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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변신 동남아시아의 교훈
글_황두진 / 진행_김정은 기자 / 디자인_정진주
피할 수 없는 고민의 공통의 분모
연재를 시작한 지 반년이 흘렀다. 처음의 생각 못지않게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은 ‘한옥과 관련된 보다 광범위한 논의를 하기위해서 누구와 이야기할 것인가’이다. 국내에는 수많은 선학제현들이 있고 이미 그분들의 도움을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해외라면 어디에서 그 상대를 찾을 것인가?
나는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두기로 했다. 우선 동남아시아는 우리와 목조건축 전통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흔히 이야기하듯 우리 전통건축에 남방계와 북방계의 특성이 공존한다고 했을 때, 동남아시아의 전통건축이 남방계의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실제로 어떤 구체적인 과정을 통해 그렇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실증적 고찰은 역사학의 과제라고 생각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근현대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것이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동남아시아는 식민지, 내전, 반민주독재정권, 그리고 졸속 근대화의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회적 진통을 겪었고, 건축의 변화 과정 또한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이것은 흔히 한-중-일로 아시아를 다 아우르려는 듯한 우리의 일반적 사고와는 궤적을 달리한다. 세 번째 이유는 이 지역에 좋은 건축가가 많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다. 이미 국제적으로 상당한 지명도를 획득한 건축가들도 있고, 무엇보다 사회에서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밀도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남아시아는 매우 광대한 지역이며 환경, 문화, 종교, 인종적으로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곳에서 작업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 결과를 소개한다.
진행과정
기록으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2005년 여름 동남아시아 여행의 경험과 이 지역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 각종 출판물의 내용을 참조하여 6~7명의 건축가들을 선정하였다. 이 선정과정이 엄밀한 객관성과 보편성을 거쳤다고는 보기 어려우나, 글의 목적에는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판단하였다. 선정기준은 전통건축과 관련된 작업을 하는 현대건축가로서, 그 작업의 내용이 자신의 현대건축 작업에 일정 부분 이상 반영되고 있다고 보이는 경우였다. 굳이 건축사적 입장에서 보면 소위 비판적 지역주의 계열의 작가들로 보아도 무방하다. 아무리 지명도가 있어도 전통건축과 관련된 작품이 없거나, 반대로 현대건축을 전혀 하지 않는 경우는 제외하였다. 결국 건축작업에서 지성적 긴장감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이들에게 동일한 설문지를 보냈고, 시간 내에 필요한 자료를 보내준 건축가가 모두 4명이다. 설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반사항
1.자기소개
2.자기 사무실 소개
3.해당 국가의 건축과 관련된 사회적 상황 전반
전통
4. 전통건축이 자신에게 갖는 중요성
5. 해당 국가에서 현대건축가가 전통건축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은지 여부
6. 목수와 같은 전통 기능인들과의 협력 작업 경험에 대한 설명
기술적 문제
7. ‘현대식’건축과 전통건축의 비용 비교
전통건축의 사회적 인프라가 해당국가에 잘 구성되어 있는지 여부
전통건축이 경제, 문화적으로 혜택 받은 소수의 특별한 선택인지 여부
8.구조, 디테일, 재료, 인테리어, 기계, 전기 등에서 전통방식을 개선하고자 노력한다면 그 내용
기타
9. 한국건축 전반에 대한 이해
10.기타의견
설문에 대한 답과 아울러 전통건축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의 사진과 설명을 함께 받았다. 그들이 제공한 자료의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케빈 로우_말레이시아
벤트블록 주택전경
케빈 로우는 흥미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건축을 전공으로, 건축사를 부전공으로 공부했고 미국에서 활동하였으며, MIT에서 가르친 경력도 있다. 자신의 표현에 따르자면, ‘9년만에 말레이시아와 문화적 충격’으로 복귀하였으며 그 후 쿠알라룸푸르의 GDP건축(GDP architects)에서 11년 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2002년 ‘작은 프로젝트(small projects)’라는 자신의 사무실을 열고 건축과 제품디자인, 마스터플랜 등의 작업을 하는 한편 말라야 대학교 (University of Malaya)에서 건축을 가르치고 있다. 특이한 것은 그가 우편함을 계속 디자인한다는 것과 자칭 ‘가든하우스’라 부르는 개념을 중심으로 ‘특이한 건축주들을 위한 특이한 주택들’을 설계한다는 점이다.
