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경요집 제15권
23.9. 진에연(瞋恚緣)
대개 사사(四蛇: 四大)가 조급하게 날뛰고 삼독(三毒 : 食ㆍ瞋ㆍ癡)이 분주하게 치달리며 육적(六賊 : 眼ㆍ耳ㆍ鼻ㆍ舌ㆍ身ㆍ意)이 서로 침범하여 온갖 근심이 다 모여드는 것이다.
혹은 전생의 훈습(薰習) 때문에 서로 혐오하여 장점과 단점을 틈틈이 찾아내고, 본래 품고 맺은 원한 때문에 오로지 서로 해칠 궁리만을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인의(仁義)가 없고 자비(慈悲)를 몽땅 상실하여 법(法)을 죽이고 연(緣)을 죽이며 죽음을 가르치고 죽음에 대하여 찬양하게 된다.
더러는 또 몰래 독약을 쓰거나, 은밀하게 삿된 주문을 읊어 마침내는 그들로 하여금 장부(臟腑)에 독이 퍼지게 하고 짐(鴆)새의 독으로 간장과 심장을 찢어 낸다.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긴 밤 내내 슬픔에 잠기게 하고 저승에서[幽泉]까지 분통을 품게 하나니, 이 같은 일을 언제나 완전하게 버릴 것이며 번민하고 원통함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겠는가?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장자의 집 안에는 독이 있는 나무가 많이 나고 나찰(羅刹)의 바다 위에서 여러 번 부랑(浮囊)을 구걸한다.
또한 만 다발이나 되는 마른 나무가 있다 해도 한 조각의 불로 능히 다 태울 수 있고 백 년 동안 깜깜했던 방도 하나의 등불로 깨뜨릴 수 있다.”
그러므로 성내는 마음은 사나운 불보다 더 심한 것이니,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스스로 공덕(功德)을 겁탈하는 적을 막고 보호해야 이런 해로움을 당하는 실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한 번이라도 성냄의 불길을 일으킨다면 온갖 선근의 공덕을 다 태우게 될 것이니, 그러므로 성질이 악한 사람은 사람이나 축생들이 다 두려워하는 것이다.
착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무턱대고 말하면 곧 독을 이루고,
남의 마음 무너뜨리기를 좋아하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싫어하고 미워하게 하여 아무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게 된다.
대중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배척하기를 마치 이리나 호랑이를 피하듯이 하며, 현재에는 남의 천대를 받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지혜 있는 사람은 이런 허물을 보고 인욕(忍辱)으로써 성내는 마음을 없애 버려 온갖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진에(瞋恚)를 일으키면 스스로 제 폼을 태우고 그 마음은 독을 머금어 안색(顏色)이 변하고 달라진다.
그는 남에게 버림을 받아 모두 다 놀라서 피하고 온갖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업신여기고 헐뜯으며 비천하게 여길 것이다.
그가 목숨을 마치고 몸이 무너진 뒤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성내고 분해하기 때문에 짓지 못하는 악이 없나니 그런 까닭에 지혜 있는 사람은 진심(瞋心) 버리기를 불을 피하듯 하는 것이다.
성냄의 허물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이롭게 할 수 있나니, 스스로도 이롭게 하고 다른 사람도 이익되게 하려면 마땅히 인욕을 실천해야 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큰 불이 집을 태울 때 용감하고 건장한 사람이 물로 불을 끄는 것처럼,
지혜의 물이 성냄의 불을 끄는 것도 역시 이와 같아서 인욕을 잘하는 사람이라야 제일 착한 마음인 것이다.
능히 진심을 버리면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대상이 되고 온갖 사람들이 만나 보기를 좋아하며,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는 대상이 될 것이다.
