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 차코캐니언은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블랙홀이 되었다.
건축을 위한 수십만 구루의 큰 나무가 들어왔고, 도기가 수입되었다.
특히 후기에 들어서는 도기를 구울 땔 나무가 부족해서 삶에 필요한 모든 도기를 수입해야 했다.
또한 돌연장을 만들기 위한 양질의 돌도 수입되었고, 뉴멕시코의 다른 지역에서 장식품용 터키 옥도 수입햇다.
호호캄과 멕시코에서는 머코 야자, 조개 세공품과 구리종(鍾) 등 사치품을 수입했다.
또한 네이선 잉글리시가 푸에블로 보니토에 사용된 들보의 출처를 추적하려고 사용한
스트론튬 동위원소 분석법을 그대로 사용해서
역시 푸에블로 보니토에서 발견된 옥수수 속대의 출처를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식량까지 수입한 것으로 여겨진다.
요컨대 9세기 경부터 옥수수는 서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추스카 산맥에서 수입되었고,
푸에블로 보니토의 마지막 층에서 발굴된 옥수수 속대는
북쪽으로 95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샌환 강변에서 12세기에 수입한 것이었다.
차코 아나사지는 작은 제국으로 변해가며,
사회가 호화롭게 사는 지배계급과 노동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역할을 맡는 농부계급으로 나누어졌다.
도로망과 규격화된 건물 들에서 그 문명의 드넓은 면적을 짐작할 수 있다.
차코와 주변 정착촌들은 경제와 문화적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건물 양식에서 세 단계의 신분 구분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차코캐니언 내에 위치한 그레이트 하우스라 불리는 가장 큰 건물들(족장들의 거쳐였을까>),
캐니언 외곽에 세워진 그레이트 하우스(소족장의 '장원'이었을까?).
그리고 서너 개의 방을 가진 작은 가옥(눙부의 집?)으로 구분된다.
상대적으로 작은 건물에 비해서 , 그레이트 하우스는 돌을 정교하게 쌓은 외장이 돋보이고
종교 의식(요즘의 푸에블로 마을에서도 여전히 시행되는 종교 의식과 유사했다)에 사용된 그레이트 키바스처럼 웅장하며,
전체 면적에 비해서 창고 면적이 유난히 큰 특징을 갖는다.
게다가 그레이트 하우스에서는 터기 옥, 머코 야쟈, 조개 세공품, 구리종 들과
수입한 사치품들이 일반 가옥에서보다 훨씬 많이 발굴되었다.
그밖에도 밈브레스와 호호캄에서 수입한 도기들도 눈에 띄었다.
현재까지 사치품이 가장 많이 발견된 곳은 푸에블로 보니토의 방 먼호 33번이다.
이 방에서는 14구의 시신 이외에 5만 6,000점의 터키 옥과 수천 점의 조개껍질 장식품이 출토되엇다.
특히 눈에 띄는 사치품은 2,000개의 커키 옥으로 만든 목걸이와
터키 옥으로 모자이크 장식되고 터기 옥과 반짝이는 조개껍질이 가득 채워진 바구니였다.
족장이 농부보다 헐씬 잘먹었다는 증거는 그레이트 하우스 근처에서 발굴된 음식물 쓰레기에서 찾아진다.
일반 가옥에서 나온 쓰레기에 비해 사슴 뼈와 영양 뼈가 헐씬 많았다.
그 때문인지 유골이 더 컸고 영양 상태도 좋았으며 빈혈증세도 거의 없었다.
또한 영아의 사망률도 더 낮았다.
외곽의 정착톤들이 수도 격인 차코에서 어떤 물질적 반대급부(反對給付)도 받지 않으면서
목재, 도기, 돌, 터키 옥, 식량 등을 의무적으로 공급한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날 이탈리아와 영국에서 외곽 지역들이 로마나 런던과 같은 대도시를 지원하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즉 대도시는 목재나 식량을 생산하지 않지만 정치와 종교의 중심역할을 하지 않는가!
요즘의 이탈이아 사람들이나 영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차코 사람들도 복잡하게 얽힌 상호 의존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캐니언에서 나무들이 사라졌고, 우곡이 밭의 높이보다 낮아졌으며,
인구가 증가해서 이동하며 살 만한 빈 공간이 남지 않아,
과거처럼 이동하면서 자급자족하는 작은 집단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피니언 소나무와 노간주나무가 베어지면서 땅의 영양분까지 씻겨나갔다.
그로부터 800년이 지난 지금, 팩랫 똥더미 근처의 어디에서도 피니언 소나무와 노간주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팩랫의 똥더미는 서기 1000년 전에는 그곳에 숲이 있었다고 말해주는데 말이다.
고고학 발국지의 쓰레기 더미에서 발굴된 음식물 찌꺼기는 캐니언의 주민들에게 닥친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사슴고가가 식단에서 점점 줄어들면서 작은 사냥감, 특히 토끼고기와 생쥐고기로 대체되었다.
특히 인간의 분석(糞石)에서 머리가 완전히 잘려나간 생쥐가 발견되는 점에 미루어볼 때,
사람들이 들판에서 생쥐를 잡아 머리를 잘라내고 통째로 삼겼을 것이라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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