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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올해로 30년을 맞이한 통신 서비스에는 유독 ‘무제한’이라는 단어가 많이 따라 붙었다. 특히 무제한 요금제는 통신사들이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전환점으로 활용한 단골 메뉴였다. 물론, 가장 잘 먹혀드는 무기이기도 했다. ‘공짜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무제한이라면 밑도 끝도 없이 쓰는 게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하지만 더 많이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 ‘무제한’의 매력인 것 같다. 결국 2014년 봄, 통신사들간의 경쟁은 음성과 문자메시지, 데이터까지 제한이 모두 사라졌다. 통신사들의 무제한 요금제 역사를 돌아보자. 이동전화 시장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무제한 요금제는 1998년 신세기통신이 시작했던 ‘패밀리 요금제’다. 신세기통신의 식별번호를 따서 ‘017 패밀리 요금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요금제는 정해진 4대의 휴대폰 사이에서 음성통화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요금제다. 처음에는 동일 명의로 4대를 가입해야 했다가 나중에는 타 명의의 휴대폰과 묶을 수도 있게 됐다. 기본 요금도 1만7천원으로 표준 요금제와 비교해서 거의 차이도 없었다. 당시는 휴대폰 요금 자체가 비쌌고 통화료도 부담스러웠다. 조금이라도 긴 통화는 유선전화로 바꾸어서 하던 시절이었는데, 패밀리 요금제는 하루 종일 휴대폰을 붙들고 있어도 추가로 청구되는 요금이 없었다. 가족끼리 통화하라고 만든 요금제였지만, 사실은 커플 요금제에 가까웠다. 이 요금제는 순식간에 화제가 됐고 신세기통신은 가입자를 늘리는 데 성공했다. 신규 가입자의 30%가 패밀리 요금제에 가입했고, 전체 가입자의 20%가 속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무제한이라는 점을 이용해 종일 휴대폰을 연결해두거나 착신 전환을 이용해 무료로 통화하는 등 편법이 기승을 부렸다. 결국 이 요금제는 완전 무제한에서 한 달 210분 상품으로 변경되면서 사실상 사라졌다. 무제한 패밀리 요금제는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신세기통신으로선 망 부담이 컸기에 오래 유지하기 힘들었다. 다른 통신사들도 비슷한 요금제를 쉽게 내놓지 않았다. 대신 지정한 1개 번호와 통화를 저렴하게 할 수 있는 지정번호 할인 요금제나 커플간 일정 수준의 무료 통화를 주는 커플 요금제 등으로 진화했다. 이 요금제에 가입했던 이들은 신세기통신이 SK텔레콤에 인수된 이후, 지금까지도 직접 변경하지 않으면 현재 3G나 LTE에서도 계속해서 쓸 수 있다. 가입된 번호와 명의는 100만원을 넘나드는 값에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번호를 판다 해도 명의 변경이 안 되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따랐다. 패밀리 요금제 이후 등장한 것이 ‘커플 요금제’다. 이름은 커플 요금제지만 커플인지, 친구인지, 회사 동료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가입자가 미리 지정한 1인과 서로 짝을 맺어 월 200분 동안 무료로 통화하고, 12시 이후 심야 시간대부터 아침 6시 정도까지는 음성통화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요금제였다. 통신사로서도 트래픽이 붐비는 낮 시간대에는 제한을 두고, 망이 텅 비어 있는 심야 시간대에는 생색을 낼 수 있는 요금제이기에 손해볼 건 없었다. 이 커플 요금제는 모든 통신사의 가장 인기 있는 요금제로 성장해 왔다. 지금은 음성통화가 데이터와 묶이면서 희석됐고 망내 무제한 요금제 등이 나오면서 잘 눈에 띄지 않게 됐다. 하지만 지난해까지도 커플간 무제한 통화 같은 요금제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통신사들은 패밀리 요금제 이후 뭔가 하나를 100% 무제한으로 푸는 서비스를 잘 내놓지 않았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판단에서다. 가입자가 늘어날 수는 있어도 이용자별 요금이 잘 오르지 않았고 그에 비해 망 부담은 급속히 늘어났다. 그런데 2011년부터 데이터 요금제에 변화가 생겼다. 데이터 통신 무제한 요금제가 나온 것이다. 사실 국내에 아이폰이 들어오기 전까지 휴대폰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요금은 매우 비쌌다. 통신 3사는 거의 10년간 휴대폰에서 텍스트, 영상, 음악 등의 온라인 서비스를 해 왔지만, 이 서비스들의 실패는 모두 통신요금 때문이었다. SK텔레콤의 ZUNE 서비스는 멋모르고 접속한 학생들이 영화 한 편을 보고 100만원 가까운 청구서를 받아보는 등 사회적 문제로 번지기까지 했다. 아이폰의 등장 이후 데이터 통신 요금 체제가 완전히 바뀌면서 4만5천원 정도의 요금으로 음성통화 200분, 데이터 통신 500MB를 함께 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면 여전히 데이터 요금은 비쌌다. 스마트폰 시장이 아이폰을 서둘러 들여온 KT 중심으로 재편되자 SK텔레콤은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바로 ‘3G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다. 얼마든지 데이터를 쓰라고 광고 문구도 ‘콸콸콸’이었다. 비슷한 요금제를 KT와 LG유플러스도 내놓으면서 사실상 모바일 인터넷도 무제한이 됐다. 이에 따라 문자메시지도 카카오톡 등으로 대체되면서 음성통화를 제외한 인터넷과 메시징에 제약이 사라졌다. 