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 프로 데뷔 3년째가 됐다. 느낌이 신인 때나 작년과 다른가?
고 : 신인 때는 정말 겁 없이 플레이했다. 작년에는 ‘2년 차 징크스’를 겪지 않으려고 연습을 많이 했다.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건 나쁜 의미가 아니다. 그만큼 투어에 적응하고 신경이 거슬리거나, 뭔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골 : 만약 올해 상금 랭킹 1위에 오른다면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나?
고 : 솔직히 상금 랭킹 1위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그러므로 아직 어떤 계획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도 만약에 1위에 오른다면? 계속 우리나라에서 플레이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 해외 진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빨리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것 같다. 충분히 준비한 후에 가는게 맞는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일본LPGA투어는 경험해보고 싶다. 만약 간다면 일본에 먼저 갈 것이다.
골 : 부상이 없이 이렇게 플레이를 잘할 수 있는 특별한 비결이 있나?
고 : 올해는 김사랑 트레이너와 함께 투어를 다니고 있다. 일주일에 사나흘씩 운동하고 마사지도 받고 그러니까 작년보다 피로가 덜 쌓이는 것 같다. 여자 트레이너라서 함께 방도 쓰고 식구처럼 생활하고 있다. 빠지지 않고 운동할 수 있어서 좋고 컨디션을 계속 최고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어 좋다. 평소에 하는 트레이닝은 기구가 아닌 맨몸 운동이라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다.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근력 운동을 한다. 꾸준히 하던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그걸 위주로 진행한다. 내가 조금 더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거나 어느 부분이 약하다고 느껴지면 트레이너에게 바로 말한다. 그러면 그것에 맞게 또 프로그램을 만들어준다.
골 : 대회를 앞두고 징크스가 있나?
고 : 대회 중에는 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 오후 티오프일 때는 오전에 시간이 많으니깐 상관없는데 오전 티오프일 때는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오히려 더 피곤함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오전 티오프일 때는 최대한 가볍게 먹고 자는 편이다. 대회 중에 부모님이 미역국을 먹지 않는 징크스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 삼다수 대회 때 일부러 미역국을 먹었다. 그 징크스를 깨기 위해 함께 먹었는데 역시 성적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 대회에서 공동 8위에 올랐다.
골 : 올해 대회 중 가장 아쉬웠던 대회가 있었다면?
고 : 없다. 항상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우승하기 위해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 결과에 승복하면 된다. 단지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계속 보충하면 된다.
골 : 그럼 가장 만족스러웠던 대회는?
고 : 당연히 우승했던 대회가 만족스럽겠지만 나는 좀 다르다. 버치힐에서 열린 초정탄산수용평리조트오픈이 더 만족스러웠다. 공동 78위로 컷 탈락했지만 배운 게 정말 많은 대회였다. 나는 그 대회의 디펜딩 챔피언이었고 주위의 높은 기대도 있었고 스스로 가진 부담도 있었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컷 탈락은 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깨진 대회였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컷 탈락하는 게 무서우면 대회에 나가지 않으면 된다. 그 바로 다음 대회가 BMW레이디스챔피언십이었는데 그로 인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골 : 프로 데뷔 이전과 프로 데뷔 이후 골프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나?
고 : 예전에는 집안이 부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골프를 했다. 하지만 그걸 내가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다. 어려서 그런 상황을 잘 모르고 열심히 골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부모님이 골프를 시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것이 더 진지해졌다. 가장으로서의 내 역할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스물두 살이 비록 어린 나이일 수는 있지만, 투어 3년째고 부모님이나 주위에서 내게 거는 기대도 높으니까 마냥 어린애처럼 골프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골프를 더 진지하게 대하게 됐고 대회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골 : 고진영에게 골프란?
고 :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골 : 골프 외에 관심이 있는 것은?
고 : 많다. 음악도 듣고 미술관에도 간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서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중에는 이탈리아의 피렌체도 가보고 싶다. 책에서 봤는데 정말 멋있는 곳인 것 같다.
골 : 결혼은?
고 : 언젠가는 가겠지만 서른 살은 넘기고 싶지 않다. 그때 신혼여행으로 피렌체에 가고 싶다. 일찍 결혼해서 투어 생활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골 : 머릿속으로 항상 떠올리는 말이 있나?
고 :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이 있다.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팬들도 내게는 그런 존재다. 항상 힘이 난다. 대회 때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마라’라는 문구를 야디지에 써놓고 계속 되뇐다. 효과가 있다.
