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일곱 머리, 열 뿔의 짐승
신성한 매실 758
그러면서도 한편, 최림은 머리를 저었다.
“그런 쟁쟁한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필요할까?”
“물론이지. 우리에겐 합법적으로 일할 사람이 필요해.”
“합법적이라니?”
“너 같은 경찰 말이야. 요즘 악령들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거든.”
“어떤?”
“말 그대로야. 합법적인 기업을 위장한 사업체, 불법 사채, 인신매매, 도박장 운영 같은 거.”
“그렇구나.”
최림이 수긍하자, 이번에 아이가 의자를 바짝 당겼다.
“제일 큰 이유는 너와는 달리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안 보이잖아.”
그제야 최림은 탁자를 쳤다.
“그렇지!”
깔깔.
하하.
그때였다.
조용하던 술집에 소란이 일었다.
“뭐야?”
대뜸 함께 술 마시던 청년 중 한 명이 병을 깼다.
쨍그랑.
그러더니 앞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청년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아마 술을 마시다 그들끼리 시비가 있은 모양이었다.
놀란 주인과 손님들이 비명을 질렀다.
최림은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아이가 말렸다.
“그대로 있어. 넌 아직 안 돼.”
아이는 서서히 일어서더니 번개같이 청년 뒤로 날아갔다.
퍽!
‘아악!’
“아아 ~ 여기 계시는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놀라운 일이었다.
청년 뒤에 시커먼 악령이 아이에게 ×나게 두들겨 맞더니 단숨에 도망갔다.
“이런! 이 동네에 이런 새키들이 왜 이리 많냐!”
아이는 손을 털며 빙긋이 웃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청년과 함께 술 마시던 자들은 영문을 몰라 했다.
아이와 최림은 느긋하게 술을 마셨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있었다.
방금 도망친 놈이 잠시 후 여러 놈을 대동하고 술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누구냐! 누가 우리 막내를 이리 때렸어!”
술집 안으로 무지막지한 놈들이 들이닥쳤다.
다들 서슬이 퍼렜다.
특히 맨 앞에 선 놈은 악령이 아니라 사람 같았다.
일상적으로 사람을 패는 조폭.
“어쩌지?”
최림은 놀라는 척했지만, 아이가 해결할 줄 알았다.
아까 아이에게 맞은 놈이 손가락으로 최림 쪽을 가리켰다.
“저놈들이야!”
맨 앞에 놈이 다가왔다.
성큼성큼.
아이가 뒤를 돌아보다 놈과 눈이 마주쳤다.
“네놈이야?”
“아니, 놈이 아니라 년이지.”
아이는 호기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앗!’
그런데 아이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최림이 보기에 왠지 아이의 모습이 위태로웠다.
“왜 그래?”
아이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너! 달리기 잘해?”
“뭐?”
“잔말 말고 하나, 둘, 셋 하면 뛰는 거다.”
그러는 사이에 놈의 주먹이 날아왔다.
아이가 급히 피하면서 최림에게 소리쳤다.
“튀어!”
아이가 먼저 쏜살같이 밖으로 튀었다.
놀란 최림도 잽싸게 아이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술집 밖에도 놈들이 있었다.
아이는 꼼짝없이 놈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최림은 어떻게 할지 몰라 그냥 놈들 앞에 서 버렸다.
저벅저벅.
술집 안에서 그놈이 걸어왔다.
놈은 서 있는 최림을 간단하게 밀쳤다.
그리곤 아이 앞에 섰다.
“네년이구나. 네년이 그간 우리 애들을 족친 년이네.”
철썩!
놈이 사정없이 아이의 뺨을 때렸다.
‘아악!’
짝!, 철썩!
순식간에 아이의 뺨에서 피가 튀었다.
아이는 맞으면서도 최림을 쳐다보았다.
최림은 놈들의 숫자가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대로 아이가 당하게 할 순 없었다.
최림은 있는 힘을 다해 아이를 때리는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퍽!
엇!
놈은 충격으로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이건 또 뭐야? 이런! 이건 사람이잖아.”
놈은 손을 털며 이번에 최림 앞에 섰다.
“웬 놈이냐? 야! 넌 내가 보이나 보지?”
이번엔 놈이 최림의 뺨을 때렸다.
둘러싼 악령들이 웃기 시작했다.
최림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철썩!
짝!
‘에잇!’
최림은 놈의 손을 피해 자기 주먹을 뻗으려고 했다.
그때, 악령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아이가 잽싸게 최림의 손을 잡았다.
“그냥 가자!”
“왜?”
“내 손이나 꽉 잡아!”
휘리릭 ~.
‘이건 뭐지?’
최림은 아이의 손에 잡혀 허공을 날고 있었다.
물론 순식간이었다.
그 짧은 찰나에 최림은 이게 순간이동임을 느꼈다.
그들이 낙하한 곳은 최림의 원룸 앞이었다.
“놀랬지? 미안. 인제 그만 들어가.”
아이는 자기 뺨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당하고만 있지?”