안색이 청정해지고 그 마음이 적정(寂靜)할 것이며, 마음이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깊은 마음이 보다 더 청정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몸과 입의 허물을 여의고 마음의 시름과 고민을 여의며,
악한 세계의 두려움을 여의고 원한과 미움을 여의며,
악한 이름을 여의고 근심과 번뇌를 여의며,
원수의 집에 대한 두려움을 여의고 악한 사람이 악한 말로 꾸짖는 것을 여의며,
후회의 두려움을 여의고 악한 소문의 두려움을 여의며,
이익이 없을까 두려워함을 여의고 고통의 두려움을 여의며, 오만함의 두려움을 여윌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지 이와 같은 두려움을 여의면 일체 공덕을 다 구족하여 명예와 칭찬이 널리 퍼지고 현재와 미래 두 세계의 즐거움을 얻으며, 모든 사람들이 마치 부모처럼 대하리니, 이 인욕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다 친근히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냄과 분노는 마치 독사와 같고 또한 칼이나 불과 같은 것이니, 인욕으로 그것을 모두 없애어 다 사라지게 하여야 한다. 성냄과 분노를 잘 참아내는 것을 바로 인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선여인이 선함을 잘 수행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하라.
‘인욕이란 진실과 같은 것이니 마땅히 그것을 잘 보호해야 한다.’
다만 모든 중생들의 선과 악은 모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남의 허물을 업신여기고 꾸짖는 것을 이기는 것으로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침묵하는 것을 제일로 여긴다.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만 다툼을 일으킴으로 인하여 마침내는 큰 원망을 이루나니,
만약 자기 자신이 이기면 남의 원망은 더욱 깊어지며,
만약 자신의 주장을 굽히면 도리어 근심과 고통만 더하게 될 것이다.
만약 말을 잘 삼가하여 남의 단점을 말하지 않으면 비록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더라도 그것은 다 지나간 세상의 업(業)이요, 횡보(橫報)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보살은 그 몸이 코끼리의 왕이 된 적이 있었다.
그의 마음은 넓고 커서 불(佛)ㆍ법(法)ㆍ승(僧)이 있음을 환히 알았고 항상 삼보에 스스로 귀의하여 늘 큰 자비로 중생을 구제했었다.
그는 서원(誓願)하기를
‘장차 부처가 되면 마땅히 일체를 제도하리라’고 하면서
오백 마리의 코끼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 때 그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다.
코끼리 왕은 물 속에서 연꽃 한 송이를 얻었는데, 그 꽃은 색상이 매우 미묘하였다.
그래서 그 꽃을 본처에서 주었더니, 본처는 그 꽃을 받고는 매우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얼음이 꽁꽁 얼고 추운 겨울에 어떻게 이런 꽃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작은 아내는 탐내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 서원하여 말했다.
‘심한 독이 있는 짐(鴆)새의 독을 모아 당신(코끼리왕)을 죽이고 말리라.’
이렇게 서원한 기운이 맺혀 곧 코끼리왕은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그 혼령이 감화(感化)되어 사성(四姓 : 양반)집 딸로 태어났는데 얼굴이 몹시 아름다워 남들보다 뛰어났으며, 지혜가 두루 통해 고금(古今)에 대하여 해박하게 알았으며 하늘을 우러러 천문을 관찰하고는 시대의 성쇠(盛衰)를 밝게 알았다.
왕이 이와 같은 소문을 듣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부인은 그 나라에 이르러 나라를 교화하고 다스리는 이야기를 진술하였는데, 그 이치가 충신(忠民)과 꼭 맞는 말들이었다.
왕은 기뻐서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내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었다.
부인이 말하였다.
‘저는 꿈 속에서 육아(六牙)의 코끼리를 보았는데, 그 코끼리의 어금니로 패궤(珮几 : 놀이개)를 만들고 싶습니다. 왕이 그 일을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곧 죽고 말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요망한 말을 하지 마시오.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 것입니다.’
그 때 부인의 마음은 매우 근심이 맺혀 있었으므로 왕은 신하 네 사람을 불러 자신이 꾼 꿈이라고 말하면서 의논하였다.
‘고금에 이런 코끼리도 있는가?’
한 신하가 대답하였다.
‘그런 코끼리는 없습니다.’
또 다른 한 신하가 말하였다.
‘그것은 대왕님의 꿈이 아닙니다.’
