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옷이 젖지 않도록 비를 피하다가 얼른 비닐우산이라도 사러 뛰어가게 된다. 이럴 때 값싼 비닐우산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하지만 비가 그치면 비닐우산은 구석에 처박히거나 길에 버려지기 일쑤다.
요즘 우산은 질기고 예쁜 투명 비닐에 플라스틱 우산대까지 달려있어 웬만한 비바람에도 망가지지 않지만 옛날 비닐우산은 대나무를 대충 쪼개 만든 우산대에 김장할 때 쓰던 얇은 파란색 비닐이 전부라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부서졌다.
필요할 때는 더 없이 고마운 존재지만 필요 없을 땐 내팽개쳐지고 마는 비닐우산. 사람과의 관계도 비닐우산처럼 될 수 있다. 지인은 자신을 가리켜 '비닐우산'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내가 필요할 때만 찾는다며 섭섭해 했다. 바쁘다보니 시간이 날 때 그의 안부를 물었던 것인데 오히려 비닐우산 신세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순간 내가 누군가의 비닐우산 인연은 아니었는지, 또는 누군가가 나를 비닐우산 인연쯤으로 생각했던 적은 없었는지 반추해 보았다.
살다보면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도움이 때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나기 내리는 거리에서 누군가 우산을 들고 와준다면 그것처럼 고마울 때는 없을 것이다. 가족이 아닌 타인이 말이다.
비닐우산처럼 가벼운 인연일지라도 가볍게 흘려버릴 인연은 없다. 화창한 날의 비닐우산처럼 고마움이 다했다고 내팽개치지 말고 고마움을 가슴 속에 항상 간직해주면 좋겠다. 사람과 맺은 소중한 인연을 비닐우산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역시 누군가에게 똑같이 이용당하고 버려질 수 있으니 말이다.
차길진(chakj47@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