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가 많은 멀티 플레이어가 대접받는 시대다. 최근 본업인 가수의 영역을 넘어 화가로 정식 데뷔한 최백호도 그렇고 전설적인 록밴드 QEEN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도 미대 출신답게 공연 때마다 그림을 자주 그려 화제가 되었다. 대중음악에 있어 음악과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성공신화를 이룬 화가가수는 수 십 명에 달한다.
그림과 노래는 완전히 다른 분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빈 도화지와 오선지에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메워나가는 창작 작업이란 점에서 한 핏줄이다. 분명한 점은 화가 가수들의 노래에는 회화적 이미지의 가사와 분위기가 풍성하다는 점이다. 눈을 감고 들으며 노래 속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떠오르는 이들의 음악은 그래서 차별적이다.
황보령은 오래 전부터 스스로를 '인디음악계의 이단아'로 각인시켜 온 화가 출신의 뮤지션이다. 국내에서는 유일한 여성 펑크 뮤지션으로의 존재가치도 또렷하다. 그녀의 무대를 경험한 대중은 독특하고 중성적인 펑크 의상에 호기심을 품었을 것이고 거칠고 원초적인 허스키 보컬의 매력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15세였던 1985년에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그림을 전공한 그녀는 지난 1998년 1집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와 2001년 2집 '태양륜'을 발표한 후 학업을 마치기 위해 미국으로 다시 떠나 오랜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다 지난해 2.5집 'SmackSoft'를 낸 후 8년 만인 지난 해에 정규 3집을 발표하며 완벽하게 돌아왔다.
황보령의 창작 방식은 단순하다. 의도적으로 곡을 만들기보단 멜로디가 떠오르면 녹음기에다 녹음해 놓고 도화지에 코드를 적어서 통기타를 치며 부르는 즉흥방식이다. 그녀는 "노래나 그림 작업 때 가장 우선되는 건 멜로디와 가사가 아닌 전체적인 느낌이나 분위기다. 만약 작품에 제목을 붙인다면 보고 듣는 사람이 연결점을 희미하게라도 느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황보령밴드의 3집 타이틀 은 그녀의 음악인생에서 하나의 분기점을 이룬 의미심장함이 있다.
타이틀을 우리말로 풀면 '어둠 속의 빛'이 된다. 바라만 봐도 눈을 멀게 하는 태양의 강렬한 빛보다 어둠 속에서 발하는 희미한 빛은 미세하기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이처럼 형식을 파괴하는 앨범 타이틀처럼 그녀의 음악은 범상하지 않은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담보하고 있다.
가식보다 진실은 늘 불편한 존재이듯 인위성이 배제된 날 것 그대로의 결정체인 어두운 질감의 황보령 음악에 불편함을 느낄 대중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어둠의 소리가 뿜어내는 미세한 빛을 통해 희망을 느낄 수 있다면? 그녀의 노래는 절대로 칙칙하지 않다. 멜로디를 떼어내면 그대로 하나의 시가 되고 멜로디는 청자에게 소리여행을 함께 떠나자고 유혹하는 매력적인 음악이다. 긴 공백기 동안 실제로 죽음 직전에 도달했던 고통과 아픔에서 자신을 구원한 생명과 희망의 빛으로 스스로를 진보시킨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술과 음악의 경계를 부유하며 예술적 접점을 찾은 이번 앨범은 회화적 이미지가 탁월한 앨범이다. 흥미로운 점은 홍보가 부족했던 지난 4월 발매 초반을 절판시켜버리고 그녀의 미술작업 중 조형물을 빼고 8장의 페인팅에서 선택한 5장의 그림들로 구성해 재발매한 대목이다. 초반의 재킷 그림은 멤버들과 친해지고 싶어 그녀가 의도적으로 그려본 귀여운 느낌의 캐리커처였다.
<collective edition>이란 부제를 떠나 6개의 다른 앨범으로 보여질 수 있도록 시도한 재발매 음반의 아트웍 실험은 흥미롭다. 사실 대중이 음반을 선택할 때 재킷의 디자인이나 커버 이미지는 중요하다.
재킷 이미지의 완성도는 음악성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재킷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 하나의 예술장르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국내 대중가수로는 이정선과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정도가 예술적 아트웍을 선보였던 선구적인 뮤지션들로 기억된다. 그럼 점에서 황보령의 3집 재발매 앨범의 의미는 이제 국내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