또 한 신하는 이렇게 말하였다.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아주 먼 곳에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한 신하는 말하였다.
‘만약 제석(帝釋)을 불러올 수만 있으면 지금 이 일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네 신하는 곧 사방의 사냥꾼[射師]들을 불러 물었다.
그러자 남쪽의 사냥꾼이 말하였다.
‘우리 선친[亡父]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런 코끼리가 있다. 그러나 너무 멀리 있어서 데려 오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신하가 보고하여 말하였다.
‘이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왕은 곧 그 사람을 불러 들였다.
부인이 말하였다.
‘너는 여기서부터 곧바로 남쪽으로 삼천 리를 가서 산이 나오거든 거기에서 이틀쯤 걸어서 들어가라.
그러다 곧 그 코끼리가 있는 곳에 이르거든 길가에 구덩이를 파놓고 너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사문이 입는 옷을 입고 구덩이 속에 있다가 그 구덩이 속에서 활을 쏘아라.
그렇게 하여 그 코끼리의 어금니를 두 개쯤 잘라 가지고 오너라.’
상사(象師)는 명대로 그 코끼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코끼리 다리를 쏘기에 앞서 먼저 법복(法服)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구덩이 속에서 머물고 있었다.
코끼리왕이 그 사문(沙門)을 보고 곧 머리를 숙여 말하였다.
‘합장하고 예배합니다[和南]. 도사(道士)께서는 무슨 일로 내 몸과 목숨을 죽이려고 하십니까?’
대답하였다.
‘너의 어금니를 얻고 싶어서이다.’
코끼리왕이 말하였다.
‘나는 아픈 것은 잘 참지 못합니다. 그러니 속히 내 어금니를 뽑아 가서 내 마음을 어지럽혀 나로 하여금 악한 생각이 생겨나게 하지 마십시오.
마음에 악한 것을 생각하면 죽어서 태산(太山)지옥에 들어가고 아귀와 축생의 세계에 떨어진 답니다.
그러나 인욕을 가지고 자비를 실천하고 악이 오더라도 선으로 갚는 것이야말로 보살의 으뜸가는 행위입니다.’
그 사람은 곧바로 어금니를 잘랐다.
코끼리가 말하였다.
‘도사님, 당신은 마땅히 뒷걸음쳐서 가십시오. 그리하여 코끼리 떼로 하여금 당신의 발자취를 찾을 수 없게 하십시오.’
코끼리는 그 사람을 보내준 뒤 멀리 가자 너무나 아파 참기 힘들어서 땅에 쓰러진 채 크게 울부짖다가 곧 죽어버렸다.
그 코끼리는 곧 천상에 태어났다.
그러자 온갖 코끼리들이 사방에서 몰려와서 다 함께 말하였다.
‘어느 누가 우리 왕을 죽였는가?’
이렇게 말하면서 이리저리 다니며 찾았으나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왕의 시체를 지키면서 비통함에 슬피 울었다.
사냥꾼이 어금니를 가지고 돌아오자 왕은 코끼리의 어금니를 보고서 마음이 슬퍼지고 무서워졌다.
부인은 그것을 받아 손에 들고 막 보려고 하자 천둥 번개가 치더니 벼락을 맞고 피를 토하며 죽어서 지옥으로 들어갔다.
부처님께서 모든 사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그 코끼리왕은 바로 지금의 내 몸이요, 큰 부인은 바로 지금의 구이(瞿夷)이며,
그 때 그 사냥꾼은 바로 지금의 조달(調達)이요, 그 부인은 바로 지금의 호수(好首)였느니라.
보살이 뜻을 굳게 가지고 도무극(度無極 : 波羅蜜)을 실천하려면 계율을 이와 같이 지녀야 하느니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석제(釋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물건을 죽여야 편안하며
어떤 물건을 죽어야 걱정이 없습니까?
어떤 물건이 저 독(毒)의 근본으로서
일체의 착한 것을 다 삼켜 없애버립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냄을 죽여야 편안하고
성냄을 죽여야 곧 걱정이 없어진다.