그러자 아이는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놈은 내가 이길 수 없어.”
최림은 아이에게 어떤 사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왜?”
“그놈은 완전체이면서 그쪽 탑(Top)이야.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나.”
“완전체?”
기억이 났다.
스승의 책에서 봤다.
‘그래서 사람처럼 보였구나.’
“이럴 땐 36계가 최고지.”
아이는 웃으면서 주변을 살폈다.
“우리 집에 갈까? 술도 깰 겸 말이야.”
최림은 뭔가 아쉬웠다.
하지만 아이는 단호했다.
“아냐. 난 이제 가야 해.”
“이대로 헤어지는 거야?”
“다음 주 만나. 그때 우리 조직에 함께 가지.”
아쉽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술 잘 마셨어. 다음에 보자.”
“응. 그래 … 요, 누나.”
“짜식. 귀엽긴.”
휘리릭 ~.
아이는 또 순식간에 사라졌다.
최림은 멍하니 아이가 사라진 곳만 쳐다보았다.
집에 돌아온 그는 그날 밤에 오대양 사건과 휴거 사건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무려 1987년과 1992년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부모님이 오대양 사건에 연루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자신이 천계에서 예비된 자라고 믿기 시작했다.
아직 모든 게 혼란스러웠지만 ….
* * *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최림은 꼬마 여자아이를 다시 만났다.
홀린 듯 아이를 따라간 곳은 서울 변두리 폐공장 건물이었다.
밖에서 보면 허름한 곳이었지만, 안은 달랐다.
사무실이 여러 개 있었다.
그중 메인 사무실 안은 마치 거대 정보기관에서 운영하는 아지트 같았다.
여러 대의 대형 컴퓨터와 스크린이 병풍처럼 놓여 있었다.
일하는 사람도 수십이 넘어 보였다.
무엇보다 메인 사무실 간판이 인상적이었다.
‘악령 퇴치 전담반’
꼬마 아이는 메인 사무실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내 이름은 나 미오야. 앞으로 미오 누나라고 불러.”
“미오? 이름이 참 예쁘네 … 요.”
“그럼, 천계에 있을 땐 인기 ‘짱’이었어. 지금도 그렇지만.”
“어련하겠어요? 미오 누나.”
그때였다.
사무실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하이! 미스 나!”
“안녕하세요? 국장님.”
‘국장?’
국장이란 말에 최림은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런데 국장이란 사람은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외국인이었다.
“미국분이야.”
미오가 그렇게 말하자 국장이 환하게 웃었다.
“그때 말한 사람이야?”
국장은 최림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최림이라고 합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우선 안으로 들어갑시다.”
‘한국말도 잘하는데?’
최림과 미오는 그를 따라 국장실로 들어갔다.
그가 인터폰으로 커피를 시킨 후였다.
갑자기 국장은 자신의 의자 뒤에 있는 벽 쪽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스르륵.
최림은 무언가 싶어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세계지도였다.
지도 곳곳에 빨간 점이 흩뿌려져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게?”
최림은 짐작한 바는 있지만 그의 말을 듣고 싶었다.
“참! 내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CIA 한국 지부장이고 이름은 마이클입니다.”
‘CIA?’
최림은 국장이 CIA에서 나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놀랐습니까? 하하. 한국 국정원과 공조하고 있으니 오해는 마십시오.”
최림은 이 일에 국정원까지 동원되었다는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을 수행하기에?”
그러자 미오가 최림의 팔을 쳤다.
“내가 다 설명해 주었잖아. 무슨 일 하긴?”
“그야 그렇지만 …. 이렇게 큰 줄은 몰랐지.”
국장이 씩 웃으며 최림에게 두 팔을 벌렸다.
“미오 씨가 말한 대로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적그리스도 즉, 악령들을 쫓고 퇴치하는 비밀기관입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악령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건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그건 어째서 그렇습니까?”
최림은 정말 궁금해서 반문했다.
그러자 국장은 볼펜 등으로 지도 속의 대한민국을 가리켰다.
“보세요. 다른 나라에 비교하여 한국에 빨간 점이 제일 많죠?”
“네, 그렇네요.”
최림이 보기에도 한국이 남다르게 빨간 점이 많았다.
“1992년 휴거가 일어났을 때 한국에서 제일 많이 공중으로 들려 올라갔어요. 그런데 그때 미국, 일본 및 유럽 일부 나라에서도 휴거를 믿는 신도들이 일부 있었거든요.”
최림으로선 예상한 일이 아니었다.
“휴거는 우리나라에서만 주장하지 않았나요?”
“물론 그렇죠. 그런데 다미선 교회를 추종하는 교회가 여러 나라에 있었습니다. 종주국인 한국에서 분파한 교회였죠.”
“그렇군요. 그래서 악령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각국에도 존재하는 것이네요.”
“맞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
“무슨?”
“미스터 최는 바이러스를 잡을 때 어떤 방법을 쓰는지 혹 아십니까?”
최림은 국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