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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지엔(福建)을 향하여
달이 바뀌어 시월이다. 중국의 건국 기념일인 10월 1일부터 일주일 간의 국경절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이지만 아파트와 좁은 거리를 끼고 있는 빌딩 신축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여느 날과 다름없다. 인민의 나라를 표방하는 이 나라 중국의 꽁런(工人)들은 낮이건 한밤중이건 쉬지도 못하고 묵묵히 공사를 이어가고 있다.
긴 휴일을 맞아 푸지엔성 성도인 푸저우(福州)와 취안저우(泉州)를 이박삼일 일정으로 다녀오기로 계획했었다. 배낭을 메고 아파트 1층으로 내려오니 방역 요원이 현관을 마주하는 12동 쪽으로 의자를 향해 앉아서 지키고 있다. 그저께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주민이 확인되어 동 전체 주민들이 '3일 자가격리+7일 건강관찰'에 들어간 것이다. 호리호리한 체형의 젊은 방역 요원은 접이식 간이의자에 의지한 채 주민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밤새도록 단속하고 있었던지 고개를 가슴팍까지 묻고 있다가 내 인기척에 얼굴을 한 번 세웠다가 다시 떨군다.
무성한 잎사귀로 뒤덮인 프랑스 오동 가로수가 도열한 거리로 나서자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오성홍기가 아파트 담벼락을 따라 한 줄로 길게 내걸려 건국일을 경축하고 있다. 푸르름이 가득한 강남땅에도 계절은 가을로 무르익어 가로수들이 보도 위에 떨구어 놓은 낙엽을 미화원이 쓸고 있다.
전철을 타고 20여분 거리 홍챠오(虹橋) 역으로 향했다. 전철역을 빠져나와 열차 대합실로 향하는 인파가 춘절에 이어 일주일간의 국경절 연휴를 맞아 시작된 거대한 민족 대이동의 일면을 보여준다. 저들 중 대부분은 고달픈 타향의 일상을 잠시나마 떠나 푸근한 고향의 품을 찾아가는 사람들일 터이요 우리의 명절여행족처럼 가족, 친구, 연인 등과 여행에 나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07:54 상하이 홍차오역 발 12:38 푸저우 도착 예정인 G1631호 고속열차에 올랐다. 15호 칸 객실 좌석은 빈 좌석이 하나도 없이 모두 승객들로 가득 찼다. 오랜만에 나서는 출행인데 마음이 설레일 법도 하지만 이른 아침에 물리친 잠을 잠시나마 벌충하려고 눈을 감았다. 비몽사몽간에 열차는 항저우 동역과 주지(诸暨) 역을 지나고 잠깐 눈을 뜨니 진화(金华) 역에서 잠시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을 한다.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이 싱그럽고 푸근하다. 열차는 저장성의 내륙 한가운데 진화에서 푸저우 방향인 남쪽 리수(丽水)로 향하지 않고 서쪽 쟝시성(江西省)의 샹라오(上饶)를 거쳐 갈 모양이다. 샹라오 역이 가까워지자 추수를 앞두고 누렇게 변해 가을색이 완연한 논밭과 3~4층 높이 하얀색 벽면의 농가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이 도시 이름처럼 넉넉하고 풍족함이 넘쳐 보이고 '중국에서 제일 행복한 도시‘로 불린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남쪽으로 머리를 돌린 열차가 난핑시(南平市)와 옌핑(延平) 역을 거쳐 푸지엔성 북서부 산간 지역을 관통해서 동중국해에 접해 자리한 푸저우로 가는 고삐를 틀어쥔다. 산간 지역을 빠져나오는가 싶더니 푸저우 역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 나오고 열차가 역사로 들어서자 높고 낮은 빌딩들이 솟은 도시를 높고 험한 산들이 둘러 싸고 있는 모습이 예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푸저우 전용 코로나19 녹색 코드 확인에 이어 역 밖으로 나서는 모든 승객들을 대상으로 족히 10개가 나란히 자리한 게이트 모형의 검사소에서 핵산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시내로의 진입 절차를 모두 거쳐 역사를 빠져나오니 열차 도착 후 30여 분이 훌쩍 지났다.
푸지엔(福建) 박물원
푸저우 역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 잡아타고 푸지엔성(福建省) 박물관으로 향하며 현지 정보를 파악할 겸 해서 기사 양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푸저우 사람들은 국수를 즐겨 먹지 않고 쌀로 만든 음식을 주식으로 한다. 주당들은 주종을 가리지 않지만 이곳 향토주로 황주의 일종인 칭홍주(青红酒)가 있다. 푸저우는 삼면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형 지형으로 봄 날씨 같은 겨울을 제외하곤 항상 무더운 편이다. 산수가 수려해서 주위에 더위를 피하기 좋은 휴양처가 많다.
