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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차 낙남정맥 산행
장전고개-덕산-봉관산-필두봉-용암산-깃대봉 -발산재
2015.01.04
산행거리 20.5km
산행시간: 8시간 30분
08:31
새해 첫 산행
장전고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람은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람의 면목이 보이듯 대간을 탄 사람은 대간을 종주한 사람의 면목이, 정맥을 탄 사람은 정맥을 탄 사람의 면목이 보여야한다 그래야 제대로 견성한 사람이다 대간을 타고, 정맥을 탄 사람이 아직도 편협한 자신 속에 갇혀 있다면 자신의 신발 하나 넘지 못한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잔잔한 고성 앞바다
고성 앞바다가 잔잔하게 보인다 추위를 예고한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이 봄날처럼 포근하다 거추장스러운 옷가지를 다 벗어버린다. 얼마 걷지 않아 머리에 땀이 차 모자도 아예 벗어버렸다. 아침을 짜게 먹어서인지 초장부터 물이 캐였다.
산을 넘는 송전탑을 보니 우리 산업의 역동성이 느껴진다.
오늘 산행은 고무신님의 고향 뒷산을 거쳐가게 되어있어 성묘를 위해 고무신님이 앞서 걸어가셨다. 아버님 산소에 놓으라고 귤 몇개를 집어주었다 함께 가서 고마운 길동무 세상에 내려 주신 아버님께 절을 드리고 싶었지만 내 걸음의 형편이 여의치 못한 관계로 혼자 떠나보낸것이 자못 아쉬웠다.
얼마 안가면 나올 줄 알았던 배치고개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연화산
배치고개 가는 길에 여념집 처녀처럼 다소곳이 앉아있는 연화산을 보았다. 신라 천년고찰 옥천사가 있는 연화산. 연화산만 바라보아도 옥천사 맑은 물맛이 느껴진다.
덕산
올해 첫 산행에서 만난 첫산이니 올해 처음 오른 산으로 기록될것이다 목표가 없이 산에 오르는 사람은 없다 크던 작던 다 한가지 목표가 있다 하지만 삶의 목표라는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指南의 방향인것이지 지나치게 목표에 경도된 삶은 무미건조해 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목표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산행 그 자체에 충실할려고 한다 완주는 오로지 결과일 뿐이다.
배치고개
고성군 마암면 신리 고무신님의 고향마을과 개천면 좌연리를 잇는 고개로 1007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성묘를 마친 고무신님이 먼저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산길을 걸어 고향 마을을 지날 때의 기분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소먹이던 언덕 친구와 뛰놀던 뒷산 그 추억 속의 길을 어른이 되어 다시 밟을 때의 기분.
나는 초량에서 태어나 지금도 구봉산이나 구덕산 수정산을 지나게 되면 마음이 금방 옛날로 돌아가 한결 심신이 가벼워지는것을 느낀다. 아마 고무신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일것이다.
고성군 마암면 신리
고.마.신
고무신님의 어린 시절이 깃던 고향 이름. 고무신님의 닉네임도 여기서 탄생했다 고마신,고성군 마암면 신리 얼마나 고향에대한 사랑이 애틋한가! 지금은 부르기 쉽게 치기어린 마음으로 고무신 고무신하고 부르지만 그의 닉네임에는 고향 사랑이 깊숙히 깃들어 있다.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며
신고개
매봉산 갈림봉에서 5분여 내려오니신고개에 당도한다 뜬금없이 입산금지의 표지가 서 있다 혹시 산불 감시원이 있는지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그냥 통과한다.
탕근재
봉우리 모양이 머리에 쓰는 宕巾(탕건)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경상도 사람들의 고질병인 으와 어의 구분불명으로 탁건재가 탕근재로되어 무슨 한약 재료같은 지명이 되어버렸다
봉광산
주변에 진달래가 많고 성질 급한 진달래꽃이 드문 드문 피어있던 봉광산
새터재
새티
새티(鳥峙) 원래는 조치라하여 이 동네 이름을 조치리라 하였는데 이름이 요상하다하여 새 鳥에 관을 씌워 鳳峙理(봉치리)라 부른다.
필두산
붓머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인 필두산 정상. 날씨가 더워 그야말로 머리가 먹물을 뭍힌 붓처럼 흥건히 젖었다.
담티재
1002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이다 어린 시절 담을 넘는것을 경상도 말로 담치기라 했다 담티라는 뜻은 담장처럼 길게 둘러져 있는 고개를 의미한다. 담티재나 담티고개의 재나 고개는 고개를 의미하는 티의 동어반복이다.
