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客閑談] 꽃바람따라 봄날은 간다
겨우내 얼었던 산길은 봄햇살의 따사로운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맥없이 녹아내려 제몸을 가누지 못하고 엉망의 진창이 됩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잠깐, 금년 들어 연일 이어지는 지루한 가뭄과 봄을 재촉하는 건조한 바람은 진창을 다시 본래의 반주그레한 꼴로 바꿔 놓습니다.그러나 해반지르르한 산길도 머지않아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볼품없는 신세로 전락이 되곤 합니다.겨울과 봄 사이에서 매양 겪어야 하는 환절기 산길의 숙명은 아닌지요.
마른 나무가지들이 실핏줄처럼 앙상한 나목의 골짜기와 비탈 곳곳에는 어떻든간에 봄의 전령인 노란 생강나무꽃과 연분홍의 진달래꽃이 때맞춰 화려하게 새봄을 알립니다.그동안 침묵만을 강제하고 있었던 온갖 수목들도 움을 튀우기 위한 물밑 작업이 분주할 테지요.따사로운 봄볕과 건조한 바람으로 인하여 노란꽃은 샛노랗게,연분홍은 진분홍으로 좀더 진하고 억센 기운을 불어넣어 흐드러진 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엊그제 이틀 간 마른 땅을 잠시 적실 만한 봄비가 내렸습니다.오랜 갈증을 달래줄 단비라고는 하지만 수량은 턱 없지요.그러나 그것마저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안타깝습니다.그리고 근세에 들어 서북 방향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은 으레 황사와 미세먼지를 동반하곤 합니다.이런 허접한 봄바람이 기승을 부릴 즈음이면 숲은 연중행사처럼 산불로 홍역을 치르게 됩니다.그리고 꽃가루와 먼지 등으로 인하여 노약자들의 호흡기는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지요.애시당초 그러한 바람에 묻어온 내용물을 모른 채 맞았더라면 심사는 일쑤 편했을 게 아닌가 하는 바보 같은 염(念)이 들곤합니다.
생강나무와 진달래,그리고 벚나무 등의 노란꽃 연분홍꽃들이 소명을 다하고 난분분하는 즈음이면 농염의 철쭉이 시나브로 기지개를 켭니다.숲은 바탕인 초록의 녹음으로 시나브로 줄달음을 칠 테지요. 무논에서는 개구리가 악머구리 끓듯하고, 연두색으로 물들어가는 숲에서는 새살림을 차리려고 짝을 부르는 산새들로 자못 시끄럽습니다.작금에는 시설재배로 연중 쉴 틈이 없다고는 하지만 게으른 농부도 이 즈음이면 부지런한 티를 낼 수밖에 없을 겁니다.이러한 봄날이 예년보다 빠르게 지나갈 기미가 느껴집니다.세월은 언제나 변함없는 속도로 지나가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나이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더 가속이 붙는 모양입니다.
일본 모(某) 학자의 0.7법칙이라는 뇌의 생각에 대한 학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현재의 실제 나이에 0.7를 곱하면 나오는 숫자가 현재 자신의 나이라고 뇌가 착각을 하고 있다는 이론이지요.가령 70의 나이라면(70X0.7= 49) 뇌는 본인의 나이를 49세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실제의 나이와 뇌가 생각하고 있는 나이 차이가 21세, 이론대로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나이보다 자신이 21세 젊다고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결론이지요.어쨌든 늙은이가 젊은이인양 이까짓것쯤이야 자신하면서 으쓱거리거나 깝죽거리다가 큰코 다친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왕왕 볼 수 있습니다.나이와 욕망이 반비례를 유지해야 신관이 편한 법입니다.(202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