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나라 중국(中國)
(7) 삼국지의 얼이 깃든 무후사(武候祠)
무후사 입구(비석:三國聖地) / 입구의 현판(武侯祠)/ 제갈공명(諸葛孔明)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는 춘추전국시대 유비가 세운 촉한(蜀漢)의 수도로 삼국지의 무대였으며 익주(益州)라 불렸던 곳이다. 성도(成都)에 있는 무후사(武候祠)는 유비의 군사(軍師)이며 대 전략가였던 제갈량(諸葛亮)의 혼백을 모시는 사당(祠堂)으로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도원결의(桃園結義)로 초야(草野)에서 일어나 천신만고 촉한제국(蜀漢帝國)의 기틀을 세우고 제위(帝位)에 오른 유비(劉備)를 비롯하여, 관우(關羽), 장비(張飛) 등 촉한의 모든 장군과 제후들을 함께 모시고 있기도 하다.
무후사(武候祠)라는 이름은 제갈량의 시호(諡號)인 충무후(忠武候)에서 비롯되는데 경내에는 유비(劉備/漢昭烈皇帝)의 시신(屍身)을 모셔와 안치한 혜릉(惠陵)도 있다. 경내에는 유비, 관우, 장비가 피로써 형제의 결연한 도원결의(桃園結義) 장소도 꾸며놓았는데 우리가 갔을 때 복숭아꽃이 한창이었다.
유비의 고향인 하북성(河北省) 탁현(涿縣) 누상촌(樓桑村)의 정취를 느끼며, 우리 세 사람은 이곳 도원(桃園)에서 옛 삼국지 주인공들을 흉내 내어 손을 모아 잡고 우정이 변치 않기를 도원결의(?) 흉내를 냈더니 지나가던 중국 관광객들이 웃는다. 대학 후배와 세 명이 함께한 이번 여행은 너무나 즐거운 여행이었다.
도원결의(桃園結義) / 유비(劉備) 석상(石像) / 도원(桃園)
삼국지에 보면 조조(曹操)가 한(漢) 왕조의 헌제(獻帝)를 폐하고 스스로 위(魏)나라의 황제를 칭하자 제갈량의 권유로 유비도 촉한(蜀漢)의 황제로 즉위하는데 유비가 한(漢) 왕실의 정통성을 이은 후손이므로 황제로 존칭하지 않고 선주(先主)로 불렀다.
유비는 자(字)가 현덕(玄德), 사후 시호(諡號)가 소열제(昭烈帝)이며, 아들 유선(劉禪)이 제위(帝位)를 이어받아 후주(後主)라 불렀는데 후주 유선(劉禪)은 군사(軍師) 제갈량(諸葛亮)이 죽자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즉위 40년 만에 한(漢)의 조조(曹操)에게 나라를 바친다.
제갈공명(諸葛亮)을 모신 사당 / 유비, 관우, 장비를 모신 삼의묘(三義廟)
삼국지(三國志)를 읽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만큼 파란만장한 사건들과 수많은 영웅들의 충의(忠義), 술수(術數), 모략(謀略), 신출귀몰한 전략과 영웅담, 그리고 전편을 통하여 흐르는 심금(心琴)을 울리는 인간미 등이 우리를 매료(魅了)시킨다. 그러나 이 불세출(不世出) 영웅들의 허무한 죽음과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세운 제국이 2대(二代)를 채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던 기억이 새롭다.
유비(劉備/漢昭烈皇帝)의 묘 혜릉(惠陵) / 잡목만 무성한 혜릉(惠陵)
유비는 한날한시에 죽기로 도원에서 결의한 두 아우(關羽/張飛)들이 먼저 죽자 제갈량의 만류에도 무릅쓰고 전쟁을 강행하다 쓰촨성 양쯔강안(揚子江岸) 펑제현(奉節縣)의 백제성(白帝城/永安)에서 제갈량에게 아들(劉禪/後主)을 부탁하며 63세로 숨을 거둔다. 무후사 한쪽, 제법 큼직하게 세워진 유비의 무덤 ‘한소열황제지릉(漢昭烈皇帝之陵/惠陵)’은 무성한 잡목들만 멋대로 자라고 있어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고 있다. 제갈량(諸葛亮)의 자(字)는 공명(孔明), 별호는 와룡(臥龍) 혹은 복룡(伏龍)이라고 하는데 삼국지(三國志)에서는 귀신도 부리고 천지조화(天地造化)도 마음대로 바꾸며 앞일을 예측하는 등, 신(神)의 경지를 넘나드는 뛰어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일찌기, 수경(水鏡)선생 사마휘(司馬徽)는 유비에게 복룡(伏龍/제갈량)과 봉추(鳳雛/방통)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얻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는데 유비는 두 사람 모두 얻어 대업을 이룬다.
그러나 방통(龐統)은 제갈량(諸葛亮)보다는 기량이 조금 부족했던 듯싶다.
천하 명문장 제갈량의 전출사표(前出師表) / 제갈량 초상화
천하 명문장으로 꼽히는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는 선주(유비/劉備)가 죽은 후 후주(유선/劉禪)에게 올린 북벌(北伐)의 당위성을 호소하는 글로 첫 번째 출정 때 올린 전출사표(前出師表)와 두 번째 출정 때 올린 후출사표(後出師表)의 두 가지가 있다. 전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 명문장(名文章)이다. 제갈량은 위(魏)나라 조조(曹操)와 8년간, 5차에 걸친 전쟁을 치르는데 마지막 전투인 오장원(五丈原) 전투 중 진중(陣中)에서 눈을 감는데 향년(享年) 54세였다고 한다.
