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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4: 9 하나님의 백성에게 - 히 4: 10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
히 4: 9 하나님의 백성에게 -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
본 절은 앞에서 언급된 내용에 대한 결론으로 6a절과 구조적으로 병행을 이룬다(L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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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a절 |
| | (아폴레이페타이 티나스 에이셀데인 에이스 아우텐)
| |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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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절 |
| | (아폴레이페타이 삽바티스모스 토 라오 투 데우)
| |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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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본 절은 6절에서 내려진 결론을 다시 반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본 절에 사용된 '안식'(삽바티스모스)의 의미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 이것이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 지역적이며 세상적인 의미의 안식을 가리킨다(Buchanan).
Ⓑ '삽바티스모스'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을 완수하고 정착해서 누리는 안식을 의미할 수 있다.
* 신 25: 19 -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영적인 의미의 완전한 안식을 의미한다(Morris, Hewitt, Rendall).
Ⓒ 이것이 미래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질 안식을 나타낸다(Justin, Hofius).
여기서는 '삽바티스모스'를 '축하한다'라는 뜻의 동사 '삽바티제인'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 단순히 '안식'이라는 의미보다 미래에 누릴 '안식하는 즐거움'을 강조한다.
세 견해 중 Ⓐ의 견해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종말론적 의미로서의 영적인 안식을 강조하는 본서 전체의 흐름으로 볼 때 타당치 않다. 그 외 나머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따라서 '삽바티스모스'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영적인 의미의 안식으로서 그 안식이 기쁘고 즐거운 것임을 나타낸다.
* 마 11: 28-30 -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히 4: 10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 -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성도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성경이 증언하는 대로 지금 천국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있다.
* 눅 16: 22, 25 -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 눅 23: 4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되다.
* 계 14: 13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 '그리스도'로 해석한다(Ebrard, Alford, KJV, LB).
Ⓑ '그리스도인들'로 해석한다(Morris, Hewitt).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장의 전후 문맥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암시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들어간'(에이셀돈)은 부정 과거 분사이나 일반적인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재형으로 나타난다(for whoever enters God's rest, RSV, NIV, De Wette, Vincent).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든지 안식을 누리게 된다. 이렇게 누리게 된 안식의 시제성은 하나님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안식'은 안식일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하늘나라에서 온전하게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이 안식을 누리고 있으나 아직 완전한 안식을 누린 것은 아니다. 완전한 안식은 하늘나라에서 누리게 될 것이다(Morris).
(1)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본 절은 본서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 복 중 두 번째 복에 해당한다. 이것은 내용상 12절과 연결되어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켜 인내할 때 순교를 각오하였음을 의미한다.
믿음을 지켜 순교하였다면 그들에게는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이 보장되어 있기에 그들은 복 있는 자들이다(Mounce).
'자금 이후로'는 두 가지 해석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 '자금 이후로'가 무엇을 수식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 '죽는'을 수식한다(Charles, Plummer).
Ⓑ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를 수식한다(Mounce).
두 견해 중 문맥상 뜻을 분명히 해주는 것으로 보아 전자가 타당하다.
'자금 이후로'에서 '자금'이 어느 때를 가리키는가 하는 문제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 때를 의미한다(Moffatt).
Ⓑ 성도들이 죽는 순간을 의미한다(Beckwith).
Ⓒ 사도 요한이 본 환상, 즉 최후의 심판 때를 의미한다(Alford).
세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 히 11: 35-40 : 순교자 –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2) 주 안에서 죽는 것은 복이다.
본문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한다.
① 그가 그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수고와 고생이 많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했다(시 90: 10). 주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 28).
세상은 수고로운 세상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자들에게는 안식이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4: 3, 10-11에서,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그 안식의 세계가 바로 천국이다. 천국은 평안이 넘친 안식의 세계이다.
② 그가 이 세상에서 행한 선행들에 대해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행이 천국에 들어갈 만한 가치도 없는 누추하고 얼룩지고 보잘것없는 것이며 그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선한 행위를 귀히 보시고 상 주실 것이다.
* 마 16: 27 -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 고후 5: 8-10 –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계 22: 12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3) 주안에서 죽은 자는 십자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종들이다.
* 계 6: 9-11 –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계 6: 11에 죽임을 당한 자는 영원한 복음을 전할 종으로 택함을 입고 주안에서 인간성, 죄악성을 죽이는 산 순교자를 말하는 것이다.
* 계 11: 7-11 –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① 최후에는 삼일반 동안 죽는 것이다.
②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쉰다.
③ 복음을 위해 당한 고난이 크므로 안식으로 갚아주시는 것이다.
* 살후 1: 5-9 –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 계 20: 4-6 –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으심, 부활의 때.
② 성도들이 죽는 때.
③ 대 환난의 때.
(4)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다. -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저희 행한 일이 따름이라'에서 성도들이 행한 '일'(*, 에르가)은 핍박에 대한 '인내'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과 예수께 대한 '믿음'(12절)을 의미한다. 이러한 그들의 일은 수고와 동일한 것으로 그들이 사단의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지치도록 인내하고 믿음을 지켰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수고를 통해서 믿음을 지켰음을 의미하고 이러한 수고를 통해서 믿음을 지킨 그들은 죽은 후에 온전한 안식을 누리게 된다.
* 히 4: 1, 9 –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 계 22: 12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① 사탄의 핍박과 공격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안식을 누리므로.
② 그리스도의 이름과 복음을 위한 수고가 헛되지 않으므로
* 히 6: 10 -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