성냄이 저 독(毒)의 근본이 되고
성냄이 일체의 착한 것을 모두 없앤다.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남을 이기면 원한이 더욱 자라나고
남에게 지게 되면 걱정과 고통이 더해진다.
이기고 지는 것을 다투지 아니하면
그 즐거움이 가장 으뜸이 되느니라.
만약 인욕을 실천하면 곧 다섯 가지 덕이 있게 된다.
첫째는 한(恨)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꾸짖음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사람들의 사량을 받는 것이요,
넷째는 좋은 이름이 널리 퍼지는 것이며,
다섯째는 좋은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니,
이 다섯 가지 덕을 평화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또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남을 꾸짖고 지혜로운 사람은 침묵한다.
이 침묵은 저 꾸짖음을 이기는 것이나
저 어리석은 사람은 지견(知見)이 없으므로
나를 보고 두려워 겁먹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제일가는 이치를 관찰해보니
인내와 침묵이 최상이 되고
악한 것 중에서도 제일 악한 것은
분노에 대하여 다시 성내는 것이니라.
분노에 대하여 능히 성내지 않으면
그것이 싸움 중에 가장 으뜸이 된다.
대개 사람들에겐 두 가지 연(緣)이 있으니
자기도 위하고 다른 사람도 위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다투고 송사를 해오더라도
갚지 않으면 그것이 승리하는 것이다.
대개 사람에게 두 가지 연이 있으나
”자기 자신도 위하고 다른 사람도 위하는 것이다.
다투고 송사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큰 힘이 있으면
힘이 없는 사람에 대하여 잘 참아내나니
이렇게 참는 힘이 제일이 되고
인욕 중에서도 최상이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힘이 있다고 말하지만
이런 힘은 진실한 힘이 되지 못한다.
법대로 참아내는 그런 힘이 있으면
어느 누구도 이 힘은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 입으로 하는 말은 유연(柔軟)하나
그 마음 속에 독해(毒害)를 품은 사람은
사람을 볼 때 매우 환희(歡喜)하여
서로 따르는 것이 마치 친한사람처럼 한다.
입으로 하는 말은 유순(柔順)하나
그 마음속에 독(毒)을 품고 있으면
마치 나무에 핀 꽃의 색깔이 곱지만
그 열매가 독처럼 쓴 것과 같다.
또 『적취오유경(亦▼(口+雋)烏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까마귀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구기(拘耆)라고 하였다.
[양(梁) 나라 말로는 부리가 붉은 까마귀라는 뜻이다.]
그 까마귀는 우거진 숲 속에 살면서 나무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까서 그 새끼들이 모두 나무 위에 있었다. 그 때 구기는 어떤 원숭이와 서로 매우 친분이 두터웠었다.
그 때 그 숲 사이에 있던 독사가 구기가 없는 틈을 엿보다가 구기의 새끼를 모두 잡아먹었다. 구기가 새끼를 잃고 그 새끼들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여 슬피 울다가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뱀이 잡아 먹은 것을 알았다.
원숭이가 돌아와서 구기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
‘뱀이 내 새끼를 모두 잡아먹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원숭이가 말하였다.
‘내가 그 원수를 갚아 주겠다.’
그 때 독사가 지나가고 있었다. 원숭이는 앞에서 독사에게 약을 올렸다.
독사가 성이 나서 원숭이를 휘감자, 원숭이는 뱀의 머리를 잡아 끌고 돌 위로 가서 돌로 머리를 갈아 부순 후 죽여서 던져 버리고 돌아왔다. 그러자 구기가 매우 기뻐 날뛰었다.
축생들조차도 오히려 서로 앙갚음이 있거늘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또 『잡비유경(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뱀이 있었는데 머리와 꼬리가 서로 다투었다.
머리가 꼬리에게 말했다.
‘내가 마땅히 너보다 위대하다.’
꼬리가 머리에게 말했다.
‘내가 마땅히 위대하다.’
머리가 말하였다.