지역건축가의 고민
누구를 탓하거나 속상한 일은 아니지만 지역 건축가들은 존경받지 못한다. 발전하는 나라의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전통건축
나에게 전통건축은 배울 것이 있다는 전제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미적, 기술적 입장에서 과거를 베끼는 것은 너무 ‘쉽다’. 전통건축은 기후와 건축문화에 대한 대응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내가 일반적 의미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한다고는 생각지 않으며, 주어진 상황의 특수성에 근거한다는 점에서는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사비에 대해서는 한국도 그렇겠지만, 이미 지어진 전통건축을 통째로 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새로 짓는 경우는 매우 비싸다.
말레이시아 북부지방의 전통가옥, 테렝가누
실내계단. 벤트블록 주택
전통장인
전통장인들이 말레이시아에서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에 직접 일해 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 제습, 공간구획, 환기, 차양, 시간에 따른 노화 등에 대한 세부사항 등을 주로 관찰했다.
한국건축
거의 아는 바 없다. 전통건축에 대해서는 일본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기타 의견
위대한 건축가는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전통과 결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전통과 관계 맺는 사람이다.
작품 :벤트블록 주택(The Ventblock House)
말레이시아의 전통 주택인 ‘캄풍(kampung)’의 기능적 원리들을 중심으로 설계한 일련의 주택 중 첫 번째 것이다. 환기와 습기방지를 위해 땅에서 들어올린 구조인데, 그 사이의 공간은 원래의 목적을 넘어 다채롭게 사용된다. 개방적인 1층 평면은 모임과 의식, 여흥과 식사를 위해 이용되는데, 이러한 성격은 이 지역의 문화적 콘텐츠로부터 비롯되었다. 벤트블록 벽은 서쪽의 태양광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먼지와 이끼가 엄청난 속도로 쌓이는 열대몬순기후를 고려하였다. ‘사파리 지붕’이라 부르는 이중 지붕은 저렴한 재료로 만들어진 경량 구조이다. 기후에 대한 또 다른 고려는 풀장으로 물을 증발시켜 냉방 효과를 노린 것이다. 실내의 계단은 전통주택인 ‘테렝가누’의 목재 계단과 동일한 형태이지만 타공 철판으로 만들어졌다.
안드라 마틴_인도네시아
대표인 안드라 마틴과 협력자인 아비안티 아르만드(Avianti Armand)가 이끄는 사무실로 1998년 자카르타에서 시작하였다. 각각 1962년, 1969년생인 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인도네시아에서 교육받았고 그라하 십타 하디프라나(Graha Cipta Hadiprana)라는 회사에서 함께 근무하였다. 당시 안드라 마틴의 지도 아래 아비안티 아르만드가 작업하였다. 이들은 또한 40대 이하 건축가들을 주축으로 1989년에 결성된 인도네시아 청년건축가협회(Young Indonesian Architects)에서 활동하고 있다. 안드라 마틴의 사무실은 건축 및 지원업무를 포함, 모두 18명 내외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고 주거에서 리조트, 갤러리, 상업시설에 이르는 다양한 건물들을 다룬다.
교실복도, 시칼 학교
복도의 난간은 카유다마르라우트라는 이지역 고유의 목재를 사용
시칼학교는 가능한 대지의 나무를 보존
건축의 초월성(time-less, style-less)
건축은 그 탄생의 기록을 갖고 있어야 한다. 현재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영원한 것을 추구하려 한다. 또한 장소(place)는 기후, 인간적 요소, 기술, 건축재료 등을 포괄하는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다.
인도네시아의 건축 환경
인도네시아의 건축 환경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특히 건축에 대한 중산층의 관심이 놀랍도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거대한 자본이 필요한 프로젝트에서는 건축가들이 주도권을 잡기 어려우며, 내국인 건축가들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종종 외국건축가들이 동원된다.
전통 장인들과의 협력
시간의 시련을 이겨낸 전통건축이 작업의 참고가 되기는 하지만 이미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우리가 전통건축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도네시아에는 아직 전통장인들이 많은데 오히려 이들과의 작업이 의미있다. 즉 전통장인들의 기술을 현대적 디자인과 새로운 재료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매우 구축적(tectonic)이며 참신한 건축이 만들어지곤 한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집을 지으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지만 현대건축과의 비용 비교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전통건축을 RJ리는 것은 비용보다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다. 전통건축과 관련된 사회,경제적 인프라는 없으나 전통건축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대 사회에 잘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건축
한국건축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 없지만 이번에 받은 「공간」의 내용을 통해 한국의 현대건축이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 세계적 건축가들의 작업이 많다는 점이 놀랍다. 그들이 한국에서 영감을 얻듯이 한국건축가들도 그들로부터 많이 배울 것으로 믿는다.
