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 M1914
1911모델은 다른 나라에서도 카피되었는데 M1911부터 카피모델이 존재했다. 첫번째 카피는 노르웨이에서 나왔다. 쓸만한 자동권총을 찾던 노르웨이군은 1912년에서 1914년에 걸쳐 콜트사로부터 M1911 모델 300정을 구입하고 노르웨이에서 이 모델을 생산하기 위한 라이센스를 따기 위한 협상을 벌이게 된다. 1915년 6월, 25,000크로네를 들여 라이센스를 취득한 후 Kongsberg Weapons Factory에서 자국에서 라이센스 생산을 개시한다.
노르웨이에서 처음 만들어진 모델의 제식 명칭은 "Colt Automatisk Pistol Model 1912" 였으며 500정이 우선 만들어졌는데, 각인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콜트사에서 만든 제품과 100% 동일한 제품이었다.
두번째 생산품은 1919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생산 수량이 상당히 많다. 노르웨이의 1911....하면 바로 보통 이 모델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모델은 슬라이드의 각인이 좀 틀리다(11.25 m/m Aut. Pistol M1914). 슬라이드 스톱 레버가 좀 거창하게 바뀐게 특징이다.

M1914
Kongsberg Weapons Factory 에서는 1919년부터 30년대 초까지 약 20,000정의 M1914를 만들어 냈는데 노르웨이군의 수요가 채워지자 생산이 중단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나찌 정권하에서 1911이 생산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중 나찌가 노르웨이를 점령하고 노르웨이 조병창으로 하여금 이 모델을 생산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나찌는 노르웨이에서 만들어진 1911을 노르웨이를 장악한 독일군에게 지급하려 했지만 생산된 수량은 1941년에서 1942년 사이 1000여 정에 불과 했다.
아르헨티나 M1927
미국에서 M1911A1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아르헨티나 정부에서도 이 총을 구입하여 M1927로 명명하여 제식으로 사용하였다. 콜트사에 주문된 양은 10,000정이었다. 이 모델들의 총들에는 1번부터 10000까지의 오리지널 시리얼 넘버가 새겨져 있다.

M1927
이 물건들의 마무리는 브러쉬 블루 처리 되어 있으며 체커링이 되어 있는 월넛 그립 패널이 장비되어 있다. 슬라이드 오른쪽에는 한눈에 알아 보기 쉬운 각인이 새겨져 있다.

1930년 부터는 아르헨티나 자국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 모델들은 수입품 격인 1927모델과 구분하기 위해 "Sistema Colt"라 불리운다. 물론 여전히 M1927이라고 통칭된다. 이 모델의 슬라이드 좌측에는 D.G.F.M. - (F.M.A.P)이 새겨져 있으며 우측에는 "Ejercito Argentino, Sist. Colt, cal. 11.25 m.m. MOD 1927"라고 새겨져 있다. 모든 M1927에는 아르헨티나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게 특징.

Sistema Colt
M1927은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 소재한 Fabrica Militar de Armas Portatiles "Domingo Matheu," 라는 곳에서 만들어 졌다. 약 38,000정의 M1927이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만들어 졌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후인 1947~1966년 사이에 다시 75,000정이 추가로 생산되었고 이 모델들은 아직도 아르헨티나군에서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다.
모든 시스테마 콜트는 건블루 처리 되어 있으나 해군에서 사용된 모델은 좀 다르게 처리되어 있다. 초기 모델들은 체커링 된 월넛 그립이 장착되어 있으나 후기 모델들은 블랙이나 브라운 계열의 고무그립이 장착되어 있다. 또한 프레임, 슬라이드, 바렐, 매거진 등에 넘버링이 되어 있고 현존하는 모델들 대부분은 표면이 건블루로 재처리 되어 있거나 화학처리 되어 졌으나 화학처리된 물건들의 경우에도 프레임과 슬라이드를 제외한 부품류는 건블루 처리 되어 있다.

Ballester-Molina
밀리터리 모델 외에도 Hispano Argentino Fabrica de Automoviles(HAFDASA)라는 엉뚱한 곳에서도 요상스런 불법 카피가 만들어 졌는데 이놈들은 "Ballester-Molina"라고 불리우는 놈들이었는데 콜트사 제품과 구조, 디자인 면에서 거의 흡사한 놈이다. Ballester-Molina와 M1911A1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립 세이프티가 생략되어 있지만 M1927과 HAFDASA .45 모두 콜트.45에 버금가는 우수한 권총으로 알려져 있다.
이 총이 만들어진 배경이 좀 재미있는데...
전함 그라프 슈페의 최후
1차 대전에서 풍지박살이 난 독일은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인해 '밀리터리 파워'에 많은 제제 조치를 받고 있었다. 전함의 경우도 그러했는데 6척의 구식전함을 보유하는 것만이 허용되었다. 또한 이 구닥다리들을 20년 이상 사용해야만 했으며 새로운 전함으로 교체할 때에도 1000천톤을 초과할 수 없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1920년대 후반, 독일인들은 새로운 전함의 건조가 가능해지게 되자 장갑의 두께를 크게 줄인 대신 장거리 순항이 가능한 전함을 건조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디젤 발전기를 사용하고 얇은 장갑은 선체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모든 이음매 부분이 용접 처리된 포켓 전함 3척을 건조한다. 이중의 하나가 그라프 슈페 - 정식 명칭은 Admiral Graf Spee - 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동양함대 사령관이었던 백작 슈페 중장의 이름을 딴 것이었는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그라프 슈페는 영광스런 이름과는 달리, 주로 연합군의 수송선단을 습격하는 승냥이 같은 역할이 주어졌으며 그라프 슈페호는 훌륭히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승냥이에게도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1939년 12월 13일, 남아메리카 강에서 한스 랑스돌프 선장이 지휘하는 그라프 슈페는 지원함인 Altmarck호와 만나 인도양과 남대서양에서 전과를 올린 후 독일로 돌아가기 전에 연합군측의 호송선단을 다시한번 습격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영국의 헨리 하우드 준장은 이 움직임을 예측하고 3척의 순양함과 함께 전투준비 태세로 대기한다. 랑스돌프 선장은 먼저 영국군을 발견했지만 그들이 호송선단이라고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달려들었다가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전투는 약 80분간 지속되었으며 양측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고 일단 전투지역을 이탈하게 된다. 그라프 슈페도 만신창이가 되어 수리와 보급을 위해 중립국인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항구로 향해야만 했다.

