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추독야 (早秋獨夜)
白居易(백거이. 772-846)
井梧凉葉動 (정오량엽동) 우물가 오동나무는 서늘한 잎 나부끼고
隣杵秋聲發 (인저추성발) 이웃집 다듬질은 가을 소리를 낸다
獨向簷下眠 (독향첨하면) 홀로 처마 밑에서 잠들어 있다가
覺來半牀月 (각래반상월) 깨어 보니 평상에는 달빛이 반쯤 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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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白居易, 772~846)는 당나라의 시인이다. 자(字)는 낙천(樂天)이고,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 등으로 불리었다.
대력(大曆) 7년(772년), 뤄양(洛陽) 부근의 정주(鄭州) 신정현(新鄭県, 지금의 허난성 신정시)에서 가난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두뇌가 명석했던 그는 5, 6세때 이미 시를 짓고, 9세 때에
호율(號律)을 깨달았다고 한다
백거이는 다작(多作)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존하는 문집은 71권, 작품은 총 3,800여 수로 당대(唐代) 시인
가운데 최고 분량을 자랑할 뿐 아니라 시의 내용도 다양하다. 젊은 나이에「신악부 운동」을 전개하여 사회,
정치의 실상을 비판하는 이른바 「풍유시(諷喩詩, 風諭詩)」를 많이 지었으나, 강주사마로 좌천되고 나서는
일상의 작은 기쁨을 주제로 한 「한적시(閑適詩)」의 제작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밖에도 평소 둘도 없는 친구였던 원진(元稹), 유우석(劉禹錫)과 지은 「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
등의 감상시도 유명하다. 백거이가 45세 때 지은 「비파행」은 그를 당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꼽히게 하였으며,
또, 현종(玄宗)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장시 「장한가」도 유명하다.
풍유시를 주로 했던 시기, 한적시를 주로 지었던 시기 전체를 통틀어, '짧은 문장으로 누구든지 쉽게 읽을 수 있는
(平易暢達)' 것을 중시하는 시풍(詩風)은 변함이 없었다.
개성(開成) 원년(836년)에 형부시랑(刑部侍郞), 3년(838년)에는 태자소부(太子少傅)이 되었으며,
무종(武宗)회창(會昌) 2년(842년)에 형부상서(刑部尙書)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때 그의 나이 71세였다. 74세에 자신의 글을 모아 《백씨문집(白氏文集)》(백씨장경집) 75권을 완성한
바로 이듬해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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