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거울 나라 굿 시크
박경선(안젤라, 대곡 성당 )
1. 비셀의 아침
여기는 아시아의 동쪽, 비셀이 사는 나라 네팔이에요. 렐레 산골 마을에 아침 해가 쨍하게 떴어요. 아침을 먹은 비셀이 비닐하우스에 토마토 따러 가려고 나섰어요. 엄마는 벌써 가서 일하고 있을 테지요. 집을 나서며 보니까 옆집 파비나네 아빠가 꽃나무를 만지고 있어요.
“나마스데(안녕하세요)?”
“그래. 나마스데.”
“아저씨, 우리 마을에 누가 와요?”
파비나네 아빠가 꽃나무를 만지는 게 이상해서 물어봤어요. 네팔에서는 집에 손님이 오시면 꽃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거든요.
“그래, 오늘 파비나네 학교에 손님이 오신다네. 뭐라더라? 코리아에서 오는 굿시크(굿네이브스 선생님)라했어. 꽃다발을 만들어 갔어.”
“굿시크요? 저도 파비나한테 들었어요. 그런데 오늘 온다고요?”
비셀도 학교에 다니면 파비나와 같은 3학년이지요. 비셀은 마음을 바꾸었어요. 비닐하우스로 가지 않고 학교로 갈 거예요. 교실 밖 창밖에서 기웃기웃 들여다보며 공부할 거예요. 그런 비셀을 선생님도 모르는 척해 주지요.
비셀의 걸음이 빨라졌어요. 다리보다 머리가 자꾸 앞으로 나갔어요. 그러다가 다리를 쩌억쩌억 벌려 달리기 시작했어요. 마치 학교 지각한 학생처럼. 하지만 달리다 멈추고 달리다 멈추다 하며 가야 했어요. 초록색 플라스틱 슬리퍼 속으로 지렁이가 자꾸 기어오르고요. 슬리퍼에 끼운 발가락도 자꾸 벗겨졌거든요.
“비셀, 어디가?”
비닐하우스에서 깡깡이가 짖어도 돌아보지 않았어요.
“비셀 어디가? 토마토 따야지.”
비닐하우스에서 엄마가 내다보며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어요. 늦으면 안 되니까요. 빨리빨리 아주 빨리 달렸어요. 두 시간 쯤 달려가니 저 멀리 학교가 보였어요. 학교 밖에까지 아이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어요. 짙은 감청색 바지에 하늘색 셔츠! 비셀이 입어보고 싶은 교복을 입고 줄 서 있어요. 비셀은 자신을 내려다 봤어요. 무릎이 툭 튀어나온 회색추리닝 바지가 오늘따라 더 달랑 올라가 있어요. 때도 꼬질꼬질해보였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누가 눈여겨보겠어요? 아이들 뒤에 서서 구경할 건데. 아이들이 말라(꽃목걸이)를 굿샘들에게 걸어주었어요. 렐레 학교 선생님들은 카타(머플러)를 굿샘들에게 걸어주었어요. 아주 반가운 손님들 오셨을 때만 목에 들러준다는 노란 명주천 머플러!
‘아, 나도 굿시크가 되고 싶어!’
말라를 걸고 카타를 목에 두른 굿시크가 너무 멋져 보였어요.
2. 비셀의 교실 밖 공부
굿시크를 환영 나온 아이들과 굿시크들이 교실로 빨려 들어갔어요. 비셀은 아이들의 꼬리가 하나도 안 보일 때까지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었어요.
“나마스데!”
교실 안에서 아이들과 굿샘이 인사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어요.
“나마스데!”
비셀은 밖에서 혼자 인사를 했어요.
“키득키득!”
아이들 웃음소리를 따라 교실 뒤쪽 비셀창문으로 갔어요. 그 창문 이름을 비셀이 지었지요. 비셀만 들여다보며 공부하는 창문이니까요. 교실 안은 여느 때와 같아요. 길다란 판대기 의자 이쪽저쪽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마주 보고 앉아 있어요. 길다란 판대기 책상 위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사과모양, 꽃 모양의 나무 조각이 올망졸망 놓여 있어요.
“여러분, 이번 시간에는 굿시크와 요술거울을 만들어 볼 거예요.”
코리아에서 온 굿시크가 네팔말로 이야기했어요.
‘야, 멋져. 우리나라 말을 언제 배웠지?’
비셀은 누런색 피부에 눈이 작은 남자 선생님을 신기하게 들여다보았어요.