그라프 슈페(Graf Spee)
하지만 우르과이측은 배의 수리를 위하여 단지 72시간동안의 잔류만 허용한다. 불행히도 몬데비오 항구로 영국의 지원함이 다가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지만 피떡이 된 그라프 슈페 호를 72시간 동안 수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기한인 12월 17일이 되자 랑스돌프 선장은 그라프 슈페를 출항시켜 오후 7:52분에 라 플라타(La Plata) 강 어귀에서 자침시키고 만다. 하지만 영국의 함은 12월 19일이 될때까지 항구 근처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랑스돌프 선장이 상황 파악을 잘못 한 것. 우째 이런 일이....-..-ㆀ 다음날 랑스돌프 선장은 국기로 몸을 덮은 채 자살하고 말았다...
초기의 Ballester-Molina 피스톨의 바디는 바로 그라프 슈페호의 선체로 만들어 졌다.

악의 근원 - 미국의 금주법(Prohibition)
총이야기는 잠시 접고 흥청망청했던 미국의 20~30년대를 살펴 보도록 하자. 당시 조선에서는 김두한이 주먹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면 미국에서는 톰슨과 1911, 중절모로 무장한 마피아가 백주대낮에 길거리에서 총격전을 벌이고 있던 시기였다. 영화 대부(代父)로 대표되는 이 당시 미국의 사회 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마피아가 판을 치게 만들었던 '금주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금주법은 1920년 1월 20일부터 효력이 발휘되었는데...갑자기 웬 금주법???

톰슨과 1911은 광란의 시대의 상징물이었다
미국은 성공회를 신봉하고 가톨릭과 청교도를 박해했던 16세기의 영국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였다. 사실 금주운동은 그 이전부터 주욱 있어 왔는데(알고 보면 미국이란 나라, 꽤나 보수적인 나라이다) 금주운동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주류판매와 양조의 금지" 였다. 이 운동은 뉴잉글랜드주에서 시작되었는데 1846년과 1855년 사이에는 메인주를 필두로 해서 13개 주에서 금주운동이 시행되었으나 결국 남북전쟁후인 1865년과 1866년에 폐기처분 되었다.
그러던 중 1910년 새로이 금주운동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1912년에는 9개주, 그리고 4년후인 1916년 23개주가 금주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급기야는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인에 대한 증오심은 엉뚱하게도 금주운동가를 자극하게 되어 금주운동은 더욱 격렬하게 번지게 되고, 전시의 식량절약, 작업능률의 향상 그리고 맥주산업을 손에 넣고 흔들고 있는 독일인에 대한 반감 등이 얽혀 금주운동을 전국화 하자는 요구가 드세어졌다.

금주법 시대에 맹활약한 배트맨
급기야 미국의 양조기업에 주식을 가지고 있던 독일출신 양조 사업가들도 어쩔 수 없이 찬성의 뜻을 표하고 말았다. 당시 윌슨 대통령의 비토에도 불구하고 발안자인 Volstead의 18차 수정안이 의회를 통과한 것이 1919년이었는데 금주 운동가들에게는 승리를, 그리고 전쟁과는 별로 관련없던 양조가에게는 파산을 가져다 주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금주법은 보기 드문 악법이었다. 이 법률 때문에 술을 밀수, 밀송, 밀매하는 갱조직이 날뛰게 되었으며 문자 그대로 광란의 1920년대를 보내게 되었다. 금주법시대의 미국은 28대 하딩 대통령의 정부하에 있었는데 정치적으로 대단히 부패하였고 금주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도시에는 무허가 술집이 많이 생겼다.