중국어 실력이 변변치 않아서 기사분의 얘기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짧은 시간에 푸지엔성과 푸저우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맵거나 짠 자극적인 음식보다 밋밋한 음식을 주로 먹는다지만 이 도시의 지형과 날씨는 산지가 많은 지형에 덥기로 유명한 충칭과 닮았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시후(西湖)의 서편에 접한 후터우가(湖头街)에서 내려 근처 작은 식당에서 면으로 허기를 달랬다. 호수 가장자리 산책로를 따라 줄지어선 굵은 수염처럼 여러 갈래 기근(气根)을 땅으로 내린 용나무(榕树; 뱅골 보리수)가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푸저우를 한 글자로 '용(榕)'로 부르는 것과 연관이 있는지 궁금하다. 서늘한 날씨의 상하이와는 달리 이곳 푸저우의 날씨는 최고 기온이 35도까지 올라 지척에 있는 박물원 입구로 걸어가는데 이마에서 땀이 삐져나온다.
시후 공원에 자리한 박물원 정문으로 들어서니 넓은 광장 오른편에 지구본처럼 둥근 구형 조형물을 올려놓은 족히 3~40미터 높이는 될법한 원기둥이 오벨리스크 마냥 서있다. 푸젠 지역 민가의 특색인 지(几) 자형 지붕, 중국 문물의 정수를 표현한 벽면 부조, 이 지역 토루 형태의 자연관 건물, 물결 모양의 광장 무늬 등이 눈에 띄는 이 박물원은 1953년 설립되어 푸지엔성 박물관으로 불리다가 2002년 신관이 건립되면서 푸지엔 박물원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본관 건물은 지하 1층 포함 지상 3층의 건물로 후이안(惠安) 지역의 핑크빛 마석재(粉红麻石材)를 사용한 건물은 우아하고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박물원 본관의 넓고 높은 계단을 오르면 곧바로 2층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오는데 이처럼 입구를 계단 위 2층으로 통하게 설계한 것은 일면 건물에 상승감을 주고 웅장하게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어 보인다. 하루 뒤 찾은 취안저우의 민타이(閔台) 박물관 또한 이와 유사한 건축 양식인 것을 보면 푸지엔 지역의 박물관 건축의 유사성이 엿보인다.
입구에서 코로나19 건강코드를 확인하고 중국 다른 성시(省市)의 박물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선사시대로부터 석기와 청동기 시대를 거쳐 고대와 근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유물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각오를 다지며 박물원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 홀 맨 안쪽에 자리한 '시진핑 서신 선집(選集)' 주제의 서예 작품 전시관이 눈에 들어온다. 서예 작품의 내용과 형식은 서로 떼어서 감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내용에 대한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고 서체를 살펴볼 겸 해서 전시관을 훌쩍 한 번 둘러보았다. 백년대계 교육위본(百年大計 敎育爲本), 불망초심 여시구진(不忘初心 與时俱進), 공재당대 이재천추(功在當代 利在千秋), 문이재도 회즉흥방(文以載道 汇則興邦),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券書 行萬里路),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齐放 百家争鸣),... 시 주석이 옛 사서나 고시 등을 인용하여 행한 주요 행사 연설이나 치사 등의 내용을 다양한 서체로 쓴 작품들이 너른 전시관을 채우고 있다.
맞은 편 ‘푸지엔 고대문명의 빛’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 모형과 거주지, 그리고 이 지역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 도기 등 각종 생활 도구와 장신구들이 맨 먼저 관람객을 맞고 있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 설명과 암각문자 등 유물, 상나라 시기의 도기, 서주(西周, BC 1046~BC 771) 시기의 청동 종, 술잔, 화살촉, 청동검, 1958년 발굴되었다는 48만m²의 우이산성촌 민월(闽越) 왕성 유적 모형도 등이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시간의 동굴에서 나와 밝은 불빛 아래 놓여있다.
서한(西漢, BC 202-AD 8) 시대의 유물로는 중국 다른 지역의 박물관에서는 보지 못했던 도자제 수도관을 비롯해서 와당, 기와, 선박 모형, 화살촉, 철제 도끼, 향로, 도병(陶瓶), 주전자, 옥 거울, 쟁기 등이 아득한 시간을 뛰어 넘어 거의 온전한 형태로 당시의 생활상을 전해준다.