작품
시칼학교, 자카르타(Cikal school, Jakarta)
녹지가 부족한 자카르타의 환경을 고려, 대지 내의 열대과일 나무를 가급적 보존하고 이를 건물과 연계시켜 계획했다. 건물 외장에 사용된 나무는 이 지역 고유의 카유다마르라우트(kayu damar laut)라는 것으로 비에 노출되면 오히려 더 강해진다. 지붕에는 고전적인 구운 진흙 기와를 사용, 전형적인 열대 아시아 건축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학교 설계에서 가장 중요시 여긴 점은 어린이들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에 대해 배우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기존 나무를 가운데 두고 건물의 허리를 끊고 중정을 조성, 그 양쪽에 회의실과 중앙 계단을 설치하였고 수영장, 농구장, 운동장 등 옥외 공간을 넉넉히 배치하였으며, 자연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하였다.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계단실 주변에는 같은 목재로 난간을 벽체처럼 처리하였으며 창문의 위치, 크기 등은 모두 어린이의 치수를 고려하였다. 기타 환기, 채광 등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레박 불루스 주택에는 90도까지 열리는 루버사용
레박 불루스 주택의 안마당
자바플랜트 사무실 내부
레박 불루스 주택(A House in Lebak Bulus)
고령의 여자 건축주를 위해 설계한 이 주택은 새로운 방식으로 열대의 주택을 제시하고자 했다. 90도까지 열리는 유리 루버를 사용하여 채광과 환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였고 가동식 개구부는 방 사이를 구획하는 칸막이로 개방하면 커다란 하나의 방을 이룰 수 있다. 의도적으로 매스의 폭을 좁게 하여, 공기가 잘 흐를 수 있도록 하였다.
자바플랜트 사무실(Javaplant Office)
자바플랜트 사무실 전경
전통 의약품공장의 사무실로 중앙 자바 깊숙한 곳의 농장 근처에 위치한다. 자재와 숙련된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으므로 그 지역의 재료와 비숙련 인력을 반영하여 설계하였다. 새로운 열대 건축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챈수키안과 에스씨디에이_싱가포르
보존되는 아파트에 면한 샌달우드의 후면
말레이시아의 켄양(Ken Yeang)에 이어 또 다른 동남아시아 건축의 기수로 떠오르는 인물이다.미국의 워싱턴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페낭(Penang)에서 태어난 말레이시아 사람이지만 귀국 당시 여러 상황으로 인해 싱가포르에 정착하였다(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됨). 아버지가 건설 및 건축업을 하여 어려서부터 건설 현장에 자주 출입했다고 한다. 아들과 태권도 하는 것을 즐긴다. SCDA는 그가 1995년에 설립하여 현재 33명 정도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회사가 싱가포르는 물론이고 말레이시아, 중국, 태국, 홍콩을 비롯, 인도와 미국, 호주 등 세계를 상대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에이알플러스디(AR+D)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였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최초로 2003년 아키텍처럴 레코드(ARchitectural Record)의 올해의 디자인 선도 회사(Design Vanguard Firm)로 선정되었다.
싱가포르 건축계의 상황
많은 건축가들이 디자인 건축가로 해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각 기관은 국가의 디자인 능력을 보존하는 데 힘쓰고 있으며 그 혜택을 받고 있다.
전통
지역의 건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된다. 전통 목수들은 싱가포르에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2차대전 이전에 지어진 많은 상가주택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많은 건축가들이 이를 복원하거나 실내를 현대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우리가 오래된 건물을 다시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창조적으로 재활용(adaptive re-use)할 뿐이다. 전통건축의 공법이나 기술, 재료 등은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샌달우드의 공동마당
운하에서 바라본 300세대의 레이크사이드 주택단지
한국건축
거의 아는 바 없다.
작품
샌달우드, 싱가포르(Sandalwood, Singapore)
싱가포르 섬 동쪽의 역사적인 페라나칸(Peranakan)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16개의 상점과 23유닛으로 구성된 5층의 아파트가 ㄱ자 대지에 자리잡고 있다. 상점의 정면은 복원하였으나 아파트에 면한 후면은 재구성하였고 인테리어도 완전히 새로 고쳤다. 상점과 아파트 사이의 중정에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풀장과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진 정원이 있다. 아파트 발코니의 바닥을 금속 그릴로 처리하여 위아래에서 통풍과 채광이 가능한 동시에 가볍고 투명한 느낌을 주도록 하였다. 각 건물에는 옥상정원이 있다.
