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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1일 백두대간 8구간 및 9구간의 일부를 진행하다.
태풍 다나스(DANAS)태풍의 영향으로 하루종일 비를 맞으면서 진행하였다.
다나스 태풍은 산행전날인 20일에 국내 상륙하여 소멸하였지만 많은 비를 가져왔고, 이후 다음날인 금일까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일기예보에서는 오전에 비, 오후에는 전국적으로 개인다고 하였는데.... ㅠ.ㅠ)
무더운 날씨보다는 비가 와서 그늘지고 서늘한 날씨가 산행에 오히려 도움이 된 듯하다.
물도 250ml 이하로 먹었을 정도로 오히려 약간은 추운 기운의 산행이었고
20km의 산행거리에 비해서는 예상보다는 덜 힘들었다.
출발지인 가목령 쉼터 .
부항령(가목재) 에 대해서는 과거 산행기에서 기록이 있어 생략하고 넘어갑니다.
비가 오고 있는 연유로 모두 비옷을 입고 있고 산행준비를 하고 있다.
500m 정도 올라가면 능선에 도착한다.
부항령이다.
백수리산까지는 2200m임을 알려주고 있다.
약 1km 정도를 진행하면 나오는 삼거리,
좌측으로 가면 백수리산 가기전 작은 봉우리,
직진하면 그 봉우리를 피해가는 보다 편안한 코스이다.
선두는 좌측으로, 후미는 직진
백수리산 전의 작은 봉우리 (소위 보천봉 967m)전에 나타나는 작은 언덕이다.
삼거리이며 좌측으로 샛길이 있다.
백수리산 이전에 있는 봉우리인
보천봉(967m) 에 도착한다.
백수리산까지는 700m 정도 남아 있다는 이정표와 쉼터의자가 있다.
선두와 후미가 갈린 삼거리에서 다시 합류하는 삼거리 지점의 이정표이다.
백수리산 560m 를 남겨두고 있다.
아래 파란색 화살표는 샛길로, 붉은색은 보천봉에서 오는 길을 의미한다.
백수리산에 도착하다.
백수리산 정상석의 뒷편에는 <김천산꾼들>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산악회이름일까 싶기도 하고, 산꾼들 동호회 모임일까 싶기도 하는데, 석교산 정상석까지 <김천산꾼들>이라는 글귀가 있다.
산악회 한군데에서 여러 개의 정상석으로 세우는 것은 드문데, 김천에 대한 고향사량이 지극한 모양이다.
백수리산(1,034m)
: 김천 쪽 주민들은 '백도래산'이라 불렀는데 예전 이 산 아래 100여 호의 가옥이 있다가 지금은 없어졌다는데, 산 이름이 이와 연관되어 생겼다는 설명이 있으며, 무주군 설천면에서 볼 때, 겨울이면 이 산에 특히 많은 눈이 쌓여 수리를 닮은 이 봉우리가 하얗게 보여서'백수리산'이라 불렀다고 하는 설명도 있다.
백수리산을 지나 내려오면 낮은 재를 지난다.
양측으로 샛길은 보이지 않지만,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는 마치(馬峙)라는 지역으로 양측에 길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래 대동여지도 참조)
박석산 도착전의 작은 봉우리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어서 박석산으로 잠시 오해했다는.....
(지도상에는 헬기장, 삼거리,전망대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석산에 도착하다 1170.4~1170.6m
진행하는 방향의 삼도봉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석기봉(石奇峰)>이, 동쪽에는 <석교산(石橋山)>이, 남쪽에는 <박석산> 이 있다.
돌맹이,바위와 연관된 명칭이다.
산의 해발고도는 밀물썰물에 따라 1m 정도는 충분히 차이가 난다.
산높이의 소수점이 있다는 것은 측정기계는 그만큼 정확할지는 모르지만, 해발고도를 고려한 측정이 아닐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즉 소수점이하의 산높이 공지는 그 높이의 정확성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신뢰성을 오히려 낮게 보고 있다.
