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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8일 (일) 랑카위 2일 째.
오전 6시 빗방울에 잠이 깼다. 더위 때문에 침실 해치를 열고 별 보며 잠자다,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져 얼른 해치를 닫는다. 선실을 돌아다니며 열려있는 해치 4개를 닫고 다시 자리에 누우니 비는 순식간에 폭우 수준으로 바뀐다. 벵골만 항해 마지막 48시간 동안 잠들지 못했지만, 지난밤은 오후 10시에서 오늘 오전 6시까지 동면하는 곰처럼 깊이 잠들었다. 비 소리에 선실 밖으로 나간 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빗소리가 갑판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니 마침내 주변을 기웃 거리던 상념들이, 빗소리에 섞여 마음에 스며든다. 나는 커피를 끓여 손에 든다.
여기는 말레이시아 랑카위.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고향을 떠나온 지 이미 4개월째. 나는 모든 것이 결핍 또는 제한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한 달 안에 고향으로 항해해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미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 일주일씩 4번의 항해를 더 해야 하나, 거기엔 보급을 위한 중간 기착지의 일정과, 태풍에 의한 지연은 계산에 넣지 않은 30일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 나는 이미 실수를 했다. 이번 총 항로는 약 10,200해리. 그러니 하루 130마일씩만 부지런히 가면 78일 만에 이탈리아에서 강릉에 온다. 여유까지 잡아서 4달. 120일이면 충분할거다. 황당한 계산법이다. 무지했기 때문이다. 장거리 항해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고 정보도 부족했다. 기항지에서의 보급문제와, 항해 중 기상 상황이 얼마나 자주 바뀌며, 그것이 결코 나에게 이롭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몰랐다. 그 대부분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것들이다. 대자연은 단호하다. 어리광은 통하지 않는다.
강풍이 불고, 어둠 속에서 3층짜리 연립주택만한 파도의 흰 포말이 콕핏을 덮칠 때, 두려움은 끼어 들 틈이 없다. 기도할 짬도 없다. 혼자 바다와 싸우는 선장은,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 굴러 떨어지지 않게 어딘가에 죽기 살기 몸을 의지한다. 한계치를 넘어버린 흥분. 아드레날린이 쭉쭉 내달리는 떨리는 근육으로,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세일을 축범하기 위해 윈치를 돌려 시트를 감아야 한다. 파도와 빗방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과정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마침내 세일이 줄어들고, 바람은 16노트 이하로 진정되고, 파도는 2미터 아래로 느려지고,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고 확인될 때, 그때가 공포가 엄습하는 순간이다. 맙소사. 나는 살았군! 죽음이 어둠 속에서 노려보던 순간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잘게 쪼개져 뇌리에 반복 재생된다. 비소서 선장은 여전히 다람쥐 통처럼 흔들리는 콕핏에 무너져 앉아 기도하며 눈물 흘린다. 위기 때 숨어있던 겁쟁이의 본성이 소환되는 거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어린애처럼 우는 거다. 두려울 때 망설임 없이 대응하고, 평온할 때 두려움을 기억하며 눈물 짓는 사람들. 나는 세일요트 선장이다.
배는 기계장치고, 일종의 주거 공간이다. 낡은 배 뿐만 아니라, 새 배도 고장은 난다. 배에 물 샌다고 불평하는 이는 바보다. 물에 떠 있으니 물새는 것은 당연하고, 그 정도를 어느 정도에서 통제할 수 있는지를 파악 대처하는 것이 선장이다. 그러나 이렇게 잔고장과 중간 고장이 예상보다 자주 나타나는 현상인 것도, 4달 동안 배에서 살고 항해하며 새삼 깨닫는 점이다. 단독 항해니 뭐든 혼자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어찌 됐건 말레이시아 까지 왔다. 합리적 판단과 명석한 지혜로 온 게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다.
아침에 배에 디젤을 90리터 붓고, 세인세일 펄링 시트 중 낡은 부분을 끊어내고 다시 묶는다. 메인세일 붐 조절 시트도 낡은 부분을 끊어내고 다시 묶는다. 당분간 염려 없다.
