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1-17 청년아 일어나라
성경본문 : 누가복음 7:11~17 / 찬송가 94장- 예수님은 누구신가(새 96장)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읽으며 묵상하며 : 청년아 일어나라(7:11-17)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가지 행렬중 하나, 즉 죽음의 행렬, 아니면 생명의 행렬에 속해있습니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그런데 수많은 청년들이 죽음의 행렬에 속해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까?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죽은 청년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가장 큰 절망가운데 있는 여인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잃은 상처와 아픔을 가진 과부였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유일한 소망이었던 외아들마저 죽어서 땅에 묻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슬픔과 절망이 극에 달해 눈물도 말라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에게“울지 말라” 말씀하시고 장례행렬을 멈추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주님께서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자 그녀의 죽은 외아들이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절망을 소망과 기쁨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늘도 세상엔 질병과 고통, 약함, 가난, 수고, 그리고 어려움이 도처에 쌓여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보면서도 무관심, 무시, 판단, 정죄, 멸시한다면 절망에 절망을 더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과 슬픔, 연약함과 죄 된 모습에 대해서 깊은 연민을 느끼며 사랑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면, 그곳엔 소망과 생명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싸늘한 시체를 향하여“청년아!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순간에 그의 눈이 반짝이며 또 심장과 내장, 그리고 뇌와 감각 기관이 다시금 일을 시작하여 산 인격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절망과 죽음도 살려낼 수 있는 생명과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절망을 벗어버리고,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나 소망과 기쁨, 생명이 넘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선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죽음의 행렬이 생명의 행렬로 바뀝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수많은 상처와 아픔을 안고 열등감, 자학, 우울증으로 고통당하며 절망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만나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치유 상담원을 운영하시는 정태기 목사님은 젊은 시절 깊은 우울증을 앓다가 소록도에 가서 중증 나환자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하나님! 이 큰 은혜를 어떻게 갚는데유~”라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통곡하며 기도하다가 주님을 깊이 만났다고 합니다.
그 후로 우울증도 낫고 많은 사람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어떤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살며 생각하며 : 우유 두잔의 치료비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 잠10:16
어느 무더운 여름날 미국 메릴랜드의 한 마을에 남루한 복장의 고학생이 나타났습니다.
서적 외판원이 청년은 더위와 굶주림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가 마을 입구의 어느 허름한 집을 방문했을 때 한 소녀가 학생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너무 가난해요. 책을 살 수가 없어요.”
고학생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시원한 우유한 잔을 부탁했습니다.
소녀는 그 청년을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고학생은 소녀의 친절에 감동해 수첩에 그녀의 이름을 적어두었습니다.
20여 년 후, 메릴랜드병원에 한 여성 중환자가 실려왔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1만 달러가 넘는 치료비 청구서를 받아들고 한숨을 토해냈습니다.
그런데 청구서 뒤에는 병원장의 짤막한 편지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저에게 대접한 우유 두 잔이 치료비입니다.”
의인이 하는 일은 생명을 가져옵니다.
정의와 생명은 붙어 다닙니다.
의가 있는 곳에는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고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성도가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며 봉사하는 것, 선행을 베푸는 것은 ‘의인의 수고’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기도하고 전도하며, 봉사하고 선을 베푸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출처: 여의도 순복음중앙교회;
질문하며 적용하며
1. 나인성 앞에서 어떠한 두 가지 행렬이 서로 만나게 되었으며(11, 12절), 예수님께서 아들을 잃은 과부를 어떻게 여기셨습니까(13절)?
2. 예수님은 무덤으로 가는 청년을 어떻게 살리셨으며, 무리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14~17절)?
3.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발견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확신하며 간구하며
하나님 아버지!
“청년아!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제가 일어서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처럼 청년들을 살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먼저 주님을 깊이 만나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을 제게 부어주dhq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