Drunken Gangster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음주가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금주법을 어기는 데에 대한 죄책감이 없었고, 음주는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음주는 특권층과 부유층의 상징으로 간주됐고, 가난한 노동자들은 술값이 비쌌기 때문에 좀처럼 술을 마시지 못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일은 점잖은 여성들이 술을 마시게 된 것이었다. 몰래 술을 마시는 것이 사교의 품위를 돋보이게 하는 풍조가 생겼던 것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나쁜 풍조로 많은 청소년이 음주에 가담했는데, 술을 마시는 것을 매우 스릴 넘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숨어서 마셔야 하므로 빨리 마시고 술병을 치울 수 있는 위스키 소비가 폭증했는데 캐나다의 위스키 업체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이때이다.
게다가 밀조 업자들은 공업용 알콜을 이용해 술을 만들었기 때문에(헉...) 수천 명이 사망하는 일까지 있었다. 또한 평소 술을 못 마시게 된 저소득층의 폭력이 두드러지게 늘어나고, 마피아의 횡포가 심해지자 법 폐지 논란은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적당한 음주를 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사회적 이익을 과소평가한 희대의 악법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되었는데 1922년 금주법의 발안자인 Volstead가 의회선거에서 패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1929년의 대공황이 몰고온 월(Wall)가의 대폭락으로 사실상 끝이 났으며 1933년 수정안 제21조에 의해 폐지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우습지도 않은 법이라 하겠다. 대한민국에서도 금연법(본인은 하루에 4갑 핀다-..-)이 발안되면 이 재미없는 세상에 온갖 서스펜스와 스릴이 넘쳐나지 않을까 한다. 담배도 끊고...돈도 아끼고...
금주법이 폐지되고 대공황의 시대로 접어 들며 훗날 영화로도 만들어진 희대의 갱스터 커플이 등장하여 세상을 떠들석 하게 만든다..
Bonie and Clyde
1932년, 당시 미국은 대공황에 허덕이던 시대였다. 텍사스주 부근의 어느 작은 마을의 조그만 카페에서 웨이트레스로 일하고 있는 보니(Bonnie Parker)는 감옥에서 출옥한 전과자 클라이드(Clyde Barrow)와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영화 <Bonie and Clyde>에서 보니 역의 페이 더너웨이.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식의 '우리에겐 내일이 없다'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었다.
그녀가 모르고 있고 알고 싶었던 세계를 클라이드는 알고 있는 것었던 것. 잡화점에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느라 강도질을 한 클라이드. 보니 또한 엉겁결에 클라이드와 함께 훔친 차를 잡아타고 도망치게 된다.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이었던 셈.
이렇게 시작된 보니와 클라이드의 만남은 곧 미국 천지를 누비고 다니며 법을 희롱하는 유명한 갱단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첫 작품은 은행이었는데 은행마저 공황으로 파산하여 빈털털이 신세였다. 어디를 가나 모두 불경기였다. 계속해서 실패만 거듭하는 보니와 클라이드는 우연히 주유소에서 C.W 모스를 만나게 된다.
클라이드는 모스가 맘에 들어 운전수로 채용한다. 그러나 모스는 심각한 꼴통이었는데 결국엔 모스때문에 클라이드는 은행원 노인을 사살해 버리고 만다. 클라이드는 고심한 끝에 보니와 헤어질 결심을 하지만 보니는 끝내 그를 따른다.
얼마 후 클라이드의 형이며 탈옥수인 벅이 아내인 블랜치를 데리고 그 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다섯 명의 일가족 갱이 탄생된다. 이들은 경찰의 끊임없는 추격과 강도질을 일삼아 전미국의 신문기사를 장식하게 되는데...
보니와 클라이드는 쫒기는 가운데로 이런 사진들을 찍어서 신문사로 넘기곤 했다. 간디이 부은 간나덜...

영화 보니와 클라이드(1967)에서 온가족이 다시 모였다...
매스컴은 클라이드 바로우의 이름을 따서 이들을 '바로우 갱'이라 칭하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갱 사회의 스타(?)로 군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쪽수가 많아지다 보니 점차 내분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싸구려 호텔에서 모스가 다시 한번 멍청한 짓을 하는 바람에 경찰들에게 다시 습격당해 보니와 클라이드, 모스만이 겨우 도망친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모스의 아버지인 맬컴의 농장에서 당분간 몸을 감추고 상처를 치료한다. 그러나 맬컴이 자신의 아들 모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보니와 클라이드를 경찰에 밀고하여 결국 이들은 잠복해 있던 경찰들에게 집중사격을 받고 불꽃같은 생을 마감한다. 1934년 5월 23일 이었다.

보니와 클라이드가 최후를 맞은 포드
무려 150발이나 보니와 클라이드에게 쏟아졌는데 이는 보니와 클라이드가 숨을 멎기 직전까지 총을 쏘며 저항을 계속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살아서 붙잡힐 생각이 조금도 없그들이 타고 다니던 차에서는 어지간한 분대 정도는 무장시킬 만한 3000여발의 실탄과 각종 산탄총, 리볼버, 자동권총등이 차 안에서 발견되었다.

보니와 클라이드가 최후를 맞은 차 안에서 발견된 M1911
보니와 클라이드가 사망한 뒤 그들이 타고 다니던 자동차며 총, 심지어는 보니가 죽을 당시 입고 있던 옷까지 미국 내에서 경매로 거래되고 있는데(미국놈들 정말 엽기다), 이중 미국의 옥션에서 16,000달러에 팔려 나간 물건이 바로 클라이드가 사용하던 콜트 M1911이다. 표면에 Barrow라고 스크래치를 새겨 놓았는데 실제로 차를 타고 이동시 보니가 보관하고 있다가 클라이드가 필요로 할 때 꺼내 주었다던 총이라고 한다. 참고로 보니가 태어난 해도 1911년이다.
머신건 켈리 (George "Machine Gun" Kelly)
조지 "머신 건" 캘리는 금주법 시대의 대표적인 악당 중 하나이다. 밀주의 제조와 유통, 납치, 살인 등으로 악명을 떨치던 그는 톰슨 기관단총을 특히 잘 다루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의 전성시대도 끝이 보이고 있었다.