히렌가 상점주택, 말라카(Heeren Street Shophouse, Malacca)
운하를 따라있는 돌난간과 돌계단이 장소의 매력을 더한다
말라카의 역사지구에 위치한 상점주택이다. 지붕과 바닥은 이미 붕괴되었고 벽 또한 위험한 상태였다. 구조체의 균열에는 덤불이 자라고 있었다. 건축주는 명상센터를 만들고자 했다. 건축주의 제안은 이미 붕괴된 것을 다시 만들지 않고 4개의 ‘현대식 상자’로 구성된 방을 건물의 잔해에 설치하자는 것이었다. 기존 구조체는 일종의 ‘발견된 물건(objet trouve, found object)'으로, 이곳에 정착했던 중국인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시각적 증언으로 그대로 남겨놓았다. 이 작품은 그간의 보존 프로젝트에 비해 상당히 진보된 것으로 평가받으며 새로운 거소가 낡은 것, 과거와 현재 사이의 절묘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레이크사이드 주택단지, 상하이 (the Lakeside Ville, Shanghai)
물의 도시인 수저우(Suzhou)를 선례로 만들어진 상하이 교외의 주택단지 계획이다. 물과 자연을 테마로 하여 인근의 운하에서 작은 운하들을 연결하여 단지 내로 끌어들였고 단지 중앙에는 두개의 호수가 있다. 호수와 운하, 수로가 방사상의 배치 속에 주택과 결합되고 있다. 이렇게 전체 마스터플랜에서 개별 주택에 이르기까지 물의 요소와 정원이 교차하면서 안락감과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고 있다. 2층 규모의 건물은 단일 경사지붕으로 구성되었고 건축 언어는 현대적이지만 외벽의 화강암 벽 등을 통해 전통적 지역 건축의 느낌을 살렸다.
에코 프라워토_인도네시아
지붕은 전통적인 형태를 따랐으나 나무 트러스를 이용하여 청의적으로 해석
1958년 인도네시아 자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족자카르타(Yogyakarta)의 가자마다대학교(Gadjah Mada University) 및 암스테르담의 베를라헤 인스티튜트(Berlage Institute)에서 수학하였다. 대학 졸업 후인 1982년부터 바로 개인 건축작업을 시작했으나 회사의 형태를 갖춘 것은 1994년이며 현재는 에코 프라워토 건축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타와카나기독교대학교(Dita Wacana Christian University)의 강사이기도 하다. 주로 소규모 건축물을 다뤄왔으며, 특히 건축과 미술을 결합한 설치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안양유원지의 안양사원(Anyang Shrine)으로 「공간」2005년 12월호에 소개된 바 있다.
건축의 위기
인도네시아에서 건축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이다. 대학에서 펴내는 전문지는 영향력이 적고 신문이나 대중잡지에서 건축을 진지하게 다루기란 불가능하다. 건축은 세계확, 즉 서구화의 주류를 쫓아가는 유행을 hrks주될 뿐이다. 시각적 유혹을 위해 서로 다른 스타일을 섞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자연
자둑하우스의 내부
인도네시아는 인류학적으로 다양한 문화와 건축이 존재하는 것이다. 전통건축은 영감과 지식의 원천이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기도 하다.
전통건축 작업
내가 일하는 족자카르타는 자바 문화의 중심지로 전통이 살아 있기는 하지만,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약해지고 있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젊은 건축가들은 국제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현대적 삶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지역의 전통적 정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지역의 재료와 공법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여 전통건축 자체의 생산이 줄어들더라도 기술은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전통건축 자체만큼이나 기술이 중요하며, 그 기술을 현대적 상황에 사용하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다행히 이 지역에는 전통 장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나는 그들의 언어를 구사한다. 그들 대부분은 시골 출신이다. 나는 엮은 대나무와 같은 전통요소를 많이 사용한다. 건물 전체나 일부 요소를 재활용할 수 도 있다. 근대화와 산업화가 많이 진행된 한국과는 달리 이곳은 아직 과도기이며 나는 두 세계를 쉽게 오가며 살아갈 수 있다.