통신사들은 이용자가 데이터를 지나치게 많이 쓴다고 판단하면 속도를 떨어뜨리겠다고 했지만 무제한 요금제 발표 이후 트래픽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전반적으로 망 속도가 느려졌다. 이후 주력 통신망이 LTE로 넘어가면서 망에 여유가 생겼고 속도 조절도 이뤄지지 않았다. LTE로 통신망이 세대교체를 하면서 데이터 트래픽은 다시 제한이 생겼다. 3G 요금제가 처음 나왔을 때보다는 같은 요금 대비 더 많은 데이터를 주긴 했지만, 이미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쓰는 인터넷 이용량은 상당히 늘어났고 LTE로 속도도 빨라졌다. 결국 소비자들은 LTE는 비싸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LTE에는 무제한 요금제 없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통신사로서는 트래픽이 늘어나는 것도 부담일 뿐더러 무제한 요금제로는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을 끌어올리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이 심해지면서 제한적인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 LG유플러스는 9만5천원에 LTE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는 요금제를 내놓았다. 하지만 사실 완전한 무제한은 아니고, 매일 기본 데이터 14GB를 쓸 수 있고 이를 넘기면 2Mbps의 속도로 제한 없이 쓸 수 있다. 다음날이면 다시 데이터가 채워진다. 이 정도 속도면 큰 불편 없이 유튜브 영상을 볼 수 있는 속도이긴 하지만 가격이 비싸 일반적인 주력 요금제라기보다는 일부 헤비유저들을 위한 수준이다. 2013년 3월, 통신사들은 데이터 대신 새로운 형태의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는다. 패밀리 요금제 이후 소원해졌던 음성통화에 대한 제한을 푼 것이다. 시작은 SK텔레콤이었다. 모든 전화 통화에 적용되진 않았고, 이른바 ‘망내 무제한’이었다. SK텔레콤 이용자간에 통화료를 없앤다는 것이다. 이 ‘T끼리 요금제’는 3만4천원부터 나왔다. 단순 계산으로도 SK텔레콤 가입자가 전체 휴대폰 이용자의 절반이다. 이 요금제는 기대 이상으로 잘 먹혔다. KT는 이전에도 요금에 3천원을 더하면 KT 망 내에서 3천 분을 통화할 수 있는 옵션 요금제가 있었는데, SK텔레콤이 T끼리 요금제를 내놓은 이후 이 요금제를 손봐 아예 망내 무제한으로 풀었다. LG유플러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판도가 약간 달라졌다. LG유플러스는 아예 통신 3사 모두에 거는 전화를 무료로 풀었다. 사실 망내 통화는 기본적인 망 운영비 외에 추가적인 비용이 들지 않는다. 각 통신사의 기지국, 교환기 사이에서 통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사 망에 전화를 걸 때는 상대 통신사에 망 접속료를 내야 한다. 망내 무제한과 이 완전 무제한 요금제는 비슷해 보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KT의 대응이었다. KT는 일정 이상 요금제에 대해 유선전화까지 무제한으로 풀었다. 국내 유선 전화망은 모두 KT의 PSTN 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KT는 유선전화도 사실상 망내 통화였기 때문이다. 통신사들은 그간 음성통화를 가장 중요한 수익 모델로 삼아 왔는데 사실상 데이터가 더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되다 보니 음성통화에 대한 수익을 더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제한을 풀되 그만큼 기본 요금을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음성통화는 마지막 역할을 했다. 2014년 3월, 통신 3사에 대대적인 영업정지가 내려졌다. 각 통신사가 45일씩 영업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보조금을 과다하게 지급해 이용자들을 차별했다는 것이 이유다. 어찌 됐든 당분간 통신사들은 보조금을 쓰지 못하게 됐다. 대신 그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경쟁에 돌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오자 LG유플러스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의 문턱을 낮췄다. 12만원씩 하던 요금제를 손봐, 기본 8만원이면 LTE 데이터를 한계 없이 쓸 수 있게 했다. 5만4천원 하는 WCDMA보다는 비싸지만, 음성통화를 무제한 쓸 수 있게 했다. 하루 2GB가 넘어가면 속도가 조절될 수 있지만 영상 스트리밍을 볼 수 있는 3Mbps 정도로 정해지는 분위기다. 여느 요금제와 같이 통신 3사가 모두 이 요금제를 내놓았다. 이제 통신사가 통신망으로 낼 수 있는 요금제는 다 나온 셈이다. 음성통화나 문자메시지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사업이 됐고, 유선망보다 빠르다는 LTE에도 결국 데이터 제한이 사라졌다. 통신사로서는 이제 가입자에게 8만원 이상의 요금을 받을 수가 없게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 통신사들이 요금 절감을 외치지만 우리는 어느새 4만원대 데이터 요금제에서 5만원대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넘어 6만원대 음성통화 무제한 요금제, 그리고 다시 8만원대 LTE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로 내몰리고 있다. 무제한 쓰는 것도 좋지만, 내게 맞는 적절한 요금제를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발행2014.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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