근육질의 영화배우 같은 외모 덕분에 철딱서니없는 여성팬들의 본좌로 군림했다.
1933년 9월 26일 새벽, FBI 특별수사관과 멤피스주 경찰들은 머신건 켈리와 그의 아내가 잠적해 있는 곳을 포위하고 있었다. 개머리판을 짧게 자른 소드 오프 샷건으로 무장한 경찰 윌리엄 래니는 켈리의 방으로 뛰쳐 들어갔다. 켈리는 파자마 차림으로 1911을 들고 서 있었고 그의 아내 캐서린은 침대에 잠들어 있었다. 자포자기한 듯 그들은 밤새 술을 먹고 있었는지...방안에는 여기 저기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래니는 켈리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며 들고 있던 권총을 내려 놓을 것을 명령했다. 켈리는 순순히 체포에 응하며 건물 밖으로 끌려 나왔는데 이때 그가 내뱉은 말은 애처롭게도,
"쏘지 마시오, G-men!!"
이는 "Government Men"을 짧게 줄여 부른 것인데 신문·라디오·잡지 등에 크게 보도되었다. 머신건 캘리라는 이름처럼 한바탕 활극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켈리의 손에 마지막 순간까지 들려 있던 총이 콜트 M1911이었다는 사실과 'G-MAN'이란 단어는 오랫동안 회자 되었다.

법정에 출두중인 켈리
존 딜린저 (John Dillinger)

존 딜린저는 사진빨 좋기로도 유명한 악당이었다.
존 딜린저와 그의 일행은 지능적이고 가증스런 방법으로 은행강도짓을 일삼던 유명한 갱스터중의 하나였다. 경찰조차도 무차별 적으로 죽이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당시 FBI국장이었던 - 1924~72년까지 48년 동안이나 FBI국장을 지낸 전설적인 인물이다 - 존 에드거 후버는 존 딜린저 체포에 FBI의 역량을 집결 시키기 까지 하였다. 결국 1934년 FBI요원들에게 사살되었는데 죽은 뒤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사진을 소개한다.

시체 공시소에서 공개된 그의 마지막을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많은 취재경쟁이 벌어졌는데, 우연히 찍힌 스틸이다. 이걸 본 미국의 철없는 여인네들은 죽어서까지 꼿꼿한 그의 거시기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하는데...아쉽게도 카메라 앵글에 산처럼 튀어 나온 것으로 보이는 것은 그의 팔이었음이 밝혀졌다.

존 딜린저의 데드 마스크와 그의 갱단이 사용하던 무기. 보니와 클라이드 수준인데, 톰슨용 포어 그립에 거의 15발은 장전되는 롱~~~탄창을 끼운 1911 커스텀 모델이 눈에 띈다. 톰슨과 콜트는 이시대 갱들의 영원한 베스트 셀러였다.

위에 소개한 악당들 외에도 수많은 군인, 경찰, 그리고 총기 애호가들에게 M1911은 등장한지 100여년이 되어 가는 마당에도 변치 않고 애용되고 있다. 도데체 그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사실 1911계열 말고도 세상에는 명총이라 불리우는 권총이 수도 없이 많이 있다. 그런데 에어소프트건 컬렉터들에게 조차 '시작은 베레타, 마지막은 콜트'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도데체 1911이 내 뿜고 있는 독특한 개성과 마법과 같은 유혹의 정체는 뭘까?
커스텀의 편의성
1911은 커스텀 핸드건 궁극의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1911은 워낙에 많은 중고 및 커스텀 파트가 널려 있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자신만의 특별한 총을 만들기가 쉽다. 이는 에어건에서도 마찬가지-..- 또한 1911은 아무런 도구 없이도 통상 분해가 가능하도록 디자인 되었다.
1911은 기계적인 관점에서 매우 다루기 쉽기 때문에 커스텀 파트를 장착하거나 개조하는 일이 매우 용이하다. 이런 이유로 공장에서 출고된 오리지널 상태로 보존되고 있는 1911은 매우 드믈며 군용 버전이 아니라면 대개 비버테일 그립 세이프티, 커스텀 트리거와 해머, 롱 타입 리턴 스프링 가이드, 커스텀 그립 등이 장착되어 있는게 기본이다. 자신만의 사이드 암을 원할 때 1911은 가장 우수한 베이스라 할 수 있다.
우수한 명중률과 내구성, 안정된 슈팅 컨디션
1911은 애초에 설계 당시부터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가혹한 환경을 모두 고려하여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 모델이다. 사실 미군의 신형 권총 채용 과정에서 밝힌 바 있지만, 1911은 극단적으로 내구성이 강한 물건으로 150,000발 이상을 아무런 부품교환 없이 사격할 수 있는 내구성의 화신과 같은 총이다. 아마도 1911의 비정상적인 내구성, 오랜 실전경험을 거쳐 입증된 안정성 때문에 1911의 광적인 팬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
아울러 1911은 구조적으로 우수한 명중률을 보일 수 있도록 설계된 총이다. 짧은 시간 동안 수백만 정이 생산된 물건이기 때문에(이 말은 2차 대전까지 생산되었던 소위 밀리터리 콜트에 한정해서 하는 말이다) 요즘의 슈팅용 레이스건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군용으로 생산된 자동권총들과 비교해 본다면 탑클래스에 들어가는 수준의 명줄률을 보이는 총이 바로 M1911이다.
간혹 군대 다녀오신 우리의 삼촌, 형님들이 '콜트는 안맞더라..'식의 말씀을 주로 하시는데 1911매니아라면 그 총들의 나이가 본인들의 할아버지나 아버지 뻘 된다는 걸 반드시 말씀드려야 한다.
최근에 만들어지는 거버먼트 모델은 시그(SIG), 글록(Glock), 헤클러 앤 코흐(H&K), 스미스 앤 웨슨(Smith & Wesson) 등에서 만드는 .45 모델보다 일반적으로 명중률이 우수하다. 건스미스들은 슬라이드와 프레임의 결합을 좀더 타이트 하게 하거나, 매치용의 바렐과 부싱등을 첨가하고 격발 유닛을 커스텀 파트로 교체하여 우수한 명중률을 이끌어 내기도 하는데 최근의 1911 커스텀 모델은 이러한 튜닝 작업이 필요 없게끔 생산되어 우수한 명중률을 보이는 물건들이 많다. 이런 '슈퍼총'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뤄보자.