‘나는 귀가 있어서 들을 수 있고 눈이 있어서 볼 수 있으며, 입이 있어서 먹을 수 있고 다닐 때에는 앞서 간다. 그러므로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너에겐 이런 기술도 없는데 어떻게 위대하다고 하는가?’
꼬리가 말하였다.
‘내가 너를 가게 하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가지 못하게 하겠다.’
이렇게 말하고 몸을 나무에 세 바퀴로 감아 사흘 동안 놓아 주지 않았다.
뱀 은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어서 배고프고 굶주려 거의 죽게 되자 머리가 꼬리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를 놓아다오. 네가 위대하다.’
꼬리는 그 말을 듣고서야 즉시 놓아 주었다.
머리가 다시 꼬리에게 말했다.
‘네가 이미 위대해졌으니 네가 앞서 가라.’
그러나 몇 걸음도 채 가지 못하고서 크고 깊은 구덩이에 빠져 죽었다.
비유하면 이것은 중생이 지혜가 없어서 억지로 남이니 나니 하다가 마침내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진다는 비유이다.”
또 『승기율(僧祇律 : 摩詞僧祇律)』에서 말하였다.
“과거 세상 어느 때에 한 무리의 닭이 물푸레나무 숲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살쾡이가 와서 자꾸 잡아 먹어버려 오직 암놈 한 마리만 남았는데 까마귀가 와서 그것을 덮쳐 새끼 한 마리를 낳았다.
새끼가 소리내어 울 때에 까마귀의 소리를 내자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 아이는 나의 아이가 아니다.
들판의 아비와 촌락의 어머니가
둘이 합하여 새끼를 낳았으니
까마귀도 아니요 또한 닭도 아니라네.
만일 아비의 소리를 배우자니
또한 이것은 닭이 낳은 것이요
만일 어미의 울음을 배우자니
그 아비는 또한 까마귀라네.
까마귀를 배우려 하니 닭 울음과 흡사하고
닭을 배우려 하니 까마귀 소리가 나며
까마귀와 닭을 다 배우려 하니
이 둘을 다 이룰 수는 없구나.
이 비유는 도를 닦는 사람이 비록 금계(禁戒)를 잘 지킨다 하더라도 잡되게 물이 들어 순수하지 못하게 됨을 비유한 것이다.
즉, 모습은 선(善)한 것 같으나 입에서 내는 말은 악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선이라고 부르자니 그 입에서는 악을 내고 선이 아니라고 부르자니 외모는 또한 출가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 『벌독수경(代毒樹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사위국의 국립공원[官園]에 독이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생겨났다. 사람들이 그 나무 아래에서 놀기라도 하면 모두 머리가 아파 찢어질 것 같았고, 혹은 허리가 아픈 병을 앓기도 했다.
이 나무는 베고 나면 다시 싹이 나왔고 나무 가운데에서도 미묘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나무를 보고 좋아했기에 그 이치를 모르는 이는 모두 다 죽음을 당했다.
어떤 지혜 있는 사람이 말하였다.
‘반드시 그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 뿌리까지 캐내려고 하였으나 다시 죽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진퇴(進退)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출가(出家)하여 도를 배우는 일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게송을 설하셨다.
나무를 베기만 하고 뿌리까지 뽑아버리지 않으면
비록 베었더라도 다시 새싹이 나오는 것처럼
애욕을 벨 때에도 그 근본까지 다 없애지 않으면
자주자주 다시 새로운 고통이 생겨나리.
마음이 끝까지 깨어 있도록 엄하게 꾸짖는다면 곧 초과(初果)를 얻을 것이다.”
또 『패경(孛經)』에서 게송으로 설하였다.
악한 것은 마음에서부터 생겨나서
도리어 자기 자신을 해치나니
마치 쇠에서 녹이 생겨나
그 형체를 훼손하는 것과 같다.
나무엔 꽃과 열매가 번창하여
도리어 그 가지를 꺾어버리고
살모사[蚖蛇]는 독을 머금어
도리어 제 몸을 해친다.
