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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기웃은 매월 1회 마을살이하는 이웃들을 만나 인터뷰합니다. 강북마을뉴스레터에도 함께 나갑니다.
[이웃기웃 - 두 번째 이웃]
언제나 청춘~
마을의 시니어세대 백경자 선생님과 김영산 선생님을 만나다.
오랜만에 비가 내린 오동근린공원 꽃샘길에는 각종 풀냄새와 흙냄새가 진동했다. 딛고 가는 바닥의 돌들 하나하나에는 김영산 선생님이 여기저기서 주워오셔서 부드럽게 간 자투리 돌들이 서로서로 모양 맞추어 예쁜 길을 이루고 있었다. 오전에 어린이집에서 동화구연을 하고 오신 백경자 선생님은 점심도 못 드신데다 꽃샘길로 가는 비탈진 언덕을 올라가면서도 내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20년간 쓰레기장 더미를 꽃과 나무, 풀로 가꾼 김영산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다양한 동화구연과 인형극을 보여주시며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백경자 선생님. 이 분들의 에너지는 뭘까? 마을에서의 시니어세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번의 우리 마을의 이웃- 이웃기웃은 마을살이하시는 시니어 세대를 만나보았다.
쓰레기 더미 뒷산과 아이들, 그 첫만남
지혜 _ 선생님들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영산 _ 저는 김영산이구요, 양띠 55년생이에요. 저는 번 2동 이 근 방에 살고 있어요. 꽃샘길 바로 옆에. 저는 94년도에 이사를 왔어. 사람들이 보통 뒷산을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이사와서 뒷산이라 가봐야겠다 해서 와봤는데 너무 지저분한거야, 오물, 가전제품 등 상상도 못할거야. 진짜 갖가지 것들이 묻혀있어. 그래서 실망했지. 이렇게 산을 더럽히면 되겠냐 싶어서. 처음엔 꽃길 생각 없이 1년동안 쓰레기만 치웠다. 그러다 보니 빈터가 생겨서 95년부터 꽃, 코스모스 심고 본격적으로 꽃길을 만들었지. 그런데 95년도에 종량제가 시행되고 그때부터 자비로 봉투사다가 줍기 시작했지,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다툼도 있었어요. 고정으로 버리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분들한테 ‘왜 이런거 버리고 태우시오.’ 그러자 ‘니가 뭔데 와서 그러냐!’ 많이 힘들었지. 그때만 해도 내가 40대였으니까, 젊으니까 혈기도 있으니까 다투기도 하고, 소개가 너무 길었나요?(웃음)
경자_ 저는 백경자입니다. 43년생, 김영산선생님과 띠동갑이네요. 인수봉로 우이초교 후문부근에 살아요.
제 소개를요, 막상 하려니 쑥스럽네요. 제가 워낙에 아이들을 좋아해요. 제가 근무할 때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했는데 초등퇴직하고 집에서만 있기가 힘들었어요. 지루하고. 마침 초등학교에서 왕따,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상담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학교서 그 일을 했는데 진짜 심각하다는걸 느꼈어요.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그러다가 아빠가 알콜중독인 아이와 초등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아이를 지도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알콜중독 아빠를 둔 아이는 세상과 단절된 거에요. 학교와서 똥도 싸고, 전혀 통제를 못하는. 또 한명은 한번 아이가 실수 한걸 계기로 왕따를 시켜서 벌벌 떨며 학교를 못다녀. 그래서 아이들이 관계를 못하고 공격성만 늘었죠. 상담을 가도 하루종일 가만히 있다가 집에 오려고 하면 ‘선생님 죄송합니다. 내일은 잘 할께요’ 이러고 들어가면 또 마음이 안쓰럽고.
그러다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줬는데, 그 동화책 읽어준게 아이들에게 마음의 변화의 계기가 되기 시작한거에요. 그때 도봉도서관에서 마침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달라는거야. 그래서 그때 9개월에서 35개월 아이들에게 동화를 주었는데, 선배쌤들 따라서 하다보니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게 너무 좋은거야. 그래서 그때 도봉구에서만 하지말고 강북구에서도 하자. 그러다가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을 하게 되었지.