레스 베어 ULTIMATE MASTER COMBAT PISTOL COMPENSATED
1911의 싱글 액션 트리거에는 장/단점이 모두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하자. 더블 액션 모델과 달리 1911은 슬라이드를 잡아 당기거나 해머를 코킹해야만 격발이 가능하다. 덕분에 더블액션 리볼버/자동권총에 익숙한 양반들이라면 1911을 휴대하고 다니는 것에 질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간단히 말해서 더블액션 모델은 '방아쇠만 당기면' 누워 있던 해머를 일으켜 세워서 공이를 따악....때려 탄을 발사 할 수 있다. 물론 챔버 안에 탄이 들어차 있을 경우이다. 싱글 액션 모델의 경우에는 반드시 수동으로 해머를 일으켜 세운 후에야 방아쇠를 당겨서 격발할 수 있는데, 문제는 바로 이 해머이다. 해머를 일으켜 세운 상태로 이 무시무시한 물건을 허리춤에 꽂고 다니려면 상당한 강심장이 필요하다. 혹시나 실수로 방아쇠를 건드릴 경우 오발 사고가 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에어건이라면 따끔....하고 끝나겠지만 실총이라면 이거이거...끔찍할 노릇이다.
물론 해머를 눕혀 놓고 휴대해도 상관 없겠지만 갑자기 나쁜넘이 튀어나온다면 어느 세월에 해머 일으키고 조준하고 쏘겠는가...이러한 이유로 1911은 콕앤록(Cocked and Locked) 상태로 휴대하는게 보통이다.

콕 앤 록(Cocked and Locked)
물론 콕앤록 상태에서도 위급 순간에는 섬세이프티를 풀고 방아쇠를 당겨야 하므로 더블 액션 모델보다는 초탄을 빨리 날릴 수 없겠지만 해머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격발하는 것 보다는 훨씬 힘이 덜 들고 빠르게 대응이 가능하다. 뒤에서 좀더 상세히 다뤄 보도록 하자.
1편에서 말씀 드렸다 시피 1911의 시제품에는 메뉴얼 세이프티(말 그대로 손가락으로 운용할 수 있는 안전 장치라 생각 하심 되겠다)가 전무했다. 브라우닝은 그립 세이프티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겼지만 군발이들이 노발대발하여 섬세이프티를 추가로 달아놨다. 그립 세이프티와 섬세이프티의 2중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군에서는 약실을 비우고 해머를 내린 채로 휴대하도록 훈련시켰지만 병사들은 여러모로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갑자기 적군이 튀어 나오면 어쩌라고....
이러한 기능은 안전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911의 명중률, 스피드, 내구성의 바탕이기도 하다.
1911 같은 싱글액션 모델은 더블액션 링크가 없어서 방아쇠를 당길 때 해머가 연동되지 않기 때문에 방아쇠 연동거리는 더블 액션 모델에 비해 짧고 가볍다(약 2.3Kg정도). 또한 더블 액션 모델과 달리 초탄과 그 이후의 탄을 발사할 때도 트리거의 압력이 일정하므로 안정된 사격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똥파워
1911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은 '손대포'라는 화끈한 이미지이다. 1911에 사용되는 .45ACP탄과 맞먹는 위력의 권총탄을 꼽으라면 .357 매그넘 할로우포인트 탄 정도라 하겠다. 물론 .45ACP탄을 능가하는 .50AE탄이나 454 캐쥴 탄등의 몬스터급 탄도 있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맹수사냥이나 어른들의 장난감을 위한 물건이지 실용적인 전투용 핸드건에서라면 .45ACP탄 정도로도 너무나 충분하다.