박석산으로 내려가면 데크지역이 나온다.
날씨로 주위가 보이지 않아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좌측으로 목장지대가 있고, 목장지대에서 계속 내려가면 박실리골이 나온다.
김정호의 대동여지소에서 주치(朱峙)에 해당하지 않을가 싶다.
삼도봉까지 가서 점심을 먹으려다, 배가 고파서 중간에 공터가 있어 잠시 요기를 하고 떠난다.
아래는 식사한 장소GPX위치
삼도봉 정상 직전
전북 미천리와 김천 해인리사이의 고개 사거리를 통과한다.
(아래 붉은색은 진행방향, 푸른색은 양측 마을로 통하는 길이다.)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함께 접하고 있는 삼도봉에 도착한다.
삼도봉(三道峰, 1,177m)
: 조선 태종 14년(1414) 8도로 분할하면서 삼도 분기점이 되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전북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 경북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가 경계를 이루고, 민주지산의 주봉으로 취급 받았으며, 옛 이름은 '화전봉'(花田峰)이었다.
1990년 10월 10일 제막한 동서 화합을 염원하는 '삼도화합비'가 있다. 삼도의 상징물 거북, 용, 여의주 등으로 구성돼 석조물로 만들어져 있다. 매년 10월10일 삼도의 산악인과 주민들이 올라와 제를 지내며 화합을 기원하는 행사를 연다고 한다.
국내에 3개도가 접하여 삼도봉(三道峰)이라고 불리는 곳은 우리나라 남한에는 4곳이 있다.
그 중 한 곳은 ① 백두대간 선달산(先達山,1,236m)에서 분기한 지맥에 있는 어래산(1,030m)의 삼도봉(강원도 영월군, 충북 단양군, 경북 영주군이 경계하는 삼도봉)이고, 나머지 세 곳은 추풍령 남쪽 대간 마루금에 있다.
② 지리산 반야봉 아래에 있는 삼도봉은 전라남도·전라북도·경상남도가 접하고 있으며,
③ 대덕산 아래 삼도봉(대덕삼도봉)은 경상북도·경상남도·전라북도가 접하고 있는데 반해,
④ 삼마골재 위의 이 곳 삼도봉은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삼남지방(三南地方)인 충청북도·전라북도·경상북도>)의 분기점이 되는 명실상부(名實相符)한 백두대간 삼도봉이 된다.
삼도봉에 있는 이정표
백두대간은 아니지만 민주지산을 잠시 언급하고 지나갑니다.
민주지산(岷周之山, 민두름산, 1,242m)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상촌면과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소백산맥 중앙에 있으며, 주위에 각호산·석기봉·삼도봉 등이 있다.
사방이 급경사를 이루는 화강암지역이다. 남쪽·서쪽 사면에는 무주 남대천이 흐르며, 동쪽사면에는 송천이 흐른다. 상수리나무·단풍나무·소나무 등 온대 남부·북부 식물의 혼합림을 이룬다.
상촌면 물한리 한천 마을-옥소-쑥새골과 용화면 조동리 상촌마을-각호골-고자리재 등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특산물로는 표고버섯·도토리묵·감 등이 있으며, 영동에서는 민속축제인 난계예술제가 열린다. 주변에 덕유산국립공원이 있으며, 황간면에서 상촌면 물한리까지 직행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예로부터 영동지역에서는 삼도봉에서 각호봉까지의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무주지역에서는 백운산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동국여지지>, <무주부읍지>에는 백운산(白雲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서는 백운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민주지산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 산의 격을 낮추거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또는 일제강점기에 한자(漢字)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개명되어 버렸다고 한다.
산세가 밋밋하다는 뜻을 가진 민두름산이 일제강점기에 민주지산으로 개명되면서 ‘산으로 둘러싸는 또는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산(岷周之山)’ 또는 ‘옥돌이 널린 산(珉周之山)’이란 뜻으로 해석이 변경되어 버렸다.
