시키는 아주 위험한 물질로 씻거나 가열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조리해도 그대로 남는 유해한 물질에 해삼을 불려 파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장면 4
최근 며칠 사이에 KBS 9시 뉴스에 보도되었던 사건 중에서 몇 장면을 제목만 보면.
*대입 자기소개서 5%만 같아도 표절 검증
*금감원 보이스 피싱 피해에 은행 보상 방안 검토
*레스토랑 등심 스테이크 무한 리필 비밀은?
TV 뉴스를 보면 매일매일 이러한 기사가 넘쳐난다. 소의 엉덩잇살 부위를 등심으로 속이고 무한 리필했다는 레스토랑 주인, 전화로 누군가를 속여 돈을 빼 가는 보이스 피싱 사기,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남의 자기소개서를 베껴 내는 일…… 등은 우리 사회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좋은 사회가 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즉 자본주의 경제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머리를 쓰면 경제 효율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남한이 북한보다 월등히 잘살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장점이 발휘된 덕분이다. 반대로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이 열심히 일해도 그 과실이 일한 당사자에게 곧바로 돌아오지 않기에 경제 효율이 떨어진다. 북한이 오늘날 저렇게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게 된 원인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가 다 좋고 사회주의가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앞의 예화에서 보듯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는 개인의 왜곡된 욕망은 엄청난 사회적 불신과 불안을 야기하고 왜곡된 욕망에 길든 본인의 영혼에 심각한 상처를 남긴다. 상대적으로 돈에 길들지 않은 사회주의 속의 개인은 순수한 인간성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경제적 효율성과 순수한 인간성을 모두 간직하며 사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 두 가지를 최대로 성취하며 사는 사회를 만들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데,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국민은 지구상에서 가장 역동적인 사람들이다. 좀 다르게 말하면 개인의 욕망이 가장 왕성하게 발휘되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무한 경쟁과 성장주의, 개발주의, 학벌주의의 망령이 짙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런 경쟁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개인은 고달프고 비참해진다. 사교육비를 아무리 많이 지출해도 이웃 사람이 더 많이 지출하면 경쟁에서 패배하고 만다. 시장의 원리, 경쟁의 원리에만 맡겨 두면 경쟁에서 패배한 다수의 사람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를 기록하게 되었다. 개인의 욕망을 조금씩 줄이고, 이웃을 배려해야 같이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하는 길만이 서로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대통령 선거의 계절이 왔다. 대통령은 우리가 탄 배의 선장이다. 그 배에 승선한 우리는 좋든 싫든 그 선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어린이들이 본질적인 공부를 제쳐 두고 줄 세우기 성취도 평가를 계속해야 하는지, 협력의 즐거움을 배우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도 대통령의 국정 방향에 따라 결정된다.
첫댓글 공감 가는 좋은 글이네요. 권혁준 교수님, 멋지십니다! ^^
공감 댓글 달아주신 꽃눈 님도 멋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