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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가 도달한 키클롭스(외눈박이 거인들)의 섬은 법률도, 의회도, 농경도 없는 공간입니다.
거인 폴리페모스는 외지인을 환대하기는커녕, "너희는 누구냐? 해적이냐?"라고 다짜고짜 물은 뒤 오디세우스의 동료들을 잡아먹습니다.
호메로스는 키클롭스를 통해 환대의 규범을 무시하고 타자를 오직 욕망과 식욕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집단이 곧 '야만'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2. "내 이름은 우티스(Outis)다": 언어적 기지와 존재의 지움
동료들이 하나둘 잡아먹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오디세우스는 무력이 아닌 지혜(Metis)를 발휘합니다. 그는 거인에게 와인을 먹여 취하게 한 뒤, 자신의 이름을 물어보는 폴리페모스에게 결정적인 거짓말을 합니다.
"키클롭스여, 그대는 나의 저명한 이름을 묻는가? 그렇다면 말해주겠다. 내 이름은 '우티스(Outis, 아무도 아닌 자)'다."
1) 언어 유희와 생존 전략
그리스어로 '우티스(Outis)'는 '아무도 아니다(Nobody)'라는 뜻입니다. 동굴 속에서 눈이 멀어버린 폴리페모스가 울부짖으며 다른 키클롭스들에게 "우티스(아무도 아닌 자)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소리치자, 동료 거인들은 "아무도 너를 해치지 않는다면 신이 내린 벌이니 견뎌라"라며 떠나버립니다.
오디세우스는 자기 자신의 고유한 이름과 영웅적 정체성을 스스로 삭제함으로써 거인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습니다.
2) 정체성의 해체라는 철학적 메타포
전쟁터에서 명성을 날리던 '트로이의 목마의 영웅 오디세우스'라는 거창한 자아(Ego)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야만의 위기를 탈출할 수 없었습니다.
즉, 살기 위해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낮추는 이 겸손과 지혜야말로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이 가진 본질적인 힘입니다.
3. 영웅적 에고(Ego)의 재발현과 오만(Hubris)의 대가
그러나 사건은 탈출 성공으로 깔끔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배를 타고 무사히 바다로 떠나던 오디세우스는 승리에 도취하여 탈출의 순간, 거인을 향해 자신의 진짜 이름을 외치고 맙니다.
"키클롭스여! 만약 누군가 네 눈이 어떻게 꺼졌냐고 묻는다면, 이타카의 왕,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가 빼앗았다고 말하라!"
1) 휴브리스(Hubris, 오만)와 포세이돈의 저주
거인의 손을 벗어났다는 방심과 영웅으로서의 자기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영웅적 에고'가 다시 튀어나온 순간이었습니다.
폴리페모스는 오디세우스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자, 자신의 아버지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절대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소서. 돌아가더라도 동료를 모두 잃고, 험난한 고통 속에서 거지처럼 돌아가게 하소서."
이 한 번의 오만(Hubris)으로 인해 오디세우스의 귀환길은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비극적인 고난으로 얼룩지게 됩니다.
■ 3강 요약 및 정리
3강의 폴리페모스 에피소드는 오디세우스의 가장 큰 장점인 지혜(Metis)와 가장 큰 약점인 오만(Hubris)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지점입니다.
우티스(Outis): 자아를 내려놓고 '아무도 아닌 자'가 됨으로써 생존을 얻은 지혜의 순간.
오디세우스라는 이름의 선언: 영웅적 명예욕에 눈이 멀어 오만을 부리다 신의 저주를 부른 순간.
인간은 스스로를 낮추고 해체할 때 비로소 위기를 극복하지만, 영웅적 오만에 빠져 자기 이름을 과시하려 할 때 더 깊은 시련의 바다로 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