“자, 여러분 이 굿시크를 잘 보세요. 이 사과나무 모양 거울을 꾸며 볼 거예요.”
굿시크가 길쭉한 통 뚜껑을 열어젖혔어요.
“먼저, 좋아하는 물감부터 골라보세요.”
망고색, 흙색, 하늘색, 풀색, 수박색들이 얌전하게 누워 있어요.
‘저런 걸 물감이라 하나?’
비셀이 물감을 자세히 보려고 창문으로 고개를 쑤욱 집어넣는 바람에 굿시크와 눈이 마주쳐 버렸어요. 굿시크가 놀란 눈을 풀더니 비셀에게 눈을 찡긋하며 웃어주었어요. 비셀은 부끄러워 교실 밖 창 밑에 주저앉아 버렸어요. 하지만 귀로는 굿시크의 설명을 또렷하게 들었어요.
“자, 붓으로 둘레에 칠해보세요. 거울에 물감이 묻지 않게 조심해서요. 물감은 여기 투명받침에 짜면 되지요.”
비셀은 다시 일어서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아이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물감을 골랐어요. 똑똑한 비셀은 밖에서도 다 알아들었어요. 연필처럼 길쭉한 막대기 끝에 긴코털이 달린 게 붓이고 투명 받침은 물감 짜서 쓰는 것. 아이들은 나무거울 둘레에 붓으로 색칠을 했어요.
‘야, 곱다! 저렇게 꾸미면 요술 거울이 되나?’
아이들은 물감이 마르자 나무거울 위에 별 스티커도 붙이고 달 스티커도 붙였어요.
비셀은 넋을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다 만든 아이들은 요술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쳐보며 놀았어요.
‘요술거울이라 했지? 어떤 요술을 부리지?’
그때 파비나네 선생님이 나와서 교실 처마에 걸어둔 커다란 굴렁쇠를 챙챙 쳤어요.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지요. 그래도 비셀은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어요.
3. 비셍에게 다가온 굿시크
“나마스데(안녕!)”
어느새 교실 안에 있던 굿시크가 비셀 앞에 와 말을 걸었어요. 비셀은 다리를 떨었어요. 교실 밖에서 들여다본 것 꾸중하러 오신 게 틀림없을 테니까요. 굿시크가 키를 낮추더니 몸을 반쯤 접고 앉아 비셀이랑 눈을 마주쳤어요. 비셀은 아예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어요.
“선물로 줄게. 할래?”
굿시크가 웃으며 사과나무 모양의 거울을 내밀었어요. 비셀은 마음이 들켜버린 것 같아 얼굴이 빨개졌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 거울을 덥석 잡고 말았어요.
“이름이 뭐니?”
“비셀!”
“그래, 비셀이구나. 이담에 커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니?”
비셀은 오른손 검지를 길게 뻗어 굿시크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굿 시크(좋은 선생님)!”
“나 같은 사람? 하하, 넌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걸 보면 알아.”
굿시크가 비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어요. 비셀은 얼른 비닐하우스로 달려가고 싶었어요.
“던너바(고맙습니다.)!”
비셀은 굿시크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뒤돌아서서 달렸어요. 날개가 달린 것일까요? 달리기 실력이 갑자기 부쩍 늘었을까요? 비닐하우스로 가는 길이 너무 가깝게 느껴졌어요.
4. 비닐하우스에 가져온 요술거울
“비셀, 또 학교 갔다 오니? 토마토 오늘 안 따면 상품 가치가 없는데...... .”
엄마가 비닐하우스 속에서 땀을 닦으며 비셀을 반겼어요. 비셀이 들어서며 토마토 줄기를 급하게 움켜잡았어요.
“그렇다고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따렴.”
“예, 우리 집 살림 책임 져 줄 농사인걸요.”
“우리 비셀 많이 컸다.”
엄마는 늘 비셀을 대견하게 바라보지요.
“파비나네 학교에 굿샘이 와서 이것 주셨어요.”
비셀이 주머니에서 요술거울을 꺼내 보였어요.
“미안하다. 비셀, 아빠만 살아있어도 너도 학교에 갈 수 있을 텐데...... .”
엄마는 벌써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 그럴 때마다 비셀은 속으로 생각하지요.
‘걱정마세요. 내가 아빠처럼 일해서 엄마 행복하게 해줄 게요.’
“엄마, 굿시크가 나더러 훌륭한 사람 될 거래요.”