골 : 실수를 범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고 : 모자를 한 번 올렸다가 다시 쓴다. 열을 빼낸다는 생각으로 하는 행동이다. 또 모자를 벗으면서 안 좋았던 생각을 날려버린다는 일종의 나만의 의식이다. 다시 쓸 때는 모자챙을 조금 더 꽉 조이면서 집중력을 높이려고 한다. 경기의 흐름은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흐름은 타는 것이다. 기회가 올 때까지 그냥 기다린다.
골 : 긴장될 때는 어떻게 하나?
고 : 물도 마시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요즘엔 영화 <싱 스트리트>에 삽입된 OST와 김범수의 ‘투 미(To Me)’를 자주 흥얼거린다. 아마 갤러리가 볼 때는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처럼 보일테니까. 또 갤러리가 옆에 있으면 그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보기도 한다. 그들이 어떻게 걷는지도 유심히 살펴본다.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골 : 기억에 남는 갤러리는?
고 : 예쁘다고 해주는 갤러리는 늘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불쾌해서 기억에 남는 갤러리도 있다. 대회 중에 내 스코어를 물어보는 경우다. “고 프로 지금 몇 개 쳤어?”라고 물어볼 때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그때는 “몰라요”라고 말하고 지나친다. 대회에 집중하고 있는 선수에게 그건 매너가 아닌 것 같다.
골 : 남은 대회 중 욕심이 나는 대회는?
고 : 아직 메이저 대회의 우승이 없다. 그중에서도 KB금융스타챔피언십 우승컵이 가장 욕심이 난다.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건 정말 짜릿하지 않을까.
골 : 프로 골퍼 고진영을 앞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봐주길 원하는가?
고 : 고집은 있지만, 그 고집은 골프에서만 나타난다.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골퍼로 봐줬으면 좋겠다. 아직은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에 대해 잘 모르는건 어쩌면 당연하다.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다. 가식적으로 하는 행동은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내가 보이고 싶은 대로 나만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싶다. 그 모습을 봤을 때 정말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나를 응원해줄거고 그게 아니라면 다른 선수를 응원할 것이다. 무작정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테니까 이해해달라’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면 당연히 문제가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유별나고 튀는 언행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골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달라.
고 : 선수는 항상 잘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그 누구보다 속이 상하는 사람이 바로 선수 자신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웃어야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선수들을 대신해 한마디 하자면, 그들은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오더라도 화면에 비칠 때는 웃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왜 인상을 쓰냐’,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라면서 욕을 한다. 볼이 잘 맞지 않는데 어떻게 웃을 수가 있나. 아무리 프로 골퍼라도 그건 오히려 플레이를 방해하는 스트레스 요인이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클럽을 던지고 부러뜨리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는 단지 표정이 어둡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럼 선수들은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선수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봐주고 응원해줬으면 좋겠다는 것. 일부러 예의 없게 하는 행동이 결코 아니니까. 필드 위에서는 강하게 보여도 밖에서는 그렇지 않은 선수가 정말 많다. 텔레비전으로 보이는 게 전부일 수는 없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런 스트레스를 참아내고 웃어넘기기엔 아직 내가 어린 것 같다.
첫댓글 울 이쁜 진영프로는 말도 어쩜 이리 조리있게 잘하는지...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해져버린건 아닌지...
진정한 프로의 냄새가 풀풀~~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 너무 아름답습니다...
고고님!
우리고프로가 성숙한것이 아닙니다.
예쁘고 똘똘하면 모든것이 자신이 있는것입니다.
인터뷰 기사 감사합니다.~~~
고 진영 프로 사랑합니다!!!
멋진 인터뷰네요.
고진영 프로에 대해서도 잘 알게되어 좋습니다.
진짜 고프로는 말도 조리있게 잘하네요.
고프로 팬임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피렌체 ; 역사도 깊지만 이태리에서도 가장 세련된 곳, 시민들도 자부심 철철, 소실적 5번은 갔었던 기억이 .. 같이 갈 훗날의 배우자가 벌써 부럽네요 ^^;
왜~~난 눈물이 날례할까~~
예뻐,예뻐 고진영프로~^^예뻐~~
갤러리 가서 많이 소리쳐 줄께요^^~ㅋㅋ
인터뷰 기사를 읽고
고진영 프로님의 인간적인 모습과
솔직함 그리고 숨겨진 여린 마음까지 잘 엿볼 수 있었어요
잘 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될거예요
무슨 일이 되었든...응원합니다♡
많이 아끼고 사랑해요
개인적으로 고진영프로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마음을 알지는 못했던거 같습니다.~
그냥 볼 잘치고 성적 잘나오고 내가 하지 못한것에 대한 대리만족이랄까~~
어느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건 단순하지만 그 대상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응원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늦은 댓글이지만 잘 읽었습니다.~~
고진영 프로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