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공항으로 픽업하러 왔다. 살다보니 이런 호강도 하게 된다. 집 근처에 도착해 화덕피자와 샐러드 하나 시켜 먹으면서 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 없는 사이 춘천에서 테니스하며 생긴 다양한 이야기. 아들은 테니스가 쉽지 않다는 것과 엄마 덕분에 그래도 볼 좀 친다는 사람들이 게임을 해 줘 다행이라고 했다. 아들은 점점 테니스로 얻는 기쁨과 사람끼리의 갈등과 속상함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연변에서 보낸 8박9일, 우리 일행은 이형택 스승인 이종훈교장님 부부와 나, 유샘과 천안의 나영숙. 연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공기의 첫 맛이 중국의 다른 도시와 달랐다. 매케하고 희뿌연하던 북경이나 서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괘청했다. 맞다. 스페인이다. 찬란한 태양에 상큼하게 부는 바람이 바르셀로나의 구엘파크에 앉아 맛 보았던 바로 그 공기였다. 아! 설레임, 그 느낌은 마지막 떠나 오던날까지 나를 지배했다. 가지고 오고 싶었던 맑은 하늘의 흰구름과 나를 유혹하는 맛있는 바람과 여유. 잠재적으로 내가 알고 있었던 연변의 그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바꾸게 한 여행이었다. 조사에 의하면 중국 전역에서 해남도 다음으로 연변이 공기가 맑아 최근 부유한 사람들의 별장지로 사랑받는 곳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연변'을 추측할 수 있는 곳은 식당 서빙 아주머니나 떼밀이 아주머니들이었다. 테니스장에서 유난히 옷을 잘 못 입는 사람들에게 '연변사람 같이 옷을 입었다'는 표현들을 했다. 그래서 아주 못사는 나라, 이웃의 도움을 받아야만 겨우 사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항에서 연길시로 진입하면서 내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달랐다. 거리는 온통 독일이나 일본의 외제차로 가득하고 반듯하게 정돈된 넓은 거리와 고층건물에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한국에 돈을 벌러 오는 사람들은 시골벽촌에 살거나 고위공무원으로 퇴직한 후 활동하고 싶어하는 분들이라고 했다.
한국보다 한 시간 늦은 시차. 1위엔은 170원. 낮은 물가. 공항으로 꽃다발을 들고 나온 연변테니스협회 임원들. 왠지 시골스럽지만 오랫동안 정겨운 여운을 주었다. 아마 이종훈 교장을 환영한다는 뜻이겠지만 덤으로 나의 것까지 하나 더 준비해 주셨다. 임원들의 안내로 맨 처음 간 곳은 냉면집, 짜릿하게 자극을 주는 국물을 먹으면 먹을수록 행복해졌다. 작은 세수대야 만큼이나 큰 그릇에 계란도 하나 통째로 넣고 국자까지 넣어주니 한국식 표현으로 하자면 그야말로 '통큰 냉면'이다.
그곳은 새벽 세시 반이면 날이 밝았다. 우리나라 네시 반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해가 무척 일찍 떴다. 새벽마다 주변을 걸었다. 새벽 시장은 물론이고 도시 한 가운데를 흐르는 블루하통강 주변에 만들어 놓은 조깅코스, 인민공원등 일주일을 돌다보니 얼추 감 잡을 수 있었다. 거리마다 한국 유행가가 흐른다. 그 이른 새벽부터. 내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한국인듯 싶다가도 새벽 시장에 가면 중국인들 특유의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통에 정신을 잃기 십상이다. 정신차려야 한다. 고샅마다 열리는 새벽시장을 자주 갔는데 그 중 강가에 여는 시장이 제일 활발했다. 10위엔이면 야채며 과일을 사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 돈 1700원. 블루베리와 장뇌삼. 매로 찰떡을 치는 풍경등 볼거리 많은 그 시장에 서면 현지인들의 생활 모습을 한꺼번에 다 볼수 있다.
8월 1일, 짐을 풀고 실내코트에서 운동후 만찬 2일, 북한의 회룡마을 보기 위해서 이동, 두만강이 가로막고 있는 북한의 회룡마을은 잘 정돈된 기와집들이 많았으나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두만강과는 달랐다.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 내가 본 두만강은 황토색 강물이 거의 바닥만 채우고 있어서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북한의 산들은 모두 민둥산, 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탈출 하는 사람을 쉽게 찾아내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고 또 하나는 뗄감으로 모두 나무를 베어다가 썼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북녘의 하늘은 왜그리 청청하던지, 그 민둥산 위의 흰 구름은 왜그리 아름답던지, 속절없이 한숨이 나오던 아픈 순간이었다.
윤동주 생가를 들르다. 29세 생체 실험으로 죽은 윤동주. 발걸음 뗄 때마다 돌에 새겨진 그의 생생한 싯귀가 눈에 밟혔다. 최초의 교회. 그 안에 진열된 윤동주의 역사들. 아직 미완의 기념관. 아담한 생가, 파란 하늘과 구름과 태양이 어울려 완벽한 선진국 하늘을 연출. 과거는 흘러갔고 윤동주는 오래전 죽었지만 우리들 가슴에는 여전히 살아 있다. 별을 노래하던 윤동주를 종일 생각하다.
