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와 다섯 개의 거울
박민영 (문학평론가. 성신여대 교수)
소리의 거울
윤동주 시가 가진 현대성은 자기 인식의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자기 인식, 혹은 성찰의 테마로 윤동주 시를 읽기 시작하면 다양한 거울의 이미지가 보인다. 동시 「산울림」에는 ‘소리의 거울’이 등장한다. 깊은 산속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까치의 울음소리를 산울림이 되받아 들려준다. 이 작품은 1939년 조선일보사 발행의 소년지에 ‘동요’로 발표되었다. 당시에는 1연과 2연의 운율이 마치 노래의 1, 2절처럼 유사하게 짜인 작품도 넓은 의미에서 동요라 칭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윤동주는 이때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았다. 윤동주는 생전에 ‘시인’이란 이름을 얻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산울림」은 당시 서울이라는 중앙문단에 발표한 첫 작품이므로 그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다.
까치가 울어서 산울림, 아무도 못들은 산울림,
까치가 들었다, 산울림, 저혼자 들었다, 산울림, -윤동주, 「산울림」 전문
「산울림」은 윤동주 자신의 시작 태도를 암시하고 있다. 이 시에서 까치를 시인으로, 울음을 시로 바꿔 놓으면 그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된다. 보편적으로 시인이 새에 비유됨은 ‘노래한다’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이러한 알레고리적 비유에 개성을 불어넣는 것이 ‘산울림’이라는 장치다. 산울림은 새(까치)가 자신의 울음소리를 메아리를 통하여 또다시 듣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우리가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고 성찰하듯이, 새는 소리의 거울 산울림을 통하여 자신의 노래를 돌이키고 있다. 이렇게 윤동주에게 있어서 시란 듣는 이를 전제하지 않고 쓰는 내면적 고백이며, 자기성찰의 도구다. 그는 시를 통하여 다시 한번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시가 내면세계를 객관화시키는 과정임을 작품 「산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시를 쓰는 시인이자, 자신의 시를 읽는 독자가 된다.
2. 하늘 거울
윤동주 시에서는 하늘도 종종 자기성찰의 거울 역할을 한다. 시 「서시」에서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노래했다. 시 「별 헤는 밤」에서는 가을밤 하늘이 시적 화자의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읍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윤동주, 「별 헤는 밤」 부분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헤아리고 있는데, 가을 하늘의 별들은 그의 가슴속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로 새겨진다. 그는 이 별들에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같은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붙여본다. 이로써 보편적인 정서를 환기하던 별은 시인 윤동주의 별로 새롭게 태어난다. 윤동주가 사랑했던 이 모든 것들은 한결같이 작고 연약하고 아름다우며, 가을이라는 계절이 소멸의 정서를 환기하듯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하늘의 별을 바라봄으로써 떠올린 과거의 추억들은 ‘현재의 나’를 부끄럽게 한다. 즉 「별 헤는 밤」은 ‘아름다운 이름’과 ‘부끄러운 이름’의 대조로 이루어지며, 부끄러운 이름으로 상징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는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라는 자기 부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부정은 시의 마지막 연에서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라고 미래를 기약하며 새 생명으로의 전환을 꿈꾸는 찬란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마지막 연은 시인의 연희전문 후배 정병욱의 권유로 덧붙였다고 한다. 윤동주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것으로 이 시를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정병욱의 권유 이후 이 시는 부끄러움에서 부활하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거듭난다.
