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 핼드 카메라가 있다. 그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익숙한 거리, 늘 지나면 보이는 같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시간들을 흐르는 차, 사람들, 늘 같은 공간에 늘 같은 사람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 허름한 상점 구석 먼지 앉은 소소한 물건들, 아버지의 어깨 위에 앉아 까르르 웃는 아기, 엄마 손 잡고 한 손에 막대기탕 들고 빨며 가는 아이, 속삭이는 연인들, 갓길 담벼락 사이에 가까스로 피어있는 노란 민들레, 뜨거운 김 풍기며 익어가는 거리 좌판의 진빵, 손 꼭 잡고 느릿느릿 두리번거리며 걷는 몸집 좋은 백발의 노부부, 쉴 새 없이 웃으며 장난치며 아슬아슬 사람들 사이를 달려가는 중고등학생들, 신호 기다리며 잠시 정차한 버스 차창으로 고개를 내민 운전기사, 차창에 머리 기대고 조는 중년의 사내, 좌판 가득한 보세옷을 목청껏 소리치며 파는 작달막한 키에 우렁찬 목소리를 한 사내, 둘러서 좌판의 옷을 연신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들, 길가 조그만 낚시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보며 인상 찌푸린 채 담배연기 연신 피워올리는 주름 가득한 새카만 얼굴의 중늙은이, 화려한 싸구려 꽃무늬 원피스에 길가에서 산 유난히 큰 썬그라스 머리에 올려꽂고 노란색 카디간을 걸친 짙은 화장의 중년의 여성, 새카맣게 튼 맨발을 그대로 드러낸 채 지하철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백원 오백원 짜리 동전 몇 담긴 파란색 플라스틱 바구니 앞에서 고개를 박고 손을 벌리고 있는 사내, 환한 햇살 아래 막 한창인 봄의 녹색 기운을 한참 뿜어내는 거리의 화분에 가득한 꽃이며 풀들, 길게 늘어진 짐운반용 오토바이와 삼섬오오 모여 담배불을 나누며 일감을 기다리는 망사무늬 조끼와 짙은 잠바 차림의 일꾼들, 그 앞으로 바람에 날리는 색색의 옷들, 무심하게 두리번거리거나 만지작거리며 그 앞을 지나는 봄 바람에 이끌려 길 나선 사람들, 붐비는 시장 뒷골목, 인적 드문 곳에서 오지 않는 손님들 기다리며 졸고 있는 노점상들, 그 앞 생선가게에 윙윙거리는 파리 몇 마리, 한낮에도 밤처럼 환하게 불밝힌 시장 한 가운데 긴 의자에 앉아 대낮부터 불그레한 얼굴로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초로의 사내들, 더러 비틀거리며 지나는 낯산 이와 멱살 드잡이를 하는 중년의 사내, 높게 쌓인 적갈색 먹거리들, 바로 그 리어커 아래 버려지고 흘린 음식 찌꺼기들, 무심한 사람들, 그 긴 거리를 지나 들어선 화랑거리, 조용하다 못해 무료한 자그마한 화랑들의 적막, 그 안에서 그 침묵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몇몇 사람들,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쉴 새 없이 둘러보며 사진을 찍어대는 관광객들, 물건을 사지 않으면서 비좁은 가게에 가득한 사람들, 그 사이를 번개처럼 곡예하며 빠져나가는 어린 배달부들,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에서 슬쩍슬쩍 그 사람을 읽어내는 상점 유리창에 기대선 주인과 종업원들, 이층 찻집의 열린 창문으로 삐죽이 나온 팔들, 그 앞에 깔끔하게 도열한 화분들, 어디선가 진하게 풍겨나오는 커피향, 따라울리는 음악소리들, 바람에 보일듯 말듯 한들거리는 포플러나뭇잎들, 줄지어 늘어선 차들에서 켜지기 시작하는 후미등, 조금씩 밝혀지는 가로등, 멀리서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하늘, 더 멀리서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 문득 한꺼번에 떼지어 날아올랐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는 거리의 비둘기들, 지하철 입구로 사라지는 사람들, 머리부터 그 입구에서 천천히 솟아오르는 사람들, 멈춰 선 버스와 자동차에서 피곤함이 묻어나는 사람들의 시선, 이층 세무사 사무실에서 고개 내민 사내, 창을 열고 기지개를 켜는 법률사무소 직원, 손에서 눈에서 전화기를 떼지 못하고 길을 걷는 하늘거리는 원피스 차림의 아가씨, 강아지를 품에 안고 두리번거리는 여인, 포옹하는 젊은 연인, 그 위로 소리없이 내리는 어스름, 파스텔톤으로 넓게 번져가는 주홍빛 저녁놀...