요 뚱땡이가 그렇게 위력적이란다...운동에너지로만 따지자면 9mm 파라블럼탄보다
오히려 떨어지지만 두툼한 탄두에서 전해오는 충격량은 '트럭에 치인 듯한 느낌'이라고 한다.
뭐 맞아본 사람의 표현이니 '그렇군...'하고 넘어가자.
모로족 전사들과의 전투경험으로 인해 등장한 .45ACP탄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현재에 와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데 바로 마약을 복용한 범죄자를 상대로 하는 경우이다. 이들은 감각이 둔해지거나 생존본능이 약해져서 탄이 몸에 박히더라도 크게 충격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쏠테면 쏴라...나도 디질때까지 개긴다'... 뭐 이런 식이다.
탄도학 전문가들은 .45탄의 장점에 대해서 시큰둥한 편이지만 이러한 논란은 .45탄을 사용하는 1911을 미군이 채용하면서 부터 끊엄없이 제기 되었던 문제이니 만큼 특별히 결론을 내리려고 달려드는 건 시간 낭비일 듯 싶다. 물론 미국의 제식 권총도 진작에 9mm 파라블럼 탄을 사용하는 베레타 M9으로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양의 1911이 9mm탄을 못미더워 하는 군인과 특수부대, 총기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1985년부터 미군 제식 권총으로 채용된 M9
손쉬운 조작법
여느 실용적인 총기들이 다 그러하듯이 1911의 경우에도 사용하기 쉽고 간단하다. 사실 1911의 슬라이드 스톱 레버와 매거진 캐치, 섬 세이프티등은 조작하기가 매우 쉬워서 특별한 사용 훈련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 단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고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프로와 초보의 차이가 날 뿐이다. 한가지 주의할 점이라면 앞서 설명했지만 1911을 사용하는 훈련에는 '안전한' 휴대법과 사용 요령에 대해서는 충분한 강습을 받아야 한다....이부분은 2편의 맨 마지막 부분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라스트 카우보이 건
1911은 결국 19세기에 사뮤엘 콜트가 설계한 싱글 액션 아미 리볼버의 진정한 후계라 볼 수 있다. 사실 자동 권총 중에서 싱글 액션으로 만들어진 총은 그 당시 M1911과 Llama.380, 브라우닝의 하이 파워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다른 피스톨 디자이너들은 그립 세이프티를 채용하지 않았으며 FN, Walther, 그리고 Mauser등의 유럽 메이커에서는 싱글액션/더블액션 겸용의 디자인을 주로 채용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소구경의 작고 빠른 .32, .380, 9mm Luger 탄 등을 사용하는데 비해 M1911은 크고 느린 탄을 사용했는데 이는 싱글 액션 아미(S.A.A)가 서부시대를 주름잡던 시대로 총으로 회귀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고풍스러운 느낌 또한 1911 애호가들에겐 큰 매력이리라.
Colt S.A.A .45 Civilian Version
초인적인 수명
총이란 것의 부품수가 아무리 많고 정교하다 한들 우리가 흔히 쓰는 휴대폰보다는 단순할 것처럼 보이지만 총은 일단 사람의 생명과 관계된 물건이기 때문에 총기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이 쏟아 붇는 정성과 노력은 여느 공업생산품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성공적인 총인가를 판단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총이 얼마동안 현역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 보면 된다. 컴퓨터나 휴대폰, 자동차와 달리 총은 일단 개발 되고 나서 10년 정도 지나야 그 물건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이 난다. 그 유명한 HK사의 MP5 시리즈도 개발된지 15년 만에야 빚을 본 물건이며 아말라이트 라이플(원조 M16의)같은 총들도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비웃음을 면치 못하던 물건들이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총기 중에서 1911은 가장 오랫동안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는 디자인'이다. 어떤 총도 1911처럼 처음 등장한 이래 설계변경 없이 생산되는 총은 없다.
1911과 더불어 2차 대전의 명총으로 꼽히던 독일의 P38이나 P08같은 클래식의 경우에도 1911과는 다른 기계적 아름다움으로 컬렉터들의 가슴을 뒤집어 놓고 있지만 총들은 컬렉팅 아이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1911의 경우와 비교해 본다면 웬지 장식장에만 놔둬야 할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현재도 많은 총기 메이커에서 1911계열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수많은 건스미스들이 고색창연한 핸드캐넌 1911을 커스텀 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1911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마디...
앞서 언급한 것들 이상으로 1911에 가치를 부여 하는 것은 바로 1911에 부여되는 그 깊고도 장구한 역사성에 있다 하겠다. 이번 2편에서 맛뵈기 식으로 1911과 관련된 몇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했지만 사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뭐니 뭐니 해도 그 단순하고 터프한 디자인이야 말로 1911이 가진 가장 강력한 마력이 아닐까 한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콜트 M1911A1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뭔가에 빠져 드는 느낌이다. 화장기 없는 여인네의 아름다운 얼굴을 감상하는 듯 하다. 총을 보고 여자를 떠올리다니 난 변태인가..사진 모델은 WA의 신형 M1911A1.