오후 연변에 도착해서 금영클럽에 가서 운동, 금영 클럽은 우리나라 노래방 기기를 만드는 공장에 코트가 있었다. 김용혁 연변회장님께서 저녁 만찬 준비. 부인이 판사로 재직중이라는데 아들 관우까지 함께 나와서 식사.
3일. 도문시로 이동 이형택 스승 이종훈 교장이 도문 제1초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모인 강당에서 강의하다. 그에 앞서 리승림9만11세)이라는 도문시 지성소학교 5학년 생을 만났다. 처음에 손을 점검하고 그 다음 양말을 벗게해서 발을 보았다. 테니스를 잘 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이 길어야 하고 평발이 아니어야 한다고 강조. 이 학생은 10월 패트런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강의 주제는 생(生) 고진감래(苦盡甘來) 체인지(change)등을 강의
연변으로 돌아와 오후에 실내코트에서 연변여성테니스 협회 회원들 발리를 지도하다. 포핸드는 대포알인데 하나같이 발리를 못해서 두 시간동안 지도하며 게임을 하다.
또 양양 비행장에서 출발한 원주팀이 오후 8시경 도착하기로 되어 있던날. 하지만 폭우로 그 다음날 새벽 도착. 20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 있었다니 고생 엄청함. 져녁 만찬을 기다리다가 우리끼리 전주 비빔밥집에서 해결. 이종훈 교장님께서 밥을 사다.
4일- 원래는 백두산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원주팀 때문에 하루 연기. 아침 식사후 도문시로 이동. 도문협회 임원들과 교류전. 원주팀 임원은 총 9명. 도문의 양창휘 회장님께서 저녁만찬 준비. 쓰리랑이라는 식당. 푸짐한 대접. 같은 동포라며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에 감동. 북한말을 그대로 하며 북한춤을 추던 양회장의 여동생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5일- 백두산으로 출발 가는길에 용정중학교를 들르다. 애국자를 많이 길러낸 곳,. 두근거리는 가슴, 3대에 걸쳐 음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데.. 해발 2744인 천지는 시어머니 표정과 같아서 5분 단위로 날씨가 바뀐다고 하니 운에 맡길 수 밖에.
멀고 먼 곳. 네 시간쯤 달렸을까? 자꾸 미끄러져 내려오는 버스에서 용을 쓰다 장백산에 도착. 백두산과 장백산은 같은 뜻. 머리가 흰 산. 늘 만년설이 있다는 뜻. 가는 길에 이도백과에서 점심. 그 이후 입구에 도착. 인산인해. 기다리다 지쳐서 먼저 장백폭포로 향함. 그 아래 로토루아에서 보았던 온천, 땅에서 뜨거운 물이 솟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인산인해. 돌아보고 천지를 향하는 코스로 다시 이동. 봅슬레이 경주하듯 달리는 봉고차에 몸을 싣고 구비구비 순식간에 변해가는 주변 경관에 놀라고..금새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모습에 가슴 두근두근. 비가 쏟아지면 어쩌나 하면서 자꾸 창문에 집중. 겨우 도착. 정상은 날씨 화창. 날아갈듯 거친 바람이 불고 코끝이 시려울 정도. 꼭 와보고 싶었던 곳. 다 내려간 뒤 마지막으로 하산. 두 손 모아서 기도. 손시려 손이 쥐어지지 않았다.
6일- 돈화시로 이동. 아시아에서 제일 큰 대불사를 관람하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다. 그곳은 노란 리본이 아닌 빨간 리본이 많이 묶여 있었다. 소망을 적어서 그렇게 곳곳에 달아 놓으니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붉은 꽃 같았다. 불상을 보기 위해서는 계단 200개 이상 올라가야 한다. 점심 만찬후 테니스 교류전. 저녁은 공산당 간부 별장으로 초대받음. 양 한마리 잡아서 대접. 그곳은 베트남의 단랏처럼 연길보다 2~3도 낮음
7일-실내코트에서 운동. 그곳에서 여산송씨 지정공파인 젊은 청년을 만남. 테니스 지도자 한다고 했음. 저녁은 원주와 연변의 10주년 행사 만찬에 참석.
8일- 혈액원 실내 코트에서 우리팀과 김훈 검사와 함께 운동. 몸이 녹을 정도로 함. 원주팀은 떠나고 저녁에 그동안 고마웠던 연변 분들께 우리 팀에서 저녁 식사 대접. 온사보에서 맥주마심. 온사보 맥주에는 환각제가 섞인듯.
9일- 새벽 운동, 다섯시 부터 세 게임후 짐싸들고 공항으로 이동. 마지막까지 도움주신 연변시 테니스 협회 임원들께..심심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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