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실에 주전자가 없어서 직원 호출을 했는데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프런트 대응도 무성의했어요. 5성급 호텔이라고 하지만, 서비스는 2성급이었습니다."
"특급호텔이라고 해서 숙박했는데 방 청소도 어설펐습니다. 수건은 항상 걸레 같은 색깔이었어요."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직원도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제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어요."
세계적인 여행 전문 사이트 '트립 어드바이저'에 올라온 국내 한 특급호텔에 대한 외국인 관광객의 사용 후기이다. 이 호텔은 국내 기준으로는 '특2급'이다. 녹색 바탕에 무궁화 다섯개가 붙은 등급표가 정문 옆에 붙어 있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의 눈에 비친 이 호텔의 등급은 2성급에 불과했다.
이 호텔뿐이 아니다. 트립 어드바이저에서는 '호텔 등급과 맞지 않는 시설과 서비스'를 비판하는 국내 호텔 후기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
◇등급 제대로 관리하는 국내 호텔 28%
한 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100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한국을 방문해 처음 접하는 곳은 호텔이다. 하지만 호텔 등급 관리가 부실해 외국인 관광객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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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 Images 멀티비츠·그래픽=김성규기자
현행법에 따르면, 호텔은 새로 지었거나 등급 결정을 받은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등급 심사를 신청해 등급을 결정받아야 한다. 신청하는 곳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등급 결정권을 위탁받은 한국관광호텔업협회(이하 호텔업협회)와 한국관광협회중앙회(이하 관광협회)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고시는 700점 만점에 630점 이상이면 특1급(금색 바탕에 무궁화 5개), 560점 이상이면 특2급(녹색 바탕에 무궁화 5개), 490점 이상이면 1급으로 결정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지키는 국내 호텔은 많지 않다.
한국생산성본부가 지난해 10월 전국 596개 호텔을 대상으로 등급 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등급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 호텔은 28%(165개)에 불과했다. 등급을 받은 후 3년 넘게 갱신을 안 했거나, 맞지 않는 등급을 붙여 놓은 호텔이 63%(378개)에 달했다. 휴업이나 폐업을 한 호텔도 9%(53개)나 됐다.
한국생산성본부는 "국내 호텔들이 시설 노후화와 부대시설 미운영으로 등급이 하락할 것을 우려해 재평가를 받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지방 2~3등급 호텔들은 대부분 모텔식 영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증받은 등급을 붙인 곳도 적절한 등급인지에 대한 논란이 나온다. 국내 호텔 등급을 평가하는 두 협회가 회원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어서 등급을 후하게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박성호 의원실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본부를 둔 호텔업협회는 서울·경기 지역 호텔의 86.2%를 심사했다. 반면, 지방에 지부를 두고 있는 관광협회가 심사한 호텔은 서울·경기 지역이 13.8%에 불과하고, 지방이 87.2%를 차지했다. 박 의원은 "호텔 등급 결정이 협회 인맥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심사위원이 비공식적으로 금품과 향응을 요구하기도 한다'는 호텔 관계자들의 증언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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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재평가 안지켜도 처벌 안받아
호텔들도 한번 등급을 받고 나면 등급 관리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3년 단위의 재평가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 규정이 없는 데다, 등급 관리를 한다고 해서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생산성본부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호텔들은 재평가를 받지 않는 이유로 32%가 "재평가를 꼭 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이어 "받아도 아무런 혜택이 없어서"(18%), "준비하기 귀찮고 필요 없다고 생각되어서"(12%), "안 받아도 불이익이 없어서"(4%) 등의 순이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등급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에 엉터리 등급을 붙여도 호텔 스스로 제거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조치를 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합리적이지 않은 평가 기준, 허술한 평가 방법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금은 심사 요원 6명이 정해진 시간에 호텔을 방문해 3~4시간 동안 관계자를 면담하고 시설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평가가 이뤄진다.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랜드마크호텔 관계자는 "실질적인 평가가 되려면 암행으로 평가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획일화된 평가 방식에 대한 불만도 있다. 서울프린스호텔은 "외국에서는 소규모 호텔도 고객 만족도와 서비스 품질에 따라 특급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규모가 작으면 무조건 특급호텔에서 제외한다"고 말했다.
표시 체계도 국제 기준과 동떨어져 있다. 외국에서 흔히 쓰는 '별(星)' 대신 무궁화로 호텔 등급을 표시해 외국 관광객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은 "우리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갖춘 나라에서 이렇게 허술한 호텔 등급 관리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국가 망신"이라며 "외국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호텔 등급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3,11,22. 조선일보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