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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이다. 1741년(영조 17)이만석(李萬錫)이 쓴 사적비에 의하면 창건연대는 미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설에는 384년(침류왕 1)에 행사존자(行士尊者)가 창건하였다고 하였는데, 행사존자는 마라난타(摩羅難陀)의 다른 이름이다.
이 설을 따르면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뒤 최초로 세운 절이 되는데, 마라난타가 불갑사 부근의 법성포(法聖浦)를 통하여 들어왔으므로 다소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문주왕 때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이 절이 크게 번창한 것은 고려의 진각국사(眞覺國師)가 머무르면서부터이다.
당시 이 절에는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렀고, 사전(寺田)이 10리에 미쳤다고 한다. 그 뒤 많은 중수를 거쳐 오다가 정유재란 때 전소된 뒤 법릉(法稜)이 중창하였고, 1623년(인조 1) 대웅전의 본존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634년해릉(海稜)이 중창하였는데, 창건 당시의 규모에 비하여 많이 줄어들었다.
1644년조암(照巖)이 중수하였고, 1654년(효종 5)과 1675년(숙종 1)에도 중수가 있었다. 1680년채은(采隱)이 대대적으로 중건하였고, 1702년·1705년·1706년에도 팔상전과 탱화·나한상에 대한 중수가 있었다. 1802년(순조 2)득성(得性)이 중창한 이후 1869년(고종 6)설두(雪竇)가, 1876년설파(雪坡)가, 1879년동성(東城)이 각각 중건하였다. 1904년에는 금화(錦華)가 만세루를 중수하고 1909년에 대웅전을 수리하였다.
그리고 이 무렵 영광읍에 불갑사포교당인 원각사(圓覺寺)를 세웠다. 1937년만암(曼庵)이 명부전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고, 1938년에는 설제(雪醍)가 개수하였다. 1974년 범종루와 범종이 조성되었고, 1976년지종(知宗)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팔상전(八相殿)·칠성각·일광당(一光堂)·명부전(冥府殿)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로 지정된 만세루(萬歲樓)·향로전(香爐殿)·산신각·범종각·세심정(洗心亭)·천왕문(天王門) 등 15동의 건물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보물 제83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다른 사찰과는 달리 중앙에 석가모니불, 왼쪽에 약사여래불, 오른쪽에 아미타불을 모셔 특이한 불상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웅전 용마루 귀면(鬼面) 위에는 작은 석탑과 보리수를 새긴 삼존불대(三尊佛臺)가 있는데,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상이다. 이 밖에도 1359년에 세운 진각국사비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된 사천왕상과 전일암(餞日庵)·해불암(海佛庵)·수도암(修道庵)·불영암(佛影庵) 등의 부속 암자가 있다. 또한 진각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700여 년의 참식나무가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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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진도 첨찰산(485.2m), 덕신산(386m) 산행'에 이어 오늘은 '영광 불갑산(516m), 모악산(347.8m) 산행'으로 200대 명산 남도 여정을 이어간다. 불갑산을 오르는 길에 산행초입에 있는 '불갑사(佛甲寺)'를 먼저 들른다. 불갑사 일주문의 기둥을 자세히 보면, 일주문의 네 귀퉁이 기둥 외에 가운데로 두개의 우람한 기둥이 보이는데, 이 기둥들은 나무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세워져 있슴을 알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면서 불갑사로 가는 길에는 하얀 이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고,
길가에 매달린 오색연등들은 불갑사 경내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갑산에서 흘러 내려 오는 '불갑천'에는 5월의 싱그러운 연둣빛 신록이 내려앉아 있고,
해탈교(解脫橋) 좌우에는 다소 해학적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해태상들이 지키고 있고,
해탈교를 지나면서부터 '상사화(꽃무릇)'에 대한 안내판들이 보이는데, 가을이 되면 이곳 불갑사 일대는 온통 붉은 상사화로 뒤덮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상사화 전설, 옛날 금슬이 좋은 부부에게 늦게 얻은 딸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병환중에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며 백일 동안 탑돌이를 시작하였다. 이 절의 큰스님 수발승이 여인에게 연모의 정을 품었으나 스님의 신분으로 이를 표현하지 못하고, 여인이 불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자 스님은 그리움에 사무쳐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듬해 봄, 스님의 무덤에 잎이 진 후 꽃이 피어나니 세속의 여인을 사랑하여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한 스님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꽃의 이름을 상사화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상사화는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잎은 꽃을 생각하고, 꽃은 잎을 생각한다'고 하여 '상사화(相思花)'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으며, 이루지 못한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불갑사로 가는 들녘에는 보랏빛 붓꽃이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아마도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들기 시작할 때 쯤이면 붉은 상사화가 들녘을 붉게 물들이고 있지 않을까...