한자(漢字)는 珉周之山(민주지산;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산백과), 眠周之山(면목지산; 출처-다음백과, 2019년검색에서) 등 일정치가 않다.
민주지산. 이미 유명하여 굳어져 버린 이름이지만, 개명되었으면, 그리고 이왕이면 민두름산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 바램이다.
삼도봉에서 내려오면 좌측 물한계곡으로 빠지기전에 삼마골재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밀림지역으로 직진한다.
삼마골재(혹은 삼막골參幕谷재)
: 충북 영동군 상천면 물한리와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삼마골재는 삼마골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본래 '산막골'이라 불리다가 '삼마골'로 변음된 것으로 본다.
이정표에는 삼막골(參幕谷)이라고도 표시되어 있다는 블로그가 있었는데 현재는 이정표에 삼마골이라고 적혀있다.
일제시대부터 이곳에 화전민들이 정착해 숯을 구워 팔며 살았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까지 이곳에 들어와 화전민 그룹에 합류했다.
백두대간에 걸친 마을이 대부분 그랬듯 한국전쟁 동안, 그리고 휴전 후에도 한동안 이곳은 국군과 빨치산 사이에 놓인 접전지였다. 산을 점령한 군인이 주야로 바뀌던 시절, 화전민들은 며칠씩 산 밑에서 피신해 지내다가 산막으로 올라오고, 또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당시 전쟁으로 같은 날 희생을 당한 화전민들이 많았다. 삼마골 아래 해인리만 해도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휴전 뒤 숯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고 이후 화전민들은 산비탈을 골라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생계를 해결했다. 외부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던 소금 정도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산 속에서 생산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기 김신조 사건 같은 일들이 터지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화전민들은 산을 내려와야 했다.(출처 : 마루금님의 백두대간 산행기)
삼마골에서 밀목령으로 가는 길에 봉우리가 2개가 있다.
첫번째 봉우리의 정상을 지나치지 않고 정상의 우측 능선으로 지나간다.
두번째 봉우리에 도착한다.
우측으로 진행하라는 이정표가 있으며, 이정표에 밀목봉이라는 글이 있다.
이젠 밀목봉으로 굳어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삼각점도 있다.
밀목령에 도착한다.
약간의 공터에 이정표가 있다.
밀목재(밀목령密木嶺, 940m)
: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의 가래점마을과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 대야동 마을 간을 왕래하던 고갯길이인데 지금은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
밀목재는 경상도에서 불려지던 이름으로 '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고개'란 뜻이고 충청도 영동 쪽에서는 이 고개를 '면목재'라 불렀다고 한다.
밀목령에서 푯대봉(1175봉) 가는 길은 예상과 달리 수월했다.
오르막 경사도도 그리 높은 곳이 없어서 오르막길 치고는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중간에 지도상의 1089봉, 1111봉 등이 있다고 표기되어 있으나 유심히 관찰하지 못하면 봉우리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이다.
도착전 작은 봉우리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권대장님께서 가져온 복숭아로 피로회복을 취한다.
푯대봉(1,172m)에 도착하다.
과거 1,175m의 암봉이라는 기록이 많았는데, 정상 안내표에 1,172m로 수정되어 만들어져 있다.
카메라에 습기가 끼어 사진이 흐릿하게 나오네... ㅠ.ㅠ
푯대봉의 이름의 유래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여기가 석교산/화주봉으로 불리지 않았을까 싶어 舊석교산/舊화주봉이라고 칭하고 설명한다.
1,172봉(푯대봉, 舊석교산, 舊화주봉)
: 가파른 암봉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북쪽방향으로는 막기항산(幕基項山, 999~1000m)으로 가는 능선이 시작된다.
석교산(石橋山)은 여기서 1.2㎞ 동서쪽에 위치하고 있지만, 바위산인 이곳을 석교산이라 하고, 석교산 정상석이 있는 곳을 가래골뒷산으로 칭하는 경우도 있다.