1911의 휴대법
1911에 대해서라면 전설적인 베테랑이자 실전 액션 슈팅의 창시자 제프 쿠거는 1911피스톨 계열의 물건을 가지고 실전에 임할 때의 준비자세를 5가지로 분류하여 정의 하였는데...
Condition 0
약실을 채우고 해머는 제껴두고 안전장치도 모두 풀러 둔 상태로 '당기면 나가는' 가장 위험한 휴대법. 실전 상황에서 쓰일법한 휴대방법이다. 혹시나 홀스터에 이런 상태로 총을 채워두고 다니려는 사람은 없을 듯. 필자가 게임시 사용하는 부무장은 1911계열인 인피니티인데 에어건이지만 이런 식으로 휴대하고 다니면 웬지 불안하다-..-
Condition 1
전문가들로 부터 가장 호응을 얻고 있는 휴대법이 바로 컨디션 원 - 콕앤록 -이다. 앞서 설명했지만 약실에 탄을 채운 상태로 해머를 코킹하고 섬 세이프티를 위로 올려 휴대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컨디션 원은 가장 우수한 '빠르고 안전하게' 1911 계열의 총기를 실전 상황에서 휴대하는 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방법의 가장 큰 단점은 1911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에겐 매우 위험한 휴대법이라는 사실이다.
Condition 2
약실에 탄을 채우고 해머는 총에 달라붙게 한 채로 휴대하는 것. 컨디션 투는 여러가지 이유로 문제가 좀 있는 휴대법이다.
우선 컨디션 투 상태로 1911을 세팅하는것 자체가 쉽지 않다. 1911은 탄창을 끼우고 슬라이드를 한차례 당겨주면 약실에 일발 장전이 되고, 해머는 코킹된 상태를 유지한다. 바로 컨디션 제로 상태가 되는데 이 상태에서 해머를 내려 놓으려면 트리거를 잡아 당긴 상태에서 해머를 엄지에 걸고 슬슬 내려 놔야 한다.
문제는 해머가 직접적으로 때리는 파이어링 핀이 탄의 뇌관과 수미리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재수 없이 해머를 내리다가 미끌어 지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격발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가스건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그까짓 해머 내리는 일이 대수냐'라고 응수 할 수도 있겠지만 실총 해머스프링의 엄청난 강도를 직접 체험해 보시면 고개를 끄덕이실 것이다. 어쨋건 이런 상태에서 격발이 되면 오발 사고 뿐 아니라 손가락이나 손 전체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된다. 에어건으로 실험해 볼 수도 있으니 탐구심이 왕성하신 분이라면 도전해 보실 것.
가스 블로우백 에어소프트 건의 경우라면 속편하게 탄창을 제거하고 격발 후에 다시 탄창을 결합하면 그만이지만 실총으로 이짓을 하다가는 일단 옆에서 지켜보는 교관 선생님들의 이단 옆차기도 덤으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컨디션 투 모드에서 격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머를 코킹해 주어야만 하는데 급박한 상황에서라면 오발사고 어쩌구가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 총탄에 내가 먼저 골로 가는 수가 있다. 어짜피 컨디션 원이나 투나, 격발전에 딴 짓거리를 한번 해 줘야만 격발이 가능한 상태가 되는건 마찬가지이나 콜트 에어건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라면 어떤 쪽이 훨~씬 조작이 간편한지 알 수 있으실 것이다.
Condition 3
약실도 비우고 해머도 총에 밀착 되어 있으며 탄을 꽉 채운 탄창만 끼워져 있는 상태. 컨디션 쓰리...는 완벽하게 안전한 휴대법이라 할 수 있다. 이경우 격발을 하려면 홀스터에서 총을 뽑아 들고 슬라이드를 한차례 제껴주고 조준하여 사격 해야 한다. 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런 운용법을 "이스라엘 드로우" 라고도 한다. 주로 이스라엘의 군경에서 1911을 가르칠 때 사용하기 때문이다.
몇몇 전문가들은 이스라엘 드로우 방법으로 컨디션 투 휴대법으로 총을 뽑아 쏘는것 보다 더 빠르게 사격을 한다곤 하지만 이스라엘 드로우는 위급 상황 발생시 복잡하고 스텝이 더 추가되어 올바른 조준을 방해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리 권장할 만한 휴대법이 아니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컨디션 3 상태로 휴대할 경우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다.
Condition 4
텅빈 약실 + 매거진도 빼낸 상태 : 에어건보다 안전한 상태이다. 위급 상황에서는 탄창 끼고 슬라이드 당기고 사격하느니 총을 홀스터에서 뽑아 그대로 집어 던지는게 더 효율적일 것이다.
하프 콕(half-cock) 운용법
하프콕은 해머를 뒤로 살짝 당긴 채 고정시키는 모드인데, 이또한 '안전'을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이다. 나름대로 안전한 휴대법인 '컨디션 투' 의 경우일지라도 재수없이 해머가 짓눌려지면 공이가 앞으로 전진하면서 격발이 되버린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콜트 SAA같은 리볼버에서부터 사용된 안전장치이다. 하프콕 상태에서는 방아쇠도 당겨지지 않고 해머도 떨어지지 않게 된다. 2차 세계 대전당시 Dale Ireland라는 군인이 남긴 흥미로운 일화를 통해 하프콕에 대해서 고민좀 해 보자.
하프콕 포지션
"나는 하프콕은 위험하며(갑자기 적군이 나타났을 때를 생각한다면) 안전한 휴대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하프 콕 상태로 휴대를 했던 이유는 2차 세계대전당시 나같은 왼손잡이들은 섬세이프티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M1911A1은 프레임 좌측에만 섬 세이프티가 달려 있었다. 나의 아버지도 1차 세계 대전 당시 M1911을 사용하셨는데, 정찰이나 야간 행군시에는 반드시 하프 콕 상태로 휴대하셨다고 한다."
"하프 콕 상태에서 적군의 인기척을 느낄 경우엔 하프콕에서 풀 콕(Full Cock)으로 해머를 당기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는데, 하프콕으로 휴대하는 것이 위험하긴 했지만 슬라이드를 당겨서 약실에 탄을 채우고 쏘려면 그 소음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거니와 나의 아버지도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M1911을 사용하는 왼손잡이들에게 하프콕 포지션은 약간이나마 안전하게 M1911을 휴대하고 최대한 소음 없이 격발 준비를 마칠 수 있는 포지션이었다고 술회 하셨다..."