세일들을 정리하고 C.I.Q.를 하러갔다. 가다가 상당히 뚱뚱한 외국인 세일러 부부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오! 놀라워서 인사를 하고 물으니, 호주 시드니에서 온 David Reid (데이빗) 부부다. 이 부부는 자기 며느리가 한국 여자라 한국말을 조금 하는 거란다. 데이빗 부부가 지난 팬데믹 때 여기서 6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어제 오후에 도착했고, 이번엔 7개월을 머물 거란다. 랑카위가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다. 30미터 거리의 랑카위 국제 터미널 항구 건물에 사무실들이 있다. 데이빗 부부 덕에 수월하게 사무실을 찾고 순서대로 출입국 수속을 밟는다.
순서는 1층의 이미그레이션이 제일 먼저다. 여권을 보여주면 서류를 한 장 준다. 그 서류를 기입하고 여권 사본, 선박국적서류 사본 각 한 장씩을 제출한다. 이때 “나는 랑카위가 너무 아름답고 좋다. 여기서 오래 있고 싶다.”는 둥 쓸데없이 말을 걸면, 공무원들 입이 귀에 걸리면서 친절해 진다. 별 질문도 없이 쉽게 이미그레이션이 끝났다.
다음은 2층의 하버마스터 사무실. 여기서는 여권, 선박국적서류, 선박 보험 서류를 낸다. 주의할 점은 insurance need to cover for "wreck removal" - 보험에 ‘난파선 제거’ 조항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나는 또 “나는 랑카위가 너무 아름답고 좋다. 여기서 오래 있고 싶다.” 는 입에 발린 말을 주절거리며, 보험 증권 서류 한 뭉치를 제출한다. 이상하게 내겐 ‘난파선 조항’에 대한 말이 한마디도 없었다. 혹시 말레이시아로 세일링을 하실 때엔 보험에 ‘난파선 제거’ 조항을 확실히 표기해야 한다.
다음은 다시 1층의 세관이다. 세관은 스라랑카 세관에서 받은 Port Clearance 서류 한 장 제출로 끝났다. 너무 간단하게 1초 만에 세관 수속이 끝난 거다.
이렇게 C.I.Q. 수속은 전부 20분 정도 걸렸다. 돈은 한 푼도 안 들었다. 너무나 간편하고 빠른 수속 시스템이다. 국제항구라 관련 경험이 많아서인지, 공무원들이 업무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이러니 전세계의 세일러들이 랑카위 마리나를 꽉꽉 채우는거다. 오만의 샬랄라를 돌아본다. 출입국 절차만 1,530달러가 들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오만에 일부러 가는 세일러는 한 명도 없을 거다.
오전 11시 30분. C.I.Q. 절차를 마치고 데비빗 부부와 헤어져, 혼자 같은 건물 1층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말레이시안들이 엄청나게 줄서서 먹는 식당이다. 접시에 노란 밥을 퍼주면 반찬은 자기가 알아서 담고 나중에 계산하는 방식이다. 말레이시아 스타일 닭고기와 오이절임 등을 담으니 13.5 링깃 (3,883원) 짜리 점심이다. 더운데 요리하느라 고생하며 뭘 해먹느니 여길 자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을 마치고 돌아오다 찰리’s place 바에 들러 음료 한잔을 했다. 타이거 생맥주 500mm 한잔에 10링깃(2,876원), 기네스 생맥주 한잔에 14링깃(4,026원) 이니 술꾼들의 천국이다. 여기는 면세지역이라 술값이 엄청 싸다.
그나저나 호주 선장 데이빗 부부가 자기 배로 놀러오라고 하는데, 다음 기항지인 Kuching Marina 와 Miri Marina 에 관한 검색과 연락을 하느라고 못 갔다. 기상상황이 나쁘면 Kuching Marina로, 기상상황이 좋으면 Miri Marina 로 간다.