또 『선견론(善見論)』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약 누구든지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비유하면 마치 수레가 제멋대로 달리는 것과 같으나
수레를 운전하는 이가 그것을 제어하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성내는 마음을 제어하는
이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라네.
또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내는 마음을 쫓아
다른 사람을 마주할 때 원망하거나 해친다면
그는 다음 세상에 독사로 태어나거나
혹은 사납고 잔인한 짐승으로 태어나리라.
비유하면 마치 대나무가 쪼개지는 것처럼 분명한 일이요.
또한 파초(芭蕉)와 노새가 새끼를 배는 것처럼
도리어 자신을 해침이 이와 같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야 하네.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가란타(迦蘭陀) 죽림(竹林)에 계실 때의 일이었다.
그 성 안에 어떤 장자(長者)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현면(賢面)이었다. 그는 재산과 보물이 한량없이 많아서 이루 다 헤아려 계산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온갖 아첨과 비뚤어진 생각이 많았고 간탐과 질투가 많아 끝내 보시할 마음이 없었다. 심지어는 날아다니는 새들까지도 다 쫓아내어 집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온갖 사문(沙門)ㆍ바라문(婆羅門)이나 가난하여 벌어먹는 거지가 그 집에 와서 구걸하면 그는 악한 말로 그들을 꾸짖곤 하였다.
그가 목숨을 마치고 나서는 독사의 몸을 받아 본래의 재산을 지키고 있었는데, 어느 누구든지 가까이 오는 이가 있기만 하면 성난 눈을 하고 사나움이 극에 달하여 노엽게 쏘아보아 그들로 하여금 모두 죽게 하였다.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이 그 소문을 듣고 매우 놀라고 괴상하게 여겨 ‘지금 이 독사는 사람을 보기만 하면 해치니, 오직 부처님만이 조복(調伏)받으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신하들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드리고 물러나 한쪽 구석에 앉아 전에 있었던 사실을 자세히 아뢰었다.
‘오직 바라옵나니 세존께서는 이 독사를 항복받으시어 다시는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
그 다음 날 가사를 걸치고 발우를 가지고 독사가 있는 곳으로 가셨다. 독사가 부처님께서 오신 것을 보고는 맹렬하게 성을 내어 여래(如來)를 물려고 했다.
부처님께서 자비의 힘으로써 다섯 손가락 끝에서 다섯 가지 색깔의 광명을 놓으시어 저 독사의 몸을 비추자 곧 독사는 청량(淸涼)함을 얻어 뜨거운 독기가 사라졌다.
마음엔 기쁨을 품고 머리를 들어 사방을 돌아보며 생각하였다.
‘이 분은 어떤 복이 있는 사람이기에 이런 광명을 놓아 내 몸에 비추시어 시원함을 얻게 해 말할 수 없이 통쾌하게 하시는가?’
그 때 세존께서는 이 독사가 조복한 것을 아시고 전생의 인연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독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자 깊이 스스로 자책하면서 개(蓋 : 번뇌)의 장애구름이 말끔하게 걷히고 자기 자신의 전생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장자였을 적에 지은 악한 업 때문에 지금 이런 과보를 받는 것이로구나.’
이렇게 알고는 비로소 부처님 앞에서 깊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었다.
부처님께서 독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전생의 몸이었을 때는 내 말에 순종하지 않았었는데, 이 뱀의 몸을 받은 지금이라도 마땅히 조복하여 순종하려거든 나의 교칙(敎勅)을 받아라.’
뱀이 부처님의 말씀에 대하여 대답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감히 분부를 어기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만약 항복하고 따를 생각이라면 나의 발우 속으로 들어가거라.’
부처님의 말씀이 끝나자 조금 있더니 발우 속으로 들어갔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죽림(竹林)으로 돌아오셨다.
왕과 여러 신하들은 세존께서 독사를 교화하여 항복시켜서 발우 속에 담아 가지고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자 온 나라 인민(人民)들도 모두 가서 함께 구경하였다.
독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몹시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 이 독사의 몸이 싫어졌다. 독사는 곧 목숨을 마친 뒤에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무슨 복을 지었기에 이 천상에 와 태어날 수 있었는가?’