“굿시크와 이야기도 해봤어?”
엄마가 일손을 멈추고 비셀을 바라보며 웃었어요.
‘봐! 역시 엄마가 좋아하시잖아.' 비셀은 신이 나서 덧붙였어요.
“예.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걸 보면 다 안다고 했어요.”
“그래, 넌 눈도, 웃는 것도 꼭 아빠를 닮았어.”
그 말에 비셀은 얼른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 얼굴을 보고 싶었거든요. 거울 속에는 아빠처럼 생긴 아이가 다정하게 웃고 있네요. 하지만 요술거울을 바지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어요. 지금은 엄마를 도와 토마토를 따야 할 때니까요.
5. 요술거울나라 굿시크
엄마랑 집에 돌아온 비셀이 편안하게 자는 시간이에요. 불빛은 없어도 요술거울을 꺼내어 눈앞에 들어보았어요. 절대 잘생긴 비셀을 보려는 게 아니에요. 눈과 웃는 것이 꼭 닮았다는 아빠를 보고 싶었거든요. 어둠 속에서 요술거울을 오래 오래 들여다보았어요.
“저벅저벅!”
거울 속에서 굿시크가 된 비셀이 파비나네 학교 선생님으로 와서 거울 속에서 나왔어요.
낮에 보았던 아이들이 말라(목걸이)와 카타(목 머플러)를 목에 걸어 주며 환영해주었어요.
“나마스데!”
비셀은 아이들에게 인사하며 교실 한 가운데 서 있었어요.
“자, 여러분 비셀 시크를 보세요.”
아이들이 모두 선생님이 된 비셀을 바라보아주었어요.
“이 나무거울을 꾸며 볼 거예요.”
비셀이 길쭉한 통 뚜껑을 열어젖혔어요. 망고색, 흙색, 하늘색, 풀색, 수박색들이 얌전하게 누워 있어요.
“자, 붓으로 둘레에 칠해보세요.”
비셀은 또박또박 설명을 해주었어요. 그때 교실 뒤쪽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아이가 있었어요. 어린 날 비셀의 눈망울을 빼닮은 아이였어요.
‘어라? 난 지금 여기 선생님이 되어 있는데 저 아이는 바로 어린 날의 나잖아. 어떻게 내가 둘이 되었지?’
비셀이 신기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려보았어요. 그때 손에 쥐여져 있던 요술거울이 상냥하게 이야기를 걸어왔어요.
“우리 요술거울나라로 들어와서 그래!”
‘뭐? 여기가 그럼 요술거울나라라고?’
“그래, 어린이가 우리 요술거울나라에 오면 간절히 원하는 것이 딱 한 가지 이루어지지.”
그러고 보니 비셀은 지금 자기가 가장 되고 싶었던 굿 시크가 되어있는 거예요.
‘굿시크가 된 것은 정말 좋아. 그런데 어린 날의 나도 함께 보이고 있잖아. 이 거울이 대체 무슨 요술을 부리는 거야?’
비셀이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거울 안을 들여다보자 참다 못한 요술거울이 쿡쿡 웃더니 가르쳐 주었어요.
“요술거울처럼 보이지? 반사경이라서 그래. 지금 너는 선생님이 되어 있지만 어린날의 너 모습을 반사해서 보고 있는 거야.”
요술거울의 말을 듣고 보니 더더구나 교실 밖에서 창문으로 눈만 들이밀어 보고 있는 비셀이 측은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비셀 선생님은 어린 날의 비셀을 찾아 교실 밖으로 나갔어요. 교실 밖 어린 비셀은 무릎이 툭 튀어나온 회색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어요. 초록색 플라스틱 슬리퍼하며 눈에 익어 보였어요.
“나마스데(안녕!)”
비셀은 어린 날의 비셀이랑 눈을 마주치며 인사했어요.
“선물로 줄게. 할래?”
어린 날의 비셀이 활짝 웃자 비셀 선생님이 요술거울을 주며 말했어요.
“넌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걸 보면 알아.”
비셀 선생님은 어린 비셀의 눈에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기는 걸 보았어요. 그리고 어린 비셀 가슴에 꿈이 차랑차랑 담기는 것도 보았어요.
‘넌 학교에 못 다녀도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비셀 선생님은 요술거울나라 반사경속에서 어린 날의 비셀을 꼭 껴안아 주었어요. 밤새도록.
2013년 9월 8일 (원고지 매수 28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