우리나라 보다 후진국인 말레이시아도 해양레저문화의 중심이 마리나라는 것을 인지하고 말레이시아 전체 마리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어 두었다. 외국인들이 이것을 많이 참조해서 C.I.Q. 절차가 간편하고 무료인 말레이시아로 오는 거다.
https://www.sailmalaysia.life/marine-guide-malaysia <=== 말레이시아 마리나 가이드 홈페이지.
참 부럽다. 그리고 안타깝다. 전 세계적으로 마리나가 해양레저관광 산업의 중심이 되어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말레이시아보다 훨씬 선진국인 한국의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은 아직도 시대에 아득하게 뒤쳐있고, 그 사실을 본인들만 모른다. 물론 반도체, 자동차, 군수, 대형 선박 건조 등 중공업산업과 해양건설 사업들이, 해양레저 산업보다 더 돈이 될 수 있다. 그럼 해양수산부는 왜 있는가? 돈 안 되는 어업과 생산품의 수출입에만 전념할거라면, 그래서 국민의 해양에 대한 교육, 해양레저문화의 대중화에 대한 선도자 역할을 할 것이 아니라면, 해양 수산부는 없애는 편이 낫지 않을까? 돈 되는 산업의 관리는 관련 부서들이 이미 너무나 잘 하고 있으니, 굳이 대한민국 해양문화 창달에 관심이 1도 없는 공무원들에게, 월급 줄 이유 역시 1도 없다.
마리나 사무실에서 러시아 젊은 세일러 커플을 만났다. Juliana & Valdum 부부다. 20대 말로 보이는 그들은 일본으로 가는 도중이다. 그래서 같이 항로에 대한 정보를 나누었다. 또 한국에 관심이 많다. 러시아 사람들이 한국에 많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산에는 러시아 부자 배들이 있고, 포항에는 러시아 세일러들이 자주 오고, 강릉엔 러시아 노무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만약 한국에 와서 강릉에 오면 내가 멋진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다. 내 짐작에, 전쟁을 피해 고단한 세일링 중으로 보인다. 같은 행성, 지구인끼리 그 정도 친절은 충분히 베풀 수 있다. 하느님 그 젊은 부부의 항해를 축복하소서.
내일 김석중 선장님의 크루 두 분이 따로 말레이시아 여행을 하신단다. 선장님이 섭섭해 하신다. 그렇겠지 여기까지 같이 항해해 왔는데... 내일 오전 10시에 떠난 다고 하니 아침에 커피라도 같이 한 잔 해야겠다. 만난 지 삼일 만에 이별. 웬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오후 9시 30분. 한국이 임대균 선장에게 카톡전화가 왔다. ‘제일 필요한 게 뭐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기실 별로 필요 한 게 없다. 아니 없어졌다. 처음 항해를 시작할 때엔 한국 식품이 상당히 그리웠다. 하지만 오랜 항해를 하면서 내가 바뀌었다. 흰밥에 햄, 감자 양파, 오이와 양상추, 쌈장. 카레가루. 가끔 나만의 파스타. 이렇게 먹다보니 김치에 대한 그리움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한국 라면이 제법 있어도, 잘 안 끓여 먹게 된다. 물티슈와 정로환 한 병, 카레가루와 쌈장이나 좀 챙겨 오라고 한다. 여기 일본쌀을 판다니 한국 쌀 같은 자포니카 종 쌀 구입에도 문제없다. 삼겹살집도 있다니 임대균 선장 일행이 오면 한 번 가보자.
오늘 오후 냉장고를 고치러 온다는 엔지니어가 문자로 내일 온다고 한다. 내일은 정말 오려나? 또 요트 수리점에서 마스트 등 교체와 윈드 인디게이터 센서를 수리할 엔지니어 일정을 내일 알려 준다고 했는데 그 약속도 지켜질까? 여차직하면 여기서 항해로 3시간 거리인 Rebak Island Resort & Marina, Langkawi 마리나로 가야할지도 모른다.
첫댓글 마리나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