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 금성대군신단, 선비촌, 2016.4.9
금성대군 신단, 단종 복위운동 성지
조선 세조 2년(1457)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이 성삼문등 사육신과 단종 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순흥에 위리안치 되었다.
금성대군은 이곳에서 순흥부사 이보흠 및 고향의 유림과 더블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실패하여 순절하게 되는데, 이곳은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마련된 제단이다.
단종 복위가 실패하자 순흥부는 없어졌다.
그 후 숙종 9년(1683)에 순흥부가 복원되고 순절 의사의 원한이 풀리자 숙종 19년(1693)에 부사 정중창이 금성대군이 위리안치 당했던 자리에 처음으로 단을 쌓았고, 숙종 45년(1719)에 부사 이명희가 삼단을 고처 쌓았다.
그 후 영조 18년(1742)에 경상감사 심성희가 서쪽으로 30~40보 옮겨 단소를 정비하여 순의비를 세우고 관리사를 지어 매년 봄, 가을로 향사를 지내 오고 있다.
금성대군 신단, 안내현판
신단입구 정자
신단 정문
정면에 제단문
관리사 건물(우측)
관리사 건물(좌측)
금성단 입구
금성단 현판
금성단 전경
금성단 비석
금성대군 비, 문(금성대군 성인신단 지묘)
금성대군 묘, 문(금성대군 지위)
금성대군 신단 전경
영주시 선비촌
선비상
영주는 예로부터 학문과 예를 숭상했던 선비문화의 중심지이며, 선비촌이 조성되어 있는 순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였던 회헌 안향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선비촌은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선비의 정신과 태도를 새롭게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하고자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일대에 건립되었다.
선비촌은 영주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공간을 그대로 복원하였으며, 그들의 정신을 담은 수신제가, 입신양명, 거무구안, 우도불우민의 4가지 구역으로 조성되었다.
전체적으로 마을공동체 형태로 구성하여 옛 영주 선비들의 생활모습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각 가옥별로 거주했던 사람들의 신분에 맞는 가옥 규모에 여러 가구의 생활도구를 전시하였으며, 선비의 일상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직, 간접체험 공간을 제공하였다.
선비촌 안내현판
선비촌 저잣거리
선비촌 전경
저잣거리, 풍기인견 매장(영주 특산품)
영주 선비촌에는 한국선비 문화수련원 및 영주시 청소년수련원, 순흥향교가 있으며,
선비촌 남쪽으로 소수서원, 맞은편에 금성대군 신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