그리고는 곧 스스로 관찰하였다.
‘인간 세상에 있을 적엔 독사의 몸을 받았었는데 부처님을 뵈었기 때문에 믿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독사의 몸을 싫어하고 미워하였으므로 여기에 와서 태어났고 하늘의 쾌락을 누릴 수 있게 되었구나.
나는 지금 마땅히 돌아가서 다시 불ㆍ세존의 은혜를 갚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는 향과 꽃을 싸가지고 광명을 밝게 비추면서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내려가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공양하여 마친 뒤에 한쪽으로 물러가 앉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마음이 열리고 뜻으로 이해하게 되어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
그리고는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설하여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높고 높은 큰 성존(聖尊)께서는
공덕을 다 원만하게 갖추어
온갖 어둡고 어리석음을 열어 주셨으므로
저는 곧 도과(道果)를 얻었습니다.
번뇌의 때를 제거하고
생사의 바다를 초월하여
지금 부처님의 은덕을 입고
세 갈래 악한 세계의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 천자는 부처님을 찬탄한 뒤에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천궁(天宮)으로 돌아갔다.
그 때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은 부처님께서 간탐의 인연에 대하여 들었고, 그 때 그 모임에 있던 모든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네 가지 사문과(沙門果)를 얻은 이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을 낸 이도 있었는데 모두 환희하며 받들어 실천하였다.”
또 『백연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교살라국(驕薩羅國)에 계셨을 적에 여러 비구들을 데리고 늑나(勒那)나무 아래로 가시는 길에 어떤 못에 이르셨다. 거기에는 매우 사나운 오백 마리의 물소가 있었고 또 오백 명의 소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을 데리고 이 길을 따라 오시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부디 그 길로 가시지 마십시오.
그 물소떼 가운데에는 매우 사나운 물소가 있어서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사람을 상해하므로 지나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소와 양을 기르는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지금 너무 걱정하지 말라. 저 물소가 설령 나를 떠받는다 하더라도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다.’
그런 말씀을 하실 즈음에 사나운 소가 갑자기 달려들어 꼬리를 치켜 세운 채 뿔을 숙여 땅을 긁어대며 큰 소리로 부르짖고 껑충껑충 뛰면서 곧장 앞으로 달려왔다.
그 때 여래께서는 다섯 손가락 끝에서 변화로 다섯 마리 사자를 만드시어 부처님의 좌우(左右)에 있으면서 사방을 호위하게 하고 또 큰 불구덩이를 만드셨다.
그 때 저 사나운 소들은 크게 두려워하며 사방으로 달아나려고 하였으나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고 오직 부처님의 발 앞에 조그만 빈 자리가 있을 뿐이었다.
소들은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고 시원해져서 부처님 앞으로 달려 나왔고, 마음이 태연(泰然)해져서 전혀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없어졌으므로 꿇어앉아 머리를 숙이고 세존의 발을 핥다가 다시 머리를 쳐들고 불ㆍ여래를 우러러 보고는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저 사나운 소들의 마음이 조복되었음을 아시고서 곧 그 소들을 위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왕성한 마음으로 악한 생각을 일으켜
몰려와서 나를 상해(傷害)하려 하였으나
정성을 기울여 수승함[勝]을 얻기 위해
도리어 와서 나의 발을 핥았네.
그 때 저 물소들은 불ㆍ세존의 이 게송을 듣고 나서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단번에 깨달아 번뇌[蓋障]의 구름이 걷혔다.
그리고는 전생의 몸이 인간 세계에 있으면서 악한 업을 지었던 것을 알고는 갑절이나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물풀도 먹지 않고 곧바로 목숨을 마쳤다.
그리고는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는데, 갑자기 몸이 장대(長大)해져서 마치 여덟 살 되는 아이만큼 되어가지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우리는 무슨 복을 닦았기에 이 천상에 태어났는가?’
