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마트료시카
-백조의 밤
남궁선
해양 공원의 노점 테이블 위로 나뭇잎 그늘을 피해 꽂히는 노란 햇살 일렁이는 술 취한 장기와 파도와 정신의
정처 없는 발길과 기념품 가게 좌판에 놓여있는 마트료시카 예리한 칼을 들어 입술의 양쪽 끝 아귀의 살을 찢 으 며 웃는 다크 나이트의 죠커나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입술과 몸뚱이 상체와 하체를 비틀어 토해내는
저수지의
밤비가 내리는
칠월의 살구가 떨어지는
익모초의 생즙 같은
요양의
밤
오데트는 손끝의 힘을 뺀다 백조의 호수 주변의 공기를 찢으며 네 마리의 백조가 뛰어 오르며 춤을 끝내고 서른일곱 마리의 백조가 뛰어 오르며 춤을 끝내고 긴장한 그들의 피로와 순례 근육의 운명은 어두운 마룻바닥에 엎드려
이마에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숲으로 이어진 푸른 농담濃淡과 조금 더 길게 내 뱉는 숨과 짙노란 살구가 들려 있는 반쯤 오므린 손
저 저수지 위에 뜬 달이 입술을 닦아주는 밤
신작시
마트료시카
-소멸하는 펄 타피오카
머리부터 뒤집어 쓴, 붉은 망토, 두른 부드럽고 뭉툭한 목에서 매듭이 풀리고 목이 드러나고 칼바람이 불어 닥쳐 피를 토하던 윗입술과 아랫입술의 구멍 하나의 점으로 점성술사의 예언처럼 봉인된 옆구리에 나란히 붙어 있던 두 팔과 양 볼의 연지 속눈썹과 둥글고 통통한 배 위로 만개했던 꽃들이 사라지고 쭈그러들며 한 점 봉오리로, 아가야
턱을 괸 채 지구본을 돌리다 검지에 묻은 먼지를 바지에 문지르다 지구엔 은하본이 있을까 은하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할 수 없어서 두 귀를 막고 머리를 흔드는데 귀는 어디에 있을까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간다 해양 공원 쪽으로 대기가 노래지고 있다 종이 박스에 담긴 누들을 입 안으로 쓸어 넘길 동안 수평선 너머로 해가 킬빌의 우마 서먼이 휘두른 칼날에 잘려나간 야쿠자의 목에서 뿜어지던 핏방울처럼, 진다 검은 하늘 은하수 붉은 쪽배에 내 아가
얼굴 축소 마사지 숍에서도 봤어 또 어디더라, 아 거기 골목에서 나와 큰 길 옆 카브 집 커피숍에서도 봤잖아 흑당 밀크 티 마셨던 곳, 자주 보이네? 몇 피스였지? 우리 집엔 아홉 피스지? 자세히 봤어? 밀크 티 그 집엔 파란색이더라, 그거 말고 …… 그거 말고
스트로를 따라 올라왔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언제까지라도 끊임없이 목구멍 안으로 넣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펄 타피오카, 내 아가야
요즘은 턱관절의 힘을 빼려 한단다 그러면서 느껴보려 해 잇몸과 이빨의 사이 겹겹이 싸인 어둡고 축축한 구멍에 들어앉아, 부드럽게
근작시
우리의 부족한 질투는 누가 채워주나
-「오감도 시 제6호」에 나타난 오기誤記 연구
잔등을 둥그렇게 말고 틀린 글자를 찾는 손
숭숭 빠져 버린 머리카락
가늘고 부드러워진 머리카락
비인 정수리에 가 닿는 노란 햇살
심오함이 없는
머리통의 울림이 없는
발성법과 호흡법이 없는
벌써 도통한
평범해질수록 주목 받는
연기와 우리를 체념하게 하는 것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
여배우라는 삶이 주어졌을 때부터 주인공으로 살아야만 했던
그녀의 찢어지는 외침이
마음에 든다, 그 시인에 대해 연구한 연구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를 하며
결코 불편한 시어들
‘喪尖’과 ‘喪失’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
소중한 세로쓰기와 다정한 가로쓰기에 대한
그들의 과오가 어떻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끝없이 떠도는 그의 옛집 상상력이 풍부한 해석과 불행하게도 이러한
sCANDAL은 그녀의 현실 우리의 부족한 질투
시인의 영정사진 같은 사진
위로 눈송이 내린다 차갑고 선명한 커다란 눈에 반쯤 고인
눈물이 클로즈업되며 나의 눈은 시선을 옮겨
주방 천장에 매달려
먼지를 먹고 산다는 깃털뭉치 같은
수염틸란드시아
앵무의 작은 눈으로
먼지가 되어버린 먼지를 먹고 산다는 그것.
시작노트
요즘 가장 큰 나의 관심사는 ‘힘을 빼는 것’에 있다. 어깨와 손끝의 힘을 빼고 몸통을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깊숙이 돌리는 것. 비슷한 방식으로 발끝의 힘을 빼고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려 왼쪽 다리로 중심을 잡는 것. 이런 힘을 빼는 연습은 물론 요가를 하면서 유념해야 할 동작의 일부이지만, 생활 속에서도 긴장한 여러 근육과 피로한 뇌의 주름에 힘을 빼려 하고 있다.
요즘은 특히 턱관절의 힘을 빼는 것에 관심이 많다. 얼마 전 치과에 방문했는데 나의 윗니와 아랫니가 많이 어긋나 있으니 성인 교정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잘 때는 이를 갈고 평소에는 입을 앙다무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아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틈을 두고 턱관절의 힘을 빼기 시작했다. 힘을 뺄수록 잇몸과 이빨의 긴밀한 사이가 느껴졌다. 잇몸과 이빨의 그 부드럽고 딱딱한 것이 조물조물 어둡고 축축한 동굴 안에서 다정하게 연동하고 있음을. 그런데, 이런 힘 빼는 일을 왜 하느냐고? 잇몸과 이빨의 조물거림을 인식하는 순간, 세상은 부드럽고 평온해진다. 그러니까, 몸에서 힘을 빼는 순간에 집중하다보면 나는 어느새 투명한 세상에 닿아 있는 것이다.
긴장하고 이완하면서 하나의 무대를 끝낸 사람들이 땀에 젖은 이마 위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가쁜 숨을 짧게 내뱉다 조금 더 길게 내뱉으면서 숨을 고르고 있다. 그들의 늘어진 두 팔과 하늘을 향해 반쯤 열려있는 손바닥을 나는 보았다.
내가 쓰는 시에서도 힘을 빼야함을 안다. 현란한 수사나 과도한 의미부여, 달변 같은 것들에 대한 고찰. 하지만 지금은 급하게 가고 싶지 않고,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기에 이상적인 것을 쫓기 보다는 내 손의 감각을 따라 쓰고자 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집중하다 숨을 들이쉼도 내쉼도 인식하지 않을 때 나는 내가 아니면서 나인, 좀 더 자유로운 존재임을 느낀다. 언젠가 힘 빼는 힘없이도 오롯이 드러나는 나의 시를 보게 되면 좋겠다. 그리하여 어느 마을에 지천으로 늘어져 있다는 칠월의 살구가 그 손 안에 놓여있게 된다면.
남궁선 2011년 시작으로 등단. 시집으로 당신의 정거장은 내가 손을 흔드는 세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