(아래 지도 참조)
푯대봉을 화주봉(석교산)이라 한 지도이며,
현재의 석교산을 가래골 뒷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현재 화주봉은 1,207봉, 푯대봉은 1,175으로 표기되어 있다.
푯대봉에서 밧줄구간과 암릉구간으로 지나 석교산에 도착한다.
밀목령에서 푯대봉까지, 푯대봉에서 석교산까지의 길은 푯대봉정상구간을 제외하고는 암릉산행이기보다는 흙산에 가까운 산행이다.
석교산을 지나서는 완전한 육산(肉山)의 산행이다.
석(石)을 의미하는 곳은 푯대봉 정상부밖에 없을 것이다.
아래 사진은 석교산 정상석 뒷편 사진
<김천산꾼들>에서 박석산와 더불어 이 정상석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석교산(石橋山, 화주봉, 1,207m)
: 석교산은 화주봉이라고도 불린다.
삼도봉(三道峰)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석기봉(石寄峰)을 다리로 민주지산(岷周之山, 민두름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석교산(石橋山)을 다리로 황악산(黃嶽山)이 있다.
석교산은 한자(漢字)의 뜻으로 해석하면 돌다리산이다.
즉 육산(肉山)인 황악산과 민두름산(민주지산)을 연결하는 돌다리산으로 서쪽은 석기봉(石奇峰) 우측은 석교산(石橋山)이 있으며, 이 석교산은 질매재(우등령)과 밀목재 사이의 봉우리가 된다.
이 지역에 대한 인터넷상에 여러 설명이 혼란을 가중시켜 나름대로 정리하여 항목별로 적어본다.
(1) 석교산의 한자(漢字)는? : ① 조선중기 영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와 ②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19세기(1861년)에 작성한 대동여지도에서 석교산은 한자(漢字)로 石橋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석교산과 화주봉을 석교산(釋敎山), 화주봉(化主峰)으로 불교 한자(漢字)를 사용하여 어떤 블로그에 올라 온 후에 한자(漢字)가 잘못 굳어지고 있는 듯하다.
석교산은 石僑山(돌다리산)으로, 화주봉은 한자를 내포하는 단어로 생각되나 정확히는 모르는 것으로 하여야 할 듯싶다.(아래 지도 참조)
(2)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19세기(1861년)에 작성한 대동여지도의 석교산(山橋石) 및 괘방령(掛榜嶺)의 위치 오류 :
대동여지도 지도상에서 석교산(石橋山)은 현재 황악산(黃岳山)의 북서쪽에 위치한 곤천산에 표기를 하고 있다.
궤방령(掛榜嶺,岺榜掛)은 황악산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황악산과 삼성산(山聖三)사이에 위치를 표기하는 오류가 있다.
궤방령을 포함한 오류를 감안할 때에 곤천산이 석교산으로 불렸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3) 석교산(石橋山)의 위치 :
여지도서(輿地圖書; 조선시대 18세기(1757년~1765년 사이경에 제작, 총 55책)에서 “황악산(黃岳山)은 추풍령(秋風嶺)을 지나 괘방령(掛榜嶺)에서 와서 서쪽으로 석교산(石橋山)-삼도봉(三道峰)을 일구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의 석교산은 삼도봉의 좌측지맥에서 연결으로 되어 있으나, 물한(勿閑)계곡 우측에 있는 지맥은 실제 삼도봉 우측에서 출발하고 있다.
석교산은 1997년 조선일보사 발행 『實戰백두대간종주산행』의 제14소구간 '삼도봉안부-화주봉-우두령'에서 '화주봉(1,207m, 일명 석교산)'이라 하였고, 첨부된 백두대간 지도에는 '화주봉'이라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즉 조선시대에 삼도봉까지를 황악산의 지세로 보았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고, 석교산(石橋山)은 그 한자(漢字)의 의미로 볼 때 '황악산과 삼도봉 사이 돌산'로 해석해야 할 듯 하다.