오색연등은 불갑사로 가는 길 내내 이어지고 있고,
부도전(浮屠殿)을 지나면,
넓은 마당에는 '불갑사 안내도' 등이 보이고, 마당 한쪽에는 또 하나, 불갑사를 대표하는 우람한 '참식나무'가 서 있다. 영광 불감사 참식나무 자생북한지대(自生北限支帶), 천연기념물 제112호 이 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며 상록활엽교목이다. 제주도를 비롯한 울릉도, 남쪽 해안 산록기슭에 자생한다. 일본의 난대, 대만, 중국 중남부에도 분포하는 종류이다. 높이가 10m까지 자랄 수 있는 것이나 이곳에 있는 것은 6m 내외이며 불갑사 바로 뒤쪽 산 수림 사이에 군데군데 있다. 이 보다 북쪽에는 이 나무의 자생지가 없으므로 분포상의 북한지대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 되었다. 잔가지에 털이 없고 녹색이며, 잎은 자루가 있고 호생하며 단단한 초질인데 타원형이며 전연 양끝이 뾰족하고 잎의 표면은 녹색이나 뒷면은 백색 이다. 엽고(葉脈)는 3개의 주고(主脈)가 뚜렷하다. 어린잎은 황갈색의 털에 덮히고 밑으로 처지나 자란 뒤에는 털이 없어지고 옆으로 퍼진다. 이 나무는 암수 딴 그루로서 늦은 가을에 가지 끝의 엽액에 황갈색의 작은 꽃이 많이 붙는다. 과실은 이듬해 가을에 붉게 익고, 타원형인데 길이가 약 15mm가 되며 껍질은 매끌매끌하다. '금강문(金剛門)'을 지나면 불갑사 경내로 들어서게 되고,
금강문에 걸려 있는 '불갑사(佛甲寺)' 편액 아래에는 사월초파일을 맞아 걸어 놓았을 "평화로운 마음, 향기로운 세상"이라는 노오란 플랭카드가 보이고, 황금빛 글씨로 새겨진 '금강문(金剛門)' 편액,
금강문을 지나면, 저- 앞으로 '천왕문(天王門)'이 나타나고,
천왕문으로 가는 경내에는 하얀 수국이 만발해 있다.
'천왕문(天王門)'에는 유서 깊은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있는데,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목조로 조각한 것을 조선 고종 7년 (1870)에 설두스님이 불갑사를 고쳐 지으면서 목선 4척을 동원하여 전북 무장 소요산의 연기사로부터 옮겨 왔다고 한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되어있다.
우리 나라의 사찰에서는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의 천왕문(天王門)에 이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다. 보통 이 천왕상들은 불거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치켜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손에는 큼직한 칼 등을 들고, 발로는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때 발 밑에 깔린 마귀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하는 상을 하고 있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들은 수미산(須彌山) 중턱에서 각각 그들의 권속들과 살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 수호와 사부대중의 보호를 맡게 되었다. 또, 사천왕과 그 부하 권속들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세간의 선악을 늘 살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매월 8일에는 사천왕의 사자(使者)들이, 14일 태자(太子)가, 15일 사천왕 자신이 제석천(帝釋天)에게 보고하는 것이 중대한 임무의 하나가 되고 있다.