제갈량 사당(祠堂)의 현판에는 ‘이름이 온 세상에 드리우다.’는 의미의 ‘명수우주(名垂宇宙)’가, 사당 안의 유비(劉備) 소상(塑像) 위에는 ‘신과 성인의 경지에 이르다.’라는 의미로 ‘신성동진(神聖同臻)’이라 현판이 붙어있다. 이곳의 입장료가 50위안인데 우리는 세 사람 모두 60세 이상이라 무료입장이다.
(8) 도교(道敎)의 성지(聖地) 청양궁(靑羊宮)
도교사당 청양궁(靑羊宮) /중성지모(衆星之母) / 신선(羽化登仙)
청두(成都) 시내의 청양궁(靑羊宮)은 노자(老子)를 기리는 도교(道敎) 사당으로 당대(唐代)인 AD 666년에 창건되었고 훼손이 심한 것을 청나라 때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도교(道教)는 원래 고대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로 신선사상(神仙思想)을 근본으로 하여 음양(陰陽), 오행(五行), 복서(卜筮), 무축(巫祝), 도참(圖讖/참위<讖緯>) 등을 더하고, 거기에 노자(老子)의 도가(道家) 철학과 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고 한다.
도교는 도(道)의 세 가지 모습인 옥청(玉清/元始天尊:玉皇上帝), 상청(上清/靈寶天尊:太上道君), 태청(太清/道德天尊:太上老君)의 삼청(三清)을 최고신으로 하는 다신교이며 경전(經典)은 도장(道藏)이다.
도교의 신자는 우화등선(羽化登仙/날개가 나와 하늘을 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무리라는 뜻에서 우류(羽流)라 했다. 넓고 웅장한 건물들이 들어찬 경내에는 모시는 신들이 하나같이 신선이랄까, 도사(道士)라고 할까 기묘한 모습들이 많고 벽화에는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신선(神仙) 그림이 많아 신비롭다.
어디를 가나 같은 모습이지만 이곳에도 홍두깨 만한 향을 두 손에 모아들고 수없이 흔들어 대며 기도를 하는 중국 사람들이 많아 경내는 향의 연기로 자욱하다. 상투를 올리고 도사의 복장을 한 무리가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기며 순시(巡視)하고 있었다.
도교 사원의 외부 모습 / 칭양궁의 심벌(Symbol) 푸른 양(靑羊)
청양궁(靑洋宮)의 심벌인 ‘푸른 양(靑羊)’은 청대(淸代)에 만들어진 구리양(銅羊)으로, 12가지의 띠를 나타내는 동물들이 하나의 몸에 조형되어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 청양은 태상노군(太上老君:노자<老子>를 신격화하여 붙인 이름)이 타고 다니던 양인데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병에 걸린 사람이 이 청양(靑羊)을 한 번 만지면 그 병이 곧 치료된다고 한다. 나는 푸른 양(靑羊)의 눈을 만졌으니 죽을 때까지 눈병(眼疾) 걱정은 없겠다. ㅎ
입장료는 20위안인데 경로우대로 무료입장 했었던 같다. 이곳에서 무후사(武侯祠)까지는 멀지 않다.
(9) 대 시인의 발자취 두보초당(杜甫草堂)
성도(成都) 시내에 있는 대시인 두보가 기거하던 초당(草堂)은 무후사(武侯祠)와 청양궁(靑羊宮)에서 멀지 않아 하루에 모두 둘러볼 수 있다. 무후사(武侯祠) 입장권을 구입하면 무후사에서 두보초당(杜甫草堂)까지 무료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는데 우리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걸어갔는데 꽤 먼 거리로 제법 시간이 걸린다.
두보초당 비석 / 두보(杜甫) 초당(草堂) 일각 / 두보 동상(銅像)
이곳은 당(唐)나라의 시성(詩聖)으로 추앙받는 두보(杜甫)가 AD 759년,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피해 잠시 이곳 성도(成都)에 있을 때 기거하던 곳인데 4년여 머무르는 동안 주옥같은 240여 편의 시를 쏟아낸다.
공원으로 잘 가꾸어져 있는 두보초당은 너무 넓어 길을 찾기도 힘들 정도며, 두보가 시를 짓고 기거하던 작은 초가집(草堂)이며, 거대한 정자각 등 큰 건물도 꽤 있고 두보 조각상(彫刻像) 및 시(詩)가 새겨진 비석도 많이 세워져 있다. 이백(李白)과 더불어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두보는 자(字)가 자미(自美)인데 스스로
‘두릉(杜陵)의 포의(布衣)’ 또는 ‘소릉(少陵)의 야로(野老)’라 자칭했다고 한다.
두보 초당(草堂) 근처에 자그마한 공원도 있는데 조조(曹操) 삼부자 동상(三父子 銅像)이 세워져 있다.
공원 마당에서는 중국 여인들이 태극권(太極拳)을 수련하고 있었는데 중국은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두보초당(杜甫草堂) 옆 공원의 조조 삼부자상(三曹/三父子像) / 공원에서 태극권 수련하는 중국 여인들
이때 씌어 진 두보의 향기로운 시 한 편을 감상하자.
춘야희우(春夜喜雨)<어느 봄밤, 반가운 비>- 두보(杜甫)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리나니 봄이면 초목이 싹트고 자라네.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봄비는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 가늘게 소리도 없이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江船火獨明(강선화독명)
들길과 하늘의 구름 모두 어두운데 강가의 배에서는 불빛 홀로 반짝이네.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이른 아침 붉게 젖은 땅을 보니 금관성에는 꽃이 활짝 피었으리. ☆금관성(錦官城)- 청두(成都)의 옛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