오나라, 서진, 동진, 당, 남조를 거치는 육조(六朝, 229~589) 시기의 것으로는 묘실 모형과 벽 조각, 유약 도기와 청자 등이 전시되어 있다. 푸저우에서 발굴되었다는 당나라 때의 격구에 대한 기록이 적힌 비석은 중원 시안에 도읍하여 가장 번성했던 왕조를 이루었던 당나라 중앙문화의 영향이 이곳에도 미쳤음을 암시하고 있다. 반면 철제 거울, 여인상, 불상, 태자 석가모니 조각상 등 손바닥 크기의 작고 소담한 유물들은 이 지역이 당시 당나라의 변방이었음을 방증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오대(五代) 시대의 유물로는 인물용(人物俑)이 여러 점 전시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송원(宋元) 시대 실크로드 등 해상무역이 번성하게 되는 등 경제의 중심이 남방으로 옮겨오며 푸젠 지역은 전성기를 맞이한다. 남송(南宋, 1127-1279) 시대의 갈색이나 황색 등 무채색이나 옅은 색 계열의 꽃무늬가 수놓인 치마나 겉옷 등 화려한 복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금은제 머리장식용 액세서리 등이 섬세하고 고상했던 당시의 문화적 취향을 엿보게 한다.
촨저우 허우띠강(后渚港)에서 1974년 출토되었다는 돋이 세 개 달린 34미터 길이 목선 축소 모형이 당시의 선박의 형태를 어림짐작하게 해주고, 촨저우(泉州)에서 출토되었다는 송원대(宋元代, 960-1368)의 아랍어나 십자가 문양의 묘비석, 석제 힌두교 신상 등은 유럽과 인도 등 세계 각지로부터 무역상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당시 동양 최대의 무역항이었다는 취안저우로 몰려들었음을 말해준다.
중국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정화(鄭和, 1371-1433)의 활약상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우수한 항구와 조선기술, 숙련된 항해인력, 풍부한 물자 등의 조건을 갖춘 푸지엔 지역은 정화 선단의 정박지이자 항해 출발지였다고 한다. 그는 지금의 윈난성 쿤밍 태생의 명나라 초기 항해가로 영락제(1360~1424)의 명으로 1405년부터 1433년 사이에 7차례에 걸쳐 동아시아의 말라카, 태국, 인도, 스리랑카, 페르시아의 호르무즈, 아라비아의 아덴,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케냐의 뭄바이 등으로 항해를 했다고 한다.
서양의 콜럼버스(1451~1506)나 마젤란(1480~1521) 보다 앞서 대항해 시대를 꿈꾸었던 명 영락제와 정화가 죽고 나자 명나라는 갑자기 해금(海禁) 정책으로 돌아서며 그 후 서세동점의 형국으로 내몰리며 아편전쟁 등 뼈아픈 근대사를 기록하게 되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명나라 때 전성기를 누린 유백색의 덕화요(德化窑), 명청 시기 생산된 미황색 빛깔이 고운 장저우요(漳州窑)와 유명세를 떨친 화려하고 다채롭고 미려한 징더쩐(景德津) 도자기까지 이 지역과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다양한 도자기들도 전시실에 자리하고 있다.
17세기 대만에 세력을 뻗친 네덜란드의 세력을 정성공이 1662년에 수복하고 1683년 청의관할권이 미치게 되는 등 푸지엔과 대만과의 밀접한 관계를 두드러지게 조명하고 있다.
8번 공예미술 전시관에는 푸저우의 북동쪽에 자리한 수산(壽山)에서 채굴된 수산석이라는 옥돌로 만든 섬세한 조각품들을 비롯하여 칠기, 전지, 목판화, 나무 조각, 인두화, 더화(德化) 도기, 장저우(漳州) 목조각, 샤먼(夏門) 칠공예품 등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네 시가 훌쩍 지나 박물관을 나섰다.
여전히 햇볕이 따갑고 후끈한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시후 가장자리 물가로 다가서니 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며 열기를 덜어준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산책하는 등 연휴의 낮 한때를 소요하는 시민들 모습이 더없이 여유롭다. 박물관과 자연관 사이 부리부리한 눈공자의 임칙서 동상 앞에는 개인 유튜버 여성이 그에 대한 영상 중계하기에 바쁘다.
시후 공원 안에 자리한 법화사 출입문 격인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고루와 종루, 정면에 대웅보전, 그 좌측에 가람전, 대웅전 뒤에 존객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전면 양쪽 벽면에 쓰인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이라 적힌 보리수 고목, 분재원 등 어우러진 조용한 정원이 마치 공원 안에 감춰진 또 다른 작은 비밀 공원에 들어온 느낌이다.
출행 며칠 전에 방문 예정지와 가까운 위치와 가격을 확인해둔 카이리야더(凯里亚德) 호텔로 향했다. 외국인도 숙박이 가능하다는 것을 미리 확인해둔 터라 별 문제는 없었지만 숙박료가 알아본 것보다 거의 두 배 가량 비쌌지만, 여행객이 많은 국경절 연휴 기간이고 당초 가성비도 좋았던 터라 수긍을 하며 체크인을 하고 객실에 백팩을 내렸다. Lao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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