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먼곳에' 영화 관람기
靑山 손병흥
평소에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주말이나 공휴일을 이용하여 영화 관람을 즐겨 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가끔 수중에 문화상품권 몇 장이라도 생기게 되는 날에는, 지체 없이 극장가를 달려가거나 아니면 서점가를 들러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지갑 속에다 항상 시내 단골극장에서 발급을 받았던 회원카드와, 그동안 조금씩 모아 놓았던 마일리지를 사용하여 2천 원 씩이나 할인이 되는 모 회사에서 발행한 카드를 늘 함께 소지하고 다닌다.
이처럼 영화감상을 즐겨하게 된 배경에는, 아마도 문화의 혜택을 별로 받지 못했던 시골 태생인 것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일종의 천막극장인 가설극장과 그 당시 군청에서 영사기를 들고 나와 초등학교 운동장을 이용하여 여름밤에 보여주었던, 비록 조잡한 스크린과 온통 비가 내리는 것처럼 낡았던 필름 일망정 너무나 마음을 설레 이게 해 주던 영화를 보았던 추억들과, 더불어 20대 초반 시절 <조국의 방패>와 <배달의 기수> 라고 하는 TV프로그램 등에 출연을 했었던 일말의 향수, 그리고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취미생활로 8mm 무비카메라와 영사기를 어설프게나마 다뤄봤던 경험들 외에도, 지금 현재 부산소재 모 대학교의 전문스튜디오에서 직접 출연하여 촬영 및 편집제작이 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매학기 별 39개 강좌로 이루어진 교육콘텐츠를 통한 사이버과목의 강의를 맡고 있는 처지와 일련의 사정 등이, 작게나마 조금은 영향력으로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여름철에 모처럼 감명 깊게 보았던 '님은 먼 곳에' 라고 하는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그 제껏 노래라고는 어쩌다 밭일하던 중 새참을 기다리며 동네 어른들 앞에서 불러 본 게 전부였던, 한 순박한 시골 새댁인 고지식한 경상도 어느 농촌의 종갓집 삼대독자의 며느리인 순이라고 하는 여주인공이, 너무나 안타깝고 불행하게도 그녀의 남편은 결혼 전 사귀었던 여자 친구를 잊지 못한 채 횅하니 군대를 가버리는 바람에 마음 상심해 하던 중에, 그저 한시라도 빨리 손주를 볼 려고 하는 시어머니의 채근에 이은 닥달과 성화에 못 이겨 떠말려 면회를 갔건만, 그냥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손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 바람에 너무 속상해 하게 된다.
그러다가 너무나 안타깝게도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복무하고 있던 부대 내무반에서, 그동안 자기를 마구 놀리고 비아냥거리던 고참을 울분과 분노에 못 이겨 감정이 폭발하여 사정없이 두드려 패는 '대형사고'를 치게 되어버렸고, 그 일로 인해 소속부대의 상관이었던 중대장이 '영창갈래, 월남갈래?' 라고 하는 선택을 강요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지원을 하여 또다시 머나 먼 전쟁터로 떠나버리게 된다.
그 이후 시어머니의 쉴 새 없는 성화에 못 배겨 다시금 부대로 면회를 갔다가, 뒤늦게 사 집에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이미 전장으로 떠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토록 너무나 얄밉고 야박했던 남편이었건만 직접 그를 만나기 위해서, 그녀는 위문공연단에 지원하여 마침내 천신만고 끝에 월남 행 배를 타는데 성공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흔한 고고장이나 팝송에도 익숙하지 못했던 데다, 시골 새댁이다 보니 아는 것이라곤 당시 70년대 '한국의 디바'로 불리었던 가수 김추자 씨가 노래한 달랑 '님은 먼 곳에' 란 노래뿐이었던지라, 밴드리더인 정만으로 부터 갖은 호통과 무시와 눈총을 받게 되지만, 끝까지 참을성과 인내심으로 포기를 하지 않은 채 총알이 마구 비 오듯 쏟아지는 베트남(구 월남) 전쟁터에 가서, 그녀는 남편을 찾기 위해 한국에서 파월 된 이 부대 저 부대를 전전하며 안타깝고도 애절한 위문공연을 하게 된다.
사뭇 전쟁 통을 관통하고 있는 한 여자의 정말 목숨을 건 큰 사랑과 순애보를 통해, 이준익 감독이 보다 더 자극적인 소재나 화려함이 없이도 너무나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던 이 영화는, 무려 제작비가 70억 원이 투입될 만큼 이미 '블록버스터'로 꼽히고 있으며, 그야말로 순박했던 시골 새댁이 낯선 땅에서 무대를 휘어잡는 스타가 되고, 나아가 험난한 전장에서 살아남는 모험담과 성공담 까지도 지켜볼 수가 있었다.
또한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와 '대니 보이' 그리고 '늦기 전에' '수지 Q' 등 당시의 시대상이나 여주인공의 심리묘사와 잘 어울리는 노래들을 선정하여 강한 휴머니즘을 보여주고 있으며, 순간순간의 섬세한 변화를 보여줬던 그녀의 연기 외에도, 한평생 남을 속이고 등쳐먹고 살면서 돈밖에 몰랐던 사기꾼 정만 까지도 점차 숨겨진 인간미를 되찾게 되는 캐릭터의 설정으로 인해, 다시금 찡하게 가슴을 울리기도 하였다.
영화 속에서 순박했던 1960년대 한 시골 여인이었던 순이 가, 어쩔 수 없이 이름까지도 예명인 써니로 바꿔 당찬 여장부가 되어, 비정한 남편을 찾아 숱한 아픔과 고난을 겪으며 베트남 전장을 한없이 헤매는 장면을 보면서, 슬며시 눈가에 이슬이 맺혀지기도 하였다.
남편은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은 채 집에서 강제로 맺어준 사람과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였으나, 그때까지도 혼인 전 대학시절에 만났던 옛 애인을 잊지 못한 채로 강제결혼을 하자마자 군대에 가버렸고, 그러했던 비록 괘씸하고 몹쓸 남편이었다고 할지라도, 날마다 눈물로 지새우며 찾아 나서겠다고 하는 시어머니를 만류하며 대신하여서, 감히 며느리가 된 도리로 머나 먼 그곳까지 찾아 나선다고 하는 설정이 요즘 사람들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는 않겠지만, 과연 사랑이 뭔지 어쩌면 그와 같은 부부애가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다고 하는 다소 냉소적인 연민의 정이 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