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 진면목 파악하면 그것이 곧 깨달음
<63> 진소경 계임에게 보낸 대혜선사의 답장 ②-2
좌선 집착해 공부 궁극이라 생각해선 안돼
일상의 見聞覺知 모든 면에 직관 관찰하라
[본문] 또 앞의 성인(달마)이 말씀하였습니다. “다만 마음으로 분별하고 계교하면 자기 마음의 나타난 것이 진실로 다 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을 할 때에 마음으로 헤아리지 마십시오. 마음으로 헤아리지 아니하면 일체가 이미 완전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영리함도 이해하려하지 말고 또한 둔함도 이해하려하지 마십시오. 영리하고 둔함을 모두 관계하지 말며, 또한 조용하고 어지러움도 관계하지 마십시오. 바로 피할 수 없는 일을 당하였을 때 홀연히 식심(識心)의 포대를 망실하게 되면 불각중(不覺中)에 박장대소할 것입니다. 꼭 기억하고 꼭 기억하십시오.
[강설] 달마스님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일상생활에서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모든 면에 직관으로 느끼고 관찰하라는 것이다. 어쩌면 사실 그대로 무심으로 상대하고 공연히 이것저것 생각을 일으켜서 분별하는 것은 오히려 헛것이며 꿈이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란 잠에서 깨어 옷을 입고 세수하고, 용변을 보고 식사를 하며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하는 등의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시 무심으로, 사실 그대로, 또는 직관으로 작용할 것이지 달리 다른 생각을 일으켜서 분별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미 그대로가 완정한 상태(一切現成)이기 때문이다. 영리하다느니 우둔하다느니, 고요하다느니 어지럽다느니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라. 피할 수 없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파악(打失布袋)하면 그것이 곧 깨달음이다. 멀리 다른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행행본처(行行本處)다. 가도 가도 본래의 그 자리일 뿐이다.
[본문] 이 일을 만약 털끝만치라도 공부에 취하여 사용한다면 마치 어떤 사람이 손으로 허공을 만지는 것과 같아서 다만 스스로 피로만 더할 뿐입니다. 사람을 응접할 때는 다만 응접하고, 조용히 앉아있게 되면 다만 조용히 앉아 있되 앉았을 때에 앉는 것을 집착하여 구경의 경지로 여기지 마십시오. 요즘 삿된 스승의 무리들이 흔히들 묵묵히 비추면서 조용히 앉아 있는 것으로서 구경의 도리로 삼아서 후학들을 그르칩니다. 산승이 원수 맺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힘써서 그들을 꾸짖어서 부처님의 은혜를 갚으며 말법의 폐단을 구원하려합니다.
[강설] 영리하다든지 우둔하다든지 조용하다든지 어지럽다든지 하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마음공부와 연관시킨다면 그것은 마치 사람이 손으로 허공을 만지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마음의 본체에는 영리함도 우둔함도 조용함도 시끄러움도 없다.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만나 응접하게 되면 인연 따라 응접하고, 조용히 앉아서 좌선을 하게 되면 그냥 그대로 좌선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좌선을 집착하여 공부의 궁극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나 지금이나 불교도 모르고 참선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남의 스승노릇을 하는 이들이 있다. 불교란 깨달은 사람(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인데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도 알아보려하지 않고 자기나름대로 지레짐작하여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불법의 여러 가지 수행 중에서 최상의 수행이라고 집착한다.
그리고 그것을 또 남에게 지도하고 가르친다. 탐욕하고 시비하며 하루를 다 보내며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또 10년이 가고 20년이 가서 일생을 헛되이 흘려보내면서 노년에 이르러서는 아무 것에도 쓸모가 없는 폐인이 되고 만다. 평생 절밥을 먹고 진 빚은 얼마인지 헤아릴 수도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혜 선사가 “원수 맺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힘써서 그들을 꾸짖어서 부처님의 은혜를 갚으며 말법의 폐단을 구원하려합니다”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는 바다.
[출처 : 불교신문 2888호/2013년 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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