(4) 석교산(石橋山)의 봉우리 위치
: 현재 석교산은 1,207봉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어떤 지도에서는 1,172봉(현 푯대봉 암봉, 막기항산 갈림길)을 석교산(화주봉)으로 표기하고 1,207봉은 가래골뒷산으로 표기하고 있다.(윗 푯대봉에서 언급한 지도 참조)
석교산(石橋山)은 황악산과 삼도봉 사이에 솟아 있어 두 산을 이어주는 돌다리(石橋) 같은 산이라는 의미로 석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1,207봉의 석교산은 암릉산이 아닌 ① 밋밋한 육산(흙산)이라 돌다리라는 석(石)의 한자(漢字)를 사용이 어울리지 않다. 즉 과거의 석교산(石橋山)은 1,207봉이 아닌 1,172봉(푯대봉)의 암봉을 말하지 않았을까?
② 1,172봉(푯대봉)은 육안적으로 높이 솟은 암봉으로 돌 석자를 붙이기 적당한 모습이다.
③ 조선시대 해발측정의 정확도의 한계로 20~30m 정도의 고도 시차는 차이는 충분히 있지 않았을가 싶다.(황악산 지맥이라는 현 석교산1,207봉 또는 1,176봉은 황악산 1,111m보다 60m 이상 더 높은 고도이다)
④ 산지세를 보면 북쪽의 충북 영동에서는 최고봉인 1,207봉은 막기항산(996.5m)에 가려서 보이지 않고 1,172봉이 가까이 높게 보이게 된다는 점,
⑤ 1,172봉을 석교산으로 표기한 지도에서 엄연히 1,207봉을 무명봉이 아닌 가래골뒷산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은 1,172봉을 석교산임을 더 확인시켜주는 것일 수 있다. (아래 왼쪽 그림 참조)
(5) 화주봉 : 화주봉의 남쪽 골짜기의 숲실마을 사람들은 석교산에서 흘러내린 골짜기를 '화주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⑥ 지도상에서 화주골은 푯대봉인 1,172봉에서 시작되어 계곡을 형성하면서 남쪽마을로 내려간다.
반면 1,207봉은 계곡이 아닌 산능성을 형성하면서 마을로 내려가는 지형이다. 즉 화주봉이 화주골에서 유래되었다면 1,172봉이 석교산으로 지칭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아래 그림 참조; 붉은색선=대간길, 흰색선=화주골 )
(6) 이상 상기 6가지 근거로 과거에는 1,172암봉을 황악산과 삼도봉을 이어주는 돌다리산 즉 석교산(화주봉)이라고 했다가 측량하면서 가래골뒷산이 더 높은 1,207봉이 되면서 석교산으로 불리게 되지 않았나 싶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생각이고 추측일 뿐이다.
(7) 가래골뒷산 : 전국의 여러 곳에 가래골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지명이 있다.
타 지역의 대다수 가래골 명칭의 유래는 가래나무가 있다고 해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의 가래골 지역은 백두대간 코스와는 많이 떨어져 있어 가래골뒷산의 정확도 및 유래는 확실치 않다.(윗 지도 참조).
아래는 1,162봉
봉우리라는 느낌이 적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아래는 삼각점이 있는 814봉,
인증사진 한 컷~
오늘의 종점,
질매재(우등령, 우두령)에 도착하다.
질매재(우등령牛嶝嶺?, 우두령牛頭嶺, 720m)
: 충북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와 경북 김천시 구성면 마산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이 질매재를 통과하는 도로는 북쪽으로는 상촌로 남쪽으로는 마산로로 연결되어 있다.
‘질매재’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지역에 따라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서는 지르마, 경상남도 창녕에서는 질매, 충청남도 서산에는 질마, 강원도에서는 지르매라고도 불린다.
옛말은 기르매 혹은 기르마였는데 훈민정음 표기로는 기라마이다.