조금 있다가 관찰하여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세간에 있을 때에 물소의 폼을 받았다가 부처님의 교화와 제도에 힘입어 이 천상에 올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마땅히 돌아가서 부처님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는 향과 꽃을 싸가지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밝게 빛나는 광명으로 불ㆍ세존을 비추며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서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부처님께서 곧 그들을 위해 사제법(四諦法 : 苦ㆍ集ㆍ滅ㆍ道)을 설명하시니,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뜻으로 이해하여 수다원과를 증득하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돈 다음에 다시 천궁(天宮)으로 돌아갔다.
그 때 오백 명의 소치던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왔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설하시자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각각 도적(道迹 : 須陀洹)을 얻고서 출가(出家)하기를 구하였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잘 왔구나. 비구들아.’
이렇게 말씀하시자 수염과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法服)이 몸에 입혀져 곧 사문이 되었다. 그들은 열심히 정진하고 닦아 익혀서 모두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였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이런 일을 보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이 물소가 또 저 오백 명의 소치는 사람들은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물소로 태어났으며, 또 무슨 복을 닦았기에 불ㆍ세존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처들이 전생에 지은 온갖 악한 업의 인연에 대하여 알고 싶으냐?
지금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말해 주리라.’
그리고는 곧 게송을 읊으셨다.
전생에 지었던 착한 업과 악한 업은
다섯 겁이 지날 때까지는 없어지지 않는다.
저들은 선한 업을 지은 인연 때문에
지금 이와 같은 과보를 얻었느니라.
‘아 현겁(賢劫) 동안에 바라내국(波羅奈國)에 부처님께서 출현하셨는데, 그 부처님의 명호는 가섭(迦葉)이라 하였다.
저 부처님의 법 안에 어떤 삼장비구(三藏比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오백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다른 나라를 유람하며 다니다가 대중들 앞에서 서로 논의(論義)할 때에 따져 질문하는 이가 있으면,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곧 화를 내면서 도리어 나쁜 말로 꾸짖었다.
〈너희들은 지금 분명히 아는 것도 없으면서 억지를 써가며 나에게 질문하여 난처하게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소가 저돌적으로 사람에게 달려드는 것과 같구나.〉
그 때 여러 제자들은 모두 다 그 말이 옳다고 하였고 저들은 각각 흩어져 돌아갔었다.
이런 나쁜 말로 지은 업의 인연 때문에 오백 생 동안 물소가 되었었고 또 소치는 사람이 되어 서로서로 따라다녔으며, 나아가 오늘날까지도 아직 벗어나지 못했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알고 싶으냐? 그 때의 삼장비구는 지금 이 물소떼 가운데 바로 가 장 사나운 불소요, 그 때의 저 오백 명의 제자들은 지금의 저 소 치는 사람들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물소의 인연을 설명하셨을 때에 비구들은 각각 몸ㆍ입ㆍ뜻의 세 가지 업을 스스로 단속하고 나고 죽음을 싫어하고 미워하여 네 가지 사문과(沙門果)를 증득하였으며, 어떤 이는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마음을 내기도 하였다. 그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실천하였다.”
정보송(正報頌)을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진에(瞋恚)가 무거워
지옥에 들어가서 불에 태워짐을 당하고
승냥이와 이리 따위가 앞다투어 그를 에워싸며
독사들이 앞다투어 그의 앞으로 달려온다.
뻐드렁니에 부릅뜬 눈으로 그를 잡아 먹고
등어리와 옆구리를 가로 세로로 뚫어 댄다.
스스로 지어서 다시 스스로 받나니
분노의 불길이 다투어 서로를 태운다.
습보송(習報頌)을 말한다.
성내는 마음은 독해(毒害)가 많아서
고통스럽고 악한 세계에 침몰되고
거기에서 나와 사람의 몸을 얻는다 해도
남은 과보 때문에 다시 다른 이에게 괴로움을 받는다.
보는 이마다 모두 그의 허물을 찾고
더욱 혐오하여 마치 독초(毒草)처럼 여긴다.
여기에는 이미 마땅한 이익이 없나니
어리석게 성내는 것을 어찌 보배로 여기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