부산 우유 청심목장
넓은 초지에 비탈에 선 나무처럼 소나무가 멋지게 서 있다
초지 뒤로 청남동과 소뿔담이 보인다 소뿔담은 동네 뒷산이 보는 바와 같이 쇠뿔처럼 생겼다고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용암산 가는 길
용암산 이름값을 하느라 바윗돌이 띄엄 띄엄 보인다 용암산 오르막은 200여 m를 급격히 쳐오르는 된비알로 평소 체력을 가늠하는 가늠좌의 역할을 했다 산을 오르기 전 미리 힘을 낼만한 음료를 섭취했다 고무신님은 오늘 초반에 힘을 쓴 바람에 다리 통증을 자주 호소했다. 일행들이 달려들어 다리 맛사지를 해 가면서 산을 올랐다. 이런것도 하나의 추억이요 情이다.
용암산
용암산 급하강 길을 겨우 벗어나 다시 옥녀봉으로 향하는 일행들
옥녀봉
꼬질 꼬질한 옥려봉 표시가 없었더라면 옥녀봉인지도 모르고 지날 뻔 했다. 용암산에서 급한 경사길을 내려와 다시 솟구치듯 쳐오르는 봉우리가 옥녀봉이다 옥녀란 원래 구석진 곳에 숨겨 논 첩처럼 외진곳에 있는 봉우리를 말하는데 산길을 힘들게 쭉 이어 걷다보니 어디가 어딘지 감각마저 무뎌져 천지분간을 못하고 걷게되었다
남성치
선동 마을 남성치로 내려왔다 길은 다시 가벼운 황토길로 이어진다
벌밭들
이번 산행길 최고의 미스터리는 바로 벌밭들이란 지명이다 산꼭대기에 어울리지 않는 지명이다 벌,밭,들 어느것 하나 높은 산과 어울리는 지명이라기 보다는 평지에 어울릴법한 지명이 아닌가. 구만면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해보았지만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벌밭들의 원 지명은 풀꾹새산이라고 한다. 풀꾹새라면 뻐꾹새를 말하는것으로 나른한 봄날 뻐꾹새 울음소리 울려 나오는 산이 금방 연상된다 벌발들 벌발돌등 여러지명으로 혼용된다는데 그 의미는 도대체가 오리무중이다
적석산의 멋진 위용
준봉산 깃대봉 0.7km 란 푯말이 일말의 안도감을 주었지만 0.7km란 거리가 위안을 주기보다는 뭔가 음모가 숨어있는듯 불안감이 먼저 음습했다.
그만큼 지쳤다는 뜻일것이다 살찐 사람들의 두개로 불어난 턱처럼 산은 이단으로 고도를 높이며 사람을 괴롭혔다.
하기야 산이 무슨 문제인가 산은 사람을 초대한 적이 없다 다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어쩌겠는가 이제 와서 삼보 일배의 자세로 안간힘을 발휘하여 산을 오른다.
적석산
적석산의 명물 구름다리가 뚜렷이 보인다 낙남정맥 한구간에 저런 산을 8-9개 넘게되는데 정작 저 산을 탈 즈음에는 적석산도 내겐 버거운 산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올라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미 두차례나 다녀왔기 때문이다.
16:13
깃대봉
사실 이 봉우리의 이름은 깃대봉이 아니라 가나무봉이다 국토정보지리원에 의하면 528.6m로 표기 되어있지만 이 비석에는 520.8m로 기록되어있다. 8자가 0자로 바뀐것이다.
비석 뒤에는 실명제로 비석을 세운 단체의 이름이 세겨져 있는데 "진양농업인 산악회." 왜 이랬을까?
지도상으로는 깃대봉을 지나면 줄곧 하산길이었지만 실제 길 사정은 많이 달랐다 지도가 지니는 축약성의 함정이다
깃대봉 지나 올망졸망한 암릉길이 요부가 흔드는 꼬리처럼 아기자기하게 이어진다. 모처럼 터진 시원한 조망에 신명이 날법하지만 발이 아프고 피곤해 암릉길이 오히려 더 조심스럽다. 엉거주춤 바위를 내려가는 내 꼴이 내가 생각해도 가관이다
복수의병장 준봉 고종후의 호를 따서 붙인 산이름이다 복수 의병장이란 뜻은 임란 당시 금산 전투에서 사망한 아버지 고경명과 아우 고인후의 복수를 위해 의병장을 자처한데서 유래한다.