1911 커스텀 모델의 섬세이프티는 좌우 대칭형을 많이 쓴다.

2차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M1개런드나 카빈같은 반자동 라이플이 주무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동안에는 M1911A1같은 권총이 주무장 이상으로 유용한 무기라는 것이 병사들의 경험으로 증명되었다.

사실 M1카빈은 M1911A1를 대체할 1차적인 목적으로 개발되었다는 점과 이때문에 1차대전때보다 2차대전에서 병사들이 M1911A1을 소지하는 경우가 적었다는 점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병사들의 실전 경험을 통해 실제 전투상황에 있어서 라이플이 권총을 이상적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병사들은 동료들에게 권총의 유용성을 열심히 전파했기 때문에 결국 대부분의 미군 병사들에게 M1911A1은 필수품처럼 자리잡게 되었다. 사실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FPS게임을 즐기는 분들 또한 '부무장'의 중요성을 충분히 공감하실 것이다.
일찍부터 그 효용성에 의심을 받아 왔던 M1카빈을 지급받은 많은 병사와 장교들의 경우 M1911A1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M1개런드나 BAR을 지급받은 사람들도 주무장이 잼을 일으키거나 탄이 떨어졌을 때 권총 소지의 유용성을 알게 되었다.

BAR (Browning Automatic Rifle)
2차대전 종전 후 .45구경 권총 산업은 암초에 부딪히게 되었다. 전쟁중에 만들어 놓은 엄청난 양의 M1911A1과 생선시설이 쓸모없이 되어 버린 것. 대부분은 해외 군사 원조용으로 돌려졌으며 나머지는 민수용으로 전환되어 판매되었다. 그러나 전선에서 돌아오는 병사들이 기념품으로 너나 할 것 없이 M1911A1을 몰래 밀반입 하는 바람에 민간 시장에서도 M1911A1의 판매고는 시들...한 편이었다.
재고로 남아 있던 권총들은 우리나라의 6.25와 베트남 전쟁, 그리고 냉전시대에 연관된 수많은 상황에서 실전 배치되기도 했는데 6.25때에 많은 병사들은 추운 겨울 날씨에 얼어붙은 주무장을 M1911A1으로 대체하여 그 명성을 다시한번 날리기도 했으며 베트남 전에서는 베트공의 땅굴을 기어갈 때 한손에 라이트를 들고 한 손으로 사용 가능한 무기로 명성을 떨쳤다.

1911은 등장한 이래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수는 전투중 유실되고 파손되었으며 남은 것들도 세월의 흔적에 점차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많은 수의 1911이 재생을 위해 병기창으로 들어갔지만 - 대부분의 권총은 그 작동 수명동안 평균 2회의 재생 과정을 거친다 - 수많은 분해조립을 거치면서 많은 수의 총이 결합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을 전후해서 1911의 신규 생산량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미군은 2차 대전 이후 NATO 회원국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45 피스톨에서 9mm 피스톨로 바꾸고자 했으나 처녀 상태의 M1911A1이 너무도 많이 쌓여 있었고 바꾸려 해도 돈이 문제였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좀더 가볍고 장탄수가 많으며 더블 액션 기구를 갖춘 총을 원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1978년에 M1911A1의 후임 자리를 놓고 신형 권총 선발이 시작될 듯..했으나 오랫동안 정치적 쟁점이 되어 차일 피일 미뤄 지게 되었다.
새로운 후보 총기로 나선 물건들 대부분이 외국 제품이었고 정치인들은 미군이 타국의 피스톨을 사용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가능한 한 미국에서 만든 신형 권총을 선택하려 했으나 .45ACP에 너무도 오랬동안 취해 있었던 미국으로서는 마땅히 선택할 만한 자국산 총기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다음 시간부터는 에어건 콜트 1911의 결정판이라 할만한 WA의 1911시리즈에 대한 집중 분석에 들어가 보기로 하겠다.
첫댓글 헉~!! 수고 많으셨습니다
훌륭한 리뷰네요.. 잘 봤습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보면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검프에게 게리 시니즈(두다리가 잘린 중위역)가 검프에게 기역자 렌턴과 콜트를 주면서 베트콩의 토굴로 들어가라고 하는 장면이 있으며, g-man"은 바로 FBI 요원들을 가리키는 말 입니다...!!
잘봤습니다. 콜 오브 듀티가 생각나네요.
대단한 리뷰... 감동이 메아리쳐 오네요.... 잘보았습니다. 아깝다... 책으로 내었다면.... 명작이 되었을것을 ...
좋은 리뷰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가스건은 비비탄과 추진장약(가스)이 별개이므로 탄창빼고 격발해서 컨디션 투를 할수 있지만 실총은 그대로 발사! 영화 폴리스스토리의 성룡이 하듯이 분해결합할때 아예 약실에 실탄한발 넣어서 조립하면 해머전진+약실장전의 컨디션 투가 될것도 같습니다.
재밋네요. 역시 총기 리뷰는 궁금한것도 많고한데 이런글을 잃을 때마다 재미 있습니다.잘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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