3. 구리거울
시 「별 헤는 밤」에서 나타났던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별의 상상력은 시 「참회록」으로 이어진다.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하고, 그 부끄러움을 시로 옮긴 작품이다. 이 시에서는 ‘구리거울’이 자아를 성찰하는 거울로 나온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중략…)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윤동주, 「참회록」 부분
화자는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그의 모습은 구리거울에 낀 녹과 겹쳐지면서 낡고 녹슨 자아라는 부정적인 자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자의식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라고 탄식하는 강렬한 자기 부정과 정체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그는 자신의 모습이 비친 녹슨 거울을 밤이면 밤마다 닦는다. 녹을 닦아낸다는 것은 세월의 흔적을 지운다는 것이며,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구리거울이 녹슬기 전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이렇게 시적 화자가 참회와 자기성찰의 과정을 통해서 만난 ‘과거의 나’는 어두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듯 하늘에 빛나는 별이 아닌, 그 별이 지상으로 추락하는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고 있다. 외롭고 슬픈 모습이다. 이 ‘과거의 나’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의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어,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4. 우물 거울
자기성찰로 인해 드러난 분열된 자아의 모습은 시 「자화상」에서도 나타난다. 이 시에서는 우물이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우물은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과 가을이 비친 자연이 충만한 거울이며, 무의식의 심연을 상징한다. 즉 우물 속에 비친 모습은 자연을 배경으로 한 ‘현재의 나’임과 동시에, 무의식 속에 감춰져 있던 ‘또 다른 나’의 얼굴이기도 하다. 이 얼굴에 대해 시적 화자는 미움에서 연민으로, 다시 미움에서 그리움으로 상반되는 정서를 교차시키는데, 이렇게 자기 부정의 감정이 연민을 지나 그리움이 되었을 때, 우물 속에 사나이는 ‘추억 속의 나’가 된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윤동주, 「자화상」 전문
이렇게 윤동주 시에서 시적 자아는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로 분열돼 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같지 않으며, 여기에서 거울의 이미지는 현재의 나와 잃어버린 과거의 나를 매개한다. 과거의 나에 대한 그리움은 시 「사랑스러운 추억」에서도 “봄은 다 가고-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와 같이 표현되고 있거니와, 희망과 사랑과 젊음이 과거의 나를 제유하며, 현재의 나는 상대적으로 이것들을 상실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시의 거울
윤동주는 릿쿄대학 시절인 1942년 4~6월에 쓴 시 「흰 그림자」, 「흐르는 거리」, 「사랑스런 추억」, 「쉽게 씌어진 시」, 「봄」 등을 당시 서울에 살았던 대학 동기 강처중에게 우송한다. 그 이후에 쓴 작품들은 1943년 윤동주가 독립운동 혐의로 시모가모(下鴨) 경찰서에 검거되었을 때 압수됐다고 한다. 따라서 이 다섯 편의 시들은 윤동주가 일본에 와서 처음 쓴 작품이자, 우리가 볼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 된다. 윤동주가 남긴 마지막 시가 사실은 마지막으로 쓴 시가 아니라, 오히려 일본에 와서 처음 쓴 시라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시에 나타난 일본의 모습은 거듭되는 일상 속에서 생활로 체험된 일본이라기보다는 아직은 관념 속의, 한두 달 전 떠나온 고향에 대한 대립 항으로서 존재한다. 윤동주가 일본 유학 시절 처음으로 쓴 시는 「흰 그림자」다. 이 시의 완성 날짜는 1942년 4월 14일로, 윤동주는 이 시를 4월 2일 릿쿄대학에 입학한 직후 썼다. 이 시에서 시인은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냄”으로써, 그동안 갈등하고 분열하던 자아를 평정한다. 이 시의 화자인 ‘나’는 거리에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는” 절대의 평화와 안식을 맞이한다. 자기성찰의 시적 여정은, 이 시에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를 바라보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옴으로써 마무리된다. 그는 자아 분열을 극복하고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윤동주 시에서 방은 진정한 나를 찾고자 하는 자기 탐구의 시적 여정에서 출발점이자 귀착점이 된다. 이 귀착점, 특히 도쿄의 육첩방에서 그는 다시 한번 내면의 성숙을 위해 자기성찰을 시작한다. 윤동주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 중의 하나인 「쉽게 씌어진 시」(1942)는 분열된 자아의 통합을 보여주고, 시인으로서의 천명(天命)을 재확인한 중요한 작품이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줄 詩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전문