질매는 말굽쇠 모양으로 구부러진 나무 두개를 앞뒤로 나란히 놓고, 안쪽 양편에 두개의 막대를 대어 이들을 고정시킨다. 안쪽에는 짚으로 짠 언치를 대어 소 등에 얹고, 틀 위쪽에 앞뒤에 끈이 달린 가는 막대 두개를 역시 좌우 양편에 꿰어 놓는다. 앞끈은 소의 가슴에 두르고, 뒤끈은 소의 궁둥이에 대는 껑거리 막대에 잡아 맨다. 이 끈들은 소 등 위에서 길마가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또한, 길마는 옹구나 발채 또는 거지게 따위를 올려놓기 위한 받침대의 구실을 하며, 이것 때문에 틀에 실린 물건이 소의 등이나 옆구리에 닿지 않는다. 길마는 주로 소나무로 만든것을 말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길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아래 사진 참조)
질매재는 질매라는 말이 소의 등을 상징하여 ‘우등령’으로 불리우다 잘못 인식되어 한자화되면서 우두령(牛頭嶺)이라고도 불리우게 되고 결국 그 한자의 영향으로 그 뜻도 소머리를 닮은 고개라는 식으로 변질되어버렸다.
그래서 현재 질매재, 우등령, 우두령(牛頭嶺) 등의 혼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참조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도 우두령으로 불리우고 있다.)
참조로 질매재를 우두령으로 불리는 바람에 몇가지 혼동이 있어 구별하고자 한다.
1) 수도지맥의 우두령(牛頭嶺)과의 혼동
: 백두대간길의 우등령은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사이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이 백두대간코스의 바로 남쪽코스인 대덕산·초점산에서 수도산·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에 우두령이 있다.
이 지역은 경상남도 거창군에 위치한 우두령(牛頭嶺)으로 해발 576.9m로 이어지는 산 능선의 생김새가 소머리와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다.
여기를 지나는 도로명은 우두령로이며, 인근에 우두령학습체험마을도 있다.
1592년 7월 17일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 김면이 의병 2,000명을 매복시켜 왜군을 물리친 우두령 전투의 현장으로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즉 백두대간의 우두령(牛頭嶺)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대장 김면의 우두령전투와는 관계가 없는 곳이다.
대동여지도에서도 우두령(牛頭嶺)으로 표시하고 있고 현재도 우두령으로 불리고 있지만, 이름의 유래가 소등의 모양을 본 뜬 질매재이고 우등령이다.
충북 영동군과 김천시에 접하고 있는 백두대간길의 우두령은 그 의미나 혼용을 통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을 삼가고 향후 질매재(굳이 변화시키기 곤란하면 우등령으로)로 이름을 통일하여 부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아래 지도 참조)
2) 경상남도 거창의 우두산(牛頭山) : 질매재 또는 우두령을 우두산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질매재는 가야산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두산은 가야산 서쪽 경상남도 거창의 우두산(별유산1,046m)으로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첫댓글 운무속의 꽃길이 환상이였네요 ..
어제의 산길 꽃길 그리워하며 질매재를 가슴에 새겨봅니다
다음님의 수고하심에 매번 배우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산행후 피곤하실텐데, 목욕티켓배분, 목욕비, 식비 계산 정확히 하시는 것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전 피곤해서 계산이 안된다는.... ^.^
열공열공 많은 걸 알고갑니다 질매ᆞ질마 ᆞ지르매 어릴적 봤는데 ~ 무지했네요 ㅋㅋㅋ 항상 역사가 있는 산행기 응원합니다 *.~
저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 산행하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같이 못해서 아쉽네요..
안보여서 아쉬웠네요. 9월에 뵙겠습니다 ^.^
잘 다녀오셨어요?
환상적입니다
꿈같은 산행 부럽습니다
@능소화 잘 다녀 왔습니다
산은 우리나라 산이 최고인거 갔습니다
산행하면서도 마음은 백두대간에,낙동산악회에 가 있었습니다...
ㅋㅋ
@달리는슈퍼맨 더운여름 잘 보내시고 대간길에서 뵙겠습니다
일출사진 너무 멋있습니다. 부럽네요 ^.^
@다음 우리것이 최고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