사천왕 중 동쪽을 수호하는 이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다. 그는 안민(安民)의 신으로서 수미산 동쪽 중턱의 황금타(黃金埵)에 있는 천궁(天宮)에서 살고 있다. 16선신(善神)의 하나이기도 한 지국천왕은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어 항상 인간을 고루 보살피며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얼굴은 푸른빛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었고 오른손은 허리를 잡고 있거나 또는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그는 휘하에 팔부신중의 하나로서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맡는 음악의 신 건달바(乾達婆)를 거느리고 있다. 서쪽을 방어하는 신은 수미산 중턱 백은타(白銀埵)에 살고 있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이다. 그는 흔히 잡어(雜語), 비호보(非好報), 악안(惡眼)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그의 남다른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그의 몸은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을 함으로써 웅변으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고 한다. 또 눈을 크게 부릅뜸으로써 그 위엄으로 나쁜 것들을 몰아 낸다고 하여 악안, 광목이라고 하는 것이다. 광목천왕의 근본 서원은 죄인에게 벌을 내려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도심(道心)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워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차극(三叉戟)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보탑을 받들어 쥐고 있다. 그의 권속으로는 용(龍)과 비사사(毘舍闍) 등이 있다.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수미산 남쪽의 유리타(瑠璃埵)에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위덕을 증가하여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구반다 등 무수한 귀신을 거느린 증장천왕은 온몸이 적육색이며 노한 눈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그의 모습은 대개 갑옷으로 무장하고 오른손은 용을 잡아 가슴 바로 아래에 대고 있고, 왼손에는 용의 여의주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달리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라고도 한다.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하여 다문이라고 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인데 한때 불법에 귀의하여 광명신(光明神)이 되었으나, 본래 자신의 원을 지킨다 하여 금비라신(金毘羅神)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다문천왕은 왼손에 늘 비파를 들고 있다. 그는 수미산의 북쪽 수정타(水精埵)에 살며, 그의 권속으로 야차와 나찰을 거느리고 있다. 현재 이 사천왕은 천왕문에 많이 봉안되지만, 달리 불보살의 후불탱화에도 외호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범종루(梵鐘樓)'가 위치하고 있고,
'범종루(梵鐘樓)'는 지옥중생의 고통을 그치게 하고, 마음을 청량하게 하는 의미의 대범종을 모신 2층 누각 건물로서, 전면은 낮은 중층형이고 후면은 고루를 이루는 특이한 형식을 띠고 있다.
범종루에는 사물(四物) 중에 범종과 법고만이 보이고 있고,
범종의 몸체에는 '모악산 불갑사(母岳山 佛甲寺)'라는 글씨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렇다면 '불갑사'는 '불갑산 불갑사'가 아니라 '모악산 불갑사'라는 이야기인가...
불갑산 만세루(佛甲山 萬歲樓),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 불갑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백제 침류왕 대에 불교를 전파한 인도승 마라난타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고증하기 어렵다. '불갑사고적기'에 각진국사가 도갑사, 봉갑사, 불갑사 등 3 갑사를 창건하여 그 중 으뜸인 사찰을 불갑사라 하였다는 기록 또한 분명치 않다. 만세루는 사천왕문을 들어서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중심 축 선상에 있는 이층형의 문루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옆에서 볼 때 'ㅅ'자 모양)이다. 누각 아래로 출입하는 문루가 많은 반면, 이곳 만세루는 낮은 이층을 이루어 문루가 아닌 여름철에 공부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의 조성연대는 조선시대 말기로 추정된다.