황량한 모래사장의 꿈과 6.25 전쟁의 참혹함
지혜_ 여러분들이 하고 계시는 활동을 알고 있는데, 어떤 인생을 겪어 오셨는지도 궁금하더라구요. 왜 이 분들은 지금 마을에서 이런 활동을 하실까. 어린시절 이야기 좀 해주셔요.
영산_ 저는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라는 섬이 고향이에요. 우리나라 최초 염전이 비금도고 비금도 섬초도 유명하죠? 부모님들이랑 거기서 살았죠. 어느날 초등학교를 다니던 날이었는데 바다를 걷다가 모래사장 물이 쫙 빠진거야. 그때 문득여기에 나무 잘 심어서 사람들이 좀 찾게 했으면 좋겠다. 얼핏.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지. 그러고 나서 이제 잊어버렸지. 사회에 나와서 직장생활하다가 94년도에 여기와서 그 꿈이 실현된거죠. 부모님들은 시골에서 연세가 많으 신데도 지금 농사짓고 계시고. 복이죠. 휴가 때 되면 딴데 안가고 부모님계신데 가죠.
자녀는 지금 남매. 하나는 직장 나오고 하나는 올해 대학교 졸업하고 취직하려고 준비하고 있고.
지혜_ 꽃샘길에서 이렇게 활동하는거 아세요?
영산_ 네. 그때 아이들이 처음에 엄청 싫어했죠. 그래도 코스모스, 맨드라미 심어놓고 목마태우고 같이 놀 때 정말 좋아했어요. 애들 세 살, 네 살 때. 그 애들이 벌써 다 큰 걸보니 엄청난 세월이 흘렀네요. 처음엔 애들이 창피해하더니 지금은 좋은 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혜_ 그럼 그렇게 사회활동하시다가 어떻게 이곳으로 이사오게 되신거에요?
영산_ 원래 미아 6,7동 부근에 살고 그랬는데, 우리 큰 애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였어. 벼룩시장 정보지를 갖고 온 거에요. 아빠 여기 집이 싼게 있어. 이러면서. 집 상황을 아는거지.
그래서 한번 가자, 이래서 이사를 오게된 거에요. 그러고 이사와서 뒷산을 와 봤는데 이런상황인거죠. 자연이란게 인간이 해침으로 그것이 인간에게 되돌아오잖아요. 이걸 하면서 수십년동안 유리조각 병조각 하나라도 있으면 다 수거했어요 그래서. 여기는 쓰레기 하나 없을거에요.
지혜 _ 그러면 백경자 선생님은요?
경자_ 저는 시골 전라북도 무장군. 거기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시고 공부를 하시겠다고 자식들을 두시고 서울로 가셨어요. 제가 7남매 셋째인데 말예요. 향학열이 높아서 아버지도 올라가서 고학 하면서 서울대를 들어가서 거기서 직장은 옛날 중앙청으로 잘 들어가셨어요.
그러다가 6·25가 일어나버린거야.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잠깐 2년 서울서 살았는데 이북에서 공산당들이 왔다 올라가면서 무섭다는걸 알리려고 창자를 뽑아서 길거리에다 내놓고, 손가락을 전부 잘라서 길거리에다 놓고 올라간거야. 피난을 갔다왔더니 그렇게 끔찍하게 되있었죠. 전쟁을 무섭게 겪었어요.
제가 그때,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사람이 죽으면 뭐가 되나, 시체를 봤기 떄문에 머릿속에 의문이 있었어요. 5학년 때는 그럼 사람이 왜 죽나, 죽으면 어떻게 되나. 하다가 천주교를 가게 되었죠. 전쟁통에 먹을 건 없고, 가정에 평화가 없었어요. 수녀님이 너무 평화로워보여서 수녀님이 되고 싶기도 했죠. 물론 가족들이 반대를 하고, 저는 원래는 법계통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정말 청백리셨다. 그래서 대학을 결국 못하고 별수없이 남편이랑 이모가 중매를 해서 결혼하게 되었죠.
그러다보니 어려운 사람에게 애정이 가요. 내가 학교 다닐때 점심도 못 먹고 물로만 배를 채우고 이랬거든요. 그러다가 미양초교 라는 곳을 갔는데 그 지역아이들이 어렵더라구요. 저는 어려운 아이들 있는 곳이라 지원했어요. 거긴 내 고향같아요. 내가 어려움을 겪으며 살다보니 정이가서 내가 마지막에도 그 학교로 보내달라고 해서 정년퇴직 했고. 퇴직하고 나서 막 울었죠. 끝나고 아이들 생각나서 울고 하다가. 이제 마을공동체 하고 행복해요.