여기 준봉산의 고도 520m는 사실 깃대봉의 고도이고 실제 준봉산은 490m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되면 주봉이 부봉보다 고도가 더 낮아져 준봉산이란 이름이 무색해져 버린다 모르겠다. 어디 공무원이 무슨 뜻으로 고도 표시를 이처럼 이상하게 기록했는지 .
25시
하루의 24시간이 모두 끝나고도 영원히 다음날 아침이 오지 않고 아무도 구원해줄 수 없는 최후의 시간을 25시라고 한다. 예상했던 산행 시간이 끝나고도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문득 게오르규의 25시가 떠올랐다. 모든것이 허탈하고 극심한 피로와 함께 우울감이 밀려와 기도마저 포기해 버리고 싶을만큼 기력이 급격히 쇠진하였다. 이런 류의 산행을 계속해야할지에 대한 근원적 회의가 밀려왔다. 산행을 끝마친 뒤의 보람이라던지 다음 산행에 대한 가벼운 희망이나 열망이 아니라 허탈과 자기 연민만 가득한 산행이라면 애써한 고생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산행을 위한 산행이 되어서는 안된다. 보다 생산적인 산행이 되어야한다.
깃대봉 지나 아기자기한 암릉구간이 계속된다 산길과 조망은 모처럼 좋았지만 고생의 표시가 역력한 일행들의 낯빛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진주시 이반성면을 뒤로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쉬어간다
효열공 고종후 묘소
유방백세의 비석이 서 있다 향기가 백세에 흐른다는 뜻으로 명성이나 공적이 후세에 길이 전해진다는 뜻이다
17:05
2번 국도와 발산재
발산재의 鉢(발)은 바리때를 의미한다 절에서 쓰는 스님의 밥그릇을 엎어 논 지형이라는데서 유래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은 진주를 지키는 전초였는데 고종후 장군등 선열들이 여기서 격전을 벌이다 전사하였다.
- 후 기-
간장게장을 발라먹을 때 구석 구석 마지막 남은 미세한 살점마저도 알뜰히 파먹듯 내 몸 온 구석의 기력이 일시에 방전되는 기분을 발산재 내려오는 시멘트 포장길에서 느꼈다.
굴러가도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숨길 수 없는 짜증과 허탈이 물밀듯 밀려와 나를 괴롭혔다. 역경을 이겨낸 즐거운 성취감이 아니라 내 몸과 정신에대한 짙은 회의가 심신에 넘쳐났다.
산행 말미에 이토록 진한 절망이 찾아 온것은 몇해 전 지리종주(백두대간 산행 때 말고 을숙도 마라톤 팀과 두번재 지리종주를 마치고)후 처음이다. 그 때는 정말 산을 떠올리는 모든것이 싫어져 유부초밥조차도 먹지 않았다.
삶의 열의가 식고 기도마저 귀찮아진 시간. 25시.
하지만 그런 순간 조차 새로이 차오르는 맑은 샘물처럼 내 몸 구석 어딘가에서 새로운 희망의 선혈이 기적처럼 스며들고 있으리란 기대가 위태한 나를 부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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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후미에서 고생 많습니다.
산행하기도 바쁜데 꼼꼼하게 사진까지 챙기시고 산행기도 리얼하게 지리적으로 특성을 적는것 보면 산꾼이 다 되었네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산꾼이라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만
산꾼의 경지에는 근처도 못가겠고 그냥 길쟁이에 만족할렵니다
늘 꼬랑지에서 심려를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들도 최선을 다해 성심껏 걷고있답니다.
낙남정맥 끝나는 그날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늘 감사해요^^*
@poll 2015년 첫 산행 !!
빨레판산행이 고난이 시작일까?
아니면 향상 건강에 유의 하면서 조심의 경고일까?
난 두번째것에 무게를 두고 고난극복을 하리라 맴을 먹고
올 한 해도 님들과의 좋은 산행을 다짐하면서 첫 해 첫 사진
잘 보고 잘 읽고 그 주의 새새함에 탄복하면서 행복을
느끼면서.. 올 한해도 형님의 건승을 빌닙니다.핫~~팅
@구름나그네2 동료라는것이 이래서 좋은거군요
가령 나는 도저히 힘이 없어 어떻게던 포기할려고 눈치를 보는데 옆에 같이 걷는 동료들이
씩씩하게 걷는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 뭔가 약한 모습 보이기 싫다거나,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약한 마음을 접게 됩니다.
결국 옆 동료들이 잘 걸어야 저도 잘 걸을 수 있다는 논리죠.
그러니 나그네님 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