찬찬히 걸어가며 이런 모습들을 바라보는 핸드 헬드 카메라의 앞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어깨가 보여도 좋을 것이다. 미술사관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중년의 사내가. 낯선 도시에서 사촌의 위독함을 듣고 찾아온 중년의 여성을 만나도 좋을 것이다. 두 사람은 그림을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여인의 사촌은 결국 다시 눈을 뜨지 못하겠지만 그들의 삶은 계속 될 것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무엇인가 불만스러워 울고, 어른들은 찌푸린 얼굴로 혹은 까닭없이 밝은 얼굴로 거리를 걸어갈 것이다.
햇살은 여전히 내리쬐고, 바람은 늘 불어올 것이다. 춥고 더울 것이다. 아무도 낯선 이의 비밀을 알지 못할 것이다. 더러 가까운 이들도 모르게 누군가는 울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어둠속에서 떨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왼쪽 어깨는 여전히 아프고, 또 누군가의 편두통은 간헐적인 발작을 불러올 것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또 많은 사람은 이별할 것이다. 어딘가로 비행기는 떠나고 배는 항구로 돌아올 것이다. 어제는 오늘이 되고 오늘은 내일로 내일은 또 내일로 그렇게 끊임없이 흘러갈 것이다. 핸드 헬드 카메라를 든 사내와 그 앞에 어깨를 맡긴 사내도 그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그 사내의 시선과 어깨를 따라가는 우리들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더러는 슬프게, 더러는 이름답게.
미술관의 그림 속 시간이 정지해 있듯 더러 정지한 것 같은 순간도 있을 것이며, 첨탑 끝에 매달린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을 것이다. 살아있다면 이 모든 것은 가능할 것이다. 이카루스가 추락해도 농부는 고개 숙인 채 밭을 갈고 배는 제 길을 간다. 모든 이들의 삶의 의미은 제 각각 다른 빛으로 보이지 않아도 찬란할 것이다. 브뤼겔의 그림을 본다.
젬 코헨, 아프카니스탄 출신의 감독이다. 그의 시선이 내 시선과 같은 궤적을 그린다. 그의 마음의 그림자가 내 마음의 그림자를 닮았다. 그의 영화를 보아야겠다.
한 시간 사십분, 소리없는 무성영화 보듯 침묵 속에 영상과 자막으로만 보았다. 이 영상에 어떤 음악이 흘렀을지 들리지 않아도 들리는 듯 했다. 그러나 들으며 보고싶다. 소리를 보고 영상을 듣고 싶다....
첫댓글 카스에 올린 글, 다시 씁니다...
교수님^^이번학기 출석수업에서 뵈었는데요. 넘 감동이었습니당~~
안녕하세요? 전 일본학과4 학생입니다. 영시를 제데로 읽고 싶어서 수강 신청을 했는데
역시. 잘 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출석수업이 짧아서 아쉽지만 방햫은 잡았습니다.
감사합니다^~^
3학년 편입했고 - 출석수업 놓쳐서 어제 안양학습관서 강의 들었습니다
감사드려요 - 참 재미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