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인사이드아웃>
일본 거래처와 꽤 오랫동안 관계한 것과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최근 한 십 년 정도는 연에 두 차례 이상은 일본을 왕래하며 지근거리에서 이들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맛집, 관광지 찾아다닌 적은 별로 없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tv보거나 동네 아무식당이나 들어가서 아무거나 시켜먹거나, 수퍼 식품코너에서 조리식품 장만해와서 끼니 떼우거나, 동네 벼룩시장 구경하거나 하는 그런, 로컬에 가까운 생활을 짧게는 3일, 길게는 일 주일 정도 하고 온다.
작정하지 않아도 이 사람들 삶을 관조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이들이 얼마나 우리와 다른지도 얼얼하게 체감한다.
하루에 차가 몇 대나 지나갈지 모를 시골 한적한 2차선 도로 보수 작업을 하더라도 펜스설치 빈틈없이 하고, 작업복에 안전모까지 챙겨쓰는 모습, 아파트상가만한 크지 않은 건물의 주차관리 요원 세 명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유니폼에 각잡힌 모자까지 갖춰 쓰고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요란스러울만치 열심히, 혼신을 다해 차량을 지도하는 모습, 당장 로봇으로 변신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멋진 메카닉의 소방차를 광나게 닦아놓고 한 여름 더위에 그 곁에서 방제복 차림으로 무거운 더미를 나르고, 밧줄을 옮기는 연습을 죽어라 하고 있는 군살하나 없이 작고 마른 몸의 소방수들, 일요일에도 클럽활동하러 교복 차려입고 학교에 다녀오는 아주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의 학생들, 깨끗이 다린 흰 셔츠에 까만 바지를 교복처럼 입고 출퇴근하는 풋풋한 사회초년생들, 마트 계산대에서 항상 동전지갑을 꺼내들고 1엔 동전까지 정성껏 세어가며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 한결같은 가격과 품질의 허름한 식당들, 라멘 한 그릇, 맥주 한 잔으로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소박한 아버지들, 초겨울 볼이 빨간 조그만 아기를 맨발차림으로 안고 나다니면서도 호들갑스럽지 않은 애기엄마들, 보도블럭이 깨지고 닳은 오래된 길가 어디에도 쓰레기 한 조각 찾을 수 없는 청결함과 시쯔레이, 도조가 입에 붙은, 어깨가 굽을만큼 만물에 공손한 사람들.
처음에 이게 선진국이로구나 싶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그들의 그런 모습에 매번 놀라지만 포인트가 달라졌다. 처음 몇 번의 방문동안에는 우리의 무질서함과 그들 사이의 ‘다름’에 충격받았다면 몇 해가 흐를수록 그 무서운 ‘한결같음’에 충격받는다.
사회가 질서와 같은 공공의 윤리적 기준을 자발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자산을 투입해야 할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기준을 구성원들이 종교처럼 받들어야 하고,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어지간한 삶의 과제들은 철저히 개인의 영역에서 감당해야하는 성숙함이 요구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말귀를 알아듣기 전부터 수도 없이 반복하고, 어른이 본을 보이며 체득시켜야한다. 폐 끼치지 않겠다는 다짐은 반대로 도와줘야한다는 강박으로 부터도 일말의 해방을 준다. 결론적으로 받지도, 주지도 않는 선에서 철저히 개인의 책임 하에 생활이 향유되는 셈이니 스스로 생겨먹은 만큼 사는 개인주의 사회의 모범이 그쪽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 이 바운더리를 어설프게 넘을 경우,(일본인들 정이 없네어쩌네 하면서 괜히 숟가락 들고 남의 찌개 뒤적거리듯하는 한국인 특유의 오지랖 부렸다가) 바로 응징을 당하게 되는데 그 ‘응징’이란 게 일본 만화에서 보듯 밀가루 뿌리고 계란 던져대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다. 눈치 없는 한국인들은 그거 별거 아니네 하고 쓰잘데기 없는 극기의 정신을 세팅할 수 있지만, 개인의 총합이 집단을 지향하는 일본 사회에서 성숙한 개인으로서 그들의 수준에 동화되지 못하면 언감생심 집단에도 낄 수 없는 반편이가 되는 게 일본 사회다. 개인을 지향하지만 철저히 전체의 룰에 적응한 개개인만을 인정하는 이들의 문화는 아주 높은 수준의 자기 희생을 당연시하되, 그 보상이래봤자 한 성원으로 질서유지에 기여했다 정도의 정신승리 외 딱히 없다. 그래서 일본엔 자살은 아니지만 사회로부터 완전히 증발되는 삶을 택하는 사람이 매년 십만이다.