「쉽게 씌어진 시」는 1942년 6월에 쓴 시로 일본 유학 초기의 작품이지만 「흰 그림자」보다 2달 늦게 쓰인 까닭에 그 기간만큼의 실제 유학 생활의 모습이 담겨 있다. 고향에서 보낸 학비를 받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듣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은 여느 조선인 유학생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는 그 모습 뒤에는 외로움과 자기분열로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 잠재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윤동주 시가 시인과 시적 화자가 일치하지만 이 시는 특히 윤동주의 내면 고백적인 요소가 강한 자전시(自傳詩)로 볼 수 있다. 「쉽게 씌어진 시」는 다만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갈등하지만 결국 자신의 천명을 받아들이는 자기실현의 과정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시적 화자는 비 오는 어느 날 밤 도쿄의 하숙방에서 홀로 생각에 잠겨있다. 육첩방(六疊房)은 당시 윤동주가 유학생 신분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결코 작은 방이 아니다.즉 육첩방은 작고 초라한 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빈 공간이 강조되는 외로운 방이다. 그 방은 등불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으로서, 방 밖의 밤의 공간인 ‘남의 나라’와 구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육첩방은 남의 나라다. 화자는 시인이란 천명을 슬프다고 인식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천명으로 시를 쓴다. 3연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에서 6연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까지가 바로 시 안에서 시적 화자가 쓴 시다. 이 시 안의 시에는 고향을 떠난 외로움의 정서와 유학 생활에 대한 회의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함축한 단어가 ‘침전’이다. 침전은 다음 연에서 시 쓰기와, 그에 따른 부끄러움으로 이어진다. 그는 부조리한 현실을 거부하는 대신, 오히려 그 속에 가라앉음으로써 한 편의 시를 썼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 그렇게 시를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시 쓰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천명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라도 시를 쓸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윤동주에게 시인이란 ‘슬픈’ 천명이다. 그는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다만, 홀로 침전하는’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등불을 밝힌 육첩방은 시적 화자가 자신의 천명을 받아들이고 시를 쓰는 정체성 회복의 공간이다. 현실의 어둠은 시의 등불을 빛나게 해 준다. 살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쉽게 한 편의 시가 써지면서, 분열된 자아는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를 한다. 윤동주 시에 등장했던 분열된 자아는, 오직 시를 씀으로써 화해를 이룰 수 있다. 즉 시 쓰기만이 그가 ‘진정한 자기’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그것이 시인의 천명이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시를 씀으로써 자신을 성찰하고, 마침내 진정한 시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했다. 아마도 윤동주는 이 시 이후 여러 편의 작품을 썼을 것이다. 그해 10월 교토 도시샤 대학에 입학하고 그 이듬해인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기 직전까지도 시 쓰기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쉽게 씌어진 시」 이후의 시는 우리가 볼 수 없다. 검거 당시 일본 유학 시절에 썼던 모든 작품과 일기가 압수되었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는 1947년 2월 13일 경향신문에 정지용의 소개문과 함께 유고 시로 발표되었다. 그가 분열된 자의식을 극복하고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의 시는 이렇게 우리에게 ‘최후의 시’로 남겨졌다. 불행한 시대가 만든 아이러니다. 윤동주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은 우리말을 쓸 수 없었던 그 시대에 이렇게 아름답고 진솔한 우리말의 시를 썼다는 것이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부단히 고민하고 마침내 자의식의 분열을 극복했다는 사실이다. ‘저항시’로 획일화된 관점에서 벗어나 윤동주 시가 가진 현대성을 다섯 개의 거울 이미지로 살펴보고자 했던 이유이다.
박민영 1990년 현대시학 평론 등단. 저서 시의 숲을 거닐다 현대시 산책 현대시의 상상력과 동일성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