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농부의 가을 도고통신(농촌생활의 장단점 포함).
깊어가는 가을이다. 여름 동안 빈자리 채워준 무궁화 꽃마저 지고, 이제 구절초가 한창이다. 뱀 오지 말라고 많이 심어 둔 금잔화(매리골드)도 막판에 이른 듯하다. 아직 피지 않고 남아있는 꽃은 국화일 것이다. 꽃은 귀한 때이지만 수확물은 많다. 밤 줍기는 끝나가고 있고 농촌의 고령화 때문이지 밤 줍는 사람이 적어져 주변 산에 밤이 지천이다. 밤은 떨어지고 바로 줍지 않으면 며칠 내로 벌레 먹는다. 특히 농약을 주지 않고 자연에서 크는 이곳의 밤은 더 심하다. 그래도 농약 안준 밤을 실컷 먹을 수 있어 좋다. 무화과도 끝물이지만 오늘도 몇 개 따왔다. 머루 다래도 끝물로 조금 더 남아 있고, 못 딴 호박도 풀들이 시드니 들어나기 시작한다. 추석 때 캐어먹고 남은 토란도 곧 캐야한다. 내가 좋아하는 감도 따야 한다. 늦게 따면 감 맛은 더 좋지만 저장이 어렵고, 새들의 먹잇감이 된다.
아직 수확 기간이 좀 남은 것들은 김장 배추와 무, 쪽파와 시금치, 서리태와 속청태(밤콩) 등이다. 아마추어 농부의 한해 농사일도 마무리 되는 듯하다. 재미있고 보람차다. 도고 생활 6년이 넘어 가면서 나 자신의 방식으로 농사를 편하게 짓고 있다. 수확은 많지 않아도 노동을 덜 들이고 환경을 적게 파과하면서 농사짓고 있다. 어렵지 않다. 올해는 농사 말고도 한 일이 꽤 많다. “소설 이존창, 인간의길“을 발간했고, 이를 영어로 내는 작업도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그리고 독일에 살 때 이웃이었던 분의 자서전 ”서독광부 박세윤의 삶“을 출판하는 것도 도와주고 있다. 또 ”정대영의 한국경제사, 170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격주로 강의하면서 영상을 찍고 있다. 11월 초 강의가 마무리되면 유투브로도 올릴 계획이다. 나중에 이것도 잘 정리해서 한글과 영문으로 책을 내려한다. 자랑스러운 노벨상 작가가 된 소설가 한강의 작품처럼 한국의 많은 작가들이 영어 등 외국어로 책을 내야한다.
독자는 줄고 작가만 늘어나 책이 안 팔린다고 푸념하는 작가들이 있다. 국민들이 책을 읽지 않고, 책이 안 팔리는 것은 사실이다. 세상 분위기가 바뀌어 한국 사람들이 책을 읽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해외 시장이 넓으니 영어로 책을 내 해외로 나가는 것도 좋은 대안일 듯싶다. 기업도 국내 시장만을 목표로 했다면 삼성과 현대와 같은 기업이 나오질 못했을 것이다. 이들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커온 것이다. BTS도 그랬듯이 문학이나 출판도 해외에서 성공을 해야 클 수 있다. 소설가 한강이 그 길은 제대로 연 듯하다.
또한 목표를 세계로 한다면 서울이나 대도시에 살지 않아도 될 듯하다. 국내시장만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이나 수도권이 유리할 수 있지만, 목표가 세계라면 지방이나 농촌도 괜찮을 듯하다. SNS로 세계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데 서울과 지방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매일 출퇴근 하는 사람은 직주 근접이 좋겠지만, 집에서 생각하고 글 쓰는 사람은 농촌도 괜찮다. 농촌에 사는 것은 좀 불편하고 선호도가 사람에 따라 크게 갈리지만, 공익성은 아주 높다. 지역 균형발전, 환경보전, 농촌소멸 방지, 농업생산 증대 등 좋은 점이 아주 많다, 특히 한국 사회와 경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말만이 아니고, 자기 의지로 실천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가 농촌에 사는 것이다.
도고로 이사 온지도 만 6년이 넘었다. 이제 농촌살이의 장단점을 자신 있게 이야기할 때도 된 듯하다. 유튜브 등을 보면 살아보지도 않고 올리는 것 같은 정보가 너무 많다. 먼저 단점을 살펴보자. 가장 큰 것이 농촌의 주택은 가격이 떨어지고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지는 모르겠다. 서울 요지의 집값은 계속 괜찮을 가능성이 크지만, 수도권 어설픈 지역 아파트는 하방위험이 더 크다.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빈집이 많이 늘어날 텐데 집을 비워놨을 때 농촌 단독주택이 아파트보다 유지비가 적게 들어 유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와 문화, 쇼핑과 외식 등의 불편도 농촌 생활의 큰 단점이지만, 한국이란 나라가 크지 않기 때문에 아주 오지 농촌이 아닌 한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다. 난방비 폭탄은 요즘 규정대로 지은 집은 전혀 관계가 없고, 우리 집처럼 20년 정도 된 집도 엉터리로 지은 집이 아니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면 아파트보디 난방비가 적게 든다. 그리고 할일이 많다는 것은 단점이기 쉽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다음으로 농촌살이의 장점을 살펴보자. 나의 경우는 가장 좋은 장점이 항상 몸을 움직여 할일이 있다는 것이다. 머리 쓰는 일을 한참 하다보면 몸을 움직이고 싶다. 도시에 있으면 산책이나 헬스클럽을 가야겠지만 여기서는 농사일 집 관리를 하면 된다. 항상 조금씩 있고, 잘 못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 좋다. 이제는 농사도 거의 다 내 방식대로 한다. 우리 집 농산물이 더 좋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도 알아 인기가 많다. 그리고 도시에서 못해본 일을 하고 못 먹어 본 것을 먹는 것, 즉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엄청난 장점이다. 우리가 이런 것을 위해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니, 농촌에 살면 해외여행의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어떤 작물을 키울까? 이 나무를 어디에 심으면 더 잘 클까? 화덕을 어떻게 만들어 고구마를 맛있게 구어 먹을까? 다 재미있는 일들이다. 도고로 이사와 처음 먹어본 것도 많다. 토종오이, 생으로 깎아먹는 호박, 야생 밤, 머루와 다래, 꺼먹지, 밤콩, 개암, 농약 전혀 안한 채소들.... 도시에 살았으면 죽을 때까지 먹어보지 못했을 것들이다. 좋은 인생 중의 하나는 살며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해보며 살다 죽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농촌지역은 조만간 대부분 소멸할 것이다. 강력한 정책지원도 필요하지만 뜻있는 사람들의 결단만 있으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농촌도 사람 사는 곳이고, 6년 넘게 살아보니 살만하다. 병원 중환자실에 실려 갈 때가지는 이곳 도고에서 살았으면 한다. 집사람도 같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