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 왕자의 난 3
(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사나이 )
"기사일. 기사일. 기사일.“
날치는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리면서도 '기사일'을 잊어먹지 않기 위하여 '기사일'이라는 말을 되풀이 하며 뛰었다.
운종가를 휘돌아 도당 뒷길을 지나고 인달방 입구에 이르니 개천이 나왔다.
백운동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청계천 원류와 사직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이곳에는 고려시대부터 광통교라는 다리가 있었다. 훗날 태종이 신덕왕후의 신장석을 뜯어다 건립한 청계천의 광통교보다 오래된 다리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사라져 버렸다.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으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알려져 있는 창덕궁 금천교보다 더 오래된 다리로 기억될 것이다. 평소에는 가마와 우마차가 지나 다니고 사람들도 이용했지만 개천의 수량이 줄어드는 갈수기에는 남정네와 아이들이 아래쪽에 있는 징검다리를 많이 이용했다.
현재 청계천에 자동차가 다니는 다리와 복원된 하천에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징검다리와 너무나 흡사하다.
징검다리 건너다 날짜를 잊어먹은 '날치’
날치는 급한 마음에 징검다리를 촐삭거리고 뛰어넘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고 말았다.
바지가 물에 젖은 것은 말리면 됐지만 그만 '기사일'을 잊어먹고 말았다. 숨을 헐떡거리며 방원의 집에 도착한 날치는 민무질의 수하 두치에게 '제사일'만 되풀이 했다. 부인 민씨의 두 동생 민무구외 민무질은 아예 방원의 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제사일 입니다요. 제삿날."
"제삿날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제사일이라고 했습니다요."
날치는 뒷머리를 극적이며 커다란 눈망울만 굴리고 있었다.
"기사일을 네가 잘못 들은 것 아니냐? 갑자 을축 병인 정묘 하는 기사 말이다."
"네, 맞습니다. 기사일이라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날치는 환하게 웃었다. 징검다리 건너면서 까먹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무슨 놈의 날짜가 이렇게 어려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날짜를 헤아리려면 하루, 이틀, 열이레 하면 됐지 무슨 놈의 날짜를 갑자, 을축 하는지 양반네들이 원망스러웠다.
아라비아 숫자가 도입되기 전,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몇 월 며칠이 아니라 갑자일, 을축일, 무진일, 기사일, 등으로 날짜를 기록했다. 이것도 먹물 먹은 서생들이나 이렇게 사용했지 일반 백성들은 달이 휘영청 떠있는 날이면 보름날, 실눈썹 같으면 초사흘 등으로 날짜를 헤아렸으며 초하루, 열엿세, 스무이틀 등으로 불렀다.
"그 소리를 누가 하더냐?"
"병판대감이 했습니다요."
"틀림 없으렸다."
"네,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요."
"알았다. 들어가서 쉬도록 하여라."
"위기를 기다렸다. 기회로 활용하자“
민무질을 통하여 날치의 첩보를 접수한 방원은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수하들이 굳은 얼굴로 모여들었다. 정도전 진영의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정면 맞대응이냐? 피해 가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방원이 민무구를 불렀다.
"지금 진천으로 달려가 충청관찰사에게 화급한 일이 생겼으니 즉시 내게로 오라고 일러라, 안산의 이숙번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라."
충청관찰사는 하륜을 이르는 말이다. 하륜이 충청도 진천으로 떠나던 날. 저들이 세상을 전복하려 하고 있으니 그러한 낌새가 있으면 군사를 이끌고 즉시 달려오겠다고 다짐하고 떠났다. 이숙번은 신덕왕후 산역을 위하여 이미 역군을 이끌고 도성에 들어와 있었다.
1398년 8월 26일. 대궐에서 연락이 왔다. 태조 이성계의 환우가 위독하니 왕자들은 대궐에 들라는 전갈이었다.
방원은 황망한 마음에 대궐에 나아갔다. 근정전 서쪽 행랑에 도착하니 이미 익안군(益安君) 이방의, 회안군(懷安君) 이방간, 청원군(淸原君) 심종, 상당군(上黨君) 이백경, 의안군(義安君) 이화와 이제 등이 먼저 와 있었다. 임금의 병환이 위중하다니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방원이 대궐로 떠난 후, 부인 민씨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던 부인이 동생 민무질을 불렀다.
"너희 매부가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다. 궁에 들어가 있는 매부를 불러내 왔으면 좋겠는데 무슨 좋은 방도가 없느냐?"
"집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전갈을 넣도록 하지요."
민부인이 종(從) 소근을 불렀다.
"네가 빨리 대궐에 나아가서 공(公)을 오시라고 하여라."
"여러 나리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는데 제가 무슨 말로써 아뢰겠습니까?"
"내가 배가 아파서 아뢴다고 하면 공(公)께서 마땅히 빨리 오실 것이다.“
소근이 부인의 전갈을 받들고 경복궁 영추문에 닿으니 경비가 삼엄했다. 진무군사들이 이중삼중으로 쫙 깔려있었다.
정안공댁 종 소근이라 말하고 겨우 영추문을 통과했다.
서쪽 행랑에 나아가니 임금의 환우를 걱정하는 왕실지친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방원을 찾아 마님이 몹시 아프다고 아뢰니 옆에서 이 소리를 듣고 있던 의안군이 청심환과 소합환(蘇合丸) 등의 약을 주면서 말했다.
"빨리 가서 병을 치료하십시오.“
방원이 대궐을 나와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대궐의 서쪽 출입문 영추문에서 방원의 집까지는 직선거리로 1500자(500m) 정도의 가까운 거리이다. 집에 도착하니 몸져 누워있다는 부인은 멀쩡했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던 방원이 소근을 노려보았다. 공연한 불똥이 소근에게 떨어질 판이다.
"군사를 일으켜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보살펴야 할 것이오"
"나무라지 마십시오, 제가 오시라고 시켰습니다.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드니 궁에 나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버님의 환우가 경각에 달려있는데 무슨 쓸데없는 말씀을 하시는 거요?"
"아닙니다. 전하의 병환은 핑계인 것 같고 다른 음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들었습니다. 오늘밤에 큰 사단이 날거라고 저자거리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민무질이 거들었다.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대궐에 나아가지 않겠소? 더구나 여러 형들이 모두 대궐 안에 있으니 돌아가지 않을 수 없소. 만약 변고가 있으면 내가 나와 군사를 일으켜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보살펴야 할 것이오."
대궐의 낌새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한 방원은 민무질에게 이숙번으로 하여금 무장을 갖추고 자신의 사저 앞에 있는 신극례(辛克禮)의 집에 유숙하면서 대기하도록 명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명이 위태로울 듯 싶습니다.“
부인이 방원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부인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방원은 부인의 손을 뿌리치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말에 오른 방원은 경복궁을 향하여 질풍처럼 내달렸다.
"조심하고 조심하세요.“
사라져 가는 방원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부인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눈망울에 고여 있던 눈물이 안고 있던 한 살배기 아기의 얼굴에 떨어졌다. 뜨거운 눈물이 아기의 얼굴에 떨어지자 아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엄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아기가 훗날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대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