댄스 플로워에서 바라본 식당, 지니와 란팁하우스
곡면의 벽에서 댄스 플로어를 바라본 보습, 지나와 란팁하우스
전통건축 작업의 실상
아주 좋은 전통건축물은 별로 지어지지 않는다. 오래되고 좋은 나무를 다량으로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장인의 기술은 아직 살아 있다. 대부분 낡은 건물의 복원이나 수준이 앉은 건물들을 다룬다. 그러나 전통건축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주로 외국인들이고 여기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되어 사회적 인프라 같은 것은 없다. 아주 좋은 전통건축물은 현대식 건물보다 4~5배 정도 비싸다. 그러나 단순한 것들은 오히려 절반 정도의 가격이다. 전반적 추세는 목조건축이 비싸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무 가격은 올라가지만 장인들의 급여는 변하지 않고 있다.
한국건축
잘 알지 못하지만 전통건축은 매우 아름답고 세련되었으며 세련화의 절정에 이미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연속되고 있지 못하며 특히 서구화된 현대건축은 몇몇 인테리어 요소를 제외하고는 전통적 뿌리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작품
자둑하우스(Jaduk house)
음악가를 위한 2층 주택으로 나무가 세 그루 있는 교외의 대지에 위치한다. 모든 나무를 보존하였고 건물이 나무와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하였다. 지붕 형태는 전통적이지만 목구조방식을 달리하였다. 역시 전통적 형태와 기술을 현대적 상황과 결합시킨 예로, 공간이 풍부하고 다채롭다. 여기서도 전통건축 부재들을 재활용하였다.
지니와 란팁하우스(Jeannie & Lantip House)
무용가 부부를 위한 주택이다. 거의 시골이나 다름없는 교외지역의 작은 땅에 자리 잡고 있다. 아주 역동적인 곡선의 벽을 갖춘 현대식 주택이면서도 주변에 잘 어우러지게 만들고자 했다. 석재와 목재 등 주재료는 모두 지역에서 나는 것들로 여기에 전통적인 지붕 형태와 창호와 울타리 등을 재활용한 전통건축 부재들을 조합하였다. 하지만 공간적으로는 현대적이다.
지나와 란팁하우스의 베란다, 이웃의 오래된 집과 대화를 만들어낸다
다시한옥으로
다른 나라의 건축가들과 같은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이 4명의 개성 있는 건축가들은 작품과 생각을 통해 그들과 우리의 상황이 서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들 누구에게서도 민족주의적이거나 국수주의적 태도를 찾기는 어려웠다. 기후, 풍토, 문화 등 건축의 영원하고 본질적인 주제에서부터 사고를 전개하려 하고 있을 뿐이다. 즉 그들에게 유효한 건축을 찾는 과정에서 전통건축이 의미를 갖는다는 입장인 것이다.
전통건축에 대한 이들의 생각이 교과서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어디선가 자주 읽어보았던, 한국에 있는 우리도 항상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생각의 흐름을 확인하는 즐거움의 이면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 것이란 기대에 대한 실망이 공존한다. 우리처럼 그들에게도 전통이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무엇이다. 하지만 전통에 대한 이러한 태도 자체가 그 동안 아시아가 공통적으로 겪어왔던 서구화에서 비롯된 문화적 훈련의 결과가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의문을 던져본다.
특히 전통건축의 ‘복제(reproduction, replica)’에 대한 예민하고 부정적인 입장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에서 부분적 ‘복제’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 작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그런 흔적들을 지워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자연스럽고 개성있는 건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복제’자체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겨 놓는 유연하고 자유로운 태도가 오히려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라는 가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건물 전체든, 건물의 부분이든, 개념이든, 디테일이든 사실상 그 어느 것도 ‘복제’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복제하고 자유롭게 발명하는 것이 창작’이라는 단순한 태도가 오히려 우리를 더욱 풍부한 건축의 세계로 인도해 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면 오히려 더 수준 높은 이야기들이 오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한옥, 그리고 전통건축에 대한 그간의 온갖 현학적 논의는 적어도 실천적인 의미에서 우리에게 별로 준 것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손만 무디게 했을 뿐이다. 결국 수많은 예를 통해서 생산되는 결과물들이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획득할 때, 우리는 결과적으로 그것이 유효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일단은 건축가 개개인의 다양한 생각과 실험을 인정하는 풍토가 중요하며, 어떤 선명한 이론적 주장도 시도 자체를 부정할 권한을 갖지 못한다. 그것은 동남아시아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다. 현실이 이론을 낳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서둘러 진행된 이번 기획에 열의를 갖고 참여해 준 4명의 건축가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번 기획의 의도는 물론 전통건축에 대한 그들의 생각, 그리고 그것이 반영된 작품의 실체를 접하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 동남아시아 건축가들에 대한 전반적 이해와 관심이 생기는 계기가 된다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