'만세루(萬歲樓)' 편액,
만세루 왼쪽으로 바라 보이는 '백운당(白雲堂)',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불갑사 경내에 피어난 진붕홍빛 '작약',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평화의 불'이라 씌여진 조그만 비석을 만나게 되는데... 평화의 불 해와 달이 다 하고 중생업이 다 해도 우리는 둘이 아닌 不二의 진리, 이 도량 밝게 비춘 평화의 불 남과 북이 하나 되길 서원하오며, 무명 번뇌 모두 태운 모든 중생들 평화, 열반 이루도록 발원하나이다. 선묵혜자 스님이 부처님 탄생 성지 룸비니를 밝히던 평화의 불을 채화하여 3만리 이운의 길을 통해 한국으로 모셔와 오늘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며 불갑사에 평화의 불을 밝힌다. 불기 2559년(2015년) 2월5일
불갑산 청풍각,
불갑사 템플스테이,
불갑사 대웅전, 보물 제830호 불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의 말사로, 백제 때인 384년(침류왕 1)에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세웠다고도 하고, 백제의 승려 행은(幸恩)이 세웠다고도 한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법당(法堂)이다. 추정된다. 《조선사찰사료》에 따르면 1909년(순종 3)에 건물을 다시 보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되어 있고 주초는 정평주초석 방식이며 기둥은 배흘림 기둥이다. 외이출목(外二出目), 내삼출목(內三出目)으로 공포가 구성되어 있으며, 앞면 3칸은 개구부(開口部)를 두어 개방하였다. 건물 안쪽의 모서리 공포 부분에 용머리를 조각하였고 천장은 공포 사이를 순각판이 막고 있으며 층급 천장을 하였고 중앙에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이 건물의 특색은 문살 문양인데, 앞면 3칸 모두 삼분합(三分閤) 빗살문으로 가운데 칸에 달린 문에는 연꽃무늬와 국화무늬를 조각하였다. 가운데 칸 좌우의 기둥 위에도 용머리를 장식하였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대웅전 앞 뜰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오색연등들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고,
대웅전 오른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일광당(一光堂)'은 단청을 입히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다. 일광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이익공식 맞배지붕건물로서 주두부에는 간단한 앙서와 수서로만 장식이 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과학적으로 온돌이 시설되어 있고, 정재칸 내부의 곡부재가 특징적이며,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조화가 이루어진 건축미가 느껴진다. 일광당은 원래 승당이었으나, 1765년 중수 후 설교당으로, 1840년에 듬당으로, 1870년경 설두대사에 의해 일광당으로 편액된 후, 1941년에 보수 하였으며, 최근 1989년과 2000년에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의 뒷뜰, 거북형상의 기단 위에는 '각진국사(覺眞國師)'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불갑사에 있던 수선사 제13세 사주, 각진국사의 복구의 부도비이다. 각진국사는 승명이 복구(復丘, 원종 11, 1270∼공민왕 4, 1355)로 이존비의 세 아들 중 둘째이며, 속명은 이정(李精)이다. 공민왕 때의 시종이자 명필로 이름난 이암의 숙부이기도 하다. 이존비의 시 "조계의 회당화상께 드림(寄曺溪晦堂和尙)"에 나오는 당시 막 출가하는 바로 그 아들이다.
각진국사 부도비 뒷편으로 보이는 전각은 '향로전',
대웅전의 뒷편으로 자리하고 있는 '칠성각(七星閣)'과 '팔상전(八相殿)',
팔상전 앞으로는 재미있는 얼굴을 가진 굴뚝이 보이고,
무량수전 옆으로 위치하고 있는 '오층석탑', 1978년에 세웠다고 한다.
불갑사 명부전(冥府殿),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계 맞배지붕 건물로서 내부에는 연등천장과 빗천장을 조합하여 낮은 층골르 보완하고 있다. 이 명부전은 1654년 이전에 건축되었으며 원래는 대웅전 좌측면 뒷편에 위치하던 건물을 193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며, 현재 명부전 자리는 원래 선당이 있던 곳이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삼존상을 비롯하여 시왕상 10구, 판관, 사자, 인왕상이 각각 2구씩 봉안되어 있다.
일광당 옆으로 자리하고 있는 '세심성(洗心亭)',
본격 여름을 향해 치닫고 있는 뜨거운 날씨, 세심정의 시원한 약수를 한바가지 떠서 마셔보니 몸과 마음이 청량해지는 것만 같다.
불갑사를 둘러 보고 돌아 나오는 길에 만나는 '성보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