수준 높은 구성원이 이룬 젠틀하게 숨막히는 전체주의가 내가 체감하는 일본의 모습이다. 물론 촛불들고 선동당했다가 에라이 못살겠다,문재앙 씹ㅅㄲ하고 낯빛바꾸는 이쪽과 근본이 다른, 은근과 끈기가 있는데, 수시로 노래방에서 락스피릿 발산하고, 시나위가락에 머리채 줘 흔들고 아무하고나 대~한민국 짝짝짝짝짝하며 숨구멍 트면서도 날마다 답답하다고 지랄발광을 털어대는 이쪽과 달리 이 한결같음과 질서에 대한 갈망, 공동체적 지향을 위한 개인적 자제력같은 게 아주 무서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과거 대동아공영같은 식민지 야욕으로 드러날 수 있는데가 저쪽 동네라고 생각한다.
우파 진영에서는 일본 관광 몇 번 다녀오신 분들이 돈 쓰는 맛에 도취되어서 일본인들의 공손함을 얕잡아보거나, 우월감 느끼는 분 또는 친일로 개종하는 분들 심심치 않게 보인다. 기모노 차림의 료칸주인이 무릎 꿇고 말차에 쌀과자 놓아 주고, 코를 박고 절하는 서비스 해주면 본전생각 잊을만큼 헬렐레하거나, 그저 지극히 구경꾼의 관점으로 일본을 이해하시는 거라고 본다.
지금 일본은 미국의 동맹으로 한국 전쟁 직후 2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수복할 막강한 성장 기반을 획득한 역사를 재현할 조짐을 보인다. 우리는 현재의 외교라인으로는 맹수들의 전리품이 될 게 명약관화다.
영화 <박치기>처럼 재일이라고 존나 무시당하는 조센징의 인생은 깜빡 잊고 친일친일 노래하시는 우파 분들, 이제 미일로 질서가 재편되는 가운데 대한민국 주도권이 일본에 넘어가도 친일친일 할 수 있으실지. 그 숨막히는 자제력을 강요당하며 삼류민취급으로 전락당하는 삶에서도 니혼 스고이할 수 있을지.
전장이 된 대한민국에서 all or nothing의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하지만 광장은 비었고, 맨날 유튜브 따봉하고 혐오와 분노를 자극하는 소몰이에만 빡이 터지니 언젠가 내 나라를 먼저 떠나는 걸로 반환점을 먼저 돈 토끼처럼 보란 듯이 날뛰는 꼬라지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겠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라를 떠난 국민의 삶은 번영한 대한민국의 이민자가 아니라 디아스포라의 삶에 내몰린 유민이 될 뿐인 줄 모르고.
정말, 내 나라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
Alexander Wang (페이스북)
첫댓글 공감입니다. 몇년 전 후쿠오카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택시기사가 70대 후반의 노인부부 택시에 태우시고 캐리어 2개 트렁크에 싣기 까지 시간이 좀 소요가 되었습니다. 저와 일행은 버스에 있었는데, 버스에 타고있던 일본승들과 버스기사는 잠잠히 기다려 주었습니다. 저와 일행들은 만약 한국이었다면 저 택시기사 버스 운전사에게 맞아 돌아가셨을거다 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 무서운나라라고 느꼈습니다.