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창의성」 책 탐구
데이비드 봄의 '동화(Assimilation)': 파편화된 세계를 통합하는 창의성의 언어
현대 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방대한 지식과 경험은 우리를 압도하고, 우리는 종종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통합해야 할지 몰라 혼란을 겪는다. 이러한 파편화된 정보와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창의적인 힘은 어디서 오는가?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이비드 봄(David Bohm)은 그의 저서 '봄의 창의성'에서 이 질문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그 핵심 개념으로 ‘2장 과학과 예술의 상호 동질성’에서 '동화(Assimilation)'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이 단어에 주목하게 한다.
이 글은 봄이 말하는 '동화'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고, 그것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지, 그리고 이 개념이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동화'는 단순히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파편화된 사고와 세계를 통합하여 '전체성(wholeness)'을 회복하는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과정이다.
1. '동화'란 무엇인가: 수동적 흡수가 아닌 능동적 재구성
우리는 흔히 '동화'라는 단어를 '어떤 집단이나 문화에 섞여들어 그들의 일부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한다. 그러나 봄이 사용하는 '동화'는 훨씬 더 역동적이고 근본적인 의미를 지닌다. 봄에게 '동화'는 외부의 대상을 단순히 수용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자신의 내면의 질서 속으로 완전히 녹여내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전체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이는 음식을 섭취하여 우리 몸의 일부가 되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생리적 동화 작용과 유사하다.
봄은 과학과 예술이라는 두 가지 창의적 활동을 예로 들어 이 개념을 명확히 설명한다.
-과학자의 동화: 과학자는 자연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 이상을 수행한다. 그들은 관찰된 사실들을 자신의 사고 체계와 기존의 지식 속으로 '동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가설과 이론이 탄생하고, 우리는 우주에 대한 새로운 '개념적 그림'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단순히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현상을 자신의 생각 속으로 동화시켜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했듯이 말이다. 봄은 이러한 창의적인 동화 과정을 통해 과학이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는 하나의 예술적 표현이 된다고 말한다.
-예술가의 동화: 예술가 역시 외부의 현실을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의 풍경, 인간의 감정, 사회적 현상과 같은 외부 세계의 단편들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여 '동화'시킨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창적인 시각과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조화와 미를 갖춘 총체적인 구조로 작품을 재구성한다. 피카소가 현실의 대상을 해체하고 재배열하여 새로운 시각적 질서를 창조했듯이, 예술가의 동화는 파편화된 경험들을 하나로 엮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봄에게 '동화'는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흡수(absorption)'나 단순히 다른 것에 '비유(analogy)'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외부의 현실과 주체인 '나'가 서로 경계를 허물고 상호 침투하여, 양쪽 모두를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상호작용이다.
2. 왜 우리는 '동화'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하는가?
봄이 이 개념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현대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인 '파편화(fragmentation)'를 극복하는 데 '동화'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파편화된 세계: 우리는 세상을 과학, 예술, 종교, 정치 등 수많은 분야로 나누어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이 파편화된 사고방식은 각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동시에 전체와의 연결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분야의 파편적인 지식을 동원하지만, 이 지식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통찰을 잃어버렸다.
-동화를 통한 전체성의 회복: '동화'는 바로 이 파편화된 지식과 경험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이다. 봄은 진정한 창의성은 기존의 틀에 갇힌 사고방식인 '사고의 패턴(Thought Pattern)'을 깨고, 더 큰 '전체성(wholeness)'과의 연결을 회복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믿었다. 동화는 바로 이러한 전체성으로 향하는 통로이다. 과학자가 자연을 동화시켜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예술가가 현실을 동화시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동화하여 삶의 파편들을 하나의 의미 있는 전체로 통합할 수 있다.
-의미의 재창조: 파편화된 세계는 의미를 상실한 혼란 상태를 야기한다. 우리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왜 중요한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동화'는 이러한 의미를 재창조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을 우리 자신의 내면의 질서 속으로 동화시킬 때,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 그 정보가 나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발견하게 된다.
3. '동화'가 펼쳐낼 새로운 가능성
봄의 '동화' 개념은 단순히 이론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실천적인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워크숍 참여자들이 속한 상담, 평화활동, 공동체 활동 등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갈등 해결의 새로운 접근: 갈등은 종종 서로의 관점을 파편화된 '진실'로 고집할 때 발생한다. 평화활동가와 회복적 정의 실천가들이 직면하는 이 문제는, 상대방의 관점을 단순히 '이해'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내면으로 '동화'시켜보는 노력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상대방의 고통과 두려움을 나의 것으로 끌어안고 진정으로 통합할 때, 비로소 상대를 악마화하는 기존의 사고 패턴을 깨고 공감과 화해의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
-창의적 공동체 건설: 마을 활동가나 서클 프로세스 실천가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 구성원의 파편화된 목소리와 관점들을 단순히 취합하는 것을 넘어, 그 모든 목소리를 '공동체'라는 더 큰 질서 속으로 '동화'시킬 필요가 있다. 데이비드 봄의 '대화(Dialogue)'는 바로 이러한 집단적 '동화'의 실천 모델이다. 참여자들이 각자의 전제를 '보류(suspend)'하고 함께 의미의 흐름을 탐색하는 과정은, 개인의 생각을 넘어선 새로운 집단적 통찰을 창조한다.
-개인의 온전한 성장: '동화'는 상담 과정에서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상담사는 내담자의 파편화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하나의 의미 있는 삶의 서사로 동화시키는 것을 돕는다. 융이 말하는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 역시, 의식과 무의식, 밝은 면과 어두운 면(그림자) 등 내면의 다양한 파편들을 통합하여 온전한 '자기(Self)'를 찾아가는 동화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 파편화된 시대에 던지는 '동화'의 메시지
데이비드 봄이 '동화'라는 단어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명료하다. 우리는 더 이상 파편화된 현실과 사고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과학과 예술이 그러했듯이,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자신의 내면에서 능동적으로 '동화'시키는 창의적인 노력을 통해, 분열된 세계를 통합하고 새로운 의미와 질서를 창조해야 한다.
'동화'는 우리에게 닫힌 사고의 문을 열고, 익숙함의 감옥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힘이다. 그것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창의성의 기회로 바꾸고, 개인의 성장과 공동체의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태도이다. 파편화된 시대의 혼란 속에서, 봄이 말하는 '동화'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은, 우리가 온전한 삶과 조화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