영산_ 항상 보면 밝으시고, 순수하게 보내시고 보면 참 제가 항상 느낌이 좋아요. 만나면 항상 반갑게 대해주시고. 다른분과 달라. 애정이 넘치셔. 항상 잊지 않고.
경자_ 저는 오히려 선생님 한테 많이 배워요. 선생님이 대장암에 걸리셨을 때 누가 화장실에서 휴지를 떨어뜨리면 그걸 자신이 휴지통에다가 넣는다는 말을 하셨었어. 남이 안볼 때 착한 일 하는 선생님은 복 받고 잘 살으시겠다. 유치원가면 선생님 이야기를 동화를 만들어서 읽어주기도 했었어요. 그럼 아이들과 선생님이 너무 좋아해요.
영산_ 이렇게 백경자 선생님이 하시는거 보면 항상 낮은 자세로 활동 하시는게, 저도 그랬거든요. 어렵고 힘든 경우, 특히 비오고 할 때 체력도 안되고,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다 회사가는데 나는 흙 다 묻혀서 일하고 땀에 다 젖고. 나 자신이 내가 가지고 있는 그런 것들 놔야 할 수 있거든요. 울기도 많이 울고 시기질투도 극복하고 그랬죠. 저는 기독교인데 이런게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생각하고 정말 최선을 다해 했어요. 정말 억척스럽게 했죠. 손이 어떤 사람이 보면 운동했냐고 해요. 호미질 하고 이래서 손톱이 없어요. 자라나도 너무 가늘게 자라나. 손이 가운데가 뭉툭해지고. 원래 제가 사진 암실에서 작업해서 부드러운데 손이 얼마나 많이 썼으면 두꺼워지겠어요.
마음이 맞는 이웃을 만나다
지혜_ 백경자 선생님은 실버엔젤 분들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경자_ 도봉도서관에 아이들 지도하시며 봉사하는 분들이 참 좋아요. 그래서 내가 용기를 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나랑 같이 뭐 할까요. 돈은 안 받고 하는거에요.’ 이런식으로 여러분에게 물어봤었죠. 물론 단 돈 얼마라도 받아야 한다고 해서 거절하신 분도 있어요. 이런식으로 9명정도가 처음에 모아졌죠. 이분들이랑은 첫번째로 마음들이 잘 맞아요. 아이들을 좋아하고. 두 번째는 동화를 열심히 배워서 아이들에게 좋은 동화를 보여주겠다는 마음들이 맞아들어가는 사람들 인 거에요. 물론 해보면 힘들어해요. 배워서 어린이집 갔다오면 배가고파서 노인네들이라 힘들어하고. 그래도 구청에서 힘이 되는 말들을 자주 들려주셔서 그래서 즐겁게 끝날 수 있었어요.
그 다음번에는 구청에서 우리 세대들이 열심히 하는걸 잘 봐주셔서 상금도 주시고, 원고를 쓴걸로 5만원도 주셔서 그걸로 우리 팀원들끼리 밥도 사먹고 그러니까 아주 만족해 하셨어요.
지혜_ 오동우정회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영산_ 원래는 오사모라해서 오동공원을 사랑하는 모임, 그분들이 2007년 지나가다가 열심히 하는걸 보고 도와주겠다 해서 오사모가 생겼는데 나중에 뜻들이 안 맞아서 갈라졌어. 그 이후 오동우정회가 지속적으로 여기에서 2007년부터 축제를 계속 같이 하고 있지.
축제는 제가 먼저 시작하고 있었고 나중에 오사모가 도와주겠다 해서 같이 한 거고, 올해가 벌써 10회째네요. 처음엔 돈 지원 안받고 축제를 진행하다가 구청에서 조금씩 지원해줘서 축제를 하고 있어요.
지혜_ 활동하시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장면은?
영산_ 그 전에 쓰레기장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하다보니 사람들이 기뻐하고, 가을되면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하러 많이 와요. 여기서 놀고가고. 그때가 가장 행복해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이용할 때 가장 보람을 느끼죠.
현종_ 저도 그 혜택을 누리고 있어요. 여기 처음보고 놀랬어요. 들어오는데 보물같은 곳이 숨어있어요. 와 이런데가 있나.
경자_ 저 같은 경우는 저희들이 이게 힘들 것이다, 했는데 약식을 계속 해오시는 분이 있어요. 돈이 없는데도 말예요. 그래서 한 명도 안 빠지고 마지막까지 마무리하고 오실 때 보람이 있죠. 우리들의 목표가 어두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던건데. 심신이 장애인 신부님이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줬더니 어쩌다 길에서 만나면 너무 반갑게 인사를 하는거에요. 어린이 집에도 우리가 동화를 들려주려 가면 너무 반갑게 우리를 맞아줄 때 너무 좋죠.
끊임없이 노력하는 두 분
지혜_ 질문이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마을공동체에서 시니어 세대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경자_ 역할이라기 보단 나 자신이 좀 성장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돌아보면 하루가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어린시절 어려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과 기쁨을 주는 역할, 이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내 입장에서도 6.25때도 너무 힘들고 그래서 자존감이 형편없었지. 이 일을 하면서 아이들이 꿈을 갖고 행복하게 자라게 해주고 싶어서 이일을 시작했던 건데 하고나면 내가 너무 즐거워요. 내가 정말 엉망인 인생을 사는 것 같았는데, 근무하다가 아이들 눈을 보면 너무 행복한거야. 애들이 나를 보며 너무 즐거워 하는 것 같아서.
영산_ 저도 하다보면 성취감이라는게 있잖아요. 만족감, 사람들이 다녔을 때 너무 좋네요. 이런 말. 이런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것은 내가 정직하고 진실하게 했던 이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는거 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마을공동체 예산관련해서 문제가 있었을때도 내가 솔직하게 얘기했어.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융통성이 없다고 했지. 기본적으로 양심을 지키자는게 중요하지. 이 일을 하고 남이 본다, 그래서 하는게 아니라 밤에도 11시까지, 아무도 안보는데 한 적도 있어. 열정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진실해야 해. 그럼 내가 떳떳한 자신감이 있어요. 내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했으니까. 주인의식을 갖고 진실되게 활동하는 것, 그것이 아닐까 싶어요.
경자_ 서로서로 함께 하는 것도 큰 힘인거 같애. 우리 실버엔젤 분들도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손자를 봐야하고 어머니 병환으로 병원에 있어야 하는 분, 남편이 치매에 걸린 분, 찰밥을 해오시는 분, 새로오시는 분들 등, 피곤한 몸으로도 봉사와서 열심히 하시고. 그런거 보면 정말 이 마을공동체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해요. 우리 회원중에 숲해설가, 심리상담가도 있고, 이렇게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활동을 잘 하게되고 가까워 지게 되었죠. 이런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복인 것 같아요.
영산_ 저도, 퇴비가 항상 부족해. 자비로 좀 살까 그랬더니 아사모가 또 있어 오동우정회에, 아침을 사랑하는 모임. 그분들에게 퇴비 얘기를 했더니 퇴비 10포를 주문해주셨어요. 그러니까 힘이 생긴거지.
지혜_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은?
영산_ 시간이 지나서 나는 희생해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생각이 너무 좋았어요. 겨울에 너무 추울 때 사람들에게 차를 좀 대접하면 좋겠다 생각을 해서 1주일에 한번. 사람들하게 추울 때 한잔 차 따라준다는게 정말 뿌듯하더라고. 봉사란건 하면 할수록, 나눈다는 게 내 이익도 좋지만 주면 줄수록 더 주고 싶은 마음, 베풀고 싶은 마음이 있지. 그게 참 좋아.
경자_ 저희들이 물론 일자리도 좋지만 이걸 함으로써 마을공동체 목표가 좋잖아요. 마을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서로 대등한 관계속에서 자원을 나누며 추진하는 따뜻하게 활기찬 마을공동체를 꿈꿨던게 조금 가까이 다가간거 같아요. 경제적으로 앞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 이상 가는 마음의 보람과 행복감으로 대체할 수 있어요.
이야기는 끊임없이 계속 돼서 겨우 멈춰야 했다. 정말 왕성한 활동력과 열정으로 시니어 세대의 저력을 보여주시는 두 분. 앞으로도 두 분이 가지신 신념과 지혜가 마을살이 하려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첫댓글 멋집니다!! 마을의 보물같은 분들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